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더기의 교과서가 겹쳐 올려졌고 모두 두껍기만 했다.이윤하가 문제집을 주며 성연에게 말했다.“돌아가서 문제들을 풀다가 모르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물어봐. 반 톡방이 있잖니? 거기에 나를 초대하면 돼. 서로 교류하기 편리하게 말이야.”성연은 이 문제집 더미를 보면서 머리가 다 커졌다.그녀는 즉시 후회가 되었다.“선생님, 아니면 그만둘래요. 다른 학우들을 참가시키면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만약 그녀가 이 문제들을 다 풀게 한다면 그녀는 더 할 게 없을 것이다.성연이 승낙한 이상 후회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녀는 즉시 말했다.“송성연, 선생님은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을 얕보지 마. 이 올림피아드 대회의 명단에 네가 빠지면 안돼.”말이 끝나자 이윤하는 즉시 성연에게 반응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은 한 무더기의 문제집들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손으로 가늠해 보면, 이 문제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엠파이어 하우스에 도착했다.무진이 교과서로 뒤덮인 성연을 보고 다소 놀랐다.“무슨 교과서가 그렇게 많아? 학교에서 새로 사용하는 거야?”말하면서 그는 성연에게서 문제집들을 받았다.그렇게 무거워서 그는 성연의 손을 눌러 부러뜨릴까 봐 걱정했다.받은 후에 그는 표지에 적인 성연의 글씨체를 보았다.뜻밖에도 모두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성연도 사양하지 않고 바로 그 무더기를 무진에 넘겨버렸다.어차피 무진 같은 남자가 그까짓 것에 눌려 쓰러지지는 않을 테지.무진의 물음에 성연은 자신이 함정에 빠져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일을 말했다.선생님들의 계획이었던 셈이다.매일같이 부지런히 권하는 말에 짜증이 나서 승낙해 버렸다는 거였다.다 들은 후 무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 선생님 성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괜찮아. 만약 대회 성적이 좋으면 대학에 수시 지원할 수도 있어. 이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야.”성연이 입을 삐죽거렸다
비교적 풀기 쉬운 문제들은 거의 1분 만에 답을 적었다.후반부에 가서 한 문제를 마주한 성연이 다소 고민을 했다.연이어 몇 번을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고 이 문제에 막혀 한참을 시간을 끌었다.성연이 막 포기하려던 차에 옆에 앉아 있던 무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문제는 방법을 한 번 바꿔 봐. 꼭 통상적인 방법으로만 풀 필요는 없어.”그런 뒤에 무진이 그 방법을 말했다.성연이 돌아보니 무진의 눈은 여전히 서류에 꽂혀 있었다.성연의 눈이 온통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무진 씨는 동시에 두 가지가 가능해요?”무진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꽤 간단한 문제니까.”그저 한 번 보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진의 머릿속에 바로 정답이 떠올랐다.성연은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해왔었다.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공신은 무슨 공신이야. 진짜 공신은 바로 앞의 이 분구만.’두어 마디 대화를 나눈 성연이 무진이 제시한 단서를 따라 시도했더니 막혔던 문제가 바로 풀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성연이 몇 문제를 연이어 다시 물었다.아예 무진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이 몇 문제도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줘요.”성연이 문제들을 내미니 당연히 무진은 기꺼운 마음으로 설명했다.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해 성연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물었다.“내가 널 가르쳐주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이득이 있어야만 가르쳐 줄 거예요?” 성연이 눈썹을 추켜세웠다.강무진, 진짜 욕심이 끝도 없는 것 같다.“물론. 공짜로 가르쳐 줄 순 없지.” 무진이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성연이 일부러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됐어요. 내일 학교에 가서 직접 선생님께 여쭤보면 돼요.”말하는 동시에 성연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미간을 살짝 좁힌 무진이 불러 세웠다.“잠깐, 농담이야. 앉아, 가르쳐 줄게.”이번에는 성연이 무진을 잡고 놀렸다.“진짜요? 이득이 없어도?” 일부러 말을 길게
