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는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그러자 조유진은 다급하게 입꼬리를 당기며 선유를 달랬다.“아니야. 엄마 지금 웃고 있잖아. 빨리 찍어. 방금은 어떻게 웃을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그러자 선유는 금세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세 식구 모두 카메라 안에 담겨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화목해 보였다.아빠는 잘생겼고 엄마는 자애롭고 아이는 귀여웠다.여러 장을 찍은 뒤 선유는 사진첩을 이리저리 뒤지며 한참을 바라보았다.이 아이는 정말이지...두 어른의 명줄을 꽉 붙잡고 있기라도 하듯이 두 사람은 선유가 하라는 대로 모두 척척 협조해주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오후 내내 사진 소동을 일으켰다.저녁이 되자 조유진은 선유에게 계란찜과 죽을 떠먹여 주었다.아직 영양 수액을 맞고 있어서 선유도 배고프지 않아 많이 먹지는 못했다.다 먹고 난 뒤 선유는 병상의 다른 한쪽을 작은 손으로 팡팡 치며 배현수에게 눈짓했다.“아빠, 아빠도 이리로 와요. 저 이제 졸리니까 아빠가 잠자기 전 이야기 해주세요!”배현수는 선유 곁으로 다가와 앉았고 선유는 배현수의 품에 기댔다.“뭐 듣고 싶어?”그러자 선유는 연신 주접을 떨었다.“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면 다 좋아!”선유의 귀여운 아양에 배현수는 가볍게 피식 웃었다.“그럼 웃긴 개그 이야기 해줄게.”선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빠가 웃긴 이야기도 할 줄 알아요?”배현수는 겉보기에는 무척 싸늘하고 엄숙하여 마치 높은 벼랑 끝에서 피어난 꽃 같아 적어도 우스갯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어느 날, 공주가 대마왕한테 잡혀갔어. 그리고 대마왕이 공주한테 아무리 목이 터지라 외쳐도 아무도 구하러 와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그러자 공주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어. ‘목이 터지라, 목이 터지라...’ 하지만 아무도 ‘공주님, 구하러 왔어요’라고 말해주지 않았어.”말을 마치고 배현수가 고개를 숙여 그대로 굳어버린 선유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뭐야? 안 웃겨?”배현수가
조유진은 문 앞에 서서 오랫동안 마음을 진정시켰다.선유에게 보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면 선유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핸드폰 갤러리를 열어 아까 찍은 몇 안 되는 가족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조유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어떤 일은 그 순간이 결국 영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마치 이 몇 장의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유진은 배현수와 이렇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이튿날 오전.남초윤이 선유를 보러 병원으로 찾아왔다. 물론 육지율도 함께 왔다.남초윤은 레고 나무 하나를 사서 선유에게 전했다.“꼬맹이, 병실에서 심심하지. 심심하면 이모가 준 레고 가지고 놀아.”선유는 남초윤으로부터 레고를 건네받으며 맑은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거렸다.“우와~ 이모 정말 저한테 너무 잘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이모!”한편 어색하게 곁에 서 있던 육지율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이건 비록 네 이모가 골랐지만, 돈은 이 이모부인 내가 낸 거야. 왜 나한테는 고맙다고 안 해?”“이모부?”선유는 두리번두리번 눈을 굴리고 이내 육지율의 뒤쪽을 슬쩍 살폈다.“이모부가 어디 있는데요?”육지율:“네 이놈 자식! 너 왜 네 아빠처럼 뒤끝 작렬인데?”남초윤은 웃음을 터뜨리며 육지율을 비웃었다.“눈치 챙기세요. 선유가 당신 이모부로 인정하기 싫다잖아요.”육지율이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 아이한테 농락 당한 적이 있겠는가. 그의 성격대로라면 당연히 자신의 체면을 살려내야 할 것이다.“잼민아, 네가 날 이모부로 인정해주면 레고 열 개 사줄게. 어떠냐?”“잼민이의 이모부면 인가?”몇 명의 어른들은 선유의 말에 연달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계속하여 무뚝뚝한 표정을 하던 배현수마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하지만 농담은 농담이고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이기에 조유진이 곧바로 선유를 나무랐다.“선유야, 육 아저씨는 어른이니 무례하게 굴면 안 돼.”선유도 곧바로 순순히
