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윤의 말에 선유는 눈이 휘둥그레했고 작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엄마, 정말 햇살 언니예요?”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유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윽고 그는 조유진의 목을 끌어안으며 소리 질렀다.“엄마! 사인해 줘요. 우리 반 친구들에게 내가 덕질에 성공했다고 자랑할 거예요!”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너의 친구들도 내 노래를 들어?”선유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많은 친구들이 이라는 노래를 들어요. 그리고 우리 학교 방송에서도 가끔이 노래를 틀어줘요. 엄마! 이 노래 부를 때 저를 생각하면서 불렀어요?”“그럼. 엄마는 항상 선유 생각만 하고 있어.”“와! 햇살 언니가 나를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다니!”조유진과 선유는 온종일 같이 있었고 그녀는 선유에게 필요한 것들을 한 아름 사줬다. 한창 걷던 세 사람은 명품가방 매장 앞에 멈춰 섰다.그러자 남초윤이 물었다.“유진아. 백 사려고?” 조유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남초윤 씨 가장 큰 취미가 백 사는 거잖아. 들어가서 하나 골라.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남초윤 씨 백은 내가 사주지.”“대박! 유진아. 사랑해! 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유진! 고마워!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을게!”몇 년 동안 남초윤은 조유진의 일이라면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섰고 그래서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이제 조유진은 사업도 잘되고 있고 인기검색어에 몇 번 오르면서 약간의 돈도 벌었다. 지금은 엄준에게 빚졌던 돈의 3할이자 까지 갚고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남초윤에게 명품가방 하나쯤 사주는 것은 조유진에게 전혀 부담이 없었다.그리고 나중에 돈을 더 많이 벌면 그때는 가방 두게 세 개까지 사줄 수 있다. ...선유가 조유진이 사준 물건을 잔뜩 들고 산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후였다.남초윤이 선유를 데려다줬을 때 배현수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지만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밥 먹었어?”선유는 배현수
배현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고 심장은 누군가가 쥐고 흔드는 듯 사정없이 격렬하게 뛰었다.“아빠, 무슨 생각 해요?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를 따라간다고 해도 자주 아빠 보러 집으로 올게요.”선유가 배현수의 팔을 잡고 흔들어서야 배현수는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그는 선유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엄마를 만났어?”조금 전 선유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기 전까지 그는 환청이 들린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아니다. 선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오늘 엄마와 이모 이렇게 우리 셋이서 온종일 쇼핑했어요. 이것저것 아주 많이 샀고 밥도 두 끼나 같이 먹었어요. 참! 우리 셋이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선유는 옷 주머니에서 작은 휴대전화를 더듬어 꺼냈다.이것은 배현수가 선유에게 사준 것이다.그는 갤러리를 열고 배현수 앞으로 휴대전화를 내밀며 말했다.“여기 봐요. 우리 사진 엄청 많이 찍었어요.”사진 속의 조유진은 선유와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 화사하고 부드러웠다.그리고 창문에서 비친 햇빛이 그녀의 몸을 비춰 그녀의 예쁜 얼굴에 은은한 금빛이 코팅된 듯했다.하지만 큰 병을 앓고 난 탓인지 그녀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전보다 훨씬 야위었다. 사진 속 조유진의 모습에 배현수의 심장이 욱신욱신 쑤셨다.그는 그 사진들을 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자 선유가 배현수 앞으로 고개를 내밀며 초롱초롱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빠, 엄마가 드디어 돌아왔는데 한 번 노력해서 쟁취해 보는 게 어때요?”선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유의 휴대전화에 카톡 알람이 울렸다.햇살 언니가 보낸 메시지였다.「선유야, 집에 잘 도착했어?」선유의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던 배현수도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았고 그는 내용을 보자마자 선유에게 물었다.“엄마가 조햇살이야?” “네! 아빠! 아빠도 햇살 언니를 알아요? 햇살 언가 인터넷에서 부른 노래가 매우 유명해요. 우리 반 친구 중
배현수는 담담한 얼굴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선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보탰다.“아빠. 엄마가 아빠를 거절해도 화내지 말고 다독여야 해요. 여자들은 다독여 주는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에요. 만약 화를 내면 여자들은 더 상대를 안 하려고 할 거예요.”“알았어. 무슨 꼬마애가 잔소리가 이렇게 많아. 시끄러우니까 빨리 목욕이나 해.”선유는 눈살을 찌푸리고 꼬마 어른처럼 한마디 보탰다.“아빠, 그것 봐요. 또 짜증 내잖아요. 여자에게 시끄럽다고 말하면 안 돼요.”그 말에 배현수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선유는 노란 오리 슬리퍼를 신고 2층으로 올라갔다. 선유는 아빠가 너무 직설적인 사람이라 엄마가 싫어하는 게 너무 이해됐다. 어린 선유조차 이럴 때면 아빠가 한심한데 어떡하겠는가....아래층에서 배현수는 선유의 휴대전화를 쥐고 소파에 앉았다.햇살 언니와 나눈 카톡 대화창을 켠 배현수는 선유 대신 그녀에게 답장했다. 「응, 집에 도착했어.」조유진은 이 답장에 별 의심 없이 물었다.「온종일 밖에서 노느라 피곤하지? 일찍 자. 며칠 후에 또 엄마와 놀러 가자.」그러자 선유의 ‘학교에 가기 싫어’아이디가 그녀에게 회신했다.「안 피곤해.」「그럼 좀 더 얘기할래? 우리 아기, 지금 10시가 되었는데 아직 안 자면 키가 크지 못하는데.」이 답장을 본 배현수는 눈을 찡긋하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학교 가기 싫어’ 아이디로 다시 한번 그녀에게 회신했다.「나는 키가 이미 충분히 커.」조유진은 선유가 애교를 부린다고 생각해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응. 우리 아기 최고.」배현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망설였다. 그러자 조유진도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때 배현수는 긴 손가락으로 재빨리 몇 글자를 쳤다.「대제주시에 얼마나 있다가 갈 거야?」하지만 ‘보내기’ 버튼은 계속 누르지 못한 채 삭제했다 다시 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배현수는 처음으로 이렇게 뻔뻔한 일을 했다. 아이인
