강이찬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심미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고작 사진 한 장 때문에 결혼을 안 해요?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미경 씨 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오늘 저녁에는 왜 이진이처럼 막무가내에요?”심미경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보름만 있으면 결혼할 건데, 사진 한 장 태워버리라고 해서 제가 막무가내로 보여요?”“그럴 필요 없어요.”강이찬은 이 한마디를 내뱉고 뒤돌아 성큼성큼 거실을 떠났고 문을 열자마자 강이진과 부딪히고 말았다.아까 싸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지나가다가 다 들었던 것이다.강이진은 거실에 서 있는 심미경을 비웃더니 말했다.“무슨 자격으로 우리 오빠더러 사진을 태우라 말아야! 너의 꼬락서니를 봐. 우리 오빠랑 어울리기나 한다고 생각해?”화가 들끓고 있던 강이찬에게 기름을 더 부은 식이 되었다.그는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그 입 닥쳐! 네가 말할 자리가 아니야!”강이진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오빠 나한테 이 정도로 화를 낸 적이 없는데...’강이진은 서운하기는 했지만 두려워 아무 말도 못했다.최근에 강이찬에 의해 카드사용중지가 되었기 때문이다.강이찬은 그렇게 별장을 떠나버리고 말았다.그가 멀리 떠나자 강이진은 결국 폭발하더니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팔짱을 낀 채 아랫사람을 보듯 심미경을 깔보면서 말했다.“심미경, 꿈 깨. 눈치가 있으면 빨리 우리 오빠 곁에서 꺼져. 오빠는 널 좋아하지 않아. 우리 오빠한테서 무엇이라도 건져낼 생각 죽어도 하지 마! 우리 오빠는 회사도, 재산도 나중에 다 나한테 물려줄 거기 때문에 꿈 깨라고!”심미경은 비웃듯이 말했다.“내가 너희 오빠한테 시집 안 가도 언젠간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겠지. 그러면 이제 자기 아이가 생기면 아이한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지. 누구한테 꿈 깨라고 하는 거야!”아이 언급에 강이진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임신했어? 조유진처럼 아이 덕에 팔자 좀 고쳐보려고?”“너랑 무슨 상
심미경은 사탕 하나를 물고 캐리어를 꺼냈다.강이찬과 헤어지면 그의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이 안방은 심미경의 스타일대로 다시 인테리어한 것이었고 전자제품부터 커튼까지 모두 그녀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미움을 받으면서 계속 여기에 남아있을 정도로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아니었다....짐 정리를 마친 심미경은 캐리어를 끌고 안방을 나섰다.1층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강이진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실실 웃기 시작했다.“가출이 우리 오빠한테 먹힐 것 같아?”심미경은 그녀와 말도 섞기 싫었다. 강이찬과 헤어지기로 했으니 그녀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강이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한두 가지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가는 것이 좋을 거야. 예를 들어 신분증 같은 거. 그 핑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잖아. 우리 오빠가 찾지도 않는데 자기 발로 돌아오는 건 너무 쪽팔리잖아.”심미경이 받아쳤다.“난 너처럼 얼굴이 두껍지 않아. 오빠 등이나 처먹는 주제에. 난 이찬 씨가 곁에 없어도 살 수 있는데. 너는? 기생충 따위가 밖에 나가서 살 수나 하겠어?”“누구더러 기생충이래!”“지금 질문하고 있는 사람.”강이진은 화난 나머지 얼굴에 붙이고 있던 팩을 떼어버리고 씩씩거리면서 심미경을 향해 걸어갔다.“너도 우리 오빠 회사에서 출근하잖아? 기생충이 아니면 사직서 내든가!”“한 달 전에 이미 사직서 냈거든? 걱정 마, 네가 나 보기 싫은 것처럼 나도 너 꼴 보기 싫어.”“야!”심미경은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천우 별장을 떠났다.강이진은 화가 나 입구를 향해 베개를 집어 던졌지만 그때는 심미경이 이미 집을 나선 후였다.그녀는 또 심미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하,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밀당까지 해? 우리 오빠가 다시 너 찾으러 가면 손에 장을 지질 거야!”...인천 무의도.태풍 바람이 창문을 마구 두드렸다.섬에서 사는 주민이 많지 않아 밤이 되면 고요했고, 태풍 바람이 유
