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왔다.남초윤은 조유진을 만나자마자 말했다. “선유가 요구르트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아래층 편의점에 데려가 요구르트를 사고 있었어. 내가 금방 돈을 내고 고개를 돌렸는데 선유가 안 보였어!”조유진은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우선 편의점에 가서 CCTV를 확인해보자”편의점 주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얘기에 두말없이 CCTV를 보여줬다. 화면 속,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선유를 빼앗아갔다...“유진아, 이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 혹시 배현수 쪽 사람 아니야?”조유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 사람... 조범의 조수야. 조범의 짓이 틀림없어!”조유진은 조범이 안정희를 찾아 자신을 위협할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유씨 가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여섯 살짜리 아이까지 납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조유진은 바로 조범에게 전화를 걸었고 실성한 듯 고함을 질렀다. “조범, 도대체 왜 선유를 납치해!” 전화기 너머의 조범은 침착했고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유진아,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나는 사람을 보내서 선유를 서주시로 데려와서 놀게 한 것뿐이야. 어쨌든 나도 선유의 외할아버지 아니니? 내 손녀가 보고 싶은데 보는 것도 안 돼?”“조범, 더 이상 가식 떨지 마! 당신이 이렇게 하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어린 선유는 조유진의 약점이다. 그래서 이 어린애를 잡고 있으면 조유진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은 것과 같다.조범은 이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유진아, 집에도 좀 와보고 그래. 6년 동안이나 집에 오지 않았어. 요 몇 년 동안 아빠는 여전히 네가 그리웠어.”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잡은 손을 있는 힘껏 쥐었고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허위적인 부성애가 조유진을 너무 역겹게 했다....남초윤은 두 시간 동안 운전하여 조유진을 서주시에 있는 조가네 별장까지 데려다줬다.조가네 별장 입구에 서 있는
조유진은 차가운 얼굴로 비웃으며 말했다.“자신의 손녀까지 납치하는 것은 또 무슨 짓이에요!”“너!”조범도 화가 나서 얼굴이 점점 파렇게 질리고 있었다.그때 조영훈이 입을 열었다. “누나, 먹는 것은 함부로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아빠가 왜 선유를 납치해. 선유도 이제 여섯 살인데 누나가 한 번도 집에 데리고 오지 않으니까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렇지.”“6년 전에 나를 조씨 집안에서 내쫓고 나서부터 저는 이미 조씨 집안과 관계를 끊었어요. 지금은 또 어느 집안과 혼실을 맺고 싶은 거예요?”조범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조유진을 바라보며 훈계하듯 말했다. “혈연관계가 네가 끊는다고 하면 끊어지는 거야? 서주시 법원에 가서 부녀 관계를 끊었다는 말이 있는지 한번 물어봐.”조유진은 입술을 꼭 깨물며 비웃었다. “서주시 법원은 당신 말 듣잖아요. 조영훈이 사람을 치어 죽여도 배현수가 죄를 뒤집어썼잖아요.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게 당신이 가장 잘하는 짓인데 왜 나에게 물어요?”“퍽!”조범이 조유진의 얼굴을 향해 거침없이 뺨을 한 대 내리쳤다.“못 된 년!”조유진의 입가에 피가 흘렀지만, 조유진은 울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붉힌 채 조범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씩 뱉어냈다. “선유를 만나겠어요!”“먼저 유가네 집에 가서 사과해.”조범이 조유진의 소매를 잡아당기자 조유진은 조범의 손을 뿌리쳤다.조유진은 미친 듯이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조유진은 그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으며 말했다. “선유 만나기 전에는 아무 데도 안 가요!”조범은 조유진에게 짜증 내며 말했다. “유가네에서 특별히 너를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늦으면 안 되지.”“조 시장님, 귀가 안 들리세요? 말했잖아요. 저는 선유를 봐야겠다고. 선유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예요!”조유진의 두 눈은 빨갛게 되었지만, 눈빛이 매우 차가웠다.몇 초만 더 있으면 조유진의 인내심이 완전히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가면 당
