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이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그는 방금 하은철과 협력에 관해 이야기를 하느라, 방해받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음소거로 전환해 두었다. 아마 부모님은 심동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장희령에게 연락했을 것이었다. “이상하네, 여동생을 찾으러 가셨던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신 거지?”“설마, 벌써 내 여동생을 찾은 걸까?” 심동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장희령이 대답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심동을 힐끗 바라보았다. “자기야, 이제 머리 아픈 일도 다 해결됐네.”“만약에, 그러니까 내 말은... 정말 만약에 자기의 부모님께서 잃어버렸다던 따님을 찾으신 거라면... 틀림없이 기뻐하시겠지?” 심동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당연하지.” 순간, 장희령의 눈동자가 밝아졌다.“그럼 기분이 좋아지신 자기의 부모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허락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말인데 자기는...”심동은 장희령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자기야, 이번에는 확실히 자기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자기의 도움으로 하씨 그룹과 심씨 그룹의 협력을 성사시킨 셈이잖아?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나 다름없어.”“내가 이 일을 우리 부모님께 알려드린다면, 두 분께서는 분명히 다른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실 거야.” “게다가 지금 두 분은 온 신경을 내 여동생을 찾는 데에 쏟고 계시잖아? 정말 만약에 내 여동생을 찾은 게 맞다면... 두 분은 틀림없이 아주 기뻐하실 거야. 그렇게만 되면,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하늘에서 별을 따달라는 부탁을 해도 흔쾌히 들어주실 거야. 아마 입이 귀에 걸리도록 좋아하실걸?”행복감을 느낀 장희령이 펄쩍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내밀며 애교를 부렸다.“자기의 부모님께서 따님을 찾으신 게 맞다면, 바로 우리의 결혼 이야기부터 꺼내봐야겠어.” “걱정할 거 없어.”심동이 장희령의 손을 꼭 잡았다.“넌 반드시 내 와이
그 사진의 주인공은 이서의 곁을 지키는 심소희였다!장희령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심소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라니.’이지숙의 웃는 얼굴을 마주한 장희령의 마음속에서는 미친 듯한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내가 소지엽 씨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던 심가은은 내가 심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극도로 반대했었지. 그런 심가은이 죽어줬더니, 더 무서운 사람이 나타난 셈이라고!’‘게다가 이 사람은 이십몇 년 만에 되찾은 딸이잖아?’‘두 분이 심소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야. 이 여자가 돌아온다면, 내가 심씨 가문에 시집가려던 계획은 헛된 꿈이 되고 말 거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장희령이 천천히 냉정함을 되찾았고, 심동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야,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여기서 자료를 보면서 자기의 여동생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이분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테니까...” 심동이 웃으며 말했다.“그래.”“엄마, 그리고 아빠, 서재에 가서 또 다른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심근영 부부는 심동을 따라 서재로 올라갔고, 장희령은 그제야 다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다만 그녀의 눈빛에서는 거리낌 없는 잔혹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윤이서의 곁에 있는 사람이 심씨 가문의 아가씨였다니!’ 장희령은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한다고 해도, 소희가 심씨 가문의 하인이 잃어버린 아이라는 사실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장희령이 고개를 들어 2층에 있는 서재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심동 씨의 부모님께서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협력을 좋게 보셔서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흔쾌히 승낙하신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불안감을 느낀 장희령이 위층을 한 번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모든 가정부가주방에서 기쁜 마음으로 바삐 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장희령은 용기를 내
왜냐하면 그녀는 좋은 집안의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린 장희령이 아래층의 자료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누에 서린 독기는 졸졸 흐르는 물처럼 소희의 정보가 쓰인 자료를 서서히 물들이는 듯했다. ...비록 소희가 톡방에서 자기가 한턱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현태가 끝까지 자기가 내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모두 7성급 호텔로 향해야만 했다. 이러한 식사 자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소희와 현태는 상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일어나 이서와 지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두 사람이 몇 번이고 움직이자, 이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식사 자리는 두 사람이 마련한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상석에 앉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상석에 앉을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거예요. 즉, 나중에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고 나서 앉아도 늦지 않을 거란 말이죠.”“대신, 식사가 끝나면 야식은 우리가 살게요.” 다른 사람들이 분분히 입을 가리고 웃었다. 특히 나나와 하나가 이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맞아요, 그래봤자 우리끼리인데, 이런 거까지 따질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편하게 앉아요.” 소희는 그제야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으나, 현태만큼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소희 씨는 윤 대표님과 자매처럼 친하니까 상관없지만, 내가 하 대표님과 있을 때는...’ ‘늘 손님석에 앉았어. 하 대표님께서 늘 상석에 앉으셨으니까 말이야.’지환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뭘 그렇게 긴장해? 이미 이야기 다 끝났잖아?”