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학교가 파한 성연은 집에 돌아왔는데 집사가 보이지 않자 한마디 물었다.“집사님은요?”평소 자기가 들어올 때면 집사가 나와서 맞이하는데 오늘은 집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째 이상했다.무진이 설명했다.“집사는 집에 일이 있어서 돌아갔어.”성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무진을 방으로 보낸 후 늦은 시각에 손건호 또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요리사도 저녁 준비를 마치고 떠났다.엠파이어 하우스에는 성연과 무진 두 사람만 남아 있어 왠지 좀 썰렁했다.성연과 무진은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저녁을 다 먹은 후, 성연은 평소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았다.성연은 자기 혼자만 무진과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이 성연을 좀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뭔가 이상해.’그러나 무진의 생각은 달랐다. 모처럼 성연과 함께 있는데 다른 사람의 방해가 없었다.무진은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성연 앞에 가서 먼저 말했다.“영화 보러 갈래?”“어디서 보게요?” 성연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위층에 작은 홈 시어터가 있어. 괜찮겠지만 한번 가 볼래?”무진이 물었다.홈 시어터를 설치한 이래 무진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그러나 지금은 집에 성연이 함께 있으니 같이 보고 싶었다.“그래요.” 성연도 무료한 기분이라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듯했다.그러면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을 테니까.성연이 무진의 뒤를 쫓아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전에는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었다. 2층의 경관은 마치 신세계를 연 것 같았다.2층은 거의 대부분이 헬스 기구들이었다. 그리고 다실에는 뭐든 갖추어져 있어 그야말로 호화로웠다.성연은 마침내 강씨 집안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이 층의 시설만 해도 일반 가정에서 몇 평생 먹고 살 정도였다.성연을 보니 꽤 흥미가 이는 것 같자 자신도 따라서 웃었다.“이전에 네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어. 좋아하면 앞으로 일이 없을 때 혼자
영화 후반부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비몽사몽 간에 무슨 줄거리인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겨우 영화 한 편을 보고 홈 시어터를 나오는 성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시간이 꽤 오래 지났음에도 얼굴의 열기가 내려가지 않았다.조금 전의 그 장면이 자꾸 생각이 났다.방 입구에 도착해서 무진이 막 들어가려고 하자 성연이 밀어냈다.“오늘 밤 우리 방을 나누어서 따로 자요. 무진 씨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이런 식의 진전은 정말 성연을 당황하게 했다.그녀는 아직 무진을 어떻게 마주봐야 할지 잘 몰랐다.이건 자신이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강무진이라 한순간 마음이 좀 복잡했다.미스터리 영화에 왜 그런 장면을 집어넣어서 강무진이 기회를 틈탈 수 있게 했는지.만약 계속 무진과 함께 있게 된다면 오늘 밤 자신은 그 자리에서 다 타버리지 않을까 의심스러웠다.무진은 성연의 반응이 이처럼 거셀 줄은 생각 못했다.그렇게 서두르지 않을 걸 그랬다.무진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눈을 축 늘어뜨렸다.“너 없이는 잠을 못 잘 거야.”무진이 가진 병의 특수성을 알고 있는 성연.자신이 없으면 오늘 밤 그는 날이 밝을 때까지 안 자고 일을 할 것이다.무진의 지친 모습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잠시 제자리에 서 있던 성연은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 가까스로 한 걸음 비켜섰다.“그럼 들어와요.”무진이 입고리를 올리며 뜻대로 방안으로 들어갔다.사실 성연이 여전히 자신을 아낀다는 것을 알았다.두 사람이 방에 들어가자 성연이 옷장을 열고 안에서 이불 한 채를 내렸다.이불이 너무 무거워서 성연은 휘청거릴 뻔했다.성연이 넘어질까 봐 무진이 걸어가서 이불 반대편을 받쳐 주었다.“추워?” 지금은 분명히 한여름이었다.성연이 이불을 옮겨 침대 중앙에 놓았다.이 침대는 무척이나 커서 이불을 하나 놓아도 공간이 많았다.하지만 이불은 두 개의 공간을 확실하게 나누고 있었다.이불을 내려 놓은 성연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무진을 주시했다.“오늘 저녁에
다음 날, 성연이 눈을 떴다.그녀는 살짝 몸을 움직이다가 속박된 자신을 느꼈다.눈을 뜨자마자 또 다시 무진과 함께 누워 있는 자신을 보았다.게다가 무진도 자신을 꼭 안고 있었다.성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즉시 무진의 무거운 팔을 확 벌린 채 화가 나서 물었다.“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무진이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에 네가 안겨온 거야. 네가 선을 넘었어.”어떤 양심도 없는 여자애가 깨어나면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줄 알았다.성연을 보니 역시 정말이었다.그녀는 원래 이불 왼쪽에 있었고 무진은 오른쪽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이미 오른쪽으로 넘어온 상황.저긴 무진의 자리였다.성연도 좀 어색했다.