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인지 가짜인지 이따가 결제해 보면 알 수 있겠죠.” 이상언은 이서를 돌아보며 말했다.“이서 씨, 골라봐요.”‘어차피 결국은 지환이 계산할 테니까.’이서도 천재 의사인 이상언의 몸값이 비싼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은 어디까지나 일반 친구일 뿐인데, 고액의 드레스를 사는 건 이서도 마음속으로 편하지 않을 거다.돈으로 돌려주고 싶어도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밖의 금액이었다.“상언 씨, 우리 그냥 가요. 나 출근시간 다 됐어요.”이서가 몸을 돌려 나가고자 하자, 이하영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봐봐, 내가 뭐랬어? 가짜라고 했잖아. 허허, 부부가 아주 호흡이 척척 잘 맞는구다.”이서가 화를 내기도 전에 임하나가 참지 못하고 이서의 옷자락을 잡고는 이를 악물며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서야, 걱정 말고 사. 내가 너에게 선물한 셈 치자. 내가 나중에 상언 씨에게 갚을 게.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 여자 정말 너무 개매너야.”이서은 가볍게 웃었다.“뭐 하러 다른 사람의 말 몇 마디에 함부로 돈을 써? 게다가 웨딩드레스는 굳이 살 필요 없잖아. 대여해서 입어도 되고…….”이서의 말을 들은 이상언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의 남편의 재력이면 평상복으로 매일 드레스를 입고 다녀도 된다고…….’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이서를 보면서 이상언은 다소 미안한 감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의 행복을 위해 진짜 신분을 알려주고자 하는 충동을 억누르고 이서 곁으로 가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 돈은 나한테 껌 값이에요.”잠시 멈추었다가 그는 다시 말했다.“나 이렇게라도 분풀이 해야겠어요. 이서 씨가 안 사면, 나 울화병이 날 거 같아요. 아, 열 받아.”임하나도 옆에서 부추겼다:“그래, 이서야, 걱정 말고 마음껏 골라 봐. 이 정도 금액대는 상언 씨한테 아무것도 아니야.”두 사람은 이서를 가게 안쪽으로 밀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점원에게 말했다.“먼저 드레
지환은 국내외에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운 존재였지만, 천재 의사인 이상언은 아니었다.늘 다양한 의학 세미나와 학술회의에 참가해야 하는데다, 본인도 또한 지환과 친구라는 관계를 숨기지 않아 자연스레 더욱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이하영과 이서정은 모두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민씨 집안이 4대 가문의 대열에 오른 후 이하영은 자연스레 자신들보다 높은 가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그리고 이서정은…… 지환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상언이 그의 친구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그래서 그녀는 이 이름에 대해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저요.” 이상언은 몸을 돌려 달려온 남자에게 말했다.그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이상언 앞에 가서 몸을 굽혀 말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 샵의 총괄 매니저입니다. 제 수하의 불찰로 불쾌감을 드려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보상하고 싶은데…… 말씀만 해주세요!”그 남자는 진정성을 표시하기 위해 말투를 가중시켰다.이상언은 손가락을 들어 이하영과 이서정을 가리켰다.“저 사람들,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평생 이 샵에 발 못 들여놓게 하세요.”남자는 상대 쪽이 이하영과 이서정이라는 것을 보고 난처했다.“이건…….”“왜요, 뭐라도 된다며?” 이상언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부드럽게…… 웃었다. 부드러움 속 깊은 곳에 쉽게 알아채지 못할 한기가 숨어 있다.“그런데…….”남자는 이상언의 곁으로 다가가 이서정을 한 번 슬쩍 보았다.“이서정 씨는 대표님의 숙모이니……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이서정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다니, 죽고 싶은 거지…….’‘하은철 대표도 삼촌인 하 회장을 어려워하는데…….’‘월급쟁이인 내가 어찌 감히…….’웨딩드레스 샵 안이 갑자기 조용했다. 이서정도 그 말을 들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뒤 백이 되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폈다.“당신이 상언 씨군요. 남편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서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상언 씨
