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한은 진미선과 왕대관을 싫어했지만, 그는 프로였고 또 성연이 부탁한 일이었다.광고 촬영에 있어서는 진미선과 왕대관을 난처하게 하는 일 없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진미선은 쉬는 시간을 틈타 학교로 성연을 찾아왔다.주연정은 오늘따라 성연과 함께 하교하고 싶었다.친구끼리는 뭐든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평소 냉정해 보이는 성격의 성연이지만 주연정이 성연을 좋아하는 데 하등 문제가 되진 않았다.연정은 활발한 성격을 가진 소녀였다.그녀는 성연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퍼부었고, 성연은 단답으로 대답할 뿐이다.하지만 성연은 연정을 싫어하지 않았다.연정은 보기 드물게 순진하고 나쁜 마음이 없었다.성연도 작은 태양처럼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성연아, 북성시 시내에 엄청 맛있는 꼬치집이 있대! 다음에 시간 되면 우리 같이 먹으러 가자.”서로 친해지면서 연정도 성연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그래.”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또래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꽤 신기했다.“같이 가기로 한 거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어!”연정이 활짝 웃었다.“알겠어.”성연도 입술을 오므렸다.성연과 연정은 교문까지 걸어갔고 연정은 성연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다른 길로 걸어갔다.연정은 방방 뛰며 매우 행복해했다.성연은 때때로 아무 걱정 없이 해맑은 연정이 부럽기도 했다.얼굴의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고개를 돌린 성연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진미선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완전히 사라지고 무표정해졌다.“여기서 뭐 하세요?”진미선은 이런 성연의 무관심에 익숙해져 있었다.성연의 달라진 표정을 본 진미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연정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물었다.“성연아, 쟤가 네 친구니? 학교에서 몇 명 정도 친구를 더 사귀렴. 그래야 네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질 거야.”“무슨 상관이에요. 왜 찾아오셨어요? 앞으로 부탁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잖아요.”성연
진미선은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성연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드디어 그들은 작은 별장 입구에 도착했다.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여기서 밥을 사겠다는 말이야?’‘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진미선은 혹여나 성연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성연아, 여긴 엄마가 사는 곳이야. 오늘 엄마가 널 위해서 요리를 다 해 놨으니까 가서 한 입만 먹어.”성연은 진미선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집에 들어간 후, 성연은 진미선이 자신을 왕씨 집안에 데려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성연은 화가 났다.‘지금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그녀는 고개를 돌려 진미선을 바라봤다.진미선은 돌아서서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성연아, 얼른 들어가자.”집 안에는 왕대관과 그의 어머니, 왕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다 모여 있었다.성연을 본 왕대관이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성연이 왔니? 다들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이 아이가 성연이야?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진미선의 시어머니도 반가운 척 친절하게 말했다.그들 앞에는 커다란 접시가 놓여 있었고, 마치 성연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 같았다.성연은 입술을 오므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사람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진미선의 태도를 보면 왕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그들과 그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있자 왕대관과 시어머니는 조금 당황스러웠다.특히 시어머니는 체면도 내려놓고 성연에게 말을 걸었기에 더 그랬다.한참이나 나이 어린 여자애가 완전 자신을 무시한 것이다.‘누가 그 엄마에 그 딸 아니랄까 봐.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드는군.’그녀는 진미선을 바라보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그 표정은 마치 ‘이게 네가 키운 딸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성연의 행동에 진미선도 난처했다.그래서 그녀는 성연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성연아, 이왕 왔으니 날
‘가장 역겨운 사람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당신들이야.’성연은 왕대관과 그 어머니의 위선적인 얼굴이 너무 역겨웠다.‘내가 모를 것 같아?’그들은 분명 성연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들은 강씨 집안이라는 목적만을 생각하고 행동했다.만일 그녀가 강무진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연을 본체만체 했을 게 뻔했다.그녀의 운명은 진미선에게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었다.진미선은 왕씨 집안에서 남의 비위를 맞추며 비참한 삶을 살았는데 그녀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진미선의 팔에 난 상처를 생각하면, 성연은 그 시어머니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지금의 진미선은 그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에 불과했다.분명 진미선은 혼자 좋은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남의 시중이나 들며 살고 있었다.성연은 그녀를 동정해서는 안 됐다.