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바로 무진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무진의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이 능숙한 동작과 무의식적인 말투는 모두 누군가를 꼭 닮아 있었다.그러나 그의 손은 계속 가슴을 움켜쥔 채로 있었고 이마에도 식은땀이 배어 몹시 아파 보였다.성연은 마음이 초조해 죽을 지경이었다.즉시 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무진의 입에 물렸다.약을 먹이자 무진의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무진이 몸을 받치고 일어나 앉았다.“고 선생은 역시 명의의 제자로 손색이 없군요. 약만으로도 병이 사라지다니.”차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손건호가 급히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렸다.“보스, 괜찮으십니까?”무진이 손을 휘이 저으며 말했다.“괜찮으니 계속 운전해.”손건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성연은 조금 전 무진의 상황에 깜짝 놀랐다.예전 무진의 곁에 있을 때 무진에게 가슴 통증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돌발적인 상황에 저도 모르게 긴장한 성연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렸다.그러나 그녀는 애써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현재 자신의 신분은 송성연이 아니라 고 선생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기억하기에.성연이 물었다.“강 대표님은 건강해 보이는데 어째서 갑자기 그러신 건가요? 지병이 있으신가요?”무진이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예, 예전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신체 바탕이 나쁘다 보니 가끔 이런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성연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그전에 맥만 짚고도 무진의 몸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알지 못했다.성연은 몰래 속으로 궁리했다. 시간이 있으면 방법을 찾아서 강무진을 검사해 보아야겠다고.‘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안 돼.’오래된 상처가 한데 엉켜 있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무진의 지금 상태는 밖에서 보기에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 안은 꼭 솜 한 덩어리로 채워 넣은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침묵 속에 강씨 고택에 도착했다.집안의 집사가 나와서 맞이했다.성연은 무진을 따라 함께 걸어 들어갔다.안금여를 진찰하는 모든 과정이 아주 순조로웠다.“고 선생님, 오느라 정말 수고했어요. 내 몸은 그리 중하지 않은데.”성연을 대하는 안금여의 태도는 무척 겸손했다.어찌 되었든 성연은 연씨 집안에서 모셔다 연수호 어르신을 치료한 사람이었다.말하자면 연씨 집안의 덕을 보았다고 할까.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은 고 선생이라는 이 인물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지금 성연의 모습은 정말 평범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찾아내기 어려운 정도의 평범함이다.안금여를 앉힌 성연이 세심하게 안여의를 진찰했다.10여 분이 지난 후에 검사를 마친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회장님, 아주 잘 회복되고 계십니다. 아무 문제없으세요. 게다가 건강관리도 아주 잘 하고 계시고요. 평소에 담백한 음식 섭취와 신체 단련만 잘 지켜 주시면 됩니다.”이번 기회를 빌려 성연은 안금여의 몸을 샅샅이 살펴보았다.아주 좋은 상태임이 확실했다.그녀의 방법대로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들은 안금여가 매우 기뻐했다.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손주 며느리도 의술을 좀 알아요. 내 건강도 그 애가 관리하고 있지요.”안여의의 말투에는 부지불식간에 다소 자랑하는 기색이 담겼다.성연이 강씨 집안에 오면서부터 집안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그녀의 건강도 결국에는 회복시켰다.그리도 마음에 드는 손주 며느리이니 당연히 꺼내 자랑을 해야 하지 않겠나.성연은 약간 부끄러웠지만 영리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네 그렇군요? 어린 사모님이 정말 대단하네요.”말하면서 성연은 또 무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 차 안에서 약혼녀 얘기를 하던 무진이 생각난 거였.마음이 좀 심란하면서도 동시에 은근 기분이 좋기도 했다.다른 사람 앞에서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처럼 높게 평가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성연은 자신이 강씨 집안에 머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안여의가 열렬히 말했다.