선유가 병원에서 며칠 묵어야 했기 때문에 조유진은 집으로 돌아가 갈아입을 옷 몇 벌을 챙겨왔다.요 며칠, 선유는 부모님이 모두 곁에 있어서 그런지 매우 행복해 보였다.낮에 계속하여 소란을 피운 탓인지 저녁이 되면 금방 잠자리에 들곤 했다.조유진은 꿈나라에 빠진 아이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위에 적힌 첫 번째 소원에 줄을 그었다.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배현수는 아마 그녀와 서해를 보러 가주지 않을 것이다.배현수는 이미 선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선유의 양육권마저 가져갔기 때문에 조유진에게는 더는 배현수를 “협박”할 수 있는 비밀이 없었다.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한두 가지 정도의 아쉬움마저 없겠는가?“딸깍.”병실 문이 열리고 배현수가 돌아왔다.조유진은 다급하게 수첩을 닫고 가방에 도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수첩을 치우는 데에 정신이 팔렸었던 조유진은 핸드폰 화면이 아직 켜져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배현수는 한눈에 켜져 있는 스크린을 통하여 채용 앱을 훑고 있던 조유진의 모습을 알아챘다.그때, 조유진도 멈칫하더니 이를 눈치챘다.그래도 배현수는 엄연히 그녀의 사장이었고 결국 조유진은 자신의 사장 앞에서 채용 앱을 뒤적거리며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다가왔다.“그... 저, 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마케팅이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전 그래도 원래 하던 방송 진행 분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배현수의 검은 눈동자에서 한순간의 한기가 스쳐 가더니 이내 무뚝뚝한 얼굴을 유지한 채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다.“나한테 해명할 필요 없어. 난 분명 넌 이제 자유라고 말했으니까 앞으로 어디에서 일할지는 네 선택이고 나한테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어.”“선유가 퇴원하면 바로 회사로 복귀해서 일할게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지금의 일에 대해서도 열심히 임할 겁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말하기
강이진은 마음속의 원망과 불만을 꾹꾹 눌러버리고는 고개를 들어 선유에게 사과했다.“미안해. 아줌마가 잠깐 이성을 잃어서 너한테 몹쓸 짓을 했어. 아줌마 용서해줄 수 있어?”선유는 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눈앞의 나쁜 아줌마를 바라보더니 강이진의 체면을 그대로 산산조각내버렸다.“안 되겠는데요.”“너...”강이진의 성질이 다시 한번 나오려고 하자 옆에 서 있던 강이찬이 다급하게 강이진의 팔을 붙잡으며 그녀를 제지했다.그러자 그때 배현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잘못을 저질러서 사과하는 건 네 일이고 상대방에게도 사과를 거절할 권리는 있어. 강이진, 내가 네 책임을 더 추궁하지 않는 것은 네 오빠 얼굴을 봐서야. 하지만 다음부터는 네 오빠도 소용없을 줄 알아.”배현수의 말투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고 간략하게 말을 끝맺었지만, 그의 말속에서는 상위자로서 위압력이 느껴졌다.강이진은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별다른 짓을 하지 못했다....강이찬과 강이진이 병원을 빠져나왔다.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강이진은 곧바로 자신의 본성을 드러냈고 강이찬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오빠도 봤지? 그 망할 년 현수 오빠랑 벌써 아이도 생겼다니까. 조유진 앞으로 분명 아이를 이용해서 미친 듯이 현수 오빠에게 들러붙을 게 뻔하다고! 강이찬, 넌 내 행복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너 자신의 행복마저 짓밟아 버렸다고.”“이진아, 너 지금 대체 뭐라는 거야? 빨리 타. 집에 가자.”“나 오빠랑 안 가! 집에 가면 또 나 혼낼 거지? 오빠 맨날 내 귀에 대고 얌전해야 한다고, 현수 오빠 좋아하지 말라고 잔소리하잖아. 그럼 강이찬 넌? 너도 친구 여자 탐내잖아!”“강이진, 그 입 다물지 못해?”강이찬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더니 강이진을 호되게 꾸짖었다. 하지만 강이진은 강이찬을 무서워할 리가 없었고 오히려 비웃음을 터뜨리며 비아냥거렸다.“왜, 내가 네 정곡을 찔러서 화 난 거야? 그렇게 조유진이 좋으면 왜 직접 쟁취하지 않는 거야? 왜 조유진이 거머리처럼 현수 오빠에게 계속
