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지환의 방 안.이천은 하은철 쪽의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하은철은 송철환 대표가 새벽에 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송 대표의 아내와 딸을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답니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이미 두 사람과 출국한 상황이라... 하은철은 이번에도 허탕을 치게 될 겁니다.”이천은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환이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다야?” “아직입니다.”“그럼 빨리 말해.” “대표님, 왜 그렇게 재촉하시는 겁니까?”이천은 담력이 커진 듯했는데, 지금의 지환이 예전처럼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가끔은 지환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네가 가야지만 이서가 올 수 있을 테니까.”이천이 뒤늦게 물었다.“이서 아가씨께서 저를 볼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그래.”지환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펼쳤다. 이천이 말했다.“대표님, 임현태 형님도 이서 아가씨를 만날 수 있는데, 왜 저는 안 되는 겁니까? 저도 이서 아가씨를 뵙고 싶습니다.” 그는 어언 3개월 동안 이서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지환이 이천을 흘겨보며 말했다.“안 돼.” “이유가 뭡니까?”지환이 잡지 한 페이지를 펼쳤다.“너는 늘 내 곁에 있었잖아. 너의 존재가 이서한테 큰 자극이 될지도 몰라.” “하지만 현태 씨는 상황이 다르지, 현태 씨는 이서가 힘들 때에도 늘 이서의 곁을 지켰으니까.” 이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더 할 말이 남았나?”지환이 다시 한번 이천을 내쫓으려 했다. 멍하니 몸을 돌려 걸음을 내딛던 이천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돌렸다. “아, 오늘 심씨 가문 가주의 큰아들이자, 장차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 하은철을 만나러 갔었답니다.” 이천은 지환이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지난번에 이서 아가씨께 밥을 사주겠다고 했던 그 사람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환이 자신의 가면을 벗기려
H국에 있던 이천은 지환을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지만, 업무를 보고할 때도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후에 이서의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지환의 정서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부하 직원들은 그제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YS그룹에서 이서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살아있는 보살’로 모실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 이천은 지환에게 설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더욱 섬뜩한 장면을 맞이해야만 했다. 문밖에 서서 기다리던 이서가 갑자기 문 쪽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중얼거린 것이었다.“이상하다,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이천이 곧바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문밖에 있던 이서는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 선생님, 안에 계시는 거죠? 소리도 들리는데 왜 나와보지 않으시는 거예요?”이서는 말할수록 밀려오는 불안감과 조급함을 느꼈다.“설마 또 저번처럼 숨어서 저를 만나주지 않으시려는 거예요?” 지환이 이천을 노려보며 문 뒤에 숨으라고 눈짓했고, 곧이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 후, 지환을 마주한 이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제야 문을 여시는 거예요?”이서가 지환의 소매를 꽉 잡았다.“장희령이라는 사람이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려고 해서 화가 나신 거예요?” “저는 그 여자랑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제가 시킨 게 아니었다고요!” 이서는 가면에 관한 일에 마음이 상한 지환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그녀조차도 지환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말이다.지환이 웃는 듯 마는 듯하며 이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을 마주한 이서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바보.”“지금 누구더러 바보라는 거예요?” “너.”지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바보도 아니면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이서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하긴, 장희령이 전에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우리 두 사람이 한 패일 수 있겠어.’ ‘하 선생님도 뇌
이서의 입가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는데, 지환의 ‘숨겨둔 애인’이 상상한 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서의 얼굴에 이상한 기색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지환이 그제야 이천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천이라고 해, 내 비서야.” 이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지환은 곧바로 그녀의 엉뚱한 생각을 억누르려 했다. 이서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아, 비서시구나...” ‘깜짝 놀랐네.’이서를 바라보던 이천은 마음속에 억눌렸던 감정을 참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았고, 감격에 겨워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서가 당황스럽다는 듯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의 치켜 올라간 눈썹은 이미 일직선을 이룰 지경이었지만. 이서를 만난 것에 대해 감격하느라 바빴던 이천은 자신의 오랜 친구가 또 다른 감격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환이 인상을 찌푸렸다.‘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이서와 만나지 않게 하려던 거였다고!’ 한참 후에야 이서가 입을 열었다.“선생님, 비서분이...” “이천!”지환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천은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고, 바삐 코를 훌쩍였다.“죄송합니다, 윤 대표님, 저...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천은 영문도 모르는 이서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원래 저런 사람이거든.”지환이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이서야, 들어와서 앉아.” 지환의 뒤로 깔끔하게 정리된 호텔 방을 본 이서가 턱을 살짝 치켜올렸다.“아니에요, 방이 엉망이잖아요.”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지환은 자존심이 강한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손끝으로 가면을 살짝 만졌고, 얼굴에 머금었던 따스함을 거두어들였다. 같은 시각.하은철과 협력방안을 정한 심동이 상쾌한 마음으로 차에 오르려 했다.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희령이 심동을 대신하여 차 문을 열었고, 그가 앉기도 전에 물었다.“어떻게 됐어? 하은철이 협력하겠대?
