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는 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송철환은 1초간 망설이다가 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때, 주경모는 계약서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는데, 하은철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도련님, 송대표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정신을 차린 하은철은 텅 빈 거실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잠시 나간 것 같네요.”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호원 한 명이 부랴부랴 들어왔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송 대표님께서 어떤 차에 올랐는데, 제가 이상함을 깨닫고 쫓아가려 하니까 그 차가 제 눈앞에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하은철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뭐라고?” 놀란 경호원은 연신 이 말만을 반복했다.“송 대표님께서... 차를 타고 떠나버리셨습니다!” 하은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주경모를 향해 말했다.“당장 전화하세요.” 주경모는 핸드폰을 꺼내느라 바빴고, 전화는 곧 연결되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송철환이 아닌 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서에는 내가 사인해 줄게.]지환은 가면을 쓴 채 서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서는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겁도 없이 또 한 번 이서한테 관심을 표했다가는 하씨 가문에서 싹을 잘라버릴 줄 알아!] [이건 경고이자, 마지막 기회야.] 하은철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바닥에 박혀버린 핸드폰은 큰 소리를 냈으나, 하은철의 마음속 깊은 분노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환... 하지환!’ ‘감히 내 눈앞에서 송철환 대표를 데려가다니... 이건 나를 모욕하고, 내가 주제넘은 짓을 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하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환의 곁에 있는 이서는 반드시 되찾아야 해.’‘윤이서, 너는 나의 것이어야 하니까!’ 같은 시각. 차에 오른 송철환은 지환의 기질에 놀라 머리가 텅 비고 말았다.기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그는 계약서를 품에 안은 채 벌벌 떨며 지환에게 말했다.“젊은 양반, 돈,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날 풀어주
“최근에 하씨 그룹이 윤씨 그룹을 크게 압박했지만, 윤씨 그룹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해서 하씨 그룹 내부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황입니다.”“좋아, 계속해서 몰아붙이면 되겠어. 너는 며칠 동안 하씨 그룹의 취약한 사업을 모두 인수하도록 해.” “하 사장님 쪽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쩌죠?” 지환이 냉소하며 말했다.“그 사업들은 하씨 가문의 입장에서 돈만 나가고 수익은 전혀 낼 수 없는 골칫거리나 마찬가지야.”“하은철은 그 골칫거리들을 처리하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내가 인수하겠다고 하면, 방해는커녕 오히려 기뻐하지 않겠어? 나한테 그런 골칫거리를 떠넘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 죽을 지경일 텐데, 과연 반대할까?”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천이 대답했다.“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지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창밖의 경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우선 하씨 그룹의 부가적인 사업을 손에 넣고, 중형 사업, 그리고 핵심사업까지 손을 뻗는 거야.’‘그때가 되면, 하은철이 반응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순간, 지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이서가 당한 원한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야!’ ...사무실에 있던 이서가 재채기했다. “이서 언니, 실내 온도가 너무 낮은 거 아니에요?”소희가 에어컨 리모컨을 꺼내며 말했다.“온도를 좀 높일까요?” “괜찮아, 방금은 코가 간지러웠을 뿐이야. 맞다, 소희 씨, 오늘 채소를 꽤 많이 샀던데, 오늘은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생각인 거야?” 이서가 말했다.“맞아요.”소희가 수줍게 웃었다. “혼자? 아니면, 손님이랑?”이서가 소희를 놀렸다. 소희는 한동안 이서와 지내면서 그녀의 성격이 기억을 잃기 전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사이좋은 자매처럼 지내게 되었다. 소희는 이서의 앞에서 조금 더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서 언니, 왜 또 놀리고 그러세요...” 이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틀린
그 여자가 앉은 곳은 바로 소희의 아파트 현관 입구였는데, 주변 이웃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정인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소희에게 떨어졌는데, 그들의 눈빛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조롱과 경멸, 그리고 혐오까지... “평소에는 아주 얌전해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원래 좀 그런 사람이었나 봐요.” “그러게요,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니, 마음이 모질고 악랄한 사람인 것 같아요. 어쩐지 젊은 여자가 이런 집에 사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요.”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 부모님께는 한 푼도 주지 않는 자식이라니... 염치가 전혀 없네요.” 소희는 줄곧 이서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녀의 심리적 안정감은 이서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사람들의 가십을 들은 소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희를 진정으로 한스럽게 하는 것은 부모의 방식이었는데... 그녀의 부모는 어려서부터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했다. 하지만 소희는 이것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그저 부모님이 이전 세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고, 좋은 것이 모두 동생에게 돌아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어른이 된 후에는 부모님과 어느 정도의 거리나 제한을 두고 행동했다. 소희는 자신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월급의 반이나 부모님께 드렸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모두의 가십을 들은 정인화가 소희를 보았고, 순식간에 밝은 눈빛을 띄웠다. “소희야, 왔구나!”갑자기 달려든 정인화가 소희의 허벅지를 껴안고 애걸복걸했다.“소희야, 엄마가 이렇게 빌게, 제발 네 동생 좀 살려주라, 응?”“2000만원이 없으면, 네 동생은 살 수 없단 말이야!” 그런 정인화의 태도에 소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돈을 위해서 저런 거짓말까지 지어내는 거야?’ “엄마, 지금 대체 무슨
