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아, 아빠가 너 뭐 곤란하게 하거나 그러진 않았지?”서강인이 자리를 뜨자 서인아가 바로 다가와 임유환에게 물었다.“아니.”임유환은 저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서인아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아저씨가 그냥 나한테 너 잘 부탁한다고만 하셨어. 여태껏 너한테 미안한 게 많으셨다고 하더라.”서강인은 이런 말을 직접 하기 어려워하니 임유환은 자신이라도 그를 대신해 진심을 전해주기로 했다.아버지가 임유환을 찾아온 게 이런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는 건 전혀 예상 못 했던 서인아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알겠어.”사실 서인아도 그런 서강인의 진심을 알고 있었기에 단 한 번도 그를 원망해 본 적은 없었다.서인아의 따뜻해진 눈을 보고 그녀가 이미 서강인의 사과와 마음을 받아주었다고 생각한 임유환도 한결 편안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아빠가 다른 얘기는 안 했어? 아까 갈 때 보니까 막 고개도 저으시던데.”“아까 네가 나 그렇게 걱정하는 거 보시더니 역시 다 큰딸은 끼고 사는 게 아니라고 하셨어.”임유환은 능글맞게 웃으며 서인아를 향해 말했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우리 둘이 하던 거 마저 하라시던 데.”“누가 널 걱정했다고 그래!”임유환의 마지막 말에 서인아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임유환을 향해 눈을 흘겼다.“그리고 아까 그 얘기는 그만해!”아까 임유환과 더한 것까지 할 뻔했던 서인아였기에 아버지가 말한 하던 거 마저 하라는 말의 의미를 서인아는 모를 수가 없었다.평소에는 차갑고 감정 없다는 말을 듣는 서인아도 이런 상황에서는 얼굴이 빨개지고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이 영락없는 소녀 같았다.“인아야, 아까...”“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잘라버릴 거야!”임유환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마자 서인아는 소리를 지르며 임유환을 노려봤다.“어...”서인아의 말처럼 섬뜩한 눈빛에 임유환은 등골이 오싹해 나는 걸 느꼈다.“어... 어딜 잘라?”말을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내
“일단 정씨 집안과 임씨 집안 일부터 해결하고, 그다음에...”진지하게 얘기하다 갑자기 멈칫하는 임유환을 향해 서인아가 다급하게 물었다.“그다음엔 뭐?”“서린이를 연경에 데리고 오든 네가 S에 와서 살든 해야지.”임유환은 동의를 구하듯 서인아를 바라보았다.“난 왜 보는데?”“네가 이렇게 제멋대로인 거 서린 씨는 알아?”“그럼 내가 지금 연락해볼까?”눈을 깜빡이는 서인아를 향해 임유환이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진짜 꿈은 야무지구나 너.”그에 서인아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임유환을 향해 눈을 흘겼다.“저기... 인아야, 만약 서린이가 우리 셋 같이 사는 거 허락하면... 넌 들어와서 살 거야?”그 뻔뻔하던 임유환도 이런 말은 차마 내뱉기가 민망했는지 한 자 한 자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다른 그 누가 들어도 욕심이 많다고 수군댈 게 분명한 요구임을 임유환 본인 역시 알고 있었다.“그렇게 셋이 같이 살고 싶어?”서인아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임유환을 보았다.“그게…. 그냥 그때 가서 너희 지켜주는 데도 편하고.”임유환은 또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아, 그런 거였어?”서인아는 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으로는 임유환을 놀리는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나는 네가 우리를 양옆에 끼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잖아.”“어...”정말로 그런 생각이 있긴 했던 임유환은 서인아의 말을 듣고 나서 조금 난감하긴 했다.“뭐야, 설마 내 말이 맞았어?”서인아가 두 손을 올려 팔짱을 낀 채 임유환을 보며 웃자 임유환은 손사래까지 치며 변명했다.“당연히 아니지!”“넌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응. 그래 보여.”“어...”아무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서인아에 임유환은 입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할 말을 찾느라 애쓰고 있었다.“됐어, 다 장난이야.”그냥 한번 놀려보고 싶어서 던진 말인데 임유환이 그걸 모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더 이상 그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서인아가 말했다.“서
