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떠난 후 근처에 있던 정우석의 친구들이 소란을 피우며 놀려 댔다.“에이, 정우석, 너 설마 반한 건 아니지?”평소 정우석의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북성제일고에서도 정우석을 추종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그러나 정우석은 누구에게도 송성연을 대하듯이 하지는 않았다.정우석 또한 부인하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뭐 안될 거 있어? 송성연은 대단한 아이야.”겉만 번지르르해서는 정우석을 매혹시키지 못할 터였다.정우석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그 자신과 비슷한 실력이었다. 아니 송성연이 그 자신보다 더 뛰어났다.이런 사람을 보며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아이들이 놀려댔다.“그럼 우리 북성제일고의 퀸이 정말 슬퍼하겠네.”북성제일고의 퀸은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정우석을 좋아하고 있었다.매번 정우석과 좀 더 가까워지려 애를 썼다.무슨 수이든 가리지 않고 썼다.그러나 정우석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물론 성연의 생김새는 북성제일고의 퀸보다 못하지 않았다.또 정우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지 않나.정우석이 좋아하는 것도 사실 이해가 될 정도였다.모두들 친구들이어서 정우석의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그러나 친구들의 말에 정우석은 동의하지 않았다.‘퀸은 무슨 퀸, 내 보기에 소위 퀸이란 아이는 성연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데.’성연은 정우석과 친구들이 자신을 화제로 삼은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기다리던 차에 오른 성연은 차 안에 무진이 타고 있음을 발견했다.성연은 순간 속으로 놀랐다. 일찍도 아니고 늦지도 않았건만 꼭 이때를 골라서?‘너무 공교로운데?’성연이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무진 씨는 왜 또 왔어요?”‘자신도 참 지지리 재수가 없지. 말 몇 마디 할 때마다 무진에게 걸리고 마니.’‘자신 같이 재수 없는 운은 어디도 없을 걸?’강무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당연히 너를 데리러 왔지. 그런데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됐군.”성연의 주변에 얼쩡거리는 것들이 정말 너무
서한기가 이런 자신을 보면 뭐라고 투덜거릴지 모르겠다.‘우리 보스 자존심도 없어? 왜 이렇게 나약해?’라고 하지 않을까?예전에 성연은 무슨 일이든 늘 과감하게 처리했다.이처럼 우유부단하게 군 적이 없었다.집에 돌아오니 이미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얼른 밥을 먹은 성연은 바로 게임을 하며 놀았다.너무 문제만 풀다 보면 책벌레가 될까 더 이상 문제집을 보지 않았다.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무척 즐겁긴 하지만 학습과 휴식의 균형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나.무진은 성연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처리해야 할 서류들 때문에 성연과 함께 게임을 어울릴 수가 없었다.바로 옆에서 서류를 넘기며 때때로 성연이 내는 음성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하게 여겨졌다.한창 놀다가 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 쪽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줄곧 성연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무진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내가 본업인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연이 무진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네가 즐거운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이 질문을 나에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진이 성연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성연이 헤 하는 웃음소리로 무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음을 표현했다.늦은 시각, 성연이 목욕하러 가며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무진은 아직도 소파에 앉아서 남은 서류들을 처리하는 중이다.그때 갑작스레 핸드폰 벨 음이 들렸다.‘이 벨 소리는 성연의 것인데?’흘깃 한 번 쳐다본 무진은 받지 않았다. 성연이 나오면 전화 왔었다고 알려줄 생각이었다.핸드폰은 상당히 사적인 물건이다.무진이 성연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 까닭은 성연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이다.그러나 어쩌다 발신 번호를 흘깃 보았을 뿐이지만 번호가 상당히 낯익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번호가 분명했다.무진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앞뒤로 넘기며 연락처를 뒤적였다.무진의 개인 핸드폰에는 연락처가 많지 않았다.가까운 사람들만 무진의 개인 번호를 가질 수 있었으니
성연이 샤워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니 무진이 보이지 않았다.의아한 마음에 비서 손건호에게 물었다.“무진 씨는요?”손건호가 대답했다.“보스는 사모님이 욕실로 가셨을 때 전화를 받으러 서재로 가셨습니다.”대답하던 손건호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알려줬다.“사모님, 조금 전에 전화가 오는 것 같았습니다.” 성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뜻을 나타냈다.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발신자를 확인한 성연이 내심 놀랐다.연씨 집안에서 온 전화였다.최근 연수호 어르신의 병세가 많이 호전됨에 따라 자연 연씨 집안에 가는 일도 줄었다.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될 정도로.그런데 연경훈이 자신에게 전화를 해 온 것이다.성연은 다행히도 무진이 서재로 올라가 연경훈에게 전화가 온 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성연의 휴대폰에 미 착신 상태로 표시되어 있으니 분명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뜻.연씨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걱정스러웠다.그래서 문 밖으로 나가 조용한 곳을 찾아 연경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경훈은 마치 핸드폰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받았다. 하지만 다소 원망이 담긴 음성이었다.“고 선생님, 조금 전에 뭐 하느라 그렇게 오래도록 전화를 안 받았어요?”“씻으러 가면서 핸드폰을 두고 갔어요. 무슨 일이에요? 왜 내가 당신에게 그런 것까지 보고해야 하는데요?” 성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전화를 받자마자 연경훈이 한 첫 마디가 이런 말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성연이다.“아니, 아니, 당신한테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해서 걱정했어요.” 여자들과 많이 어울렸던 연경훈은 입을 다물지 않고 재빨리 부드럽게 말을 돌렸다.연경훈의 번지르르한 말은 무시한 채 성연이 바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연경훈의 말투도 좀 진지해졌다.“할아버지께서 약을 다 드셨는데 괜찮을까요?”연 어르신의 병세는 모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이제까지 복용한 약들은 모두 성연이 직접 조제한 것들이었다.약이 떨어지자 연씨 일가족은 당황스