“정말로 고 선생을 난처하게 했군요. 이리 오랜 시간 붙들고 귀찮게 해서 미안하오. 무진아, 네가 고 선생을 모셔다 드리렴.”“네.” 무진이 소파에서 일어났다.성연이 돌아가려는데 마침 옆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안금여는 성연의 가방에 과일 두 개를 넣어주었다.수입된 과일인데, 엄청 달다고 말하며.성연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을 따라 거실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손건호 또한 운전을 위해 앞 좌석에 앉았고 무진과 성연은 뒷좌석에 앉았다.하지만 거리를 좀 떨어뜨려 앉았다.무진이 물었다.“고 선생님,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성연이 대답했다.“지난번 그곳에 내려 주시면 됩니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난번 주소는 손건호도 기억하고 있었다.무진이 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차를 몰아 목적지로 향했다.성연이 말한 주소는 바로 서한기가 사는 곳 부근이었다.거리가 멀지 않아서 곧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성연이 무진과 작별인사를 했다.“대표님, 안녕히 가세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여 표시하자 손건호가 차를 출발시켰다.회사로 돌아가는 길, 무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왜 웃는지도 모르는 듯한 웃음이다.무진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본 성연이 서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서한기에게 겨우 한 마디 했다. 자신이 집으로 들어간다고.비록 부하였지만 어쨌든 서한기의 집이었다. 성연이 함부로 들어가는 건 옳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서한기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보스, 그냥 바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혹시 키가 없는 거예요? 내가 키 가져다 드려요?”서한기가 연이어 질문을 해댔다.성연이 이를 갈았다. 서한기에게 전화를 한 건 그야말로 자신의 실책이었다.서한기에게는 남녀의 구분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모처럼 마음을 좀 쓰려고 했는데 하필 서한기는 나무토막 같았다.성연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열쇠는 내가 찾을 수 있어. 먼저 들어갈 테니 일 없으면 끊어.”
올림피아드는 이미 확정되어 번복의 여지가 없었다.갑자기 올림피아드의 대열 끼인 성연은 더욱 바빠졌다.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밥을 먹자마자 문제를 풀러 갔다.집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게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무진도 서류와 노트를 들고 옆에 앉아 성연이 막히는 문제가 있을 때 도와주었다.머리가 좋은 성연은 조금만 가르쳐 줘도 바로 알아차렸다. 무진이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성연이 그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무진은 오히려 마음이 좀 아팠다.성연이 오늘 꽤 오랜 시간 문제를 풀었다 싶었던 무진이 적극 제안했다.“송성연, 우리 나가서 산책할까?”마침 문제를 풀고 있던 성연은 갑자기 생각이 끊겼다.무진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성연이 매우 단호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시간이 촉박해서 지체할 수 없어요. 아직 이해 못한 것들도 많아요. 서둘러야 해요.”말을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문제를 풀었다.무진은 다시 한번 설득하려 했다.“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어? 일과 휴식을 잘 병행해야 한다고. 긴장도 좀 풀어줘야지.”“무진 씨는 서류 봐요. 나 문제 푸는 거 방해하지 말.” 성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무진은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았다.밤에 잠을 잘 때 성연은 침대에 눕자, 무진이 몸을 옆으로 해서 성연의 관자놀이를 마사지해 주었다.편안함을 느낀 성연은 막지 않았다. 무진의 마사지는 꽤 훌륭했다.지난번에 그에게 마사지를 받은 다음날 아프던 머리가 개운해졌었다.“힘들지 않아?” 무진은 성연이 그렇게나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건 처음 보았다.하지만 성연은 항상 책임감 있게 약속한 일은 반드시 해냈다.“할 만해요. 보람 있어요.” 성연은 오랜만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피곤하기야 하지만, 자신이 승낙한 일은 100%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후회하지 않을 터였다.“자.”무진이 조용히 말하면서도 손의 움직임
