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열도 나고 폐기종 증상도 있어 이 섬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다간 아무도 책임질 수가 없었다.이 섬은 병원도 없이 의료시설이 부족했다.만약 고열에 산소 부족 현상까지 나타난다면 그 후과는 아무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조유진도 일주일간 사람을 너무 시달리게 하는 조작 프로그램 때문에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참이었다.하지만...“중도에 하차하면 출연료도 주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위약금을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배현수가 자신을 대신해 위약금을 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평생 그한테 빚진 돈을 갚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조유진은 이를 꽉 깨물더니 그래도 참아보기로 했다.‘왜 예전에는 유진이가 돈을 좋아한다는 거 몰랐지?’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내일 출연료 받을 수 있게 해줄게. 나랑 집에 가자. 응?”“...”‘진짜?’“선유가 너를 보고 싶어 해.”조유진은 중도에 하차해도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렇게 대답에 응하려고 했을 때 그의 목젖에 있는 키스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여자친구도 있는데 이렇게 안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조유진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됐어요. 이만 돌아가요.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거예요. 며칠만 지나면 촬영도 끝날 거고 조금만 참으면 돼요.”“유진아.”배현수는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목소리마저 차가워졌다.“남은 시간 동안 잘 지내보자고 말한 건 너잖아.”“네. 제가 말했죠.”“그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도 나 언짢게 하고 싶어?”조유진은 입을 움찔거렸다.“...”‘내가 뭐 미쳤다고 일부러 언짢게 했나?’배현수는 문에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면서 슬슬 인내심을 잃어갔다.“조유진, 너의 계약 정신은?”‘채권자를 즐겁게 할 거라며, 난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2800억 원으로도 유진이 웃음을 살 수 없는 건가?’요 며칠 배현수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조유진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조유진은 심장박동수가 빨라졌다.이때 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나랑 집에 가자.”고작 남은 14일 동안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한테 시간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예를 들어 로다말이다.문밖.“햇살 씨, 계세요?”조유진이 욕실에서 대답했다.“무슨 일이에요?”“자전거로 바다 한 바퀴 돌면서 바닷가 구경하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뜨거운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배현수는 그녀의 귀를 깨물면서 잠긴 목소리로 리드했다.“거절해.”그 열기는 마치 개미처럼 그녀의 귀를 파고들어 간지럽혔다.워낙 귀가 예민한 조유진은 그 간지러움이 찌릿찌릿 온몸에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분명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몸이 노곤해지기 시작했다.조유진은 신체 반응대로 본능적으로 배현수를 좋아했다.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함께 있으면서 행복할수록 죄책감이 깊어져갔고 그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그와 가까이 있으면서 이성을 되찾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안정희가 죽는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그와 멀리하려고 했다.하지만 배현수는 남자답게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키스하면서 말했다.“안 갈 거라고, 꺼지라고 말해.”“먼저 놔줘요.”“먼저 꺼지라고 말해.”“...”그를 이겨낼 수가 없어 문밖에 있던 로다에게 말했다.“쉬고 싶어요. 다른 분들이랑 가세요. 저는 안 갈 거예요.”로다가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아직도 상태가 안 좋아요?”“미열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구경하러 가세요.”“제가 남아서 옆에 있어 줄까요?”조유진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무의식적으로 배현수에게 물었다.“어떡해요?”배현수는 인내심이 부족한 말투로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해.”‘차리라 꺼지라고 말하면 더는 말 걸지 않을 텐데.’하지만 조유진은 그래도 예의 있게 말했다.“가보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옆에 있어 줄 필요도 없어요.”연이은 거