배현수가 5초짜리 음성메시지를 누르자 조유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다.“엄마가 방금 찾아보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우리 선유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개봉해. 선유도 때마침 방학이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같이 보러 가자. 잘자. 우리 선윤.”배현수는 이 5초짜리 음성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선유가 샤워를 마치고 캐릭터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그의 옆에 달려와 그에게 말을 걸 때까지 배현수는 그 음성메시지를 계속 듣고 있었다.“아빠. 나 이만 자러 갈게요. 핸드폰 좀 주실래요?”배현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돌려주며 한 마디 당부했다. “엄마가 잔다고 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마.”선유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한마디 했다.“엄마와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단 말이에요. 엄마와 전화 통화도 하려 했는데... 아빠, 내가 엄마만 챙겨서 질투하는 거예요?”“아니. 너의 엄마가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잖아. 그래서 저녁에는 되도록 방해하지 말라고.”“네, 알겠어요.”선유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내일 낮에 다시 엄마에게 메시지 할게요.”말을 마치자마자 선유는 엄마와 나눴던 얘기들을 다시 보기 위해 조유진의 대화창을 한참 찾았지만 카톡 대화 리스트를 끝까지 내려도 엄마와의 대화 내용이 없었다. “아빠, 엄마와의 대화 내용은요?”배현수는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손이 미끄러워 실수로 삭제했어.”그러자 선유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예? 아빠!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요!”“다음부터 주의할게. 미안해. 시간이 늦었으니까 빨리 가서 자.”“알았어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선유는 문 앞까지 가더니 다시 뾰로통한 얼굴을 배현수를 보며 물었다.“참! 아빠 내가 했던 말은 어떻게 생각해요?”“무슨 말?”“그러니까 음... 엄마와 3일, 아빠와 3일, 그리고 우리 셋이 함께 하루를 보내는 거요.”배현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응. 꽤 괜찮은 생각이야.”선
조유진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에둘러 말했지만 상대방에게 확실히 거절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진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으실래요? 보수는 저희가 두둑이 챙길게요. 저희 SY그룹이 다른 데보다는 훨씬 많이 드려요.”“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누군가의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환희야, 나야.”조유진은 일어나 문을 열며 말했다.“창민 오빠, 무슨 일 있어요?”“네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려고 왔어. 어제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가 왔는데 우리더러 언제 성남으로 올 건지 물어봤어.”“저... 당분간은 못 갈 것 같아요. 어제 선유와같이 다음 주에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도 했고. 선유 양육권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만약 선유가 나와 같이 살겠다고 하면 배현수에게서 양육권을 갖고 와야 할 것 같아요.”엄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응. 이해해. 친딸인데 핏줄은 절대 못 떼어내지. 그런데 선유가 만약 아빠를 선택하면 어떡할 거야?”조유진도 이 선택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배현수가 선유에게 좋은 아빠니까 선유가 만약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선유의 결정을 존중할 거예요.”“어르신이나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우리도 얼마든지 나서서 도울 수 있으니까.”“아니에요. 너무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선유가 나를 선택하든 아니면 배현수를 선택하든 행복하기만 하면 돼요. 엄 어르신 말이 맞아요. 만약 아이의 아빠가 좋은 아빠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번에 와서 보니 선유가 아빠와 같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놓여요.”“환희야, 혹시 성행 그룹에서 일할 생각은 없어? 어제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 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조유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내가요? 내가 성행 그룹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대제주시 대학교의 졸업 후생인데 어떻게 할 일이 없겠어. 해외 업무 관련된