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시어머니와 왕대관은 계속해서 말을 꺼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그러자 그들은 침묵을 유지했고 분위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진미선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그녀는 성연이 시어머니의 위신을 깎아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가다간 시어머니가 자신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게 뻔했다.항상 그랬다.진미선은 집에 있는 과일을 깎아 성연에게 갖다 줬다.“성연아, 내가 사온 과일이야. 한 번 먹어봐. 꽤 달아.”성연은 그 과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꽤나 비싸 보였다.평소 왕씨 집안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그러나 이건 그들의 능력과 맞지 않았다.‘이렇게 돈을 써대니 회사가 그 모양이지. 회사가 굴러가는 게 이상해.’이를 보니 왕대관이 필사적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했다.그가 물질적인 면에서는 진미선에게 아끼지 않는 것 같았다.어쩌면 이게 진미선이 원하는 삶일지도 모른다.왕대관이 그녀에게 어떤 짓을 하든 그가 진미선의 삶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만 있으면 된 거였다.성연은 어이가 없었다.이전에 진미선은 자신
진미선은 마음이 불편했다.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그럴 만했다. 성연을 이용해 지위를 올리려면 이런 것쯤은 견뎌야 했다.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던 진미선은 혼자 돌아갔다.시어머니는 방금 성연이 자신에게 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돌아온 진미선을 본 그녀는 즉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진미선에게 표출했다.그녀는 직설적으로 진미선을 조롱했다.“딸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니? 정말 교양도 없고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구나. 강씨 집안만 아니었으면 이 집안에 발도 못들이게 했을 거야.”시어머니의 친절은 연기에 불과했다.성연은 강씨 집안의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시골 소녀였다.‘감히 내 앞에서 그렇게 오만 방자하게 굴어?’‘눈 씻고 봐도 예의를 찾을 수가 없는데, 강씨 집안 같은 재벌가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진미선은 그저 성연이 안타까울 뿐이었다.성연 때문에 그런 좋은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여전히 등 뒤에서 그녀를 욕하고 있었다.참다 못한 진미선이 입을 열었다.“어머니, 성연이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요.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세요.”시어머니는 진미선이 딸을 위해 대드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화가 났다.그녀는 더욱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얼굴만 믿고 남자를 유혹하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강씨 집안이 왜 그 아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모르겠어.”그녀가 하는 모든 말은 진미선의 가슴에 대못으로 박혔다.진미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러나 그녀 역시 시어머니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그녀는 시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하고 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시어머니는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이 일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인지 진미선은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진미선은 멍하니 옆에 서 있었다.시어머니는 가만히 있는 진미선의 모습에 더욱 열이 올랐다.‘우리 아들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감히 누구한테 불쌍한 척하는 거야
수학 올림피아드가 다가오고 있어 성연은 매일 밤 늦게까지 문제를 풀었다.무진은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서재로 들어갔다.돌아와 보니 성연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무진은 마음이 아팠다. 피곤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엎드려 잠들지 않았을 텐데.몸을 기울여 성연을 안아 들고 침대에 데려가 눕히려 했다.그녀의 팔을 감싸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연의 살결이 느껴졌다.그것도 잠시, 피부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그는 손을 들어 뜨거운 성연의 이마를 짚었다.무진은 걱정스러워 급하게 성연을 방으로 데려갔다.성연의 몸에서 열이 펄펄 끓었다.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무진은 황급히 방을 나왔다.거실에 있던 집사가 다급히 나오는 무진을 보며 물었다.“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성연이 열이 높아요. 얼른 의사한테 연락해서 빨리 오라고 하세요.”무진이 무거운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이 말을 들은 집사는 작은 사모님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심각한 일이었다.그는 서둘러 말했다.“네, 도련님. 지금 당장 의사에게 전화하겠습니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통화를 마친 집사가 무진에게 물었다.“도련님, 작은 사모님께서 열이 많이 납니까? 괜찮으신가요?”평소 무진을 살뜰히 챙기던 성연인 만큼 집사는 성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의사가 오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어요.”무진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집사도 의사가 빨리 오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기다렸다.30분이 지났을까, 의사가 엠파이어 하우스에 도착했다.집사가 성연의 방으로 의사를 안내했다.무진이 침대에 붙어서 살뜰히 성연을 돌보고 있었다.성연에게 다가가 상태를 먼저 살펴본 의사가 말했다.“작은 사모님 열이 심하군요. 체온을 먼저 재 봐야 할 것 같습니다.”그 말과 함께 의사는 무진에게 체온계를 건넸다.무진은 성연의 옷을 살짝 벌려 안으로 체온계를 밀어 넣었다.아무도 그녀의 속살을 볼 수 없도록 조심하면서.5분 후, 의사는 무진에게 체온계를 꺼내라고 요청했다.언뜻 봐도 열은 3