수학 올림피아드의 일도 물론 긴장되지만 성연이 더욱 염려하는 것은 무진의 건강이었다.맥을 짚어 보면 신체 기초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구체적으로는 기계로 데이터를 봐야 한다.심장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가능한 한 빨리 살펴보아야 했다. 무진의 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본 다음 증상에 맞게 약을 써야 했다.그래서 성연은 시간을 내여 다시 연씨 저택을 찾아 갔다.성연을 본 연경훈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고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다음 진료 시간까지는 좀 더 남은 것 같은데?’“이번에 온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일 때문이에요. 지난번에 강씨 고택에 갔었는데 회장님께 강 대표님을 진찰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지금 의료기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대표님께 전화 좀 해주겠어요? 시간이 어떤지 좀 물어봐 주세요.”찾아온 이유를 성연이 바로 설명했다.성연의 핸드폰에는 당연히 무진의 번호가 자고 있는 게 맞았다.하지만 그녀가 직접 연락하는 건 불가능했다.고 선생은 강무진을 잘 모르니까.그리고 그녀는 지금 고 선생이었다.“물론 되지요. 지금 당장 무진 형한테 전화해 볼게요.” 연경훈은 사람됨이가 좀 경망스럽긴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송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그녀의 감사 인사에 연경훈은 좀 쑥스러웠다.“우리가 고 선생에게 고맙지요. 분명 고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진찰하러 온 거였는데, 무진 형까지 추가로 진찰을 받게 됐잖아요. 고 선생님,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연경훈이 잔뜩 어색한 모습으로 결국에 한 마디를 짜내었다.성연은 가볍게 헛기침만 할 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연경훈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화끈거리게 할 정도로 짙었다.“고 선생님, 오셨군요.” 그때 뒤에서 또 다른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동시에 성연에게 퇴로를 열어주었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연경훈의 모친 하지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사모님.”다
성연과 하지연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무진이 왔다.성연은 무진을 연구실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 곳에는 많은 첨단 의료기와 장비들이 있어서 신체 데이터를 정확하게 뽑을 수 있었다.“대표님. 저와 함께 가 주세요. 거기에 검사용 기기들이 있어요.” 성연이 미리 설명했다.무진은 경계심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무진은 그녀와 함께 낯선 곳으로 쉽게 가려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어찌 되었든 무진은 지금 강씨 집안 최고 실권자였다. 그의 몸값은 가격을 매길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을 터이니 경각심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그러죠.” 무진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동의했다.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연경훈은 미묘한 불편함을 느꼈다.고 선생 앞에는 항상 한 겹 막이 쳐져 있는 듯했다.다른 사람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예의 바르고 단정한 그 모습이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그런데 무진과 같이 있는 지금 성연을 둘러싸고 있던 그 막이 마치 사라진 것 같았다.‘설마 고 선생이 무진 형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하긴, 무진 형은 얼굴도 집안도 다 괜찮으니까.’젊고 유능하다는 점은 언제나 여자들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연경훈은 갑자기 자신이 좀 형편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선생은 자신이 먼저 반했다.‘고 선생과 무진 형 단둘이 있게 해서는 절대 안돼.’연경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나도 참관하러 같이 가고 싶은데 괜찮겠지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하지연이 나무랐다.“고 선생님과 무진이 진찰하러 가는데 네가 뭐 때문에 따라 가? 가서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얌전히 집에 있어.”연경훈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자신의 엄마는 고 선생을 매우 좋아했다. 또 무진도 무척 불쌍하게 생각하며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유독 친아들인 자신에 대해서만 불만스럽게 여겼다.고 선생과 무진을 한데 엮으려는 게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도 들었다.‘우리 엄마 눈에는 무진 형만 믿을