성연은 연경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물 한잔을 따라서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바로 이때 무진이 나오더니 손건호를 슬쩍 쳐다보았다.손건호는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그저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방으로 돌아온 무진은 전화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다.이튿날, 성연은 학교에 휴가 신청원을 내고 연씨 저택을 찾았다.연경훈이 거실에서 이미 성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성연은 올 때 당연히 그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하지 않았다.그러나 성연이 오늘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집에서 계속 기다렸던 것이다.성연을 본 연경훈이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났다.아주 친절한 태도로 성연을 맞이했다. “고 선생님, 왔어요?”변장을 한 성연의 얼굴은 결코 예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상대적으로 좀 평범하다고 할까.적어도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봤던 연경훈이라면 눈에 차지 않을 터였다.하지만 연경훈은 절대 일시적인 흥미로 성연에게 구애하는 것이 아니었다.성연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하고 또 알고 싶게 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성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주 진지했다.처음엔 업신여겼으나 할아버지 연수호를 세심하게 돌보는 성연의 정성과 능력을 직접 보면서 조금씩 빠져든 게 분명했다.별 다른 표정이 없는 성연의 얼굴은 무척 담담해 보였다.“저 왔어요.”“아, 뭐 좀 먹었어요? 주방에 먹을 것 좀 준비해 달라고 할까요?” 손바닥을 치며 말하는 연경훈은 성연 앞에서 표현을 많이 하려 애썼다.성연에게 자신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이미 먹었어요. 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요. 어르신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줘요.”연경훈이 보이는 이상할 정도의 친절에 성연은 좀 불편함을 느꼈다.그 자리에서 계속 연경훈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느낌이 좀 이상했다.“알았어요. 바로 할아버지께 안내할 게요.” 거리를 두려는 듯한 성연의 태도에 실망한 연경훈.
연경훈은 계속 성연의 옆을 지키며 칭찬했다. 듣기 좋은 말들만 연이어 늘어놓았다.“고 선생님, 당신 의술이 정말 대단하네요. 할아버지가 회복이 아주 빠르세요. 지금은 혼자서 화원 산책도 하실 수 있을 정도세요.”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연의 의술만큼은 절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이전에 많은 의사들이 와서 할아버지의 다리를 진찰했었다.대부분은 고개를 흔들며 탄식만 했다.할아버지 스스로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단념했던 터였다. 그런데 지금 성연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 걷게 된 것이다.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사부님이 자신에게 맡긴 일이었다. 만약 이조차 제대로 못한다면 사부님의 제자로 부끄럽지 않겠나.어쨌든 사부님을 가리키는 ‘신의’라는 칭호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었다.조심스럽게 성연을 쳐다보던 연경훈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점심 먹고 가시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한동안 고 선생님을 보지 못해서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요. 그냥 보내면 어머니가 무척 섭섭해할 겁니다.”성연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연경훈이 계속 말했다.“밥을 먹은 후에 내가 집 근처 구경하러 데리고 갈게요. 부근의 풍경이 아주 좋거든요. 고 선생님은 평소 많이 바쁘죠? 오늘 시간을 내서 몸도 마음도 좀 가볍게 풀어주세요. 사람은요, 자신을 역시 너무 팽팽하게 조여도 안돼요.”성연은 연경훈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이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연경훈이 자신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걸 알면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괜히 희망을 주어 그가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도록.성연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오후에 일이 있어서 같이 나갈 수 없겠네요. 호의에 감사합니다.”연경훈의 얼굴이 바로 축 늘어졌다.매번 거절당할 때마다 점점 면역이 되어가는 자신을 느꼈다.억지로 미소를 지은 연경훈이 대답했다.“괜찮아요. 고 선생님처럼 의술이 뛰어난 분은 바빠서 한가로이 돌아다닐 시간도 없을 텐데. 내 생각이 짧았어요.”성연이 한숨을 쉬며