배현수는 갑자기 남자답게 조유진을 덮치더니 그녀의 청바지 단추를 풀어 살짝 차가운 손으로 허리를 감싸더니 그 손이 점점 깊숙이 아래로 내려갔다.조유진은 창백한 얼굴에 촉촉한 두 눈으로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다.배현수는 그녀의 귓가에 피식 웃더니 말했다.“유진아, 그렇게 보지 마. 내가 너무 변태 같잖아.”조유진을 포식하고 있는 것이 맞았고 조유진은 순간 그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디.현수는 부드러움이 섞인 중저음과 함께 공격적인 눈빛을 보내왔다.전에는 그래도 조유진과 농담할 인내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야만 했고 울어도 소용이 없었다.조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파르르 떨고 말았다.“다음날 하면 안 돼요? 여기서 하고 싶지 않아요.”미리 진정제라도 먹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배현수는 그녀가 단순하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나랑 지금 흥정하는 거야? 유진아, 언젠간 나한테 적응해야지.”참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1년 동안이나 참았기 때문에 이대로 더 참았다간 잘못될 수도 있었다.한 남자가 눈앞에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순정을 지키는 것은 두 가지 경우였다. 첫 번째로 속이고 있거나, 그 여자한테 관심이 없거나. 둘째로는 생리적 기능에 문제가 있다거나.배현수는 자신이 조유진을 좋아하고 생리적 기능에도 문제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계속 뒤로 물러서는 조유진을 신사처럼 자신을 받아주기만을 기다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억지로 잡아끌어 당기지 않는 이상 영원히 먼저 다가올 사람이 아니었다.배현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조유진한테만큼은 욕심이 생겨 원하는 것이 많았다... 그녀가 자신한테 매달려 자신을 향해 웃고, 또 자신의 앞에서만 울었으면 했다.이때 배현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서 조유진을 거울에 밀치고 허리를 잡더니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날 만날 때면 치마 입
조유진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 귀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창피해지는 것보다 배현수가 정말로 행동에 옮길까 봐 두려웠다.그렇게 창피함과 목숨 잃는 것 중에 창피함을 선택하기로 했다.배현수는 그녀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그제야 태연하게 전화를 끊었다....천우 별장.강이찬은 멍한 상태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조유진의 신음소리에 이상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강이찬은 배현수가 아까 통화하면서 조유진과 함께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한 말의 뜻을 알아버리고 말았다.조유진한테도 단독으로 청첩장을 보내려고 했지만 필요 없을 것만 같았다.조유진은 친구도 아닌, 그저 친구의 여자친구라 단독으로 결혼식에 초대할 자격이 없었다.심미경은 디자인이 서로 다른 청첩장을 몇 개 가지고 오더니 물었다.“이찬 씨, 어느 디자인이 나아요?”그럴 기분이 아닌 강이찬은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상태였다.“미경 씨가 좋아하는 거로 해요. 저는 상관없으니까요.”심미경은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아직 청첩장도 돌리지 않았으니 후회할 시간은 충분해요.”“무슨 말이에요. 이미 결혼하기로 약속했는데 후회할 리가요?”심미경은 고개를 떨구더니 몇 초간 침묵했다.강이찬은 그녀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별다른 생각하지 말아요. 보름 후면 결혼식이 진행될 거고 저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이상...”심미경은 고개를 쳐들더니 그의 말을 끊었다.“만약 유진 씨가 현수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저랑 결혼했을 거예요?”이미 내뱉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강이찬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설명했다.