성연은 정말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그럼 가요. 별 영향 없을 거예요.”성연의 동의를 받은 연경훈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하지연을 향해 눈썹을 치켜 세웠다.하지연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한 두 마디 호통을 쳤다.“가서 절대 소란 피우지 마.”“내가 어린애도 아닌데…….”연경훈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어린아이면 오히려 내가 더 안심이지.” 하지연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사모님, 저희는 가 볼게요. 안 그러면 곧 시간을 놓칠 거예요.”성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끊으며 먼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계속 저렇게 설전을 벌이게 놔두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그래요, 그럼 볼 일 봐요.” 말을 하는 와중에도 하지연은 연경훈을 노려보았다.연경훈이 하지연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그리고 성연의 뒤를 따라 나갔다.연구소에는 성연이 미리 일러 두었다. 연구소 내 직원들에게 그녀를 고 선생이라고 부르고 헸디. 보스라고는 절대 못 부르게 신신당부했다.그렇지 않으면 무진의 의심을 사기 쉬웠다.연구소는 교외의 외진 곳에 있었다.부근의 풍경과 공기가 아주 좋았다.도착한 후에 성연은 두 사람을 데리고 연구소를 구경시켜 주었다.이곳의 기계는 얼음 같이 차가웠지만 아주 세밀하고 정교했다.무진은 몸이 좋지 않았다. 안금여 또한 몸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자연히 늘 이런 의료기들을 가까이해 온 무진은 이 기계들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도무지 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였다.두세 개 정도만 보고도 성연의 연구소가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지 대략 판단되었다.무진은 모든 기계 설비들을 세세히 살펴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속으로 더 많은 의혹이 생겼다.보아하니, 과연 이 고 선생 정말 간단한 인물이 아닌 듯하다.그에 반해 연경훈은 그냥 단순했다.무진과 성연을 주시하며 두 사람이 어떤 친밀한 동작도 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신경 썼다.조금 전 오는 길에는 무진과 고 선생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래서 연경훈의 마음 속 의심도 지워
연구소 참관이 끝난 후 성연은 무진을 데리고 내실로 들어갔다.“대표님, 여기 위에 누우세요. 제가 검사할 수 있게요.” 성연이 한 팔을 펼치며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무진이 누웠다.성연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의료기기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서서히 입구가 닫히며 의료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체 데이터를 측정하기 시작했다.성연은 스크린에서 번쩍이는 데이터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런 성연의 모습에 연경훈의 두 눈은 경탄으로 반짝였다.마치 영화를 찍는 것처럼 아주 환상적이었다.성연의 진지한 옆모습을 바라보던 연경훈은 눈치 있게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성연을 방해할까 봐 숨을 죽인 채.좋아하는 사람 앞이니 당연히 알아서 잘해야 할 터였다.십여 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무진의 검사가 끝났다.성연은 문을 열자 무진이 일어나 앉았다. 성연의 표정이 좀 굳어 있었다.“대표님, 체내에 내상이 많이 쌓여 몸이 매우 좋지 않아요.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연경훈 또한 무진의 상태가 그토록 심각할 줄은 몰랐다.강씨 집안 내부의 복잡한 관계를 생각하면, 보호해 줄 부모가 없는 무진이 잘 지냈을 리 만무한 터.옆에서 연경훈이 관심 있게 물었다.“무진 형, 기분이 좀 어때요? 참기 힘들어요?”좌절감이 느껴졌다. 하필 의학엔 문외한인지라 무진을 도울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무진은 평소 자신에게 아주 잘해 주었다.“익숙해졌어.”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 한 마디가 엄청나게 무겁게 들렸다.무진이 익숙해지기까지 뒤로는 얼마나 병고에 시달렸을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무진이 결코 쉽게 살아오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좀 아닌 것 같아 축 처진 모습으로 한쪽편에 섰다.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데리고 밖에 있는 휴게실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 앉아서 좀 기다리세요.”연경훈과 무진이 휴게실에
