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정말이지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였다.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고 정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흥분한 그녀가 소희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이지? 저기 앉은 여자가 바로 내 딸이라고!” 소희의 표정을 살핀 매니저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즉시 말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이분께서 손님의 어머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소희의 마음은 무기력과 굴욕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지난번 일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결국 은행까지 따라오셨었지.’이미 정인화의 고집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희 씨, 차라리 경비를 불러서 저분을 내보내는 게 낫겠어.” ‘이런 행패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막아야 하는 법이야.’ 소희가 정인화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분이잖아.’이내 소희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엄마, 오셨어요?” 상황을 지켜보던 정인화가 흥분하며 말했다.“그래, 너는 이렇게 잘 먹고 잘 지내는데, 나는 육교 밑에서 자면서 컵라면이나 먹는 신세구나. 얘, 이러고도 네가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니?”모두의 시선이 정인화에게 떨어졌다. 정인화가 입고 있는 옷은 명품이 아니었으나, 육교 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말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단정한 것이었다. 게다가 생기 있고 윤기까지 흐르는 얼굴이 어떻게 컵라면이나 먹으며 끼니를 때운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엄마, 배가 고프시면 식사하고 가셔도 돼요. 하지만 또 돈 때문에 오신 거라면, 저는 나가달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정인화가 곧장 달려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오늘은 돈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란다. 아니, 사실 맞긴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던 정인화가 말끝을 흐렸다.“나도 너랑 씨름하고 싶지 않구나. 그래, 솔직하게 말하마. 나는 널 고소할 생각이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분분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 말을 마친 정인화가 주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자리를 떠나며 족발 하나를 집어 들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막무가내인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인화가 떠나고 먹을 것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잇달아 소희를 위로했다. 소희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모두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게다가 법정은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곳이니까 저희 엄마를 두둔하지는 않을 거예요.” 소희가 또 한 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나저나 물을 많이 마신 건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희가 걸어 나가는 것을 본 현태가 바삐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이서가 그를 막으며 말했다. “제가 가볼게요.”하나가 이서의 말을 거들었다.“그래요, 지금은 이서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현태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괜찮을 거예요.”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고, 룸에서 나와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녀는 곧 닫히지 않은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 울고 있는 소희를 발견했다. 이서가 휴지를 꺼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당황한 소희는 급히 고개를 들었고, 이서를 보자마자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는 듯이 그녀의 품에 안겨 맘껏 울기 시작했다. 이서는 소희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지만 어떠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희가 훌쩍거리며 말했다.“이서 언니, 저는 괜찮아요.”“단지... 엄마가 저를 고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제가 동생이 노트북을 사는 데 필요한 400만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소희가 또 한 번 두 무릎을 끌어안았다.“제가 살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남녀 차별이 아주 심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집도 그랬지만... 저는 저희 부모님이 제게 정말 잘해주신다고 생각했어요. 제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동생을 위해서 본인을 희생해야 했지만, 저는 계속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늘
“정말 이상하네.”이서가 말했다.“집안 사람 중에 법률을 배우는 사람이 없다면, 소희 씨의 어머니께 소송이라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누굴까?” 비록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여서 노인들도 날마다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지만, 소송과 같은 법적인 문제는 여전히 노인들에게 먼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노인들은 사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법정에 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정인화의 의기양양한 태도는 이미 판사가 2억이라는 보상금을 그녀에게 판결한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이서가 소희에게 질문한 이유였다. 소희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했고,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친척들의 대부분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학업을 포기했어요. 겨우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들도 대학에 합격하지는 못했고요...” “대부분 아르바이트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이에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질만한 사람은... 