저녁 시간 잠들기 전까지 문제를 풀던 성연은 아직 여운이 남았지만 내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문제집을 덮었다.무진 역시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다시 물어보기도 미안해서 문제집을 가방에 넣었다.첫날 저녁에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이튿날, 교실에 막 들어선 성연을 찾아온 이윤하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성연아, 풀지 못한 문제는 없었어?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선생님에게 말해, 도와줄 테니까.”이번에 자신이 성연에게 건네준 문제집의 몇 문제는 아주 어려웠다.그래서 성연이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길 기대했다.그러면 성연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지난 번 토론 대회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성연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다른 학생을 찾으려고 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니까.책임감을 가진 성연이 선생님들을 난처하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걸 이윤하는 잘 알았다.그와 동시에 문제 푸는 걸 도와주며 성연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두 사람 사이의 오해를 풀면서.이건 이윤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성연이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성연의 대답을 들은 이윤하가 미간을 찡그리며 내심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였다.“성연아, 너 집에 가서 문제를 풀어보지 않았니?”일부 문제들은 성연의 성적이 아무리 좋다 해도 몇몇 해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풀 수가 없었다.바로 수학 올림피아드의 상투적인 해법.성연이 이전에 올림피아드를 접해본 적이 없는 한 풀 수가 없을 터.그러니 성연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건 오직 한 가지를 의미할 것이다.그것은 성연이 문제를 풀지 않았다는 것.성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풀었는데 확인해 보시겠어요?”말하면서 성연이 가방을 열고 문제집을 꺼내 이윤하에게 건넸다.이윤하는 반신반의하며 문제집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모두 살펴본 이윤하는 완전히 얼이 나간 것 같았다.성연이 모두 맞혔기 때문이다.수학 올림피아드 경향에 맞춘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지만 내심 가졌던 의문이 말끔히 해소된 이윤하가 성연을 칭찬했다.“괜찮은 가정 교사가 있는 것 같구나.”이윤하가 볼 때, 이 필체는 성연의 것이 분명했다. 설령 본인이 푼 건 절반밖에 안된다 해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송성연은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 초보자였으니까.성연은 이윤하의 표현이 상당히 재미있게 들렸다. 확실히 무진은 꽤 괜찮은 ‘가정교사'였다.무진이 이 호칭을 어떻게 느낄지 궁금했다.이윤하가 바로 앞에 있음을 의식한 성연은 얼굴에 아무런 표도 내지 않았다.그저 이윤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아주 괜찮은 가정교사에요.”이윤하가 성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열심히 해. 상금과 우승이 네 가까이 있어, 힘내.”성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고맙습니다, 선생님. 최선을 다할게요.”저녁에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온 성연은 저녁 식사 후 문제를 들고 무진 가까이 다가갔다.어쩐 일인지 아침에 이윤하가 자신에게 말한 ‘가정교사’라는 호칭이 머리에 떠올랐다.무진을 바라보던 성연이 가볍게 기침을 하며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무진을 불렀다. 호칭을 ‘선생님’으로 바꾸어서. “선생님, 이 문제를 잘 모르겠는데 가르쳐 줄 수 있어요?”무진의 눈동자가 짙어졌다.“뭐라고 불렀어?”아직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성연.무진이 왜 다시 물었는지 그저 알 수가 없었다.‘방금 목소리 꽤 크지 않았나? 무진 씨가 제대로 못 들었을 리가 없을 텐데?’열심히 자신을 지도하려는 무진을 보며 체면을 좀 세워주고 싶었던 성연이 조금 전의 호칭으로 다시 한번 불렀다. “선생님.”무진이 바로 고개를 내려 성연의 입술을 덮었다.영문을 모른 채 피하려 발버둥치려던 성연을 무진이 단단히 붙들었다.성연은 점점 무진이 주는 따뜻한 감각에 빠져들어 갔다.성연이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고 조용하자 무진은 성연의 어깨를 붙들었던 손을 내려 허리를 당겨 안았다.한참이 지난 후 무진이 손을 풀
