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안금여가 엠파이어 하우스로 왔다.안금여를 보고 좀 의아해진 성연이 물었다.“할머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안금여가 말했다.“성연아, 너 주말에 별일 없지? 나랑 같이 쇼핑도 하고 바람 쐬러 나가자.”성연이 온종일 집에만 있는 게 친구도 없는 것 같아 보여 안금여는 늘 마음이 안 좋았었다.“네, 별일 없어요, 할머니. 옷 갈아입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어른과 함께 쇼핑을 해 본 적이 없는 성연이지만 안금여와 같이 나가서 쇼핑하며 구경하는 것도 분명 즐겁겠다 싶었다.이제 수학경시대회의 문제 유형은 거진 파악한 셈이었다.그래서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옷을 갈아입은 성연은 안금여를 따라 백화점으로 갔다.뒷좌석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어느새 백화점에 도착해 있었다.차에서 내리니 백화점 앞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강운경이 보였다.“고모님.” 성연은 다정하게 운경을 불렀다.“성연아, 엄마, 오셨어요? 가요, 들어가서 둘러봐요.” 잠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사에 들른 운경은 일을 끝낸 후 다시 백화점으로 와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세 사람은 함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这一个大商场,全部都是奢侈品。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백화점 명품관.강운경과 안금여는 이곳의 단골 고객인 듯.어디를 가든 모두가 아주 공손한 태도로 맞이했다.한 여성복 매장에 들어간 운경이 성연을 위해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한 벌을 집어 들고 성연 앞에 대어 보며 말했다.“성연아, 맞는지 가서 한 번 입어 볼래?”상큼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핑크 빛 원피스였다.허리 뒷부분에 리본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어 성연이 보기엔 좀 유치했다.그러나 운경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한 성연은 피팅 룸으로 들어가 갈아입고 나왔다.하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성연이 입으니 애니메이션 속 아름다운 소녀 같았다.안금여가 옆에서 칭찬했다.“우리 성연이 정말 예쁘네. 이 옷 잘 어울린다.”운경도 만족스럽
‘가만, 강진성과 송아연이 어떻게 같이 어울리는 거지?’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대고 나왔다.그리고 두 사람을 따라갔다.그리고 두 사람이 송아연과 강진성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송아연을 데리고 다니며 강진성은 그녀를 위해 적지 않은 명품 물건들을 쇼핑했다.두 사람의 손에는 꽤나 많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송아연은 강진성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고 있었다.쥬얼리 매장을 지나던 송아연이 달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진성 씨, 좀 봐요, 저 팔찌 너무 예쁘다.”눈을 들어 쇼윈도우에 진연 된 팔찌를 슬쩍 본 강진성이 물었다.“음, 괜찮은데? 갖고 싶어, 베이비?”강진성의 ‘베이비’ 호칭에 송아연이 부끄러워 죽겠다는 척을 했다.송아연이 얼굴을 붉히며 애교를 부렸다.“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엄마에게 저런 팔찌를 선물하면 무척 좋아하실 거란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우리 베이비는 보배는 정말 효녀야. 들어가서 보자.” 그런 송아연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강진성의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로 가득했다.하지만 웃음이 번지지 않은 그의 눈은 서늘하기만 할 뿐이다.강진성의 눈빛을 읽지 못한 송아연이 그를 끌고 쥬얼리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매장 안에 들어선 아연은 정교한 세공의 보석들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강진성과 같이 다니며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한 차례 시야가 확 넓어졌다고 할까.매장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앉자마자 아연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여기서 가장 비싼 팔찌를 보여줘요.”무의식 중에 직원이 강진성 쪽을 쳐다보자 강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직원은 즉시 몸을 돌려 들어가 팔찌를 꺼내 왔다.