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수는 넋이 나간 듯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의 쓸쓸한 눈은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그는 이번에 반드시 조유진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또 한 번의 실망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조햇살이 조유진이 아니라니...배현수는 차 시트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는 벨소리가 한참 울린 후에야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받았다.산성 별장에서 걸려온 전화이다. 통화가 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선유가 물었다.“아빠. 어디예요? 왜 아직도 집에 안 와요?”“금방 도착해.”“빨리 오세요. 밖에 천둥이 치고 우뢰가 울어서 좀 무서워요. 비가 많이 오는데 아빠 우산은 챙기셨어요? 제가 마당으로 아빠 마중 나갈까요?”“아니야. 방에 가만히 있어. 아빠 곧 도착하니까.”“알겠어요, 아빠. 운전 조심하시고요.”“알았어.”전화를 끊자마자 배현수는 바로 차 시동을 걸었고 검은색 마이바흐 차량은 빗속을 뚫으며 여느 때보다 빨리 달렸다. 맞은편에서는 대형 트럭이 전조등을 켠 채 달려오고 있었고 배현수는 순간 그 트럭을 들이받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때 귓가에 선하고 여린 선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아빠. 나 무서워요. 나 떠나면 안 돼요. 알겠죠?”선유의 순진무구한 작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배현수는 핸들을 꽉 잡고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끼익!귀에 거슬리는 타이어 긁히는 소리가 차가운 어둠을 갈랐다....다음 날 아침.남초윤은 일찌감치 산성 별장으로 향했다. 그때 배현수와 선유는 식탁에 앉아 한창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고개를 옆으로 돌린 선유는 걸어오는 남초윤을 한눈에 알아보고 바로 외쳤다. “이모?”남초윤은 집 안으로 들어가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우리 선유, 좋은 아침! 오늘 이모랑 놀러 가지 않을래?”놀러 간다는 말에 선유는 신이 나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남초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로 놀러 갈까?”“쇼핑하러 갈까? 지난번에 선유가 작은 치마를
조유진은 선유에게 먹일 것을 잔뜩 주문했다.선유도 주문한 음식들을 배불리 먹고 동글동글한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엄마, 나 돼지로 만들 거야?”조유진은 냅킨을 들고 선유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 주며 한 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1년 사이, 어린 선유는 키가 훌쩍 컸다. 하지만 작은 얼굴은 여전히 또래 애들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선유도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는 작은 손으로 감자튀김을 쥐고 조유진의 입가에 내밀었다.너무 오랜만에 선유가 건네는 감자튀김에 조유진은 또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이때 선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1년 동안 어디 갔었어? 아빠와 나, 우리 모두 엄마를 너무 보고 싶어 한 거 알아?”그 말에 조유진은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음... 1년 동안 엄마에게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엄마는 절대 일부러 선유를 보러 오지 않은 게 아니야.”1년 동안 그녀는 미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그리고 얼마 전에야 치료가 겨우 끝나 다시 귀국할 수 있었다.처음 미국에 갔을 때, 조유진도 선유가 너무 보고 싶어 밤을 지새운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다행히 우연한 기회에 선유와 카톡 친구가 되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유는 그녀의 힘든 나날들 속의 가장 큰 희망이었고 거대한 한 줄기 빛이었다. 조유진은 물티슈로 선유의 손을 닦아준 뒤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가 널 떠난 건 엄마 잘못이야. 엄마 많이 밉지?”선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 엄마. 엄마가 다시 내 옆에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엄마가 예전에는 돈도 벌고 나도 키우느라 정말 힘들었잖아. 엄마가 그때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 만약 엄마가 그동안 행복하게 지냈다면 나도 너무 기뻐.”귀엽고 작은 얼굴에서 나오는 어른스러운 말에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엄마가 돈 벌어서 선유 키우는 건 당연한 거야. 선유야, 엄마가 이번에 선유 옆에 왔으니까 당분