새벽이 되자 성연의 열이 많이 떨어졌다. 대신 땀으로 온몸이 끈적였다.성연이 눈을 떠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침대 옆에서 자고 있는 무진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보아하니 무진이 밤새도록 자신을 간호한 것 같았다.성연은 옆으로 돌아 무진의 팔을 두드렸다.“무진 씨, 무진 씨.”옅은 잠에 들었던 무진이 바로 일어났다.그는 자신 앞에 있는 성연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이마의 온도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더 이상 열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무진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다음부터는 그렇게 늦게까지 공부하지 마.”“제 몸이 이렇게 약해졌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예전엔 소도 때려잡을 만큼 건강했는데, 그러고보니 아픈 지도 오랜만이네요.”성연이 한숨을 쉬었다.정말 평소에 너무 열심히 일한 것 같았다.“넌 만화 속 영웅이 아니야. 당연히 아플 때가 있지.”무진은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침대로 가서 주무세요. 무진 씨가 저보다 더 몸이 안 좋잖아요. 무진 씨까지 아프면 어떡해요?”성연은 밤새 찬 바람을 쐰 무진의 몸을 생각하며 미안함을 느꼈다.“괜찮아.”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 집사에게 성연이 먹을 죽을 달라고 부탁했다.이미 죽을 준비해서 성연이 먹기 편하게끔 식히고 있었다.죽이 성연이 가까이 있는 테이블 위에 놓였다.성연은 간단히 세수를 했지만, 그래도 몸이 끈적했다. 불편해서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아직도 미열이 남아있어 당분간은 몸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았다.그녀는 화장실로 가 옷을 갈아입고 죽을 먹었다.식사 후, 성연은 훨씬 몸이 가벼워졌다. 안색도 연분홍 빛으로 돌아왔다.몸이 괜찮아진 걸 느낀 성연은 위층으로 올라가 책가방을 싸며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현관문으로 가는 성연을 본 무진이 말렸다.“송성연, 어디 가?”성연은 어깨에 책가방을 흔들며 말했다.“이러고 어디 가겠
그렇게 이틀을 성연은 집에서 쉬었다.그래서 그런지 성연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어쨌든 그녀 자신도 의술인으로서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안금여와 강운경도 병 문안을 왔다.또 오면서 몸에 좋은 많은 것들을 챙겨 왔다.안금여는 성연을 보자마자 인사를 하며 물었다.“성연아, 왜 몸이 안 좋아? 무진이가 널 잘 돌 봐주지 않았어?”“할머니, 전 괜찮아요. 제 부주의예요.”성연은 걱정스러운 안금여의 목소리에 진심어린 미소를 띠었다.예전에는 외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감히 알리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던 적이 있었다.‘아플 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이 느낌 정말 좋아. 마음이 따뜻해져.’적어도 성연은 이 느낌을 좋아했다.“다음부턴 조심해. 몸이 많이 불편하지?”안금여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성연의 손을 꼭 잡았다.마치 그녀가 아픈 사람인 것 같았다.강운경도 이때 다가와 말했다.“고모부가 해외에서 사온 비타민이야 체력이 떨어질 때 먹으면 효과가 좋대. 한번 먹어봐.”그녀는 상자 여러 개를 들고 성연의 앞에 놓았다.안금여도 이에 동의하며 웃었다.“이건 할머니가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온 것들이야. 다 네 나이에 맞는 비타민이야.”성연은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박스들을 바라봤다.‘이건 좀 과한 것 같은데.’성연은 힘없이 말했다.“고모, 할머니, 그냥 열이 났을 뿐이에요.”비교적 젊고 회복력이 빠르기에 이런 것들을 먹지 않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세 가지의 비타민.일부 비타민은 복용할 수 없었다.하지만 안금여와 강운경은 좋은 걸 먹을 생각에 좋다는 건 뭐든 사 왔었다.“이번엔 열만 났지만, 건강을 신경 쓰지 않으면 앞으로 더 심각한 병에 걸릴 수도 있어. 젊어도 건강은 챙겨야 해.”안금여는 진지하게 말했다.“무진이를 만나기 전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병에 다 걸리고…….”안금여는 한숨을 쉬었다.강운경이 입을 열었다.“너 같은 젊은 애들은 시간이 있을 때 운동을 좀 더
주말.안금여가 엠파이어 하우스로 왔다.안금여를 보고 좀 의아해진 성연이 물었다.“할머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안금여가 말했다.“성연아, 너 주말에 별일 없지? 나랑 같이 쇼핑도 하고 바람 쐬러 나가자.”성연이 온종일 집에만 있는 게 친구도 없는 것 같아 보여 안금여는 늘 마음이 안 좋았었다.“네, 별일 없어요, 할머니. 옷 갈아입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어른과 함께 쇼핑을 해 본 적이 없는 성연이지만 안금여와 같이 나가서 쇼핑하며 구경하는 것도 분명 즐겁겠다 싶었다.이제 수학경시대회의 문제 유형은 거진 파악한 셈이었다.그래서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옷을 갈아입은 성연은 안금여를 따라 백화점으로 갔다.뒷좌석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어느새 백화점에 도착해 있었다.차에서 내리니 백화점 앞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강운경이 보였다.“고모님.” 성연은 다정하게 운경을 불렀다.“성연아, 엄마, 오셨어요? 가요, 들어가서 둘러봐요.” 잠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사에 들른 운경은 일을 끝낸 후 다시 백화점으로 와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세 사람은 함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这一个大商场,全部都是奢侈品。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백화점 명품관.강운경과 안금여는 이곳의 단골 고객인 듯.어디를 가든 모두가 아주 공손한 태도로 맞이했다.한 여성복 매장에 들어간 운경이 성연을 위해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한 벌을 집어 들고 성연 앞에 대어 보며 말했다.“성연아, 맞는지 가서 한 번 입어 볼래?”상큼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핑크 빛 원피스였다.허리 뒷부분에 리본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어 성연이 보기엔 좀 유치했다.그러나 운경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한 성연은 피팅 룸으로 들어가 갈아입고 나왔다.하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성연이 입으니 애니메이션 속 아름다운 소녀 같았다.안금여가 옆에서 칭찬했다.“우리 성연이 정말 예쁘네. 이 옷 잘 어울린다.”운경도 만족스럽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