심동이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그는 방금 하은철과 협력에 관해 이야기를 하느라, 방해받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음소거로 전환해 두었다. 아마 부모님은 심동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장희령에게 연락했을 것이었다. “이상하네, 여동생을 찾으러 가셨던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신 거지?”“설마, 벌써 내 여동생을 찾은 걸까?” 심동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장희령이 대답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심동을 힐끗 바라보았다. “자기야, 이제 머리 아픈 일도 다 해결됐네.”“만약에, 그러니까 내 말은... 정말 만약에 자기의 부모님께서 잃어버렸다던 따님을 찾으신 거라면... 틀림없이 기뻐하시겠지?” 심동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당연하지.” 순간, 장희령의 눈동자가 밝아졌다.“그럼 기분이 좋아지신 자기의 부모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허락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말인데 자기는...”심동은 장희령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자기야, 이번에는 확실히 자기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자기의 도움으로 하씨 그룹과 심씨 그룹의 협력을 성사시킨 셈이잖아?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나 다름없어.”“내가 이 일을 우리 부모님께 알려드린다면, 두 분께서는 분명히 다른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실 거야.” “게다가 지금 두 분은 온 신경을 내 여동생을 찾는 데에 쏟고 계시잖아? 정말 만약에 내 여동생을 찾은 게 맞다면... 두 분은 틀림없이 아주 기뻐하실 거야. 그렇게만 되면,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하늘에서 별을 따달라는 부탁을 해도 흔쾌히 들어주실 거야. 아마 입이 귀에 걸리도록 좋아하실걸?”행복감을 느낀 장희령이 펄쩍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내밀며 애교를 부렸다.“자기의 부모님께서 따님을 찾으신 게 맞다면, 바로 우리의 결혼 이야기부터 꺼내봐야겠어.” “걱정할 거 없어.”심동이 장희령의 손을 꼭 잡았다.“넌 반드시 내 와이
그 사진의 주인공은 이서의 곁을 지키는 심소희였다!장희령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심소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라니.’이지숙의 웃는 얼굴을 마주한 장희령의 마음속에서는 미친 듯한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내가 소지엽 씨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던 심가은은 내가 심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극도로 반대했었지. 그런 심가은이 죽어줬더니, 더 무서운 사람이 나타난 셈이라고!’‘게다가 이 사람은 이십몇 년 만에 되찾은 딸이잖아?’‘두 분이 심소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야. 이 여자가 돌아온다면, 내가 심씨 가문에 시집가려던 계획은 헛된 꿈이 되고 말 거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장희령이 천천히 냉정함을 되찾았고, 심동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야,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여기서 자료를 보면서 자기의 여동생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이분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테니까...” 심동이 웃으며 말했다.“그래.”“엄마, 그리고 아빠, 서재에 가서 또 다른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심근영 부부는 심동을 따라 서재로 올라갔고, 장희령은 그제야 다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다만 그녀의 눈빛에서는 거리낌 없는 잔혹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윤이서의 곁에 있는 사람이 심씨 가문의 아가씨였다니!’ 장희령은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한다고 해도, 소희가 심씨 가문의 하인이 잃어버린 아이라는 사실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장희령이 고개를 들어 2층에 있는 서재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심동 씨의 부모님께서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협력을 좋게 보셔서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흔쾌히 승낙하신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불안감을 느낀 장희령이 위층을 한 번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모든 가정부가주방에서 기쁜 마음으로 바삐 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장희령은 용기를 내
왜냐하면 그녀는 좋은 집안의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린 장희령이 아래층의 자료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누에 서린 독기는 졸졸 흐르는 물처럼 소희의 정보가 쓰인 자료를 서서히 물들이는 듯했다. ...비록 소희가 톡방에서 자기가 한턱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현태가 끝까지 자기가 내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모두 7성급 호텔로 향해야만 했다. 이러한 식사 자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소희와 현태는 상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일어나 이서와 지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두 사람이 몇 번이고 움직이자, 이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식사 자리는 두 사람이 마련한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상석에 앉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상석에 앉을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거예요. 즉, 나중에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고 나서 앉아도 늦지 않을 거란 말이죠.”“대신, 식사가 끝나면 야식은 우리가 살게요.” 다른 사람들이 분분히 입을 가리고 웃었다. 특히 나나와 하나가 이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맞아요, 그래봤자 우리끼리인데, 이런 거까지 따질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편하게 앉아요.” 