전혀 없어요.”소희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서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아무래도 소희 씨의 친척들이 소희 씨의 어머니에게 조언해 준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저희 엄마에게 소송이라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이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아.”“하지만 소희 씨는 전혀 걱정하거나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법무팀에 똑똑히 조사하라고 지시할게. 내가 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소희 씨는 현태 씨와의 연애에 집중하기만 하면 돼.” 마지막 한마디가 소희의 미간에 서려 있던 우수를 날려버렸다. 순간, 소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이 룸으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는데, 식사 자리도 덩달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에 오르던 현태가 감격스럽다는 듯 이서에게 말했다.“윤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서는 여전히 현태가 지난 1년 동안 자신의 차
‘잠든 건가?’지환이 이서를 살며시 안아 들고 차에서 내리는 동안,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긴 이서는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그녀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지환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서가 깊이 잠든 모습을 보면... 우리가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아른거리는 것 같아.’이서를 안은 채 방으로 들어간 지환이 그녀를 살며시 침대 위에 올려놓으려 했다. 바로 그때, 이서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지환이 안색이 약간 변했다. 침대에 누운 이서가 능글맞게 눈을 뜨고 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못 도망가겠죠?” 지환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여전히 침착한 척했다. “뭘, 뭘 어쩌려는 거야?” “저랑 같이 자요.”이서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마음속의 말을 다 했다. ‘차근차근 하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고 말 거야.’ 이서의 눈을 마주한 지환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곧바로 이서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이서야, 그만해.” “하 선생님, 뭘 두려워하시는지 알아요. 제가 선생님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가면을 벗길까 봐 두려운 거죠?”“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선생님께서 직접 가면을 벗지 않는 한, 저는 누군가 제 이마에 총을 겨누고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라고 협박해도,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니까요.” 지환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린 채, 이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그녀를 똑똑히 보려는 듯했다. “이래도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맹세... 맹세라도 할게요!”지환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믿을게, 그러니까 이 손부터 놔줘.” 이서가 반신반의하며 지환을 보았다.“이 손을 놓으면... 제 말을 믿어주실 거예요?” “응.”지환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이서가 또 한 번 물었다.지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나더러 널 믿으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너는 왜 날 못 믿는 거야?” 지환의 말을 들은 이서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하는 수
같은 시각.정인화는 호화로운 7성급 호텔의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평생 이렇게 편안한 침대에서 자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정인화가 한없이 즐기던 찰나,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인 것을 확인한 정인화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사실, 소희가 호텔에 있다는 것도, 소희를 고소하라는 것도 모두 그 여자가 전화로 정인화에게 알려준 것이었다.‘게다가 저 여자는... 소희가 내 친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이렇게 생각한 정인화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경계하며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장희령은 호텔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정인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정인화가 사진에서 본 것처럼 속이기 쉬운 시골 촌뜨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장희령이 경멸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심소희 씨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죠?” 정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심소희 씨한테 이야기는 하셨어요?”“했죠,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면 2천만원을 받아낼 수 있을까요?”장희령의 눈에 서린 경멸은 곧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2억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이 말을 하면서 문 앞의 길을 터주었다. 잠시 후, 각양각색의 촬영 장비와 조명 장비를 멘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 넓은 호텔 방을 가득 채웠다. 정인화가 당황하며 물었다.“뭘... 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장희령이 입꼬리를 치켜세웠다.“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장희령이 원고 한 장을 꺼내 정인화에게 건넸다.“글은 아시죠?” 정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은요.” “그럼 됐어요. 나중에 이 원고대로 녹음하기만 하세요.” 그녀가 조병훈을 부르며 말했다.“대사 숙지가 제대로 안 되면, 나중에 목소리만 따로 녹음해도 돼요. 그러니까 빨리 마무리나 지어 주세요!”조병훈이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 “장