강이찬은 손을 빼내며 싸늘한 얼굴로 강이진을 거절했다.“난 너 안 도와줄 거야.”“강이찬, 네가 기꺼이 조유진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건 네 일이야. 그런데 나도 너처럼 찌질하게 살아야 하는 권리는 없어.”말을 마치자 강이진은 몸을 홰 돌리고는 하이힐을 신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차 옆에 선 채 멀어져가는 강이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이찬의 미간 사이에는 온통 수심이 가득했다.강이찬은 강이진이 길을 잘못 들어설까 봐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강이찬마저 그녀를 지킬 수 없을까 봐 무서워졌다.강이찬은 차 안에 기대앉아 피곤해진 마음을 가라앉혔다.이윽고 강이찬은 차 안의 사물함을 열고 담배 한 갑을 꺼내려는데 그때 웬 사진 한 장이 강이찬의 손가락에 닿았다.그 사진은 누군가에 의해 잘려 파손된 형태였고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사실 사진 속엔 본래 세 사람이 나란히 있었다.강이찬, 조유진, 그리고 배현수.이 사진은 강이찬과 조유진이 유일하게 같은 앵글에 담긴 사진이었지만 이 또한 배현수 덕분이었다.당시, 강이찬과 배현수가 박사 학위 졸업사진을 찍고 있었고 조유진도 배현수를 보러 온 것이었다.신사적이고 예의하에 여성을 중간에 세웠었던 것이다.그리고 그 뒤, 강이찬은 무슨 정신에선지 배현수를 잘라버렸고 하여 이 파손된 사진 속에는 강이찬과 조유진만이 남아있었다.이 사진은 강이찬에 의해 비닐에 감싸져 소중히 보관되어 거의 새것처럼 깨끗했다.강이진의 말이 맞았다. 강이찬은 겁쟁이였다.강이찬은 조유진을 좋아했지만 결국 끝까지...조유진을 쟁취하지 못했다.그저 마음속의 이 설렘을 혼자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 빛을 보지 못하도록 감추어 두었다.강이찬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한다. 그해 여름 방학, 강이찬과 배현수는 기숙사를 나와 함께 셋집을 얻어 동거했었다. 그때 조유진은 아직도 학교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토요일 밤, 조유진은 충남으로 돌아가기 싫었지만 갈 곳이 없었던지라 배현수가 조유진을 데리고
차 부근에 도착하자 조유진은 그들과 함께 차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그러자 이미 차에 올라탄 선유가 조유진을 향해 외쳤다.“엄마, 빨리 차에 타요. 밖에 엄청 덥단 말이에요.”조유진은 배현수를 힐끔 바라보았고 배현수는 잠시 사색에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먼저 차에 타. 산성 별장에 도착한 뒤에 다시 보자고.”조유진은 그렇게 그들과 함께 차에 올라탔고 별장으로 향하는 내내 안절부절못했다.“엄마, 우리 지금 어디 가? 아빠 집에 가는 거야?”“응. 아빠 집에 가.”“근데 나 뚱이 안 챙겼는데.”“내가 챙겼어.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지러 집에 들른 김에 캐리어도 다 갖고 왔지. 선유 물건 다 트렁크에 있어.”선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유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럼 엄마 물건은?”선유의 맑은 눈빛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깨끗해 조유진은 차마 선유를 속일 수가 없었다.“내... 내 물건도 챙겼어.”녀석은 믿지 않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조유진을 심문하듯 추궁했다.“정말?”조유진은 그저 간단히 응하고는 화제를 돌려버렸다.“선유 항상 고양이 키우고 싶어 했잖아. 아빠 집에 예삐라는 치즈 고양이가 있어. 포동포동하고 엄청 귀여운데 조금 뒤면 볼 수 있겠네.”어쨌든 선유는 아직 어린아이인지라 금방 조유진의 말에 넘어가 버렸다.별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조유진은 선유에게 아빠 집이 얼마나 좋은지를 묘사해주며 최선을 다해 선유가 그 집이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그리고 곧이어 그들은 산성 별장에 도착했다.차가 별장 내부로 들어가고 눈앞에는 푸르고 싱싱한 잔디밭이 펼쳐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그네와 큰 풀장도 있었다.이미 전에 선유를 데리고 오기로 했던 터라 배현수는 특별히 서정호에게 분부하여 별장의 경관을 조금 더 아기자기하게 꾸미도록 하였다.수영장 안에는 여러 개의 튜브와 둥실둥실 떠다니는 미니 덕들이 가득했다.그리고 정원 입구에는 아이가 탈 수 있는 전동 미니카 한 대가 세워져 있기도