경비원 네 명이 들어와서 이하영과 이서정을 밖으로 내보냈다.이서정이 데려온 경호원은 전혀 힘을 못 쓰고 의기소침하게 이서정과 이하영의 뒤를 따라 드레스 샵을 나갔다.이상언의 요구대로 일처리를 끝낸 총괄 매니저는 또 이상언 앞으로 달려가 허리를 굽혔다.“상언 도련님, 이건 하 대표님께서 드리라고 했습니다.”이상언은 슬쩍 봤다. 카드였다.“안에 20억이 있다고 합니다. 하씨 그룹 산하의 어떤 샵에서든 마음대로 사용 가능하답니다. 대표님이 사과의 뜻으로 전하는 거라고 합니다.”임하나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차며 팔로 이서를 툭 쳤다.하은철 곁에서 8년간 있었던 이서지만. 한 번도 그가 이렇게 통 크게 누군가한테 돈을 쓴 걸 본적이 없었다.‘절대적인 권세 앞에서 하은철도 고개를 숙이는구나.’ 20억 원은 이상언에게 구우일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환을 생각하며 웃으며 받았다.“그래, 하은철이 그래도 눈치가 있네. 오늘 일은 여기서 그만 두겠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지금처럼 쉽게 안 끝날 거예요.”책임자는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반드시 선생님 뜻을 대표님께 꼭 잘 전달하겠습니다.”“그래, 가봐요.”“네.”총괄 매니저는 사면을 받은 사람처럼 황급히 자리를 떴다.한 바탕 야단법석을 떨고 난 뒤, 점원들도 이상언 등 일행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다는 걸 줄 알고 다들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사장님, 사모님,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우리 샵의 신상 웨딩드레스입니다. 너무 예뻐죠?”“사모님, 여기 전통 한복도 있습니다. 원하시면…….”“…….”재잘거리는 점원을 앞에 두고, 이서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에 다시 오자.”임하나도 핸드폰을 보았다.“그러네, 점심시간 끝났다.”이상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와 임하나를 데리고 샵을 나섰다.차에 오르자, 이상언은 카드를 이서에게 건네주었다.“이서 씨, 이 카드 받아요.”하은철이 준 카드였다.이서는 손을 저
이상언은 먼저 이서를 서우로 데려다주고, 임하나의 회사로 갔다.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임하나가 안전벨트를 풀려고 할 때, 이상언의 길쭉한 손가락이 그녀의 하얀 손을 잡았다.임하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왜요?”“할 말없어요?” 이상언은 미소를 머금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았다.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임하나는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괜히 딴소리를 했다.“무슨 말이요?”이상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가갔다.“내가 오늘 자기 친구를 도와준 셈인데…….”보상을 원하는 눈빛이었다.두 사람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임하나는 이상언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볼에 뿌려진 따뜻한 숨결이 그녀를 간질였다. 임하나는 손을 들어 볼을 만지려 했다.그런데 이상언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하나 씨, 난 당신이 우리 관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걸 두려워하는 걸 알고 있어요. 나도 서두르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가끔은 달콤한 보상을 주어야, 나도 이 기약 없는 시간 속에서 희망을 안고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그는 독실한 신차처럼 그녀를 쳐다보았다.임하나는 살짝 떨렸다.“뭘 원하세요?”“아무거나 괜찮아, 그냥…… 내 머리라도 살짝 만져줘도 돼요.”임하나의 손끝이 떨렸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손 먼저 놔줘요.”이상언은 손을 풀어줬다.임하나는 흰 손으로 이상언의 뺨을 가볍게 들어올려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이러면 될까요?”그녀는 애써 쿨한 척, 용감한 척했지만 눈동자는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이상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응, 아주 달콤해요. 아마 한동안은 잘 버틸 수 있을 거 같네요.”“…….”그녀의 얼굴은 반 박자 늦게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안전벨트를 풀었다. “저 먼저 회사 들어갑니다.”이상언은 그녀가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입을 열었다.“하나 씨, 혹시 내가 자기 친구 도와주면 늘 이런 대우받