팔찌를 보던 아연은 자신이 너무 속을 드러내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강진성을 바라보며 바로 토끼 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진성 씨, 제가 좀 비싼 팔찌를 사도 괜찮겠죠? 아무튼 강씨 집안 도련님인 당신 체면을 깍을 순 없잖아요.” 아연이 아주 친근한 음성으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본 성연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님을 짐작했다.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커피숍으로 돌아갔다. 섣부른 행동으로 저들의 경계심을 사지 않도록.데리러 온 무진은 먼저 안금여와 운경을 강씨 고택까지 모시고 갔다.그리고 다 같이 고택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하는 내내 안금여는 성연에게 이것저것 음식들을 집어 주었다.“성연아, 좀 더 먹어. 네 몸을 좀 봐, 얼마나 말랐는지.”성연은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잘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그릇에 있는 것을 남김없이 먹었다.운경은 무진과 대화중이었다.“내가 골라준 스커트들을 성연이 입는 걸 네가 꼭 지켜봐야 해. 젊은 아가씨는 아가씨의 모습이 있어야지. 하루 종일 교복만 입어서야 되겠니?”“성연이 좋아하면 됐죠, 뭐.” 무진은 운경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성연의 역성을 들었다.“쯧쯧, 얘 좀 봐. 와이프가 생기더니 고모는 아예 안중에도 없네.” 운경이 무진을 놀렸다.자신의 조카는 예전부터 한결같이 냉담한 성격으로 무엇에도 심드렁한 모습이었다.그런데 성연에게 이처럼 잘해 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애초에 자신의 엄마 안금여가 이런 혼사를 결정했을 때, 무진의 저 성격에 한바탕 비극으로 끝나리라 예상했던 게 사실.그러니 저 두 사람이 저토록 잘 지내리라 상상이나 했을까?하지만 송성연 저 아이는 확실히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했다.“무슨.” 무진이 입으로는 반박의 말을 했지만 눈으로는 전혀 부인하지 않았다.운경이 성연 쪽을 바라보았다.비록 운경은 아무 말도 않았지만 성연은 뺨이 계속 뜨겁게 느껴졌다.성연이 뺨의 열기를 참으며 대답했다.“고모님, 걱정 마세요. 사 주신 옷들 정말 예뻐요. 꼭 입을게요.”“그럼 됐어.” 부끄러워하는 성연을 본 운경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성연과 무진은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왔다.“오늘 재미있었어?”무진이 물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성연이 눈에
송씨 집안.아연은 선물 받은 쇼핑백들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현관에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과 인사에서 그 기색이 남김없이 드러났다.송종철이 물었다.“너 이 물건들은 다 뭐냐?”현재 점점 더 안 좋은 송씨 집안의 형편에 아연에게 이런 사치품들을 사줄 돈이 없었다.아연이 가져온 물건들은 적게 잡아도 수 억은 되어 보였다.송종철은 아연이 무슨 부정한 짓이라도 저지른 게 아닌 가 걱정되었다.아연이 곧장 자랑했다.“당연히 강진성이 나에게 준 것들이죠.”턱을 치켜들며 말하는 아연의 어투가 상당히 교만스러웠다.임수정이 즉시 옆에서 아연을 치켜세웠다.“우리 아연이 정말 대단해. 역시 내 딸이야. 얼굴이 예쁘니 쉽게 사랑받는 게지.”하지만 조금은 더 이성적인 송종철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강진성이 정말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냐?”어찌 되었든 강씨 집안은 진짜 명문재벌의 가문이다.자기 아버지에게서 의심의 말을 들은 아연이 바로 불만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빠,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에요? 강무진도 송성연을 마음에 들어 하는데, 그럼 내가 송성연 보다 못하다는 말이에요?”송종철 또한 잠시 생각해 보니, 아연의 말이 옳았다.성연은 시골에서 올라온 계집애에 불과했다.하지만 자신들이 성심으로 키운 아연은 가야금, 바둑, 서화까지 두루 익혔다.‘성연이 보다 훨씬 낫네.’‘성연이처럼 촌스럽고 천박한 아이가 어떻게 강무진의 호감을 산 거지?’‘아무리 그래도 성연이 강무진 그리고 강씨 집안 사람들 마음에 들었다는 게 정말 이상하지 않나?’이렇게 생각하면 강진성이 아연에게 반한 것도 매우 정상적인 일인 셈이다.송종철이 아연에게 말했다.“진짜 그런 거라면 좀 더 바짝 달라붙어. 성연이 그 백여우는 절대 우리 집안 편을 들지 않을 테니.”이제 의지할 데라고는 송아연, 자신의 어린 딸뿐이다.아연일 키우는데 쓴 그 많은 돈이 아깝지 않았다.아연인 그래도 좀 쓸모가 있어 보인다.“