남초윤의 말에 선유는 눈이 휘둥그레했고 작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엄마, 정말 햇살 언니예요?”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유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윽고 그는 조유진의 목을 끌어안으며 소리 질렀다.“엄마! 사인해 줘요. 우리 반 친구들에게 내가 덕질에 성공했다고 자랑할 거예요!”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너의 친구들도 내 노래를 들어?”선유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많은 친구들이 이라는 노래를 들어요. 그리고 우리 학교 방송에서도 가끔이 노래를 틀어줘요. 엄마! 이 노래 부를 때 저를 생각하면서 불렀어요?”“그럼. 엄마는 항상 선유 생각만 하고 있어.”“와! 햇살 언니가 나를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다니!”조유진과 선유는 온종일 같이 있었고 그녀는 선유에게 필요한 것들을 한 아름 사줬다. 한창 걷던 세 사람은 명품가방 매장 앞에 멈춰 섰다.그러자 남초윤이 물었다.“유진아. 백 사려고?” 조유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남초윤 씨 가장 큰 취미가 백 사는 거잖아. 들어가서 하나 골라.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남초윤 씨 백은 내가 사주지.”“대박! 유진아. 사랑해! 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유진! 고마워!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을게!”몇 년 동안 남초윤은 조유진의 일이라면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섰고 그래서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이제 조유진은 사업도 잘되고 있고 인기검색어에 몇 번 오르면서 약간의 돈도 벌었다. 지금은 엄준에게 빚졌던 돈의 3할이자 까지 갚고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남초윤에게 명품가방 하나쯤 사주는 것은 조유진에게 전혀 부담이 없었다.그리고 나중에 돈을 더 많이 벌면 그때는 가방 두게 세 개까지 사줄 수 있다. ...선유가 조유진이 사준 물건을 잔뜩 들고 산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후였다.남초윤이 선유를 데려다줬을 때 배현수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지만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밥 먹었어?”선유는 배현수
배현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고 심장은 누군가가 쥐고 흔드는 듯 사정없이 격렬하게 뛰었다.“아빠, 무슨 생각 해요?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를 따라간다고 해도 자주 아빠 보러 집으로 올게요.”선유가 배현수의 팔을 잡고 흔들어서야 배현수는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그는 선유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엄마를 만났어?”조금 전 선유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기 전까지 그는 환청이 들린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아니다. 선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오늘 엄마와 이모 이렇게 우리 셋이서 온종일 쇼핑했어요. 이것저것 아주 많이 샀고 밥도 두 끼나 같이 먹었어요. 참! 우리 셋이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선유는 옷 주머니에서 작은 휴대전화를 더듬어 꺼냈다.이것은 배현수가 선유에게 사준 것이다.그는 갤러리를 열고 배현수 앞으로 휴대전화를 내밀며 말했다.“여기 봐요. 우리 사진 엄청 많이 찍었어요.”사진 속의 조유진은 선유와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 화사하고 부드러웠다.그리고 창문에서 비친 햇빛이 그녀의 몸을 비춰 그녀의 예쁜 얼굴에 은은한 금빛이 코팅된 듯했다.하지만 큰 병을 앓고 난 탓인지 그녀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전보다 훨씬 야위었다. 사진 속 조유진의 모습에 배현수의 심장이 욱신욱신 쑤셨다.그는 그 사진들을 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자 선유가 배현수 앞으로 고개를 내밀며 초롱초롱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빠, 엄마가 드디어 돌아왔는데 한 번 노력해서 쟁취해 보는 게 어때요?”선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유의 휴대전화에 카톡 알람이 울렸다.햇살 언니가 보낸 메시지였다.「선유야, 집에 잘 도착했어?」선유의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던 배현수도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았고 그는 내용을 보자마자 선유에게 물었다.“엄마가 조햇살이야?” “네! 아빠! 아빠도 햇살 언니를 알아요? 햇살 언가 인터넷에서 부른 노래가 매우 유명해요. 우리 반 친구 중