한눈에 자기 속셈이 들통났음에도 이상언은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하하 웃었다.“우리 사이에 니 것 내 것 어딨어? 안 그래, 친구야?”그는 운전대를 돌리면서 진지하게 몇 마디 더 했다.“정말이지, 이서 씨가 널 생각해서 돈을 절약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좀 그렇더라…….”지환은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말했다. [알았어.]안다는 것은 곧 해결하겠다는 걸 의미한다.이상언도 더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전화를 끊고, 지환은 다시 회의실로 돌아와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민호일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를 보였다.“오늘은 먼저 돌아가세요.”민호일의 얼굴에 미소가 굳어졌다.“하지만 회장님, 오늘 보고드릴 게 있어서…….”지환은 그를 흘겨보았다.민호일은 말을 하지 못하고 순순히 사무실을 나갔다.민호일이 떠난 후 지환은 이천을 불렀다.“이서정에게 배역 몇 개 더 넣어줘.”이천은 다소 난처했지만 대답했다.“예!”“잠깐!”지환의 눈빛이 차가웠다.“주인공이 아니라 조연급으로……. 수중 신이나 격투 신이 있는 역할로……. 고된 배역일수록 좋아.”이천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네?”몇 초를 기다렸는데도 반응이 없자, 이천은 바로 일처리 하러 나갔다.민호일은 지환의 사무실에서 나온 뒤 곧바로 집으로 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정부가 내온 물컵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오만방자한 것! 시건방져! 돈만 아니면, 애송이 같은 널 상대하지도 않았어?”이하영도 뒤따라 집에 들어왔다.남편에게 오늘 당한 일을 하소연하려던 그녀는 민호일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 즉시 물었다.“여보,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우리 심기를 건드렸어요?!”“누구겠어?!” 민호일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하 회장이란 그 놈 말이야, 자기가 돈 좀 잘 번다고 완전 잘난 척하더라고…….프로젝트 기획안 다 짜 놓고 이제 사인만 하면 되는데, 글쎄 전화를 받고 나오더니 갑자기 나보고 가라네? 이런 경우가 어딨어?”이하영은 민호일 입에서 또 하씨 집안 사람이 언급되자, 방금 사
“그리고 앞으로 하 회장이 국내에서 투자를 확장해 나갈 테고……, 그렇게 되면 하씨 가문의 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어. 하은철에서 하지환으로…….”민호일의 말을 듣고, 이하영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만약 하 회장의 파워가 점차 강해진다면……, 완전 초대박인데요. 내가 알기론 북미와 H국 시장 점유율을 1위한 기업은 지금까지는 없었는데…….”“맞아.” 민호일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서정과 가까이 지내야 해. 오늘 같은 일은…….”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그런데…….”이서정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윤이서가 우리 예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그냥 두고만 볼 거예요?”“당신도 방금 얘기했잖아, 그년 남편이 이상언이라며?”민호일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이상언과 하 회장은 절친이야.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깝다고. 그니까 좀 참자고, 괜한 노여움 사지 말자고. 나중에 하 회장의 북미와 국내의 시장을 다 점유하면, 그 때 우리가 당한 일들을 부풀려서 하 회장한테 얘기해보자고.”“만약 그때까지도 하회장이 이서정을 아낀다면, 우린 운이 좋은 거지. 이서정의 손을 빌어 복수할 수도 있을 테니. 만약…….”한참 동안 말을 아끼던 민호일은 노쇠하고 혼탁한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싫증이 났다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 생각해 보는 거야.”이하영은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알랑거리며 남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응, 알았어요. 이서정 씨는 걱정 말아요. 내가 잘 챙길 테니까.”……이서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매니저의 전화를 받았다.매니저의 말투가 초조했다.[언니, 언니 혹시 하 회장님 기분 상하게 한 일 있어요?]매니저가 말을 꺼내자, 이서정은 괜히 밖에서 참았던 화를 매니저에게 퍼부었다.“내가 미쳤어? 뜨신 밥 먹고 할 일 없어서 남의 심기 건드리게?”매니저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언니, 화내지 말아요. 근데 일이 좀 이상해요