조유진은 딸을 안고 두 눈이 촉촉이 젖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조범을 노려봤다. “조범, 당신은 정말 짐승만도 못해!”조유진은 쓰러진 선유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조범이 옆에 있는 조수에게 말했다. “조유진을 도망치게 하지 마. 유가네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네, 제가 가서 아가씨를 막겠습니다.”…남초윤은 차를 조가네 별장 입구에 세워 두고 조유진을 기다렸다.방금 전, 남초윤도 조유진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조유진이 거절했다.조유진은 어떤 난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남초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돼지나 개만도 못한 조 시장 아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남초윤이 참지 못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조유진이 쓰러진 선유를 안고 대문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그리고 조유진의 입가에는 피가 나 있었다.“유진아, 입가에 피는 뭐야? 그 늙은이가 너를 때렸어?”남초윤은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물었다.조유진은 얼굴이 따가운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유진은 선유를 안은 채 급하게 차에 앉으며 말했다.“초윤아, 빨리 병원에 데려다줘. 우리 선유 쇼크가 온 것 같아!”“알았어!”차가 막 떠나려는데 조범의 조수 조문수가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차 앞을 가로막았다.조문수는 뒷좌석의 창문을 두드렸고 허리를 굽혀 차 안의 조유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띈 얼굴로 말했다.“아가씨, 아직 가시면 안 됩니다.”말이 끝나자마자 경호원 중 한 명이 뒷좌석 차 문을 열어 조유진에게 이쪽으로 내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아가씨, 내리세요.”그러자 옆에 있던 남초윤이 욕설을 퍼부었다. “너무 심하잖아요! 우리가 조력자를 안 데려왔다고 괴롭히는 건가요? 제가 곧 대제주시로 가서 조력자를 찾아오죠!”조범은 서주시에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만큼 권력을 잡은 지 여러 해다.조유진도 오늘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더 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초윤아, 먼저
남초윤은 그제야 깨달았다.최근 조유진이 계속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던 이유가 선유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네,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의사가 나가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선유도 깨어났다. 선유는 남초윤의 손을 잡아당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모, 우리 엄마는?”“엄마? 잠깐 일이 있어서 나갔어. 곧 돌아올 거야.”선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믿지 않는 듯했다. "이모, 경찰 아저씨들과 같이 엄마 구하러 가면 안 돼? 외할아버지 너무 나빠. 우리 엄마를 괴롭힐까 봐 걱정돼.”남초윤은 속으로 조범도 나쁜 인간인데 유승태는 더 나쁜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남초윤은 선유의 작은 손을 톡톡 치며 말했다.“여기서 쉬고 있어. 이모가 밖에서 전화만 하고 올게. 선유 걱정하지 마. 이모가 지금 당장 경찰 불러서 엄마 구하러 갈게.”“고마워요, 이모.”남초윤은 병실 문을 닫고 한참을 생각하다 결국 강이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의 배현수는 조유진을 너무 미워하고 있어서 조유진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강이찬은 인간적인 면이 있다.“여보세요. 강이찬 씨, 조유진이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유가네로 사과하러 갔어요. 지난번에 유승태 머리를 그렇게 박살 낸 것도 그렇고, 이번에 제 발로 알아서 유가네로 갔으니 유승태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전화기 너머의 강이찬은 운전 중이었다.“제 여동생이 오늘 막 대제주시로 돌아와서요. 방금 공항에서 픽업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 조유진 그쪽은 제가...”남초윤은 강이찬도 도울 생각이 없을까 봐 바로 말을 이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드린 거예요. 조유진은 원래 친구도 몇 명 없는데 배현수 씨는 지금 조유진에 대한 원망때문에 조유진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조유진이 유승태 손아귀에 제 발로 들어갔으니 몸만 다치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심각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어요. 지금 유승태 집에서 조유진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강이찬