“너도 같이 간다고?”특별한 모임이 아니면 그런 공공장소에는 잘 출입을 하지 않던 서인아가 같이 가겠다고 나서자 임유환은 적잖이 놀란 듯했다.“왜? 네 친구들도 나한테 소개해줘야지. 우리가 알고 지내는 게 싫어?”서인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임유환을 바라봤다.“조 중령님은 본 적 있잖아.”“그럼 최서우 씨는?”가만히 듣고 보니 서인아가 최서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오늘따라 서인아의 경계심이 더 강한 것 같아 임유환은 이 찝찝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설마 여진이 때문인가?하지만 임유환이 그런 걸 따질 새도 없게 서인아는 다시 도도한 말투로 그를 향해 말했다.“그럼 같이 가는 걸로 하고 식당은 내가 집사한테 알아봐 놓으라고 할게. 넌 좀 있다 친구들한테 전하기만 하면 돼.”말을 마친 서인아는 임유환이 대답도 하기 전에 긴 다리를 휘적이며 산을 내려갔고 혼자 덩그러니 남은 임유환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해져 뒷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그날 밤 연경 최호화 호텔인 레서코튼 호텔에서는 서인아가 예약한 대로 임유환을 포함한 몇 명이 6006번 방에 함께 둘러앉아 있었다.이 방은 호텔 통틀어서 예약이 가장 어려운 방으로 아주 중요한 분에게만 남겨주는 것인데 하필 호텔이 서씨 집안 산하의 것이라 서인아는 말 한마디로 그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와, 이거 나 연경에서 먹는 첫 낀데, 그 장소가 레서코튼 호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최서우는 화려한 호텔을 보고 두 손을 모은 채 감탄만 했지만 그 옆에 앉은 조명주는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다.똑같이 몇 시간 전에 서인아도 함께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별다른 반응 없이 흥분해있는 최서우와 달리 조명주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최서우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맞은 편에 앉은 임유환과 서인아를 보며 속닥거렸다.“유환 씨, 유환 씨가 서인아 아가씨랑 같이 올 줄은 우리 둘 다 몰랐어요. 둘이 대체 무슨 사이에요?”“친...
옆에 있던 최서우는 조명주의 복잡한 심경을 눈치 채고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명주야, 너 어디 아파?”“아니야, 그냥... 그날인 것 같아.”“그럼 먼저 들어가서 쉴래?”아무런 핑계나 대며 둘러두는 조명주를 걱정하는 최서우였다.그날이라는 조명주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최서우는 같은 여자로서 그날이면 몸이 불편하고 또 첫 며칠은 온몸이 쑤시듯 아파오는 것에 공감하듯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괜찮아, 그냥 몸이 좀 찌뿌둥한 것뿐이야. 좀 있다 밥 먹으면 괜찮아져.”미소를 지어 보인 조명주는 별로인 제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먼저 말을 걸었다.“인아 씨랑 유환 씨는 언제부터 알고 지낸 거예요? 임유환 씨가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전에는 한마디도 언급을 안 했거든요.”“조 중령님, 그건 유환이보다 제 탓이 커요.”“음, 저희가 알고 지낸 건 사실 7년 전부터죠.”“7년 전이요?”웃으며 하는 서인아의 말에 조명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렇게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요?”서인아와 임유환이 기껏해야 일이 년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최서우도 많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하하, 그럼 진짜 오래된 사이네요.”7년이란 말을 들은 조명주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표정은 거짓말을 못 하고 더욱더 어두워졌다.그 모습을 본 최서우도 조명주가 기분이 안 좋았던 건 그날이어서가 아니라 임유환과 서인아 사이 때문이었음을 마침내 알아차렸다.하긴 서인아는 어떤 여자한테도 만만치 않은 상대이긴 했다. 같은 여자인 최서우도 아까부터 서인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그런데 정말 비기려고 든다면 조명주도 얼굴이며 몸매며 꿇릴 건 하나도 없었다.그저 임유환과 서인아가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더 길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하지만 임유환에게 윤서린이란 여자친구가 있는 한 조명주에게도 기회는 있었다.그리고 조재용이 주최한 파티에서 서인아도 윤서린을 본 적이 있었기에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그럼 조명주와 서인아 모두 같은