남초윤은 그녀를 꼭 껴안았다.“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여기에서는 정말 하루도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조유진은 남초윤의 가라앉은 기분을 보고 물었다.“육 변호사와 싸웠어?”남초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 나와 육 변호사의 결혼은 원래부터 비즈니스였는데 시어머니가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 하셔. 그리고 우리 엄마도. 그런데 감정이 없는 두 사람에게서 어떻게 아이가 생길 수 있겠니?”사실 이건 남초윤이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당시 남씨 가문의 자금줄이 완전히 끊겨 그녀는 돈에 눈이 먼 친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육 씨 집안에 시집가게 된 것이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도 그녀가 이쁘고 학력도 괜찮아 같이 있으면 자기 체면이 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의 이익만을 보고 한 결혼은 돈 때문에 시작해 돈 때문에 실패를 맛보게 된다. 따라서 언제든지 이 결혼이 깨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감정 없는 결혼은 마치 땅 주인이 따로 있는 곳에 지어진 빌딩처럼 무너뜨리는 건 시간문제였다.조유진도 여자이기에 그녀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정말 버티기 힘들면 잘 생각해봐.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항상 네 편이야. 응원할게. 우리 외부 사람들의 눈에 육 변호사는 꽤 괜찮은 남자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것은 단지 겉모습만 보는 거니까. 근데 결혼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 이 사람이 결혼한 후의 모습이 어떤지는 그 누구보다도 네가 제일 잘 알겠지. 평가할 자격은 너에게만 있어.”남초윤은 그녀의 말에 감동한 듯 조유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유진아.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 샤부샤부 가게 문 앞에 이르렀다.가게 안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 두 사람은 금방 도착한 강이찬과 마주쳤다.그의 옆에는 한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같이 샤부샤부 가게로 들어가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서로를 보았고 눈이 마주친 순간 다들 자리에 멈춰 섰다.강이찬의 옆에 있던 심미경은 그가 조유진
강이찬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심미경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어쩔 줄 몰라 몸을 일으키며 이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제가 먼저 소스 좀 만들어서 올게요.”심미경이 자리를 비운 후, 강이찬은 조유진을 보며 물었다.“유진 씨, 살아있었으면서 왜 이제야 돌아왔어요?”그러자 조유진이 입을 열었다.“폐에 문제가 있어 1년 동안 미국에 가서 치료받았어요.”“아팠어요? 지금은요? 다 나았어요? 근데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강이찬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남초윤은 조유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마디 했다.“유진이는 나 혼자 챙기면 되니까 강 사장님의 그 마음은 약혼녀를 위해 쓰세요. 그러다가 약혼녀가 오해할 것 같네요.”조유진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미경 씨가 소스 갖고 온다고 했는데 저쪽에 과일도 있고... 혼자서는 못 갖고 올 것 같아. 초윤아 우리도 같이 가서 갖고 오자.”남초윤과 조유진도 소스 구역으로 향했고 테이블에는 강이찬 한 사람만 남았다.소스 코너 앞에 서 있는 심미경은 자기 몫을 먼저 챙긴 후 강이찬에게 줄 소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같이 샤부샤부를 먹으러 온 건 처음이다. 그래서 그녀는 강이찬의 입맛을 잘 모른다.그리고 또 한편으로 그녀는 강이찬에 대한 조유진의 태도를 떠보고 싶었다.“유진 씨, 혹시 이찬 씨가 어떤 소스 좋아하는지 알아요? 같이 샤부샤부를 먹으러 온 건 처음이라... 유진 씨는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알고 있지 않아요?”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저... 잘 몰라요. 저와 강 사장님은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일이 없어요. 따로 식사한 적도 없고요. 어떤 소스를 원하는지 직접 물어보시는 게 어떨까요?”조유진이 어떻게 전 남자 친구 절친의 입맛까지 알겠는가!그녀의 말에 심미경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창백했던 안색도 좀 풀리는 듯했다.“네. 알겠어요.”심미경은
잘못된 타이밍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두 사람 모두 미래가 확실하지 않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없다.가장 무력한 나이에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놓치고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서히 무마되어 한없이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이게 운명일 것이다.강유진의 말에 심미경이 웃으며 말했다.“그래요?”그녀는 손을 뻗어 강이찬의 팔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찬 씨, 저도 유진 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강이찬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남초윤은 뒷좌석에 앉아 그들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미경 씨, 강 사장님과 결혼하게 되면 저와 유진이에게 꼭 알려주세요. 우리가 꼭 축하하러 갈게요.”“알겠어요. 그때 가서 청첩장 꼭 보내드릴게요.”이렇게 대답한 심미경은 자기도 모르게 강이찬의 눈치를 살폈다.강이찬의 얼굴은 이미 싸늘해져 있었고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조유진과 남초윤을 집까지 데려다준 후, 심미경이 강이찬을 보며 말했다.“이찬 씨, 웨딩숍에 연락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은데 이찬 씨는 언제 시간 돼요? 우리 같이 ...”강이찬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결혼식은 일단 미루는 거로 하죠.”기쁨이 가득하던 심미경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따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조유진이 돌아왔기 때문이에요?”사거리에 멈춰 서 있던 앞차가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음에도 앞으로 가지 않자 강이찬은 짜증 나는 얼굴로 경적을 울리며 심미경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조유진은 예전에 살던 전셋집에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1년 전, 조유진은 죽을 결심을 하고 다시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집에서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꽤 많은 물건을 그때 세 들어 살던 집에 두고 나왔다.전화 연결이 되자 조유진이 물었다. “안녕하세요, 최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