‘어째서 이리 변변치 않은 걸까? 강무진 쪽으로 넘어가다니.’어쩔 줄 몰라 하는 성연의 모습에 무진은 골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그는 이 기회를 틈타 성연을 몇 마디 농을 던졌다.“네가 이렇게 나에게 달라붙을 줄 몰랐어. 앞으로 힘들겠지만 네 쿠션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성연도 마음속으로 자신이 싫었다.‘어떻게 강무진에게 자신을 놀릴 기회를 줄 수 있지?’그녀의 얼굴이 곧 빨개지기 시작했다.부끄럽고 짜증났다.그러나 곧 침착해진 성연이 말했다.“흥, 그래 봤자 베개 기능밖에 없어요.”지금 성연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그녀는 무진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만 느꼈다.자신도 틀림없이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무진의 입을 막기만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무진이 위한한 눈빛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다른 기능도 시험해 볼래?”‘자신은 그녀 곁에서 그토록 자제했는데, 저 애는 분명 자신을 베개로만 여기는 게 분명했다.’그녀가 느껴보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진정한 남자로 보지 않을 것이다.성연의 귀가 계속 뜨거워졌다. 몸도 약간 나른한 듯했다.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무진은 막 잠에서 깨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쉬어 있어 약간 허스키한 느낌을 준다. 그 음성이
아침식사 후에 성연이 학교로 갔다.모처럼 졸지 않아서 어젯밤에 일찍 잤는데 지금은 별로 졸리지 않았다.그리고 마침 월례 시험이었다.이윤하는 모두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그리고는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시험을 열심히 보길 바랍니다. 어떤 요행심리도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시험을 치르든 성적은 여러분들의 것이야. 부정행위를 하지 마세요. 부정행위를 하지 마. 만약 내가 너희들이 부정행위를 하는 것을 발견하면 바로 시험 자격을 폐지한다. 됐어. 어서 문제들 풀어.”시험지가 배부되자 모두들 펜을 들고 답안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결국 두 문제를 보고 나니 모두들 어리둥절해졌다.이번 문제 때문에 너무 어려웠다.어떤 문제는 초고난도의 것으로 평소 배운 적이 없는 것이었다.주위에서 학생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와, 이 문제 사람이 낸 거야? 난 글자는 보이는데 연속된 글자는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어.”“그러게, 이건 정말 우리의 살길을 막는 거 아니야? 선생님, 저희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정말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이건 북성남고에서 출제되었던 문제 중에서 제일 어려운 거죠? 인생에 회의감이 들 정도야. 친구가 없을 정도로 어려워.”평소에 반에서 성적이 좋은 몇몇 학우들도 문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이 문제는 자신들이 푼다 해도 겨우 4,50% 정도밖에 풀 수 없었다.다른 것은 아예 엄두가 나지 않았다.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성연도 고개를 숙인 채 문제를 보았다이번 달 시험에 출제된 문제는 확실히 이전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윤하가 교탁을 두드렸다.“조용히 해, 모두 조용히.”어떤 학우들은 원망의 말을 하고 싶은 눈치다.그러나 이윤하의 위엄에 눌려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교실 안에는 점차 소리가 사그라들며 조용해졌다.아이들이 모두 조용해지는 것을 본 이윤하는 비로소 이 상황을 설명했다.“올림피아드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월례 시험 문제는 주로 너희들의
시험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성연은 40분에 걸쳐 문제를 풀고 바로 답안지를 제출했다.이윤하는 성연이 답안을 다 풀었는지 염려되었다. 묻고 싶었지만 또 빈틈없는 학생을 기분 나쁘게 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설사 성연이 지금 성적이 좋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성연의 성질은 그리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그녀의 얼굴이 바로 다음 순간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이윤하는 좀 겁이 났다.가까스로 시험을 마쳤다.이윤하는 최대한 빨리 교무실로 돌아와 성연의 시험지를 뒤져보았다.그리고 그녀는 성연이 문제를 절반쯤 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성연은 모두 가장 도전적인 문제만 골라 풀었다.그리고 모두 정답이었다.앞의 것들은 모두 기초 문제였다.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다니.저 간단한 것들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을 테고.아마도 성연은 그 간단한 것들을 대답하는 것은 그녀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래서 생략하고 풀지 않았을 것이다.이윤하는 흥분했다. 성연은 정말 가능성이 무궁한 인재였다.성연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는 건 불가능했다.자신이 전 과정 내내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니까.