전화를 끊은 성연은 서재로 달려가 이 상황을 무진에게 알렸다.얘기를 들은 무진은 멍해지면서 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이 안진검이 성연에게 접근한 데에는 틀림없이 목적이 있을 거야. 어쩐지 얼마 전에 오웬이 살해되었지.’‘아마 이 양자인 안진검이 한 짓일 거야.’‘다행히 안진검이 아직 본격적인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자의 진면목을 발견했어.’성연도 마음속으로 다행이라고 느꼈다.‘애초에 안진검은 확실치는 않지만 나를 통해서 무진 씨와 연결되려고 했어.’‘무진 씨와 사업 얘기도 하겠다고 했어.’‘아마도 무진 씨의 회사가 목표였을 거야.’‘이제야 안진검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성연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본 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토닥였다.“결혼식을 앞두고 있으니 어떤 사고도 일어나선 안 돼. 내가 안진검을 찾아낼게.”“내 생각에 적호도 아마 안진검이 데려온 것 같아요.”성연은 두 사람이 나타난 시간이 일치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안진검이 오자 적호도 왔어.’‘그러나 그때 안진검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좋은 사람 노릇을 하고 있었지.’ 성연은 구역질이 났다.성연은 안진검이 정말 열정적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구시가지 그쪽에서 사람을 구한 걸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그럴 수 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 내가 잘 처리할게.” 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았다.‘지금은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어.’‘만약 내가 성연과 결혼식을 올린다면’‘MS 가문 쪽은 제일 불만이 많을 거야.’‘지금 안진검은 MS 가문의 대표야. 안진검을 찾아내기만 하면 MS 가문 사람들은 틀림없이 쉽게 손을 대지 못할 거야.’“내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성연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무진이 성연의 뺨을 어루만졌다.“이게 어떻게 너를 탓할 수 있어? 안진검이 위장을 너무 잘한 거지. 안진검은 대외적으로 투자자의 신분이라서, MS 가문의 양자라는 건 아무도 몰라.”‘이 자료들은 유럽에 있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워
저녁을 먹은 무진은 밤에 서재로 가서 서류를 처리했다.성연은 꽃밭에 가서 약재들이 어떤지 볼 생각이었다.손에 이미 도구를 다 챙겼는데, 뜻밖에 미스 샤넬의 전화를 받았다.“미스 샤넬, 웬 일이세요?” 성연은 미스 샤넬이 무슨 일로 직접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궁금해했다.[조금 사소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유럽으로 돌아간 미스 샤넬은 생각할수록 뭔가 이상했다.아마도 그건 성연에게는 중요하지 않겠지만.그러나 말을 하지 않으려니, 미스 샤넬은 시종 마음이 불안했다.결국 잠시 생각한 뒤에 성연에게 먼저 연락한 것이다.“미스 샤넬, 하실 얘기가 있으면 그냥 하시면 돼요.” 성연은 사실 미스 샤넬과 사형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좀 두려웠다.‘두 사람이 줄곧 사귀고 있었지만 너무 급하게 확정했어.’‘혹시 한 사람이 후회하게 된 건 아닐까.’하지만 미스 샤넬이 전화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미스 샤넬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 [그 남자가 누군지 생각났어요.]이 뜬금없는 말에 성연은 좀 어리둥절했다.“미스 샤넬, 무슨 남자요?”미스 샤넬이 눈썹을 찌푸렸다.[우리가 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그 익숙했던 얼굴 말이에요. 누군지 생각났어요.]그때만 해도 미스 샤넬은 저 사람이 왜 여기 나타났는지 너무 이상했다.지금 생각하면 그 남자의 행동은 너무나 의심스러웠다.[그 사람은 바로 MS가문의 사람이에요. MS 가문의 대장로가 입양한 양자로 이름은 안진검이에요.]성연은 원래 그 일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미스 샤넬의 말을 들은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안진검이 MS 가문의 사람일 줄은 몰랐어.’미스 샤넬은 성연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시 말했다.[혹시 MS 가문과 하는 사업이 있어요?]미스 샤넬은 두 사람과 MS 가문 사이에 일어난 일을 몰랐다.‘사업 협력은 고사하고 원수 사이인 걸.’다만, 그 동안 일의 경과가 너무 복잡해서, 성연도 미스 샤넬에게 어떻게