옆에 서 있던 손건호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한밤중에 이 무슨 닭 털 날리는 애정행각인지.그야말로 자신을 감정도 없는 로봇정도로 여기는 것일까?수하 직원들은 인권을 가질 자격도 없단 말인가.솔로의 설움을 참으며 또 자기 보스를 위해 누가 오나 안 오나 망까지 봐야 하는 신세라니.손건호는 자신이야 말로 비극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정말 비참하기 그지없는 자신이었다!그곳에서 즐거움을 느낀 후, 성연은 자신이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거의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는 문제를 풀었다.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가며 느끼는 그 성취감은 다른 어떤 느낌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것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여기며 화제에 올렸다.예전의 교실에서는 성연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그러나 이제 창가를 지나갈 때면 책상 위의 놓인 자료 위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성연을 보게 되었다.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이윤하와 송성연의 부드러워진 관계는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더욱 토론을 받다.어떤 아이들은 아예 게시판에다 토론방을 만들었다.이름하여 ‘이윤하 선생님과 송성연의 애증에 찬 세월'이었다.아래에 댓글을 단 아이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일이 커지든 말든 뭐든 마음대로 떠들어댔다.[이윤하가 송성연에게 미혼탕을 먹인 거 아냐? 안 그러면 송성연이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열심일 수가 있어? 전혀 송성연답지 않게.][안 자면 안 자는 거지, 너무 딱 잘라 그러지 마라. 너희들 못 봤어? 열심히 문제를 푸는 송성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늘이야 말로 송성연의 외모가 더 없이 빛난 날이야.][설마 이윤하가 송성연의 무슨 약점 같은 걸 잡고 있는 건 아니겠지? 송성연을 협박하려고 말이야. 그러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이윤하가 어떻게 송성연의 약점을 잡을 수 있겠어? 있었다면 이전에 진즉 꺼냈겠지. 너희들 좀 더 좋은 생각은 할 수 없어? 송성연이 스스로 열심히 한다든지, 학교의 영예를
정우석은 혼자가 아니라 동창 몇 명과 함께 찾아왔다.정우석의 친구들은 성연을 본 후 그에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정우석, 왜 소개 안 해 줘?”성연의 예쁜 얼굴에 소년들의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정우석의 친구들이 성연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꽤나 거침이 없었다.다만 그 속에 악의가 섞여 있지 않아서인지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정우석이 말했다.“여긴 지난번에 내가 너희들에게 말했던 북성남고의 천재, 내가 패했던.”정우석의 친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응했다.“네가 바로 정우석을 이긴 당사자구나. 정말 얘기 많이 들었어.”성연도 대답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리고 순간 좀 놀랐던 성연이 정우석을 보며 물었다.“그런데 너 왜 여기 있어?”어쨌든 같은 시합에서 경쟁했던 상대였다.성연 또한 인사를 안 하면 좋지 않을 듯해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북성제일고는 북성남고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을 텐데?’정우석이 설명했다.“우리는 이쪽에 일이 좀 있어서 지나던 길이었는데 너를 우연히 볼 수 있는 행운을 빌었지. 네가 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 너에게 인사하려고 온 거야. 다음에 만나면 좀 인정을 베풀어달라고 말이지.”지난번에 성연에게 패한 정우석은 돌아가서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강자에게 패배한 건 결코 창피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는 깨끗이 승복했다.하지만 다시 기회가 있고 능력이 된다면정말 성연을 한 번 이기고 싶었다.‘송성연 같은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지?’정우석의 마음속 생각을 알지 못한 성연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건 안 돼지, 우린 적인데.”이 방면에서는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성연은 자신이 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니까.예상했던 대답에 정우석이 픽, 하고 웃었다.이어 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송성연, 같이 저녁 안 먹을래?”지난번에 성연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비록 채팅방을 만들었지만 귀찮게 할까 봐 자기 분수를 지키며