교실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있어도 성연이 혼자만 풀었다. 그러니 부정행위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할 수밖에.성연이 지난번 토론대회에서 이긴 후 이윤하는 더 이상 성연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정말 대단한 아이야.’수업이 끝나자 선생님들은 모두 교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모처럼 이윤하의 저런 표정을 보았다.주위의 몇몇 선생님들이 보더니 호기심에 다가왔다.“이 선생님, 무엇을 보고 계세요?” 한 선생이 물었다.이윤하는 숨기지 않고 성연의 시험지를 직접 꺼내 보여주었다.시험지가 아주 깨끗했다.답안은 정확할 뿐만 아니라 매우 간결하고 글씨체가 예쁘다.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같은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은 모두 수학 담당이었다.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던 선생들이 성연의 시험지를 바로 칭찬했
이윤하는 처음으로 자신의 입이 가벼운 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성연이 문제를 풀려 한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그래서 한가한 틈을 타서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성연이 올림피아드에 참가할 수 있도록 말이다.이윤하의 입으로만 말한다면 성연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중간에서 도와준다면 성연이 체면을 좀 세워줄 수 있지 않을까?선생님들이 서로 쳐다보더니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이 선생님, 우리가 당신을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에요. 송성연 학생은 당신도 잘 알잖아요? 스스로 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 말을 들을 수 있겠어요?”“바로 그거예요, 이 선생님. 이 일은 우리가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요.”“만약 송성연이 기분 나빠서 우리 과목 시험도 보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선생님들은 분명히 이 일을 돕고 싶어하지 않았다.비록 성연이 도리를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자신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은 것.이윤하는 이를 악물었다.“유 선생님, 지난번에 제 캐비닛 속의 커피 원두를 꽤 마음에 들어하셨죠? 도와주시면 선생님께 원두 다 드릴게요.”호명된 유 선생님은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정말이요?”유 선생님이 다른 건 좋아하는 게 없지만 유독 커피를 좋아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이윤하는 바로 지금 류 선생님의 취향을 저격한 발언을 한 것이다.“정말이예요.” 이윤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제가 꼭 도와드릴게요.” 유 선생님은 아주 흔쾌히 대답하셨다.뒤에 있는 몇 명 선생님들도 모두 이 기회를 틈타 이윤하를 홀랑 털어먹었다.평소에는 비교적 사나운 이윤하가 한턱 낼 기회는 거의 없었다.이번에 간신히 자신들에게 붙잡혔으니 당연히 이윤하의 출혈이 상당할 터였다.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동의했다.그래서 이후 며칠 동안 성연은 무릇 수업을 할 때마다 올림피아드에 참가하라는 선생님들의 의미심장한 권유를 들어야만 했다.어떤 선생님들은 비교적 완곡하게
한 무더기의 교과서가 겹쳐 올려졌고 모두 두껍기만 했다.이윤하가 문제집을 주며 성연에게 말했다.“돌아가서 문제들을 풀다가 모르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물어봐. 반 톡방이 있잖니? 거기에 나를 초대하면 돼. 서로 교류하기 편리하게 말이야.”성연은 이 문제집 더미를 보면서 머리가 다 커졌다.그녀는 즉시 후회가 되었다.“선생님, 아니면 그만둘래요. 다른 학우들을 참가시키면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만약 그녀가 이 문제들을 다 풀게 한다면 그녀는 더 할 게 없을 것이다.성연이 승낙한 이상 후회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녀는 즉시 말했다.“송성연, 선생님은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을 얕보지 마. 이 올림피아드 대회의 명단에 네가 빠지면 안돼.”말이 끝나자 이윤하는 즉시 성연에게 반응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은 한 무더기의 문제집들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손으로 가늠해 보면, 이 문제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엠파이어 하우스에 도착했다.무진이 교과서로 뒤덮인 성연을 보고 다소 놀랐다.“무슨 교과서가 그렇게 많아? 학교에서 새로 사용하는 거야?”말하면서 그는 성연에게서 문제집들을 받았다.그렇게 무거워서 그는 성연의 손을 눌러 부러뜨릴까 봐 걱정했다.받은 후에 그는 표지에 적인 성연의 글씨체를 보았다.뜻밖에도 모두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성연도 사양하지 않고 바로 그 무더기를 무진에 넘겨버렸다.어차피 무진 같은 남자가 그까짓 것에 눌려 쓰러지지는 않을 테지.무진의 물음에 성연은 자신이 함정에 빠져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일을 말했다.선생님들의 계획이었던 셈이다.매일같이 부지런히 권하는 말에 짜증이 나서 승낙해 버렸다는 거였다.다 들은 후 무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 선생님 성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괜찮아. 만약 대회 성적이 좋으면 대학에 수시 지원할 수도 있어. 이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야.”성연이 입을 삐죽거렸다