밖의 파도 소리는 더욱더 거세졌고 조유진은 더욱 불안해졌다.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배현수의 목을 그러안고 낮게 대답했다.“...네.”배현수는 그렇게 조유진을 안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유가 넘어지면 뭐라고 하게?”“네?”“아야...”“풉...”조유진이 웃자 배현수가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재밌지?”조유진은 작게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아재 개그 좋아해요? 재미없어요.”“재미없어도 웃었잖아.” 배현수는 놀리듯이 얘기했다.“...”7년만에 보여준 웃음이 아재 개그 때문이라니.이럴 줄 알았으면 아재 개그 모음집을 샀을 것이다.“유진아.”배현수는 갑자기 정색하고 그녀를 불렀다. “네?”“내일 나랑 같이 대제주로 돌아가자. 선유가 오늘 밤 전화 왔어. 언제 돌아오냐고.”조선유가 저녁에 배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조유진이 살짝 놀랐다.하지만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조선유가 그립기도 했다. 아이를 떠올린 조유진이 물었다.“내가 인천으로 온 후 선유랑 싸웠었어요?”전에 조선유는 자꾸만 배현수와 말다툼을 했었다.다른 집의 아빠와 딸은 전생의 연인 같기도 한데 배현수와 조선유는 전생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자주 다퉜다.배현수도 조선유에게 지지 않고 계속 조선유를 훈계하려고 들었다.배현수는 시선을 내리깔고 솔직하게 대답했다.“응.”조선유의 얼굴을 보면 가출해서 연애 프로그램에 나간 그녀의 친엄마가 떠오르는데,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게다가 조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짜증을 돋우는 학과라도 전공한 걸까. 조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왜 애랑 싸우고 그래요.”배현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선유가 먼저 나한테 시비 거는 거잖아.”“...”자기 딸이랑 시비를 가리는 아빠라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안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르며 얘기했다.“아직 대답해 주지 않았잖아.”“뭘요?”“내
조유진은 배현수와 다시 시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자 배현수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조유진이 급히 해명했다.“게다가 현수 씨의 신분으로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좋지 않잖아요. 이미지에도 안 좋을 건데...”배현수는 차갑게 코웃음치더니 얘기했다.“날 위하는 척 하지마.”“...”“날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아니면 나랑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나 때문에 네 그 청순한 솔로 이미지에 영향이 가서 돈을 못 벌까 봐 그래?”화가 난 사람이 하는 말은 뇌를 거치지 않는 법이다.배현수도 마찬가지였다. 조유진의 일에는 자꾸만 평정심을 잃었다.배현수의 말에 조유진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녀는 멍하니 배현수를 쳐다보며 끌어안고 있던 배현수의 목에서 손을 뗐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몸을 돌려 그를 등지고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조유진이 갑자기 숨을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가 무슨 사이였으면 좋겠는데요? 자세히 얘기하면 전 연인도 아니라 원수 아니에요?”듣기 거북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게 진실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너무 단단한 벽이 있다. 다시 가까워지려고 해도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조유진이 그 얘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마지막까지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녀는 모든 힘을 다해서 배현수를 사랑할 수도 없고 독하게 마음먹고 예지은을 미워할 수도 없었다.지금 조유진과 배현수는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안고 있었다. 우습지 않은가. 배현수는 자리에 누운 채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기분은 이미 바닥이었다.결국 그는 자존심만 세우며 말을 던졌다.“아직 13일이 남았어. 13일만 지나면 넌 자유야. 그전까지는 나랑 있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참고 붙어있어.”조유진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가는 살짝 젖어있었다.조유진에게 있어 배현수는 그저 조선유의 아빠일 뿐이다.이혼이