송아연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송종철가 임수정의 대화는 그녀의 허영심을 더 부풀렸다.조만간 송성연을 눌러 버릴 거라고 아연은 속으로 생각했다.강진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 강무진에 대해 모두 들었다.겉만 멀쩡해 보이는 병신과 다름없는 몸은 언제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쁘다고 하니.그때면 강씨 집안의 주인도 바뀔 테고.강무진이 죽으면 송성연의 뒷배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송성연을 마음껏 괴롭혀도 감히 딴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을 테지.그런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는 아연의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그러니 강진성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아연이 옆에 놓아둔 쇼핑 가방을 흘깃 쳐다보았다.그리고 쇼핑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임수정에게 건넸다.“엄마, 이건 진성 씨가 엄마한테 드리는 선물이에요.”과분한 선물을 받은 임수정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강진성이 왜 나에게 선물을 사주는 거야? 아연아, 너는 조금 전까지 강진성이랑 함께 있었잖니? 선물 좀 그만 받아. 안 그러면 사람들은 네가 돈에 넘어간 거라 생각할 거야.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 해.”물론 애초 자신들의 목적이 강씨 집안의 지위였기는 하지만 말이다.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역시 좀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게 좋을 터.생각해 보니 재벌들은 역시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엄마, 어차피 강씨 집안은 돈 많아. 강진성도 나를 위해 흔쾌히 돈을 쓰는 데 뭐. 그 사람은 전혀 신경 안 쓸 거야.” 아연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임수정을 재촉했다.“엄마, 어서 열어봐.”정교한 쥬얼리 박스를 본 임수정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바로 열었다.송종철의 회사 사정이 안 좋은 덕분에 임수정은 보석을 새로 구입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이건 자기 딸이 자신에게 준 것이었다.곧장 쥬얼리 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빛깔 영롱한 팔찌가 놓여 있었다.곧바로 집어 든 임수정이 팔목에 찼다.“손목에 잘 어울리는데?”임수정이 아주
강무진은 귀국하자마자운영관리 소홀을 이유로 강상철 소관의 지사 두 곳을 회수해버렸다. 모두 수익이 높은 지사들이다.지사 두 곳을 거둬 들이며 강상철의 오른손을 끊은 셈이다.그러면서 강상철의 자금 대부분이 끊겼다.화가 난 강상철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하지만 더 이상 어쩔 방법이 없었다.강무진의 이번 출국으로 강상철의 손실이 도리어 막심했다. 처음에는 강무진의 부상이 심각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팔팔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이미 당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지.시퍼런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던 강상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무진 이 놈, 절대 얕봐서는 안될 놈이야. 몸이 온전하지 않은 게 뭔 대수야. 결국 강씨 집안 피가 그 손에 흐르고 있으니 웬만한 실력자들 보다 낫다.”여태껏 강무진을 무시했었다.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야 강무진이 별볼일 없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자신들을 이런 식으로 속여 넘기다니.“강무진이 어떻게 관청에 안 걸릴 수가 있지?”강일헌 또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늘 강무진과 비교당하며 패배감을 느껴야 했다.실적도 강무진 보다 못하고, 업무 능력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현재 주주들의 저울추는 점차 강무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오직 이익만 바라보는 늙은 여우들은 자연히 무진 쪽에 좀 더 기울어 있었다.비록 지금 강무진의 몸이 좀 약하다지만 바로 눈 앞에서 그 능력을 본 것이다.그러니 그들이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누가 돈 앞을 모른 척하겠는가?“할아버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일헌은 지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지난번 해외에서의 실패로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지금은 무엇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특히 회사 사람들 모두 자신이 강무진 보다 못하다고 말할 때면 말이다.강일헌은 더욱 자신이 없었다.주눅이 든 강일헌의 모습에 강상철은 화가 치밀었다.“제발 좀 제대로 할 수 없겠니? 네가 무진이 놈