비교적 풀기 쉬운 문제들은 거의 1분 만에 답을 적었다.후반부에 가서 한 문제를 마주한 성연이 다소 고민을 했다.연이어 몇 번을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고 이 문제에 막혀 한참을 시간을 끌었다.성연이 막 포기하려던 차에 옆에 앉아 있던 무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문제는 방법을 한 번 바꿔 봐. 꼭 통상적인 방법으로만 풀 필요는 없어.”그런 뒤에 무진이 그 방법을 말했다.성연이 돌아보니 무진의 눈은 여전히 서류에 꽂혀 있었다.성연의 눈이 온통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무진 씨는 동시에 두 가지가 가능해요?”무진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꽤 간단한 문제니까.”그저 한 번 보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진의 머릿속에 바로 정답이 떠올랐다.성연은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해왔었다.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공신은 무슨 공신이야. 진짜 공신은 바로 앞의 이 분구만.’두어 마디 대화를 나눈 성연이 무진이 제시한 단서를 따라 시도했더니 막혔던 문제가 바로 풀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성연이 몇 문제를 연이어 다시 물었다.아예 무진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이 몇 문제도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줘요.”성연이 문제들을 내미니 당연히 무진은 기꺼운 마음으로 설명했다.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해 성연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물었다.“내가 널 가르쳐주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이득이 있어야만 가르쳐 줄 거예요?” 성연이 눈썹을 추켜세웠다.강무진, 진짜 욕심이 끝도 없는 것 같다.“물론. 공짜로 가르쳐 줄 순 없지.” 무진이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성연이 일부러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됐어요. 내일 학교에 가서 직접 선생님께 여쭤보면 돼요.”말하는 동시에 성연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미간을 살짝 좁힌 무진이 불러 세웠다.“잠깐, 농담이야. 앉아, 가르쳐 줄게.”이번에는 성연이 무진을 잡고 놀렸다.“진짜요? 이득이 없어도?” 일부러 말을 길게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
병원의 초음파검사실.한 여의사가 화면을 보고 있었고, 성연도 좀 긴장된 표정이었다.“축하해요, 송성연 씨. 아주 건강한 쌍둥이예요!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네요.”“우리 병원에 임산부의 지식 수첩이 있으니까 가져가서 많이 보면서 알아두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실 생각이라면,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면 됩니다.”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의사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은 정말 놀랍고 기뻤다. ‘처음부터 바로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하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어.’‘시간을 따져 보니 무진 씨하고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한 게 분명해.’‘한 번에 임신이 되다니! 무진 씨의 능력도 정말 대단한데!’성연은 또 의사와 의견을 나누었다. 의사인 자신이 난치병에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지식이 적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왔을 때, 성연의 마음은 날아가는 듯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할머니와 고모에게 소식을 알려 드리면 기뻐하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그리고 무진 씨는 또 어떤 반응일까?’서한기는 성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궁금했지만, 임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보스, 의사가 중병으로 오진해서 공연히 놀라셨습니까? 왜 이렇게 기뻐하세요?”성연은 어이가 없어 바로 서한기를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좀 좋은 생각 좀 할 수 없어?”서한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을 잡지 못했다.“이제 돌아갈까요?”“응, 돌아가. 넌 이제 진성 조직의 대장이니까 앞장서서 무진 씨 근심을 덜어줘야 해. 알겠지?” 성연이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두말없이 승낙한 서한기는 성연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바로 손건호와 합류하였다. 두 사람은 요즘 그야말로 운성시를 샅샅이 뒤졌다. 어떤 고수가 비밀리에 연계진을 보호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그러나 연운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계속된 추적 조사에도 불구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