“유진 씨 이미 현수랑 재결합했어요. 전에도 따라다닌 적 없고 나중에도 그럴 일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상상 좀 하지 말아요. 미경 씨, 더는 이런 질문도 하지 말고요. 지금은 만약이라는 것이 없어요. 저희는 결혼할 사이에요.”심미경은 억지웃음을 지었다.“그러면 제 두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심미경은 사진을 잡은 상태로 강이찬한테 라이터를 건넸다.강이찬은 건네받지 않고 그저 인내심이 바닥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꼭 이래야 되겠어요? 고작 사진 한 장 가지고.’심미경은 억지 미소를 짓더니 계속 고집을 부렸다.“그러게요,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뭐 그렇게 망설여요?”강이찬의 말대로 그저 사진 한 장뿐이었기 때문에 그가 태워버리기만 한다면 더는 싸움을 이어가지 않기로 했다.‘그런데 왜... 태우려고 하지 않는 거지?’임신한 그녀는 강이찬의 옆에 있고 싶었고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하지만 하루라도 마음속에 품은 조유진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미경 씨, 그저 추억일 뿐이잖아요. 저랑 유진이는 동창이고 정말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사진을 태우는 건 너무한 짓이에요. 이 사진을 어디 잠가 버리고 더는 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네?”강이찬은 늘 자기 뜻을 존중해주던 심미경을 달래기만 하면 넘어올 줄 알았지만, 이번만큼은 큰 결심을 내린 듯해 보였다.그녀는 붉어진 두 눈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안 돼요. 이 사진을 태워버려야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처음에는 그가 마음에 다른 여자를 품고있어도 괜찮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심미경은 강이찬이 자신만 바라봤으면 했고 꿈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으면 했다.조유진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으면 했다.그녀는 사진과 라이터를 동시에 그의 손에 쥐여주더니 울먹이면서 말했다.“그저 사진일 뿐이라면서요? 태워버려 주세요. 네?”아주 간절한 말투였다.그렇게 눈물이 끝끝내 흘러내리고 말았다.강이찬은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는지 사진과 라이터를 건네받아 딸깍 소리와 함께 라이터를 켰다.사진 속 해맑은 조유진을 보고 있자니 처음 만난 장면이 떠올랐다.그때 배현수가 여자친구와 함
강이찬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심미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고작 사진 한 장 때문에 결혼을 안 해요?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미경 씨 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오늘 저녁에는 왜 이진이처럼 막무가내에요?”심미경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보름만 있으면 결혼할 건데, 사진 한 장 태워버리라고 해서 제가 막무가내로 보여요?”“그럴 필요 없어요.”강이찬은 이 한마디를 내뱉고 뒤돌아 성큼성큼 거실을 떠났고 문을 열자마자 강이진과 부딪히고 말았다.아까 싸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지나가다가 다 들었던 것이다.강이진은 거실에 서 있는 심미경을 비웃더니 말했다.“무슨 자격으로 우리 오빠더러 사진을 태우라 말아야! 너의 꼬락서니를 봐. 우리 오빠랑 어울리기나 한다고 생각해?”화가 들끓고 있던 강이찬에게 기름을 더 부은 식이 되었다.그는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그 입 닥쳐! 네가 말할 자리가 아니야!”강이진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오빠 나한테 이 정도로 화를 낸 적이 없는데...’강이진은 서운하기는 했지만 두려워 아무 말도 못했다.최근에 강이찬에 의해 카드사용중지가 되었기 때문이다.강이찬은 그렇게 별장을 떠나버리고 말았다.그가 멀리 떠나자 강이진은 결국 폭발하더니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팔짱을 낀 채 아랫사람을 보듯 심미경을 깔보면서 말했다.“심미경, 꿈 깨. 눈치가 있으면 빨리 우리 오빠 곁에서 꺼져. 오빠는 널 좋아하지 않아. 우리 오빠한테서 무엇이라도 건져낼 생각 죽어도 하지 마! 우리 오빠는 회사도, 재산도 나중에 다 나한테 물려줄 거기 때문에 꿈 깨라고!”심미경은 비웃듯이 말했다.“내가 너희 오빠한테 시집 안 가도 언젠간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겠지. 그러면 이제 자기 아이가 생기면 아이한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지. 누구한테 꿈 깨라고 하는 거야!”아이 언급에 강이진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임신했어? 조유진처럼 아이 덕에 팔자 좀 고쳐보려고?”“너랑 무슨 상