무진이 강상철을 공개적으로 손본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그를 다치게 한 이상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는 천천히 차례대로 저 두 화근을 처리할 것이다.예전에는 강상철과 강상규가 본가를 괴롭혔지만, 이제 앞으로는 하나하나 모두 되돌려줄 것이다.절대 두 다리 뻗고 자게 하지 않을 것이다.성연은 요즘 고난이도의 문제들과 씨름하는 중이다.문제의 양은 줄었지만 난이도는 높아졌다.그리고 이윤하가 성연과 다른 두 명의 참가 학생을 직접 지도했다.다른 참가자 두 명은 문제를 푸는 데에 힘들어했다. 성연도 좀 애를 먹긴 했지만.어려움에 처한 참가자들을 보면서도 이윤하는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했다.“선생님은 너희들이 우승을 하기를 바라지만 그것보다 더 너희들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차근차근히 풀어. 조급하게 굴지 말고.”이윤하가 모처럼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러자 모두들 기분 좋게 열심히 하겠다며 말했다.최근 연일 보충 수업을 하자 다들 시간이 빡빡했다. 이윤하도 여유가 없었다.그래서 오늘 이윤하는 대단한 자비를 베풀어 반 교시를 당겨 수업을 마쳤다.성연이 책가방을 정리하고 막 떠나려 할 때,이운하가 성연의 앞으로 다가와서 말했다.“선생님이 들으니까, 지난번에 네가 문제 풀다가 병이 났다던데.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도록 해, 알았지?”“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성연은 사실 괜찮았다.사실대로 말한다면 다른 두 참가자의 스트레스가 그녀보다 좀 더 클 것이다.그녀는 문제 풀이가 그런대로 순조로웠다.하지만 다른 두 참가자는 그녀보다 풀기 어려워했다.“그래, 알아서 멘탈 관리하는 것 잊지 마.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준 문제유형은 모두 난이도가 가중된 거야. 보고 풀었으니 됐다. 대회에 참가하기도 전에 멘탈이 무너지지 않게 해.”이윤하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성연을 위시한 참가자들의 심리 상태였다.경기 능력도 중요하지만 똑같이 심리 상태도 중요했다.“네.”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녁에 돌아오니 문제를
성연은 무진의 말을 믿고 표시된 유형의 문제들만 집중적으로 연습했다.며칠 지나자 드디어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순조롭게 풀기 시작했다.기본적으로 문제를 푸는 과정에 별 다른 장애를 발견하지 못했다.어느덧 경기 당일이 되었다.아침 일찍 성연은 교문에서 일행과 합류했다.북성제일고로 바로 출발했다.성연 일행이 도착했을 때, 다른 학교에서도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각 학교에서는 모두 세 명의 학생을 시합에 참가시켰다.여러 고등학교가 한데 모이니 꽤나 시끌벅적했다.정우석과 북성제일고의 선생들이 모두 마중을 나왔다.그들 모두 성연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우리 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 오늘 대결이 매우 기대된다.”지난번 토론대회에서 북성제일고를 이긴 후부터 성연은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주위의 몇몇 학교에서도 가까이 다가와 살폈다.어떤 선생들은 물어보기도 했다.“여기가 바로 올해 북성남고의 해결사예요?”이윤하도 숨기지 않고 대범하게 인정했다.“맞아요.”주위 선생들과 학생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한 번 지켜보자.”또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북성제일고 학생들도 성연에 대해 아주 궁금해했다.“저 여자애가 바로 정우석을 이긴 애야? 정말 대단해. 우리 학교 ‘정 공신’을 패장으로 만들어 버리다니.”“너희는 모두 저 애 실력에 관심 있는 모양인데, 나는, 저 애 얼굴에 더 관심이 가. 저 여자애 정말 예쁘지 않아?”“그런데 진짜 완전 생얼이야. 요즘 생얼로 저 정도 예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맞아, 맞아. 우리 학교 퀸카보다 훨씬 예뻐.”학생들이 뒤에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좀 시끄럽군.’북성제일고의 선생이 들으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자신들의 학교가 얼마나 좁은 새장 같았는지…….‘참 대단해.’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세는 높이며 자신의 위세를 낮출 수는 없는 법.져도 기분 좋게 질 수 있다면, 자신들 북성제일고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교무주임이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호통쳤다.“얼른 자기 반으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