“이진아, 그만해!”강이찬은 강이진의 휴대폰을 낚아채며 말했다.“현수야, 이진이가 헛소리하는 거야. 믿지 마. 지금 장난치는 거야, 난...”그런데 강이찬은 배현수를 속일 수 없다.“내가 말했지, 너 유진이 일에 다시는 끼어들지 말라고. 강이찬, 지금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야?”배현수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강이찬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만약 이번에 강이찬이 간다면 배현수는 분노할 것이고 심지어 그들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갈 것이다.그러나 걱정이 앞선 강이찬은 참지 못하고 조유진 대신 설명했다.“현수야, 유진이가 유씨 집안에 사과하러 갔어. 지난번에는 유진이가 네 차를 타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이번에 우리가 구하러 가지 않으면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다름없어!”그러나 배현수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무정했다.“그건 걔 일이야. 나랑 상관없고 너랑은 더 상관없어.”말이 끝나자마자 강이찬이 더 말하기도 전에 배현수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옆에 있는 강이진은 조금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거 봐, 현수 오빠는 오빠가 그 여자를 구하러 가는 거 허락하지 않을 거라니까! 오빠, 잊지 마. 6년 전에 조유진이 직접 현수 오빠를 감방에 보냈어! 오빠가 조유진을 도와주는 것은 현수 오빠랑 싸우려는 것과 마찬가지야!”강이찬은 짜증이 났다.“이진아, 너 장난이 지나쳐!”그건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내가 무슨 장난을 친다고 그래. 오빠 평소에는 똑똑하면서 왜 매번 조유진이랑 연관된 일에서는 멍청해지는 거야! 현수 오빠가 조유진을 그렇게 증오하는데, 오빠가 조유진을 구하러 가면 현수 오빠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거랑 같지! 오빠 절대 가면 안 돼! 다른 사람은 다 가도 되는데 오빠만은 현수 오빠랑 가장 친한 친구로서 가면 안 돼!”강이진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만약 강이찬이 배현수의 명령을 거역하고 조유진을 구하러 간다면 앞으로 그와 배현수의 사이에는 풀리지 않을 오해가 생길 것이다.조유진은 배현수의 마음속 응어리 같은
유씨 부인이 웃었다.“조 시장, 그렇게 화내지 마요. 유진이가 그래도 착해요. 잘못을 저지르고 오늘 이렇게 사과하러 왔잖아요.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건 대단한 거예요.”조범은 즉시 재촉했다.“유진아, 너 얼른 사과 안 드려?”조유진은 그 자리에 서서 눈을 내리깔고 처음부터 끝까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유승태의 보복심은 강했다.“조 시장 아저씨, 보아하니 조씨 집안에서 우리 유씨 가문과 혼사를 맺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렇게 성의가 없다니!”“유진이 얘가 고집이 세서 그래. 집에서 나한테 자기가 잘못했다고 말했어.”유승태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잘못을 안다고요? 왜 저는 느끼지 못했죠? 제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제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는데 의사가 중증 뇌진탕이래요. 잘못하면 후유증이 남는다고요. 의사 소견서만으로 쟤를 고의 상해죄로 고소할 수 있어요!”조범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낮은 목소리로 조유진에게 경고했다.“너 감방 가고 싶은 거야? 조유진, 잊지 마, 네 그 딸년 아직 네 돌봄이 필요해. 너 만약 오늘 혼사가 성사되지 않고 유씨 집안에서 너를 고소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면 내 탓 하지 마!”선유를 생각하자 조유진의 속눈썹이 떨렸다...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승태 도련님, 제가 어떻게 사과드리면 되겠어요?”유승태는 가볍게 웃었다.“유진 씨가 입을 열었으니 너무 어려운 요구는 하지 않을게요. 아주 쉬워요. 아까 차를 운전하고 들어오실 때 유씨 별장 옆에 있는 산 봤죠? 우리 집에서 그 산 위에 절을 만들었거든요. 계단으로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절을 하면서 부처님께서 잘못했다고 말해요.”조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조범은 난감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동의했다.“승태 군의 뜻이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죠. 유진아, 내가 너한테 말했었지. 말을 듣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너 이 자식, 고집이 너무 세!”조범의 비서 조문수도 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어 낮은 목소리