배현수는 담담한 얼굴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선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보탰다.“아빠. 엄마가 아빠를 거절해도 화내지 말고 다독여야 해요. 여자들은 다독여 주는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에요. 만약 화를 내면 여자들은 더 상대를 안 하려고 할 거예요.”“알았어. 무슨 꼬마애가 잔소리가 이렇게 많아. 시끄러우니까 빨리 목욕이나 해.”선유는 눈살을 찌푸리고 꼬마 어른처럼 한마디 보탰다.“아빠, 그것 봐요. 또 짜증 내잖아요. 여자에게 시끄럽다고 말하면 안 돼요.”그 말에 배현수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선유는 노란 오리 슬리퍼를 신고 2층으로 올라갔다. 선유는 아빠가 너무 직설적인 사람이라 엄마가 싫어하는 게 너무 이해됐다. 어린 선유조차 이럴 때면 아빠가 한심한데 어떡하겠는가....아래층에서 배현수는 선유의 휴대전화를 쥐고 소파에 앉았다.햇살 언니와 나눈 카톡 대화창을 켠 배현수는 선유 대신 그녀에게 답장했다. 「응, 집에 도착했어.」조유진은 이 답장에 별 의심 없이 물었다.「온종일 밖에서 노느라 피곤하지? 일찍 자. 며칠 후에 또 엄마와 놀러 가자.」그러자 선유의 ‘학교에 가기 싫어’아이디가 그녀에게 회신했다.「안 피곤해.」「그럼 좀 더 얘기할래? 우리 아기, 지금 10시가 되었는데 아직 안 자면 키가 크지 못하는데.」이 답장을 본 배현수는 눈을 찡긋하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학교 가기 싫어’ 아이디로 다시 한번 그녀에게 회신했다.「나는 키가 이미 충분히 커.」조유진은 선유가 애교를 부린다고 생각해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응. 우리 아기 최고.」배현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망설였다. 그러자 조유진도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때 배현수는 긴 손가락으로 재빨리 몇 글자를 쳤다.「대제주시에 얼마나 있다가 갈 거야?」하지만 ‘보내기’ 버튼은 계속 누르지 못한 채 삭제했다 다시 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배현수는 처음으로 이렇게 뻔뻔한 일을 했다. 아이인
배현수가 5초짜리 음성메시지를 누르자 조유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다.“엄마가 방금 찾아보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우리 선유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개봉해. 선유도 때마침 방학이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같이 보러 가자. 잘자. 우리 선윤.”배현수는 이 5초짜리 음성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선유가 샤워를 마치고 캐릭터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그의 옆에 달려와 그에게 말을 걸 때까지 배현수는 그 음성메시지를 계속 듣고 있었다.“아빠. 나 이만 자러 갈게요. 핸드폰 좀 주실래요?”배현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돌려주며 한 마디 당부했다. “엄마가 잔다고 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마.”선유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한마디 했다.“엄마와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단 말이에요. 엄마와 전화 통화도 하려 했는데... 아빠, 내가 엄마만 챙겨서 질투하는 거예요?”“아니. 너의 엄마가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잖아. 그래서 저녁에는 되도록 방해하지 말라고.”“네, 알겠어요.”선유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내일 낮에 다시 엄마에게 메시지 할게요.”말을 마치자마자 선유는 엄마와 나눴던 얘기들을 다시 보기 위해 조유진의 대화창을 한참 찾았지만 카톡 대화 리스트를 끝까지 내려도 엄마와의 대화 내용이 없었다. “아빠, 엄마와의 대화 내용은요?”배현수는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손이 미끄러워 실수로 삭제했어.”그러자 선유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예? 아빠!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요!”“다음부터 주의할게. 미안해. 시간이 늦었으니까 빨리 가서 자.”“알았어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선유는 문 앞까지 가더니 다시 뾰로통한 얼굴을 배현수를 보며 물었다.“참! 아빠 내가 했던 말은 어떻게 생각해요?”“무슨 말?”“그러니까 음... 엄마와 3일, 아빠와 3일, 그리고 우리 셋이 함께 하루를 보내는 거요.”배현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응. 꽤 괜찮은 생각이야.”선