심미경은 사탕 하나를 물고 캐리어를 꺼냈다.강이찬과 헤어지면 그의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이 안방은 심미경의 스타일대로 다시 인테리어한 것이었고 전자제품부터 커튼까지 모두 그녀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미움을 받으면서 계속 여기에 남아있을 정도로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아니었다....짐 정리를 마친 심미경은 캐리어를 끌고 안방을 나섰다.1층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강이진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실실 웃기 시작했다.“가출이 우리 오빠한테 먹힐 것 같아?”심미경은 그녀와 말도 섞기 싫었다. 강이찬과 헤어지기로 했으니 그녀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강이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한두 가지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가는 것이 좋을 거야. 예를 들어 신분증 같은 거. 그 핑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잖아. 우리 오빠가 찾지도 않는데 자기 발로 돌아오는 건 너무 쪽팔리잖아.”심미경이 받아쳤다.“난 너처럼 얼굴이 두껍지 않아. 오빠 등이나 처먹는 주제에. 난 이찬 씨가 곁에 없어도 살 수 있는데. 너는? 기생충 따위가 밖에 나가서 살 수나 하겠어?”“누구더러 기생충이래!”“지금 질문하고 있는 사람.”강이진은 화난 나머지 얼굴에 붙이고 있던 팩을 떼어버리고 씩씩거리면서 심미경을 향해 걸어갔다.“너도 우리 오빠 회사에서 출근하잖아? 기생충이 아니면 사직서 내든가!”“한 달 전에 이미 사직서 냈거든? 걱정 마, 네가 나 보기 싫은 것처럼 나도 너 꼴 보기 싫어.”“야!”심미경은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천우 별장을 떠났다.강이진은 화가 나 입구를 향해 베개를 집어 던졌지만 그때는 심미경이 이미 집을 나선 후였다.그녀는 또 심미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하,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밀당까지 해? 우리 오빠가 다시 너 찾으러 가면 손에 장을 지질 거야!”...인천 무의도.태풍 바람이 창문을 마구 두드렸다.섬에서 사는 주민이 많지 않아 밤이 되면 고요했고, 태풍 바람이 유
밖의 파도 소리는 더욱더 거세졌고 조유진은 더욱 불안해졌다.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배현수의 목을 그러안고 낮게 대답했다.“...네.”배현수는 그렇게 조유진을 안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유가 넘어지면 뭐라고 하게?”“네?”“아야...”“풉...”조유진이 웃자 배현수가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재밌지?”조유진은 작게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아재 개그 좋아해요? 재미없어요.”“재미없어도 웃었잖아.” 배현수는 놀리듯이 얘기했다.“...”7년만에 보여준 웃음이 아재 개그 때문이라니.이럴 줄 알았으면 아재 개그 모음집을 샀을 것이다.“유진아.”배현수는 갑자기 정색하고 그녀를 불렀다. “네?”“내일 나랑 같이 대제주로 돌아가자. 선유가 오늘 밤 전화 왔어. 언제 돌아오냐고.”조선유가 저녁에 배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조유진이 살짝 놀랐다.하지만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조선유가 그립기도 했다. 아이를 떠올린 조유진이 물었다.“내가 인천으로 온 후 선유랑 싸웠었어요?”전에 조선유는 자꾸만 배현수와 말다툼을 했었다.다른 집의 아빠와 딸은 전생의 연인 같기도 한데 배현수와 조선유는 전생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자주 다퉜다.배현수도 조선유에게 지지 않고 계속 조선유를 훈계하려고 들었다.배현수는 시선을 내리깔고 솔직하게 대답했다.“응.”조선유의 얼굴을 보면 가출해서 연애 프로그램에 나간 그녀의 친엄마가 떠오르는데,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게다가 조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짜증을 돋우는 학과라도 전공한 걸까. 조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왜 애랑 싸우고 그래요.”배현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선유가 먼저 나한테 시비 거는 거잖아.”“...”자기 딸이랑 시비를 가리는 아빠라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안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르며 얘기했다.“아직 대답해 주지 않았잖아.”“뭘요?”“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