두 사람이 얘기를 마쳤을 때 마침 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곽연철이 거실에 있는 것을 본 무진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곽 대표님, 오늘 어떻게 시간이 나서 오셨어요?”“너무 오랫동안 성연이를 못 봐서 성연이하고 얘기를 나누러 왔어요. 내가 오지 않았다면 강 대표님과 성연이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거도 몰랐을 겁니다.”곽연철은 탓하듯이 말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직 준비 중입니다. 날짜가 확정되면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곽연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강무진과 보스의 결혼식인 이상 강무진이 반드시 잘 준비할 거야.’‘그건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어.’“얘기 나누세요. 나는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성연은 집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좀 아팠다.“내가 같이 갈까?” 무진이 바로 말했다.언제나 성연을 우선시하는 태도였다.“아니요, 곽 대표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무진 씨가 얘기 나누세요.” 성연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두 남자는 사업 얘기 말고는 다른 게 없었다.그러나 마침 돌아온 무진에게 곽연철이 정말 알려줄 얘기가 있었다.“지금 연기의 신 소지한 씨의 회사가 설립되어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우리 제왕그룹과 합작으로 연예인을 발굴할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곽연철이 근황을 말했다.무진은 자타가 공인한는 재계 정상에 서 있는 CEO다.그래서 곽연철은 무진에게 어떤 좋은 의견이 있는지 듣고 싶었다.무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소지한이 엔터테인먼트 업종을 선택한 건 예상했지만, 또 의외이기도 했어.’‘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쪽에서 말한다면, 소지한은 그 세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지.’‘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의 신이라고 일컬어졌기에, 연예계의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더욱 잘 알고 있을 거야.’‘다른 업계에 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소지한에게 가장 타당한 업종이야.’무진이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저도 같이 출자해서 프로젝트 규모를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곽
곽연철은 오자마자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성연과 무진이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직접 봤기에, 이제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되자 곽연철도 정말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잘됐네요, 보스. 강 대표님이 정말 보스에게 잘해 주시니 평생 맡길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 대표님의 능력은 강해서 보스를 잘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연철이 이렇게 칭찬하는 말을 듣자, 자신의 마음도 더없이 달콤했다.‘그래. 무진 씨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무진 씨는 줄곧 나를 잘 보호했고, 부딪칠 만한 것도 없었어.’‘가끔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무진 씨도 나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성연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자신이 복을 받았다고 느꼈다.“보스, 언제 결혼식을 올릴 계획입니까?” 곽연철은 그때 축의금을 크게 내야겠다고 생각했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결혼하게 되면 틀림없이 알릴 테니까 걱정 마.” 성연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몇 명에 불과했다.‘내 결혼식에는 모든 사람이 참석해야 해.’“이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스승님의 행방을 이렇게 오랫동안 찾지 못했는데, 혹시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최악의 경우 변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곽연철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성연도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애써 그 생각을 부정했다.‘그렇게 실력이 강한 스승님이 또 적지 않은 거물들도 치료하셨어.’‘스승님이 위험에 처할 리가 없어.’‘내가 찾고 있다는 걸 스승님도 분명히 알고 계실 거야.’‘다만, 만나러 오려고 하지 않으실 뿐이야.’‘때가 되면 오실 거고 이제 거의 다 됐어.’“아니야, 스승님은 항상 조심하고 신중하신 분이야. 신비한 분이지만, 제자의 결혼식에는 꼭 오실 거야.” ‘스승님이 이렇게 나를 총애하시는데.’그래서 성연은 스승님이 반드시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하기야 스승님은 뭐든지 주머니를 털어 보스에게 주셨지요. 결혼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