조유진은 소리를 지르는 배현수를 보고 살짝 놀라서 대답했다.“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배현수는 믿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조유진은 배현수가 그녀와 함께 뛰어내린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조유진에게 배현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그럼 조선유는?배현수는 조유진의 어깨를 붙잡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얘기했다.“조유진, 다시 이런 생각하기만 해봐. 네가 죽으면 선유에게 독한 새엄마를 찾아줄 테니까.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조유진은 배현수를 신경 쓰지 않지만 조선유의 일에는 신경 쓸 것이다.배현수가 조선유에게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죽으려고 한 것이겠지.하지만 그 예상이 빗나간다면? 배현수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듯, 차가운 표정으로 협박했다.배현수는 뱉은 말을 지키는 사람이다.조유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얘기했다.“선유는 현수 씨의 친딸이에요. 결혼을 한다고 해도 적어도 인성은 좋은 사람이랑 결혼해요. 선유한테 잘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학대하지는 말아야죠... 현수 씨... 어떻게...”배현수는 조유진을 바라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감히 죽기만 해봐. 선유한테 독한 새엄마를 찾아줄 테니까.”“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예요.”두 사람이 알고 지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배현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기에 절대로 조선유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배현수는 조유진의 말에 반박하며 똑똑히 얘기했다.“아니! 난 그렇게 할 거야. 그러니 다시는 자살 따위 생각도 하지 마. 네가 죽으면... 나는 선유를 당장 갖다 버릴 거니까.”“애는 죄가 없어요.”게다가 조유진은 투신하려던 게 아니다.그저 자기가 두려워하던 것을 이겨낼 수 있는지, 마주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7년 동안 그녀는 그저 도망만 다녔다. 하지만 도망칠수록 공포와 트라우마는 끈질기게 그녀를 쫓아다녔다.화가 난 배현수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에 숨을 크게 들이쉰 그의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이 감정
배현수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앞만 쳐다볼 뿐, 조유진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어투는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조유진을 안고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로다가 마침 그녀를 찾아왔다.제작진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몰랐다. 조유진은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현수의 품에서 반항하며 작게 얘기했다.“일단 내려놔 줘요.”미간을 찌푸린 배현수는 조유진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더 세게 안았다. 배현수는 조유진을 안은 채, 담담하게 로다 옆으로 지나갔다.로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지나갔다.“...”‘내가 안 보이나?’게다가 시찰단이 여자 게스트를 이렇게 안고 가는 건 좀...오히려 이 두 사람이 커플 같았다.두 사람은 어느새 방에 들어왔다. 배현수는 발목을 다친 조유진을 소파에 앉혔다.그리고 조유진의 발목을 잡고 자기 다리 위에 놓고 관찰했다.조유진의 피부는 아주 하얗고 부드러워서 마치 비단 같았다.발목을 잡은 배현수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손바닥이 그녀의 발에 닿을 때, 조유진은 부끄러워서 귀가 빨개졌다.이 동작, 이 각도. 분위기가 살짝 오묘해졌다.게다가 조유진은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이곳에는 바를만한 약이 없었다. 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발목을 마사지 해줄 수밖에 없었다. 조유진은 아파서 다리를 굽혔다.배현수는 시선을 들어 조유진을 보다가 그녀가 흰 원피스를 입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조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아파요! 그만 해요!”배현수는 그저 차갑게 웃고 얘기했다.“아픈 줄은 아네. 여기 가만히 앉아있어. 짐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그리고 배현수는 짐 정리를 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또 걸음음 멈추고 물었다. “앞으로 흰 원피스는 금지야.”조유진은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왜요? 안 예뻐요?”“응. 징조가 안 좋아.”“...”현대 사회에 배현수 같은 사람이 미신을 믿다니. 흰 원피스가 안 좋은 징조라면, 그