이 말을 들은 현태가 눈을 크게 뜨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전의 하 대표님은 이런 사소한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셨을 거야.’ ‘역시 윤 대표님을 만난 후에 정말 변하신 것 같아.’ 현태가 감격스럽다는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알 리가 없었던 이서는 현태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낯익다고 생각했다.‘어디선가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정말이지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였다.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고 정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흥분한 그녀가 소희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이지? 저기 앉은 여자가 바로 내 딸이라고!” 소희의 표정을 살핀 매니저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즉시 말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이분께서 손님의 어머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소희의 마음은 무기력과 굴욕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지난번 일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결국 은행까지 따라오셨었지.’이미 정인화의 고집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희 씨, 차라리 경비를 불러서 저분을 내보내는 게 낫겠어.” ‘이런 행패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막아야 하는 법이야.’ 소희가 정인화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분이잖아.’이내 소희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엄마, 오셨어요?” 상황을 지켜보던 정인화가 흥분하며 말했다.“그래, 너는 이렇게 잘 먹고 잘 지내는데, 나는 육교 밑에서 자면서 컵라면이나 먹는 신세구나. 얘, 이러고도 네가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니?”모두의 시선이 정인화에게 떨어졌다. 정인화가 입고 있는 옷은 명품이 아니었으나, 육교 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말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단정한 것이었다. 게다가 생기 있고 윤기까지 흐르는 얼굴이 어떻게 컵라면이나 먹으며 끼니를 때운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엄마, 배가 고프시면 식사하고 가셔도 돼요. 하지만 또 돈 때문에 오신 거라면, 저는 나가달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정인화가 곧장 달려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오늘은 돈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란다. 아니, 사실 맞긴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던 정인화가 말끝을 흐렸다.“나도 너랑 씨름하고 싶지 않구나. 그래, 솔직하게 말하마. 나는 널 고소할 생각이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분분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 말을 마친 정인화가 주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자리를 떠나며 족발 하나를 집어 들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막무가내인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인화가 떠나고 먹을 것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잇달아 소희를 위로했다. 소희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모두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게다가 법정은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곳이니까 저희 엄마를 두둔하지는 않을 거예요.” 소희가 또 한 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나저나 물을 많이 마신 건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희가 걸어 나가는 것을 본 현태가 바삐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이서가 그를 막으며 말했다. “제가 가볼게요.”하나가 이서의 말을 거들었다.“그래요, 지금은 이서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현태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괜찮을 거예요.”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고, 룸에서 나와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녀는 곧 닫히지 않은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 울고 있는 소희를 발견했다. 이서가 휴지를 꺼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당황한 소희는 급히 고개를 들었고, 이서를 보자마자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는 듯이 그녀의 품에 안겨 맘껏 울기 시작했다. 이서는 소희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지만 어떠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희가 훌쩍거리며 말했다.“이서 언니, 저는 괜찮아요.”“단지... 엄마가 저를 고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제가 동생이 노트북을 사는 데 필요한 400만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소희가 또 한 번 두 무릎을 끌어안았다.“제가 살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남녀 차별이 아주 심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집도 그랬지만... 저는 저희 부모님이 제게 정말 잘해주신다고 생각했어요. 제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동생을 위해서 본인을 희생해야 했지만, 저는 계속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늘