지환은 결혼 후 유머가 많이 는 것 같았다.반면 전화 반대편에 있는 이서정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매니저가 보낸 배역들을 보니 걱정이 태산이었다.매니저가 위로를 안겼다.[언니, 마음을 넓게 가져라. 적어도 연기를 향상시키라고 준 배역이잖아요. 누군가가 언니를 골탕먹이는 게 아니라…….]그러나 이서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만약 내가 정말 하회장 부인이라면, 이런 수모를 받았을까?’이까지 생각하니 그녀의 머릿속에 지환의 모습이 떠올랐다.지난 만남이 한 달 전이었지만 이서정은 지환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멋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그녀의 걸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가슴 저 끝바닥에서부터 용솟음쳤다.‘난…… 남자를 잘 알아, 하지환 내가 널 꼭 내 남자로 만든다!’지환의 차가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 거실에 따뜻한 불빛이 환하게 비친 걸 보니, 이서가 집에 와있다.지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서렸다.하지만 낮에 이서가 웨딩드레스 샵에서 당한 일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는 차에서 내려 넥타이를 풀어내렸다. 그러고는 음침한 표정을 거두고 집 문을 향해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문을 여는 순간, 구수한 밥 향기가 코 안 쪽을 너무 가슴속까지 푸근하게 미어 들어왔다. 지환의 눈가에 옅은 웃음이 어렸다.“여보, 나 왔어.”이서는 한창 상 차리는 중이었다. 지환의 목소리를 듣고는 뒤돌아보며 말했다.“왔어요?”“응, 웨딩드레스는 잘 골랐어?” 지환은 오늘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물었다.이서는 의자를 당겨 지환을 앉혔다.“아직이요.”자리에 앉은 지환이 두 팔을 벌렸다.아직도 앞치마도 벗지 않은 이서는 어리둥절했다.“왜요?”“안아줘.” 지환의 표정은 달콤한 사탕을 달라고 보채는 해맑은 아이 같았지만 눈 밑에 쌓인 피로는 감추지 못했다.이서의 심장이 찌릿하며 왠지 모르게 아리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지환을 안았다.지환은 머리를 그녀의 배에 비비적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
이서는 지환을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팔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지환 씨, 회사 그만 두는 거…… 나를 위한 결정인가요? 아니면 자신을 위한 선택인가요?”지환은 입술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왜 그렇게 물어봐?”“나 때문이라면, 이렇게 충동적인 결정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자신을 위해서라면,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무조건 당신 편이에요.”지환의 눈동자가 흐려졌다.이 순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에게 아주 간단한 일이, 이서에게는 그녀의 인생을 좌우지하는 도박이라는 것을.그는 머리를 이서의 어깨에 가볍게 얹었다. 순간 애틋한 감정이 미친듯이 그의 온 가슴에 만연되어 심장 가득 메웠다.“망한대도?”“괜찮아요.”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지환을 보았다.“그리고 난 당신 믿어요. 그렇게 어마 무시한 인물들과도 인맥 잘 다지고 있는 거 보면, 자기 반드시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지환은 이서의 눈동자 속에 비친 절대적인 믿음을 보며,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자기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이서는 웃으며 일어섰다. “식사해요.”지환은 이서에게 젓가락을 건네고, 마음속의 파도가 용솟음치는 것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입을 열어 이서에게 물었다.“윤씨 그룹 일은 어떻게 되가?”“내일 회사에 다녀올 예정이에요.”“서우 쪽은?”“사직서는 이미 제출했는데, 사장님의 최종 결제가 떨어지지는 않았어요. 요즘 윤씨 그룹 일로 바빠서 회사에 제대로 출근도 못했거든요.”이서는 갑자기 다소 미안한 기색을 하며 말했다.“회사가 나한테 엄청 잘해줬는데, 이렇게 떠나려니 좀 미안하네요…… 사장님한테.”“사람은 누구나 성취욕이 있어. 더 큰 발전을 위해 가는 건데, 미안하고, 안 하고가 어딨어?”이서가 ‘응’ 하고 답했다.“윤씨 그룹 CEO가 되고 나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이서는 잠깐 멍했다가 곧 빙그레 웃었다.“내가 꼭 CEO가 될 거처럼 얘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