현태는 소희의 곁으로 다가가 정인화를 향해 말했다.“또 돈 받으러 오신 겁니까?” 많은 훈련을 거친 현태는 기운이 넘치는 듯했다.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똑똑히 물었다. 마치 정인화의 목소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현태는 그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아드님께서 원하는 건 고작 400만원짜리 노트북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분은 이미 성인이 된 걸로 아는데, 왜 스스로 아르바이트해서 노트북을 구매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겁니까?”소희가 놀란 눈으로 현태를 바라보았다.‘뭐야, 다 알고 계셨던 거야?’“네? 조금 전에는 아들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요?”한 이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프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그 이웃의 시선을 따라 정인화를 바라본 현태가 냉소하며 말했다.“이분이 하시는 말을 믿으신 겁니까? 설마, 아드님이 우주에 있다고 해도 믿을 건 아니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방금 정인화가 한 모든 말이 일방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설령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다른 이웃이 승복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동생한테는 400만원짜리 노트북도 사줄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아파트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겁니다.”현태가 주위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리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 아가씨가 동생에게 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그가 곧이어 정인화를 쳐다보았다.“소희 씨가 노트북을 사주는 대신에 이전에 받아 갔던 2000만 원은 돌려주셔야겠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반박하려던 이웃들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와, 이미 2000만원을 받아 갔었나 봐요! 쯧쯧쯧,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그러니까... 저 할머니는 자기 아들을 저주하고, 억지까지 부린 거잖아요? 뻔뻔한 사람은 따로 있었네요.”“집안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2000만원이 넘는 노트북을 원하다니...
소희가 코를 훌쩍였다.“괜찮아요. 저는 단지... 가족들도 저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가족도 아닌 오빠가 제 고충을 이해해 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소희의 눈동자에 비친 고통을 마주한 현태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위로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머리를 긁적거릴 뿐이었다.“소희 씨한테 나는 제삼자일 뿐인 거야?”소희가 현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의 얼굴빛이 점차 홍당무처럼 붉게 변했다. 한참 동안 머리를 긁적거리던 그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소희 씨, 나는 소희 씨한테 제삼자로 남고 싶지 않아. 나는 소희 씨의 가족이... 아니,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되어서 언제나 소희 씨를 보호하고 싶어.” 소희의 얼굴도 천천히 붉어지기 시작했고, 불타오르는 듯한 기미까지 보였다. “오빠... 무슨 뜻이에요?” 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았는데, 복잡한 감정으로 얽힌 덩굴이 마음속에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소희 씨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현태가 단숨에 이 말을 뱉었다. 소희가 당혹스러워하며 현태를 바라보았다. “뭐라고요?”“소희 씨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다고.”금세 낯선 느낌에 익숙해진 현태가 마침내 더듬거리지 않고 소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M국에 있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은 소희 씨였어. 아니, 밤낮으로 소희 씨만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거야.” “그제야 알았어, 내가 진심으로 원한 건 동생 같은 소희 씨의 모습이 아니라...”현태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으나, 결국 이 말을 하고 말았다. “여자 친구로서의 소희 씨라는 걸.” 소희는 꿈쩍도 하지 않는 눈동자로 현태를 바라보았는데, 이미 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현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소희 씨, 싫은 건 아니지? 하긴... 내가 너무 둔해서 소희 씨가 슬퍼하는 걸...”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힘찬 포옹은 하마터면 현태를 밀어
‘이 정도면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굳이 변화가 있다고 말하자면, 내가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 혼인신고를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잖아?’ 상언도 이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던 터라, 혼인 신고에 관한 이야기는 입도 뻥끗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때때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매불망 자신만을 기다리는 상언의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또 한 번 강하게 밀려오는 듯했다. 톡방에 있던 사람들은 이 답장을 본 후에야 상황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녀들은 아무렇게나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된 소희에게 한턱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소희는 정인화가 가져온 답답한 마음을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녀가 기쁜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다.