순간 성연의 심장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무진의 말속에 뼈가 들어 있는 듯했다.하지만 연씨 집안에서는 어떤 내색도 보일 수 없었다.슬쩍 손을 꽉 맞잡은 채 억지로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신가요?”무진이 직접 찾아온 뜻을 밝혔다.“그동안 제 할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잘 회복되고 있는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 의술이 뛰어난 고 선생님이 할머님을 봐 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리러 왔습니다.”무의식적으로 성연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왔다.“요즘 좀 바쁩니다. 일이 많아서 아마 몸을 빼기 힘들 것 같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강 대표님.”어쨌든 무진은 오랜 시간 자신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대며 지낸 사람이 아닌가.자신의 생활 습관과 행동들에 익숙할 게 분명했다.더군다나 안금여라면 더 잘 알 것이다.또 할머니 앞에서 언제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을까.강씨 집안은 갈 수가 없었다.그리고 안금여의 건강은 자신이 늘 살피고 있었다.문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고 선생님, 할머님은 제 소중한 가족입니다. 나는 할머님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할머님을 봐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무진이 재차 설득했다.눈썹을 찌푸린 성연이 또 다시 완곡하게 거절했다.“할머님의 신체는, 어떤 의료기기든 사용해서 검사해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가서 본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예요. 제가 볼 수 있는 건 다른 의사 선생님들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시간을 내기 어려워요.”강씨 집안에 갔다가 온전히 빠져나올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평소의 자신을 잘 알고 그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자신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단 말인가?“고 선생님, 당신이 연수호 어르신을 치료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의술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꼭 고 선생이 가서 도와주길 부탁합니다.” 무진이 진짜 자신에게 부탁하러 온 것 같지 않은가.성연이 연거푸 거절의 말을 내놓자 무
성연은 무진을 따라 함께 차에 올라탔다.돌아가는 길에 무진이 말했다.“정말 고 선생님께 큰 폐를 끼치게 됐습니다.”무진을 말을 듣던 성연이 저도 모르게 입가를 오므렸다.“천만에요, 당연한 거죠, 뭐.”강무진에게 승낙한 게 정말 후회되는 그녀다.하지만 승낙하지 않으면 분명 무진이 의심할 터.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무진이 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아주 절도가 있어 보이는 동작이 그가 하니 좀 더 귀티가 났다.무진이 입을 열었다.“고 선생은 평소 직업이 의사입니까? 나이가 꽤 어려 보이는데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되었겠군요?”‘평소 말도 별로 없는 강무진이 오늘따라 왜 이리 쓸데없는 말들을 하는 거지?’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지 않는 강무진이다.‘설마 안금여를 진찰하게 하기 위해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일까?’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었다.성연은 속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무진이 어떤 점을 간파했는지 알 수도 없었으니. 하지만 성연은 참을성 있게 대답해 주었다.“네, 얼마 전에 졸업했어요. 자그마한 진료소를 가지고 있는데 평소 환자가 많아서 꽤 바쁜 편입니다.”그녀의 말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뜻.‘똑똑한 강무진이 못 알아들을 리가 없겠지.’당연히 무진은 아주 잘 알아들었다.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이 바로 한 마디만 했다.“조금만 더 있으면 도착합니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에 기대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분명히 같은 곳에 앉아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성연의 심경은 이전과 달랐다.그녀는 지금 무진과는 잘 모르는 낯선 타인일 뿐이었다.전날에도 이 차에 앉아 무진에게 애교를 떤 자신이건만.이건 정말 쇼킹한 반전이 아닌가.앞에서 운전 중이던 손건호는 성연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일부러 먼 길로 돌아서 차를 몰았다.본시 짧지 않던 여정이 더 길어졌다.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성연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무진은 눈을 감은 채 옆에서
성연이 바로 무진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무진의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이 능숙한 동작과 무의식적인 말투는 모두 누군가를 꼭 닮아 있었다.그러나 그의 손은 계속 가슴을 움켜쥔 채로 있었고 이마에도 식은땀이 배어 몹시 아파 보였다.성연은 마음이 초조해 죽을 지경이었다.즉시 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무진의 입에 물렸다.약을 먹이자 무진의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무진이 몸을 받치고 일어나 앉았다.“고 선생은 역시 명의의 제자로 손색이 없군요. 약만으로도 병이 사라지다니.”차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손건호가 급히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렸다.“보스, 괜찮으십니까?”무진이 손을 휘이 저으며 말했다.“괜찮으니 계속 운전해.”손건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성연은 조금 전 무진의 상황에 깜짝 놀랐다.예전 무진의 곁에 있을 때 무진에게 가슴 통증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돌발적인 상황에 저도 모르게 긴장한 성연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렸다.그러나 그녀는 애써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현재 자신의 신분은 송성연이 아니라 고 선생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기억하기에.성연이 물었다.“강 대표님은 건강해 보이는데 어째서 갑자기 그러신 건가요? 지병이 있으신가요?”무진이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예, 예전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신체 바탕이 나쁘다 보니 가끔 이런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성연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그전에 맥만 짚고도 무진의 몸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알지 못했다.성연은 몰래 속으로 궁리했다. 시간이 있으면 방법을 찾아서 강무진을 검사해 보아야겠다고.‘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안 돼.’오래된 상처가 한데 엉켜 있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무진의 지금 상태는 밖에서 보기에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 안은 꼭 솜 한 덩어리로 채워 넣은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