조유진은 쏟아지는 빗속으로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흠뻑 젖었다.조유진은 여전히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하이힐은 그녀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조유진은 신고 있던 하이힐을 차버리고 철썩하고 흙탕물에 무릎 꿇었다.유승태는 자기 집 별장의 2층 베란다에서 아이스 샴페인을 마시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있었다.한걸음에 절 한 번씩, 이렇게 산 정상까지 절하면서 가야 했다.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돌계단에 조유진의 무릎, 발바닥, 손바닥, 이마는 전부 까졌다.하지만 유승태는 이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일어나서 두 손으로 베란다의 흰색 난간을 잡고 연극을 보듯 말했다.“유진 씨, 절만 하고 사과를 안 하면 부처님께서 어떻게 알겠어요? 혹시 아직도 마음속으로 인정 안 하는 거 아니에요?”조유진은 일어나서 한 계단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그녀는 아무 감정이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잘못했습니다.”그녀는 잘못했다. 6년 전에 배현수를 배신한 것이 잘못이었다.유승태는 웃으면서 손을 귓가에 대고 고개를 기울여 조롱하듯 말했다.“뭐라고요? 유진 씨, 크게 말해요! 안 들리잖아요. 부처님도 안 들리실 거예요!”“잘못했습니다.”그녀는 잘못했다. 배현수를 3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한 것이 잘못이었다.“더 높게 말해요!”“잘못했습니다!”그녀는 잘못했다. 조범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반항한 것이 잘못이었다.“머리를 너무 살짝 숙이는 거 아니에요? 부처님이 어떻게 유진 씨의 성의를 느끼겠어요?”조유진의 목구멍이 뜨거워 났다.그녀는 일어나서 힘껏 무릎을 꿇었다.“잘못했습니다!”그녀는 잘못했다. 배현수와 사랑에 빠진 것이... 잘못이었다.이마가 돌계단에 힘껏 닿았다.빨간 피가 빗물에 섞여 연한 붉은 색을 띠었고 재빨리 빗물에 씻겨 나갔다.계단 몇 개를 올랐고 절을 몇 번 했는지, 이마의 피가 빗물과 함께 줄줄 흘러내려 조유진의 시야를 막았다.하얀 실루엣이 계단에서 흔들거렸다...일어나서 무릎
“이제 와서 사과한다고 소용 있나?”무겁고 차가운 남성의 목소리에 조유진은 등이 한껏 뻣뻣해졌다.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눈물자국과 얼룩을 닦아내려고 애썼지만 이미 손바닥이 더러워져서 아무리 애를 써도 깨끗하게 닦아낼 수 없었다.조유진은 감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먼지보다 못하다고 느껴졌고, 배현수는 신 같이 높은 존재 같았다.비바람 속에서 엄숙한 기운의 검은 우산이 그녀의 작은 세상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조유진은 무릎을 꿇고 있고 배현수는 서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릎을 꿇고 있던 조유진은 완전히 기절했다.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순간에 조유진은 튼실한 팔이 예전처럼 자신을 들어 안는 것을 느꼈다.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남자 품의 온도...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서주시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강이찬은 불안한 마음에 스위트룸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배현수가 의식을 잃은 조유진을 안고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유진이는 어때? 장 선생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배현수의 개인 주치의인 장서원은 이미 로열 스위트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을 안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발로 문을 걷어찼다.문은 “달칵”하고 닫혔다.강이찬은 문밖에 남겨져 어리둥절해 있었다.마치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조유진을 걱정해 주어도 외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래서 그는 문밖에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로얄 스위트룸 안에서.조유진의 몸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장서원은 조유진의 몸을 확인해 보더니 말했다.“비를 맞고 이마까지 벗겨졌네요. 지금 열이 39도라 해열제와 항생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바로 먹이시면 됩니다. 오늘 밤에 땀을 빼면 괜찮아질 것 같네요. 몸에 상처들은 약을 발라야 하는데 제가 할까요? 아니면...”“나가 있어요.”의사는 그의 말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