배현수는 확실히 선유가 조유진을 떠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무척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긴 아픔보다 짧은 아픔이 낫다고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현실이었다.“굴레가 깊을수록 더 슬픈 법이야.”이 말뜻은 이미 깔끔하게 끝내기로 했다는 말이었다.서정호도 더는 여기에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배현수가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 데는 분명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배현수와 서정호가 이윽고 집안으로 들어섰다.별장 안, 선유는 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집안을 살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누가 봐도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이대로 조유진이 자신을 떠날까 봐 무서워졌기에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조유진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넓디넓은 거실에서 한 바퀴 돌고 난 뒤, 조유진이 부드럽게 선유에게 물었다.“선유야, 여기 어때? 마음에 들어? 여기에는 아빠도 있고 네가 좋아하는 치즈 고양이도 있고, 그리고 선유 그네 타기 좋아하잖아? 정원에는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어. 앞으로는 선유와 그네 순서 뺏는 어린이도 없어. 놀고 싶으면 얼마든지 놀아도 돼. 좋지?”하지만 선유는 여전히 작은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있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어 조유진에게 물었다.“그럼 엄마는? 엄마는 여기 좋아?”“나? 나야 당연히 여기 좋지. 여기는 이렇게 크지, 따뜻한 수영장도 있지, 선유 맨날 나한테 수영장 가서 놀자고 졸랐잖아. 좀 이따 튜브 들고 가서 얼마든지 놀아.”선유는 그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럼 엄마도 여기 있어, 어때?”조유진은 선유의 말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잘 숨겨왔다고 생각해왔었지만 뜻밖에도 선유가 모든 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숙여 선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선유야, 미안해. 엄마는 여기에 있을 수 없어.”“왜? 엄마 나 버릴 거야?”선유의 눈가에서 두 줄기의 맑은 눈물이 이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조유진
“미안해, 선유야.”조유진은 마음을 다잡고 있는 힘껏 선유의 손을 뿌리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별장을 나섰다.“엄마!”선유는 조유진을 뒤쫓아 가고 싶었지만, 배현수에 의해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놔! 이거 놔! 이 나쁜 놈!”선유는 입을 벌려 자신의 송곳니로 배현수의 손을 있는 힘껏 물었다.하지만 배현수는 선유의 발악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조유진은 이미 사전에 택시를 불러놓았고 차는 이미 별장 입구에 멈춰서 있었다.조유진은 고개를 돌려 선유를 한 눈 더 바라보고 싶었지만, 눈물이 또르륵 굴러떨어지고 조유진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다잡고 차 문을 열어 좌석에 앉았다.“기사님, 갑시다.”그렇게 택시는 점점 산성 별장을 떠나갔다.조유진은 뒷좌석에 앉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낮은 소리로 통곡하였다.한편 산성 별장 안, 선유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조유진을 뒤쫓았다.선유는 한편으로 눈물을 흘리며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달렸다.그러던 와중 너무 빨리 달린 탓에 발을 헛디뎌 바닥에 풀썩 넘어지고 말았다.“엄마... 흐엉엉...거짓말쟁이!”뒤따라 나온 배현수가 쭈그리고 앉아 조선유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앞으로도 너 보러 올 거야.”선유는 작은 입술을 한껏 삐죽이며 귀여운 눈으로 배현수를 한껏 노려보았다.“왜 우리 엄마 내쫓아요? 나쁜 놈 흐엉엉... 나 아저씨 싫어... 아저씨는 우리 아빠 아니야 흐엉엉...”선유의 원망에도 배현수는 화를 내지 않았고 선유를 한 번에 안아 들어 산성 별장으로 걸어갔다.별장 입구에 도착하자 선유를 내려주고는 선유의 손을 잡았다.배현수의 큰 손에 선유의 작은 손이 포개졌다.이윽고 배현수는 고개를 숙여 선유에게 말을 건넸다.“앞으로 여기가 바로 네 집이야. 이곳의 모든 것이 네 것이고 너도 곧 여기가 좋아질 거야.”“...”녀석은 여전히 훌쩍거리며 눈물로 얼룩진 작은 얼굴을 배현수에게 들이밀며 배현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흐엉엉... 난 여기 싫어! 여기에는 엄마가 없잖아요! 아빠가 분명 엄마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