대제주의 밤. 강이찬은 술을 많이 마셨다. 그가 천우 별장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강이진은 거실에 앉아 마스크 팩을 붙인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오빠, 왔어?”그녀는 게임기를 내려놓고 강이찬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가자 강이찬의 몸에서 술과 담배의 냄새가 진동했다.“술 마셨어?!”강이찬은 목의 넥타이를 풀며 강이진에게 물었다.“심미경 씨는?”“오전에 갔어.”강이찬은 강이진을 사납게 쏘아보며 물었다.“또 괴롭혔어?!”강이진은 억울하다는 듯 얘기했다.“난 괴롭힌 적 없어! 본인이 알아서 가겠다고 한 거야! 관심하지 마! 캐리어까지 끌고 나간 걸 보면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화내는 거야. 내가 이런 걸 한두 번 보는 줄 알아? 며칠 가만히 두면 알아서 돌아올 거야.”“가기 전에 뭐라고 한 적 없어?”뭐라고 했긴. 강이진에게 기생충이라고 했었다.‘자기는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대단하면 영원히 돌아오지 마라!’강이진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아니. 오빠, 많이 마셨네. 얼른 올라가서 쉬어. 심미경은 상관하지 마. 알아서 돌아올 거야.”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그냥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강이진은 그런 여자들을 많이 봐왔다.강이진이 강이찬을 부축하여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강이찬이 갑자기 강이진을 뿌리쳤다.“오빠, 왜 이래... 설마 그 여자 때문에 이러는 거야?”강이찬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심미경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들려오는 건 차가운 기계 음성이었다.“지금 거신 전화기가 꺼져있어...”강이찬의 눈에 놀란 기색이 비쳤다.심미경은 한 번도 그의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언제 어디서 뭘 하든지, 그녀는 강이찬의 전화를 꼬박꼬박 받았다.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을 아예 꺼버렸다.미심쩍게 생각한 강이찬이 강이진을 보며 다시 물었다.“정말 안 괴롭혔어?”“내가 왜 괴롭히겠어. 그저 오빠한테 안 어울리는 여자라고 했을 뿐이야. 이건 사실이잖아. 이 정도도 못 견딘다면 그건 너무 마
강이진은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서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얘기했다.“왜서! 난 오빠 친동생이야! 심미경이 돌아오든지, 말든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강이찬, 너 미쳤어?”“네가 평소에 미경 씨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정말 몰랐을 것 같아? 너라서 봐준 거고 귀찮아서 별로 상관하지 않았더니 넌 이미 선을 넘었어. 강이진, 네 꼴을 봐. 그래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으면 가서 계속 반성해.”강이찬은 계속 참아왔다. 평소에 강이진을 혼내는 일도 드물고 화를 내는 일도 드물었다. 그는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하지만 오늘은 술을 마셔서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게다가 강이진이 계속 도발하듯이 얘기하니 더욱 화가 났다.강이찬은 계속 멀쩡한 척할 수가 없었다. 육지율의 말이 맞았다. 평소에 성질을 죽이고 착한 모습을 보여주느라 착한 사람이 된 줄 알았지만 사실 강이찬의 성격도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배현수와 달랐다. 육지율과도 달랐다.배현수는 항상 고고한 사람이다. 좋고 싫은 감정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은 정말 끔찍이 아끼고 온갖 좋은 물건을 갖다바칠 정도였다. 싫어하는 것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짜증도 감추지 않는다.배현수는 조유진을 사랑한다. 그리고 동시에 조유진을 미워한다. 반대되는 두 감정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하지만 조유진은 배현수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눈에 띄는 편애와 강압적인 사랑을 말이다.이게 바로 배현수였다. 그는 뼛속까지 강압적이고, 이기적이며 고고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화젯거리로 되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고 눈도 높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 시절에 그의 눈에 들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그래서 배현수는 곁에 친구가 적었다. 그래도 그는 의미 없는 사교 관계에 집착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다 덜떨어진 사람들이니까.육지율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다. 집안도 좋고 일 처리 방식도 고귀한 도련님들처럼 대범했다. 그는 한 번도 성본과 후과를 고려하지 않았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