조유진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에둘러 말했지만 상대방에게 확실히 거절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진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으실래요? 보수는 저희가 두둑이 챙길게요. 저희 SY그룹이 다른 데보다는 훨씬 많이 드려요.”“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누군가의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환희야, 나야.”조유진은 일어나 문을 열며 말했다.“창민 오빠, 무슨 일 있어요?”“네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려고 왔어. 어제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가 왔는데 우리더러 언제 성남으로 올 건지 물어봤어.”“저... 당분간은 못 갈 것 같아요. 어제 선유와같이 다음 주에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도 했고. 선유 양육권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만약 선유가 나와 같이 살겠다고 하면 배현수에게서 양육권을 갖고 와야 할 것 같아요.”엄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응. 이해해. 친딸인데 핏줄은 절대 못 떼어내지. 그런데 선유가 만약 아빠를 선택하면 어떡할 거야?”조유진도 이 선택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배현수가 선유에게 좋은 아빠니까 선유가 만약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선유의 결정을 존중할 거예요.”“어르신이나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우리도 얼마든지 나서서 도울 수 있으니까.”“아니에요. 너무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선유가 나를 선택하든 아니면 배현수를 선택하든 행복하기만 하면 돼요. 엄 어르신 말이 맞아요. 만약 아이의 아빠가 좋은 아빠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번에 와서 보니 선유가 아빠와 같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놓여요.”“환희야, 혹시 성행 그룹에서 일할 생각은 없어? 어제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 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조유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내가요? 내가 성행 그룹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대제주시 대학교의 졸업 후생인데 어떻게 할 일이 없겠어. 해외 업무 관련된
남초윤은 그녀를 꼭 껴안았다.“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여기에서는 정말 하루도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조유진은 남초윤의 가라앉은 기분을 보고 물었다.“육 변호사와 싸웠어?”남초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 나와 육 변호사의 결혼은 원래부터 비즈니스였는데 시어머니가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 하셔. 그리고 우리 엄마도. 그런데 감정이 없는 두 사람에게서 어떻게 아이가 생길 수 있겠니?”사실 이건 남초윤이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당시 남씨 가문의 자금줄이 완전히 끊겨 그녀는 돈에 눈이 먼 친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육 씨 집안에 시집가게 된 것이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도 그녀가 이쁘고 학력도 괜찮아 같이 있으면 자기 체면이 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의 이익만을 보고 한 결혼은 돈 때문에 시작해 돈 때문에 실패를 맛보게 된다. 따라서 언제든지 이 결혼이 깨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감정 없는 결혼은 마치 땅 주인이 따로 있는 곳에 지어진 빌딩처럼 무너뜨리는 건 시간문제였다.조유진도 여자이기에 그녀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정말 버티기 힘들면 잘 생각해봐.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항상 네 편이야. 응원할게. 우리 외부 사람들의 눈에 육 변호사는 꽤 괜찮은 남자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것은 단지 겉모습만 보는 거니까. 근데 결혼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 이 사람이 결혼한 후의 모습이 어떤지는 그 누구보다도 네가 제일 잘 알겠지. 평가할 자격은 너에게만 있어.”남초윤은 그녀의 말에 감동한 듯 조유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유진아.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 샤부샤부 가게 문 앞에 이르렀다.가게 안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 두 사람은 금방 도착한 강이찬과 마주쳤다.그의 옆에는 한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같이 샤부샤부 가게로 들어가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서로를 보았고 눈이 마주친 순간 다들 자리에 멈춰 섰다.강이찬의 옆에 있던 심미경은 그가 조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