“이 미친년이! 너 내 옷이 얼마짜린 줄은 알아?!”정장 차림의 남자가 선두로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고 그 따까리쯤으로 보이는 남자들 역시 좋지 않은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죄... 죄송합니다.”겁에 질린 여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죄송? 그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면 끝이야?!”화를 내던 정장 차림의 남자는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고개 들어봐,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나 좀 보게.”“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남자의 말에도 여전히 고개만 숙인 채 사과를 하는 여자를 보자 남자는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 질렀다.“고개 들라고!”“네...”그 소리에 몸을 파르르 떨던 여자는 남자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머리카락에 가려졌잖아, 머리카락 치우고 손 내려!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잖아!”“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이렇게 사과할게요...”목소리를 깔고 말하는 남자에 여자는 울먹이며 애원했다.“뭐?”여자의 반항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자 두려워진 직원은 하는 수없이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계란형의 예쁜 얼굴을 드러냈다.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에 손자국까지 붉게 나 있었지만 여자의 얼굴은 그래도 아름다웠다.“허, 이년 봐라? 얼굴은 반반하네.”여자의 얼굴을 본 남자는 눈을 반짝이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네가 가서 내 옷 깨끗하게 빨아와. 그럼 나도 이 일로 더는 뭐라 하지 않을게.”“감사합니다.”여직원은 감격에 겨워 말했다.“옷 벗어 주시면 빨아올게요.”“내가 벗어?”남자는 아까보다 더 음흉한 눈으로 여자를 아래 우로 훑으며 말했다.“네가 수프를 쏟아서 내 옷이 더러워졌는데 그걸 내 손으로 벗으면 내 손까지 더러워지잖아.”“그, 그럼 제가 해드릴게요...”여자는 우물쭈물하면서도 결국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지금의 그녀는 이
“거기 너, 얘 알아?”정장 차림의 남자는 문어 구에 서 있는 임유환을 향해 기분 나쁜 시선을 보내왔다.“응.”그에 임유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더 당황한 건 허유나였다.임유환이 자신과의 관계를 인정할 줄 몰랐기에 나온 반응이었다.“무슨 사인데?”“그냥 친구 사이.”하지만 담담히 대답하는 임유환에 허유나의 기대에 찼던 눈빛은 금세 다시 사그라들었다.“그냥 친구?”남자는 임유환의 대답을 듣고는 입꼬리를 올려 냉소를 흘렸다.“그냥 친구면 신경 끄고 가던 길 가. 얘가 지금 내 옷을 더럽혀서 그거 배상하라고 하는 중이니까.”“얼마야? 내가 대신 줄 테니까 그 손부터 좀 놓지.”임유환과 허유나는 이미 아무 관련도 없는 사이였지만 전 부인이 다른 사람한테 모욕을 당하는 걸 본 이상 임유환은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임유환의 대답에 많이 놀란 허유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임유환을 바라봤다.임유환을 향한 두 눈에도 어느새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하지만 임유환은 그런 허유나가 아니라 남자만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대신 내준다고?”남자는 코웃음을 치고는 말을 이었다.“이게 얼만 줄 알고 대신 내준다는 거야? 이거 특별제작이야.”“2천만 원이면 돼?”한번 훑어본 바로는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옷인 것 같았지만 이런 일에 굳이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임유환은 금액부터 제시했다.“2천? 난 1억은 받아야겠는데.”돈 좀 있어 보이는 상대에 남자는 냅다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돈과 여자 중에 선택하라면 여자는 당연히 버리고도 남으니까.“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를 1억이나 쳐달라고? 양심이란 건 없니? 누굴 바보로 아나.”느긋하던 임유환의 말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처음에 2천만 원을 주겠다한 건 그냥 시간 낭비하는 게 싫어서였지 그렇다고 남한테 호구 잡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누가 길거리 싸구려를 입었다고 그래!”“2천만 원, 거절하면 한 푼도 없어.”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들켜버린 남자는 역정부터 냈지만 임