소희는 그제야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으나, 현태만큼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소희 씨는 윤 대표님과 자매처럼 친하니까 상관없지만, 내가 하 대표님과 있을 때는...’ ‘늘 손님석에 앉았어. 하 대표님께서 늘 상석에 앉으셨으니까 말이야.’지환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뭘 그렇게 긴장해? 이미 이야기 다 끝났잖아?”이 말을 들은 현태가 눈을 크게 뜨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전의 하 대표님은 이런 사소한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셨을 거야.’ ‘역시 윤 대표님을 만난 후에 정말 변하신 것 같아.’ 현태가 감격스럽다는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알 리가 없었던 이서는 현태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낯익다고 생각했다.‘어디선가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정말이지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였다.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고 정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흥분한 그녀가 소희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이지? 저기 앉은 여자가 바로 내 딸이라고!” 소희의 표정을 살핀 매니저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즉시 말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이분께서 손님의 어머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소희의 마음은 무기력과 굴욕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지난번 일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결국 은행까지 따라오셨었지.’이미 정인화의 고집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희 씨, 차라리 경비를 불러서 저분을 내보내는 게 낫겠어.” ‘이런 행패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막아야 하는 법이야.’ 소희가 정인화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분이잖아.’이내 소희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엄마, 오셨어요?” 상황을 지켜보던 정인화가 흥분하며 말했다.“그래, 너는 이렇게 잘 먹고 잘 지내는데, 나는 육교 밑에서 자면서 컵라면이나 먹는 신세구나. 얘, 이러고도 네가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니?”모두의 시선이 정인화에게 떨어졌다. 정인화가 입고 있는 옷은 명품이 아니었으나, 육교 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말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단정한 것이었다. 게다가 생기 있고 윤기까지 흐르는 얼굴이 어떻게 컵라면이나 먹으며 끼니를 때운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엄마, 배가 고프시면 식사하고 가셔도 돼요. 하지만 또 돈 때문에 오신 거라면, 저는 나가달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정인화가 곧장 달려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오늘은 돈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란다. 아니, 사실 맞긴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던 정인화가 말끝을 흐렸다.“나도 너랑 씨름하고 싶지 않구나. 그래, 솔직하게 말하마. 나는 널 고소할 생각이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분분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 말을 마친 정인화가 주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자리를 떠나며 족발 하나를 집어 들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막무가내인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인화가 떠나고 먹을 것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잇달아 소희를 위로했다. 소희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모두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게다가 법정은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곳이니까 저희 엄마를 두둔하지는 않을 거예요.” 소희가 또 한 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나저나 물을 많이 마신 건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희가 걸어 나가는 것을 본 현태가 바삐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이서가 그를 막으며 말했다. “제가 가볼게요.”하나가 이서의 말을 거들었다.“그래요, 지금은 이서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현태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괜찮을 거예요.”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고, 룸에서 나와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녀는 곧 닫히지 않은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 울고 있는 소희를 발견했다. 이서가 휴지를 꺼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당황한 소희는 급히 고개를 들었고, 이서를 보자마자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는 듯이 그녀의 품에 안겨 맘껏 울기 시작했다. 이서는 소희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지만 어떠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희가 훌쩍거리며 말했다.“이서 언니, 저는 괜찮아요.”“단지... 엄마가 저를 고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제가 동생이 노트북을 사는 데 필요한 400만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소희가 또 한 번 두 무릎을 끌어안았다.“제가 살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남녀 차별이 아주 심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집도 그랬지만... 저는 저희 부모님이 제게 정말 잘해주신다고 생각했어요. 제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동생을 위해서 본인을 희생해야 했지만, 저는 계속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