[좋아요! 내일 모두를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할게요!] 톡방에서는 또 한바탕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어떤 이가 기뻐하면 또 다른 어떤 이는 근심하는 법이었다. 같은 시각. 하씨 가문의 고택에 있는 은철은 기분이 바닥을 치는 듯했는데, 방금 들어와서 그의 맞은편에 앉은 심동도 오늘이 은철과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날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심동은 더 이상 개의치 않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하 사장, 정말 윤씨 그룹을 압박하고 싶으면, 우리 두 가문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은철이 불쾌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더는 하씨 가문이 윤씨 그룹을 압박할 방법이 없으니, 심씨 가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거야?” 심동이 급히 반박했다.“그런 뜻이 아니야. 나는 단지 윤 대표의 배후에 후원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사람은 아주 막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임이 틀림없어. 어쩌면 우리 4대 가문을 합친 것보다 더 막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르지.” 안색
호텔, 지환의 방 안.이천은 하은철 쪽의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하은철은 송철환 대표가 새벽에 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송 대표의 아내와 딸을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답니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이미 두 사람과 출국한 상황이라... 하은철은 이번에도 허탕을 치게 될 겁니다.”이천은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환이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다야?” “아직입니다.”“그럼 빨리 말해.” “대표님, 왜 그렇게 재촉하시는 겁니까?”이천은 담력이 커진 듯했는데, 지금의 지환이 예전처럼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가끔은 지환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네가 가야지만 이서가 올 수 있을 테니까.”이천이 뒤늦게 물었다.“이서 아가씨께서 저를 볼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그래.”지환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펼쳤다. 이천이 말했다.“대표님, 임현태 형님도 이서 아가씨를 만날 수 있는데, 왜 저는 안 되는 겁니까? 저도 이서 아가씨를 뵙고 싶습니다.” 그는 어언 3개월 동안 이서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지환이 이천을 흘겨보며 말했다.“안 돼.” “이유가 뭡니까?”지환이 잡지 한 페이지를 펼쳤다.“너는 늘 내 곁에 있었잖아. 너의 존재가 이서한테 큰 자극이 될지도 몰라.” “하지만 현태 씨는 상황이 다르지, 현태 씨는 이서가 힘들 때에도 늘 이서의 곁을 지켰으니까.” 이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더 할 말이 남았나?”지환이 다시 한번 이천을 내쫓으려 했다. 멍하니 몸을 돌려 걸음을 내딛던 이천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돌렸다. “아, 오늘 심씨 가문 가주의 큰아들이자, 장차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 하은철을 만나러 갔었답니다.” 이천은 지환이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지난번에 이서 아가씨께 밥을 사주겠다고 했던 그 사람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환이 자신의 가면을 벗기려
H국에 있던 이천은 지환을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지만, 업무를 보고할 때도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후에 이서의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지환의 정서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부하 직원들은 그제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YS그룹에서 이서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살아있는 보살’로 모실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 이천은 지환에게 설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더욱 섬뜩한 장면을 맞이해야만 했다. 문밖에 서서 기다리던 이서가 갑자기 문 쪽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중얼거린 것이었다.“이상하다,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이천이 곧바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문밖에 있던 이서는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 선생님, 안에 계시는 거죠? 소리도 들리는데 왜 나와보지 않으시는 거예요?”이서는 말할수록 밀려오는 불안감과 조급함을 느꼈다.“설마 또 저번처럼 숨어서 저를 만나주지 않으시려는 거예요?” 지환이 이천을 노려보며 문 뒤에 숨으라고 눈짓했고, 곧이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 후, 지환을 마주한 이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제야 문을 여시는 거예요?”이서가 지환의 소매를 꽉 잡았다.“장희령이라는 사람이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려고 해서 화가 나신 거예요?” “저는 그 여자랑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제가 시킨 게 아니었다고요!” 이서는 가면에 관한 일에 마음이 상한 지환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그녀조차도 지환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말이다.지환이 웃는 듯 마는 듯하며 이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을 마주한 이서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바보.”“지금 누구더러 바보라는 거예요?” “너.”지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바보도 아니면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이서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하긴, 장희령이 전에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우리 두 사람이 한 패일 수 있겠어.’ ‘하 선생님도 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