성연이 떠난 후 근처에 있던 정우석의 친구들이 소란을 피우며 놀려 댔다.“에이, 정우석, 너 설마 반한 건 아니지?”평소 정우석의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북성제일고에서도 정우석을 추종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그러나 정우석은 누구에게도 송성연을 대하듯이 하지는 않았다.정우석 또한 부인하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뭐 안될 거 있어? 송성연은 대단한 아이야.”겉만 번지르르해서는 정우석을 매혹시키지 못할 터였다.정우석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그 자신과 비슷한 실력이었다. 아니 송성연이 그 자신보다 더 뛰어났다.이런 사람을 보며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아이들이 놀려댔다.“그럼 우리 북성제일고의 퀸이 정말 슬퍼하겠네.”북성제일고의 퀸은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정우석을 좋아하고 있었다.매번 정우석과 좀 더 가까워지려 애를 썼다.무슨 수이든 가리지 않고 썼다.그러나 정우석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물론 성연의 생김새는 북성제일고의 퀸보다 못하지 않았다.또 정우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지 않나.정우석이 좋아하는 것도 사실 이해가 될 정도였다.모두들 친구들이어서 정우석의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그러나 친구들의 말에 정우석은 동의하지 않았다.‘퀸은 무슨 퀸, 내 보기에 소위 퀸이란 아이는 성연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데.’성연은 정우석과 친구들이 자신을 화제로 삼은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기다리던 차에 오른 성연은 차 안에 무진이 타고 있음을 발견했다.성연은 순간 속으로 놀랐다. 일찍도 아니고 늦지도 않았건만 꼭 이때를 골라서?‘너무 공교로운데?’성연이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무진 씨는 왜 또 왔어요?”‘자신도 참 지지리 재수가 없지. 말 몇 마디 할 때마다 무진에게 걸리고 마니.’‘자신 같이 재수 없는 운은 어디도 없을 걸?’강무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당연히 너를 데리러 왔지. 그런데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됐군.”성연의 주변에 얼쩡거리는 것들이 정말 너무
서한기가 이런 자신을 보면 뭐라고 투덜거릴지 모르겠다.‘우리 보스 자존심도 없어? 왜 이렇게 나약해?’라고 하지 않을까?예전에 성연은 무슨 일이든 늘 과감하게 처리했다.이처럼 우유부단하게 군 적이 없었다.집에 돌아오니 이미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얼른 밥을 먹은 성연은 바로 게임을 하며 놀았다.너무 문제만 풀다 보면 책벌레가 될까 더 이상 문제집을 보지 않았다.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무척 즐겁긴 하지만 학습과 휴식의 균형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나.무진은 성연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처리해야 할 서류들 때문에 성연과 함께 게임을 어울릴 수가 없었다.바로 옆에서 서류를 넘기며 때때로 성연이 내는 음성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하게 여겨졌다.한창 놀다가 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 쪽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줄곧 성연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무진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내가 본업인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연이 무진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네가 즐거운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이 질문을 나에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진이 성연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성연이 헤 하는 웃음소리로 무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음을 표현했다.늦은 시각, 성연이 목욕하러 가며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무진은 아직도 소파에 앉아서 남은 서류들을 처리하는 중이다.그때 갑작스레 핸드폰 벨 음이 들렸다.‘이 벨 소리는 성연의 것인데?’흘깃 한 번 쳐다본 무진은 받지 않았다. 성연이 나오면 전화 왔었다고 알려줄 생각이었다.핸드폰은 상당히 사적인 물건이다.무진이 성연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 까닭은 성연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이다.그러나 어쩌다 발신 번호를 흘깃 보았을 뿐이지만 번호가 상당히 낯익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번호가 분명했다.무진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앞뒤로 넘기며 연락처를 뒤적였다.무진의 개인 핸드폰에는 연락처가 많지 않았다.가까운 사람들만 무진의 개인 번호를 가질 수 있었으니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