“정말 이상하네.”이서가 말했다.“집안 사람 중에 법률을 배우는 사람이 없다면, 소희 씨의 어머니께 소송이라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누굴까?” 비록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여서 노인들도 날마다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지만, 소송과 같은 법적인 문제는 여전히 노인들에게 먼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노인들은 사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법정에 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정인화의 의기양양한 태도는 이미 판사가 2억이라는 보상금을 그녀에게 판결한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이서가 소희에게 질문한 이유였다. 소희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했고,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친척들의 대부분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학업을 포기했어요. 겨우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들도 대학에 합격하지는 못했고요...” “대부분 아르바이트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이에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질만한 사람은... 전혀 없어요.”소희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서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아무래도 소희 씨의 친척들이 소희 씨의 어머니에게 조언해 준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저희 엄마에게 소송이라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이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아.”“하지만 소희 씨는 전혀 걱정하거나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법무팀에 똑똑히 조사하라고 지시할게. 내가 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소희 씨는 현태 씨와의 연애에 집중하기만 하면 돼.” 마지막 한마디가 소희의 미간에 서려 있던 우수를 날려버렸다. 순간, 소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이 룸으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는데, 식사 자리도 덩달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에 오르던 현태가 감격스럽다는 듯 이서에게 말했다.“윤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서는 여전히 현태가 지난 1년 동안 자신의 차
‘잠든 건가?’지환이 이서를 살며시 안아 들고 차에서 내리는 동안,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긴 이서는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그녀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지환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서가 깊이 잠든 모습을 보면... 우리가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아른거리는 것 같아.’이서를 안은 채 방으로 들어간 지환이 그녀를 살며시 침대 위에 올려놓으려 했다. 바로 그때, 이서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지환이 안색이 약간 변했다. 침대에 누운 이서가 능글맞게 눈을 뜨고 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못 도망가겠죠?” 지환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여전히 침착한 척했다. “뭘, 뭘 어쩌려는 거야?” “저랑 같이 자요.”이서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마음속의 말을 다 했다. ‘차근차근 하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고 말 거야.’ 이서의 눈을 마주한 지환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곧바로 이서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이서야, 그만해.” “하 선생님, 뭘 두려워하시는지 알아요. 제가 선생님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가면을 벗길까 봐 두려운 거죠?”“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선생님께서 직접 가면을 벗지 않는 한, 저는 누군가 제 이마에 총을 겨누고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라고 협박해도,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니까요.” 지환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린 채, 이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그녀를 똑똑히 보려는 듯했다. “이래도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맹세... 맹세라도 할게요!”지환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믿을게, 그러니까 이 손부터 놔줘.” 이서가 반신반의하며 지환을 보았다.“이 손을 놓으면... 제 말을 믿어주실 거예요?” “응.”지환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이서가 또 한 번 물었다.지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나더러 널 믿으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너는 왜 날 못 믿는 거야?” 지환의 말을 들은 이서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하는 수
같은 시각.정인화는 호화로운 7성급 호텔의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평생 이렇게 편안한 침대에서 자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정인화가 한없이 즐기던 찰나,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인 것을 확인한 정인화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사실, 소희가 호텔에 있다는 것도, 소희를 고소하라는 것도 모두 그 여자가 전화로 정인화에게 알려준 것이었다.‘게다가 저 여자는... 소희가 내 친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이렇게 생각한 정인화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경계하며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장희령은 호텔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정인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정인화가 사진에서 본 것처럼 속이기 쉬운 시골 촌뜨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장희령이 경멸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심소희 씨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죠?” 정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심소희 씨한테 이야기는 하셨어요?”“했죠,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면 2천만원을 받아낼 수 있을까요?”장희령의 눈에 서린 경멸은 곧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2억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이 말을 하면서 문 앞의 길을 터주었다. 잠시 후, 각양각색의 촬영 장비와 조명 장비를 멘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 넓은 호텔 방을 가득 채웠다. 정인화가 당황하며 물었다.“뭘... 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장희령이 입꼬리를 치켜세웠다.“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장희령이 원고 한 장을 꺼내 정인화에게 건넸다.“글은 아시죠?” 정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은요.” “그럼 됐어요. 나중에 이 원고대로 녹음하기만 하세요.” 그녀가 조병훈을 부르며 말했다.“대사 숙지가 제대로 안 되면, 나중에 목소리만 따로 녹음해도 돼요. 그러니까 빨리 마무리나 지어 주세요!”조병훈이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