반복해서 원고를 읽어보던 정인화가 망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번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이때, 이미 장비 세팅을 마친 사람들이 정인화를 재촉했다. ... 다음날.이서는 출근하자마자 나쁜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바로 오양 항구에서 수출해야 할 화물들이 수출되지 못하고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왜?”이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 물건들이 하루라도 수출되지 않는다면, 윤씨 그룹은 수십억 원의 손실을 보게 될 것이었다. 어제 정인화의 행패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소희가 자료를 펼치며 말했다.“오양 항구는 심씨 가문이 계속해서 임대해 온 곳이에요. 아마 심씨 가문이 우리의 화물이 나가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 같아요.” 이서의 안색이 변했다.“심씨 가문?” 그녀는 곧 장희령과 심동의 관계를 떠올렸고, 이내 불쾌했던 아침 식사를 생각해 냈다. “다른 항구에서 수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겠지만... 수출이 지연되면 큰 손해를 입게 될 거예요. 게다가 대부분의 항구는 심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어서 지금 당장 적합한 항구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오양이나 다른 항구를 임대할 방법은 없어?”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알아보니까 심씨 가문은 올해 막 여러 항구와 20년짜리 장기 재계약을 맺었더라고요. 즉, 대부분의 항구는 앞으로도 심씨 가문의 통제 아래에 있을 거란 의미죠.” 소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화물이 계속해서 수출되지 못한다면... 육로나 항공 운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하나는 시간이 문제고, 또 다른 하나는 비용이 문제예요...” 이서가 책상에 턱을 괴고 말했다.“심 사장이 나더러 굴복하라고 압박하는 거구나.” 하지만 이서도 그녀만의 성격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소희 씨, 이렇게 하자.”이서가 인상을 강하게 찌푸렸다.“소희 씨는 우선 화물을 수출할 수 있는 다른 항구가 있는지 좀 알아봐
위층에 있던 심근영 부부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두 사람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서로에게 물었다.“여보, 들었어요?”“당신도 들었는가?”두 사람은 잠시 후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을 나섰다. 아래층에서 기다리던 고용인이 심근영 부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감격하며 말했다.[심소희 씨,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대표님께서 곧 전화를 받으실 거예요.]“...”약 3분이 지난 후, 소희는 마침내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여보세요, 심근영입니다.] ‘아... 내가 너무 많이 생각했나 보네.’ ‘하긴, 심 대표님이 어떤 분이신데, 고작 전화 한 통으로 흥분하시겠어?’ “안녕하세요, 심소희라고 합니다.”소희는 하마터면 자신이 전화한 목적을 잊어버릴 뻔했다.“이제 막 귀국하셨다고 들었는데, 저희 윤 대표님께서 오늘 심씨 가문의 고택을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물... 물론이죠. 그게...]소희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심근영이 급히 물었다.[소희, 어, 아니, 소희 씨도 같이 오시는 겁니까?]‘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저는 윤 대표님의 비서로서 당연히 동행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심 대표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심근영은 곧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이 목소리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내 딸의 목소리구나!’ ‘이 아이가... 바로 내 딸이야!’ [아... 아닙니다. 소희 씨도 같이 오세요. 저는... 아니, 우리 가족 모두는 소희 씨의 방문을 환영할 겁니다. 언제 오실 예정인가요?]“지금 방문해도 되겠습니까?”소희가 떠보며 물었다. [물론이지요.]심근영은 곧 소희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사실, 소희가 전화를 걸기 전에 심근영은 이지숙과 함께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이는 소희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는데, 윤씨 그룹의 빌딩 아래에서 그녀를 몇 번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희가 직접 우리 집을 방문할 생각이라니...!
심근영과 이지숙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심동의 핸드폰을 가져갔고, 기사의 제목을 확인하고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윤씨 그룹 대표의 비서, 충격적인 스캔들에 휘말리다!][부모를 외면한 딸!][부모를 폭행한 딸!] [친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다!][인간 이하의 악행!]하나하나의 느낌표를 보던 심근영 부부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소희가 이런 사람이라니... 난 믿을 수 없어요.”한참 중얼거리던 이지숙이 몸에 힘이 풀려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난... 믿을 수 없어요... 절대...” 상황을 지켜보던 장희령이 즉시 앞으로 나아가 이지숙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저도 소희 씨가 이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틀림없이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예요.” “그래, 무슨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이지숙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심동을 덥석 잡았다.“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소희의 집안이 소희한테 꽤 잘해줬다고 했어. 그런데 윤 대표가 윤씨 그룹을 인수하고, 소희의 수입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태도를 바꾼 거지. 소희가 수입의 일부를 집으로 보내니까 날마다 돈을 요구하기 시작한 거라고!”“이 뉴스도 그 사람들이 돈을 받아내려고 고의로 터뜨린 걸지도 몰라!”이지숙이 온 힘을 다하여 소희를 보호하려는 모습을 본 장희령은 질투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일부러 침착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그 매체들은... 모두 하씨 그룹 산하의 매체들이더라고요.”“뭔가를 알게 된 하씨 가문이 일부러 소희 씨를 이용해서 윤씨 그룹을 상대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어쨌든 소희 씨는 윤 대표님의 최측근이잖아요. 소희 씨가 큰 스캔들에 휘말리면, 윤 대표님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생길 테니까요.”“맞아, 분명히 그런 거야!”이지숙이 다급하게 심근영을 팔을 잡았다.“여보, 하씨 그룹이 윤씨 그룹을 상대하려고 정인화를 포섭한 게 아닐까요?”심근영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그제야 가라앉는 듯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