“네가 정우빈 도련님을 알아?”눈썹을 꿈틀거리며 묻는 남자에 임유환은 놀리듯 웃으며 답했다.“알자, 정우빈을 어떻게 몰라.”“그럼 돈이나 빨리 내놔!”“돈 없으면 내 일 방해 말고 빨리 꺼져.”남자는 임유환의 말을 친한 척한다고 여겨 그를 재촉하고 나섰다.이 연경 바닥에서 정우빈 이름 석 자면 모두들 고개를 숙이니 임유환 역시 그러할 거라고 생각했다.“하하, 뭔가 좀 오해를 한 것 같은데.”남자의 말을 들은 임유환은 아까보다 더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어쩌겠다는 건데?”남자가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임유환은 고개를 저었다.“정우빈 사람이면 내가 굳이 2천만 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겠다는 뜻이었어.”“네가 감히 날 놀려?!”그제야 임유환의 말뜻을 알아차린 남자는 눈을 번뜩이며 잔뜩 열이 올라서 소리쳤다.“야, 당장 저놈 처리해!”“예, 보스!”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짐에 따라 철주를 포함한 다른 양아치들도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손을 털어댔다.그들은 감히 제 보스를 농락하고 정우빈을 욕 먹이는 임유환을 제대로 교육해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그 광경을 본 서인아는 당장 핸드폰을 들어 호텔 경호원을 부르려 했지만 임유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마저도 제지시켰다.“인아야, 걱정 마.”“처리해.”말을 마친 임유환이 무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정장 차림의 남자는 험악한 얼굴을 더 일그러뜨리며 양아치들에게 명령했다.그러자 열몇 명의 따까리들이 임유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그 모습에 가만히 있던 허유나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임유환을 걱정했다.“임유환, 조심해!”하지만 잔뜩 놀란 그녀와 달리 임유환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한 채 주먹을 들어 올렸다.그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양아치들을 향해 돌진하자 곧이어 처절한 비명소리가 연달아 방안에 울려 퍼졌다.“아아아!”아까 임유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새우마냥 몸을 웅크린 채 누워있는 모습에 허유나는 너무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뭐 더 할 말 있어?”그 부름에 뒤로 돈 임유환이 허유나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물었다.“아까는... 고마웠어.”허유나는 눈을 피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지금의 허유나는 예전처럼 기고만장하지도 않았고 임유환의 얼굴조차 똑바로 보지 못했다.“응.”그에 임유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다가 허유나의 부어오른 뺨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반차 내고 병원 가봐, 돈이 부족하면 내가 사람 시켜서 보내줄게.”임유환의 말에 허유나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자신이 전에 임유환에게 그런 몹쓸 짓들을 했는데 아직도 저를 도와주려는 임유환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보아낸 허유나는 입술을 짓이기다 한참 만에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는 임유환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전... 전에는 내가 많이... 미안했어... 이 정도 돈이면 병원이 충분히 갈 것 같아...”허유나가 말한 돈은 남자가 준 천만 원을 일컫고 있었다.임유환 역시 더는 오만방자하지 않은 허유나의 모습에 그래도 한 달 사이에 많이 변한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하지만 그 외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응, 그럼 나 먼저 갈게. 몸조심해.”말을 마친 임유환이 돌아서자 허유나는 한 치의 미련도 없어 보이는 그 뒷모습을 서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짓이겼다.하지만 전에 제가 한 짓이 도를 넘었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허유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서인아는 오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후회로 가득해 보이는 허유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담담히 한마디 했다.“내일 오전 아홉 시, 장안로 서원 그룹 인사팀으로 가. 비서한테 업무 파일 관련된 자리 하나 빼놓으라고 연락할게.”갑작스러운 서인아의 말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허유나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디.“감사합니다, 아가씨. 정말 감사드려요!”“그래.”담담히 대꾸한 서인아는 임유환과 함께 뒤 돌아 나갔고 허유나의 시선은 서인아 뒷모습에서 조명주와 최서우에게로 옮겨졌다.자신보다 더 예쁘고 더 잘난 사람들이 모두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