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나온 후 무진에게 약 한 병을 건넸다.이는 희귀한 약재들로 만들어진 매우 귀중한 약이었다.무진에게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무진이 약병을 받자 성연이 말했다.“이 약은 하루 세 번, 식후에 드세요. 까먹으시면 안 돼요.”그러다 성연은 여러 가지 약재를 살펴보며 무진에게 처방을 내렸다.이 약재들은 보통 몸을 보호하고 기력을 보충하는 데 쓰였다.그녀는 처방을 내린 후, 무진에게 건네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은 북성 시에서 높은 자리에 계시니 약재 몇 가지를 찾는 건 일도 아닐 거예요.”무진은 처방전을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물론 고 선생님이 치료를 도와주시겠죠? 강씨 집안에서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 선생님이 돈을 쓰지 않도록 할 겁니다.”성연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강씨 집안에 이런 약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처방전만 썼을 뿐 약을 만들지 않았다.약을 만들어 주는 건 약재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했다. 강씨 집안은 부유했고 심지어 어떤 약재는 훨씬 상태가 좋았다.무진은 그쪽에 있는 약재를 먹는 편이 더 나았다.옆에 있던 연경훈은 성연이 아픈 무진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자 질투가 좀 났다.이에 경훈이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저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한 번 봐주세요.”성연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연경훈 씨는 너무 튼튼해서 백 살까지도 거뜬히 살 수 있을 거예요.”진료를 마친 후, 무진은 회사에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 떠나려 했다.그가 없이는 회사가 돌아가지 않았다.연경훈도 더 머물 다른 구실을 찾지 못해 무진과 함께 떠나야 했다.무진이 선뜻 말을 건넸다.“고 선생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할 일이 남아서 연구실에 있어야 해요. 먼저 가세요. 전 나중에 택시 타고 가면 돼요.”무진은 더 이상 그녀를 잡지 못했다.경훈은 차창에 기대 아쉬운 듯 성연을 바라봤다.“고 선생님, 다음에 시간 되면
실험이 끝난 후, 성연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왔다.바로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가장했다.하지만 검사 결과를 통해 무진의 몸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현재 다른 방법으로는 안된다. 식단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레시피를 다시 정리한 성연이 집사에게 무진의 건강에 더 도움이 될만한 식단들로 준비해 줄 것을 요구했다.집사에게 레시피를 건네주는 순간, 집사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작은 사모님, 도련님에게 정말 잘하시네요.”과거 무진이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모든 친척이 그를 신경 쓰지 않은 탓에 그의 성격은 더 내성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했다.하지만 성연이 나타난 후, 무진은 건강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밝아졌다. 점차 그에게서 인간미가 보이기 시작했다.무진이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던 집사는 무진의 변화가 무척 반가웠다.“당연한 일인 걸요. 무진 씨 건강은 관리하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거예요.”성연이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녀는 무진을 단지 환자로 대했다.‘무진 씨는 내 환자야. 내가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해.’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바로 무진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다. 더 이상 무진이 이러한 고통을 견뎌서는 안 됐다.“작은 사모님, 도련님이 사모님과 결혼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집사는 옆에서 그녀를 치켜세웠다.“그이도 저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무슨 생각인지 그녀는 나오는 대로 말했다.성연은 수학 경시대회 문제를 풀던 날, 자신이 잠들 때까지 무진이 안마해준 것을 기억했다.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고 했던가, 무진이 그녀에게 잘하는 만큼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아이고, 두 분 사이가 좋은 걸 보니 큰 사모님께서도 마음이 놓이실 겁니다.”처음에 안금여는 집사에게 엠파이어 하우스를 감시하게 지시했었다.무진이 성연을 싫어해서 성연을 난처하게 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지금 보니 역시 안금여는 안 해도
한편 소지한은 진미선과의 연락을 며칠째 질질 끌고 있었다.그러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매니저를 시켜 광고 촬영 건으로 진미선에게 연락하게 했다.소지한의 매니저에게서 전화를 받은 진미선은 며칠 동안 조마조마했던 마음속의 큰 짐을 덜 수 있었다. 다행히 소지한의 최종 결정은 승낙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시어머니가 어떤 얼굴을 할 지 모를 일이었다.보아하니, 소지한을 찾은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았다.어머니로서의 위신은 아직 쓸만했다.소지한이 도착했을 때, 왕대관과 진미선이 직접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소 배우님, 드디어 오셨네요. 원하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회사로 연락주십시오. 그럼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왕대관이 말했다.왕대관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가장 낮은 가격으로 전국을 뜨겁게 달군 대스타 소지한을 모셨으니 말이다.‘감히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보아하니, 진미선의 의붓딸은 소지한과 깊은 사이일 게 분명했다.‘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조그만 회사에 찾아와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어?’“뭐든 말해요?”소지한은 두 사람이 성연에게 한 짓을 생각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이내 차가운 어조로 비웃었다.“아직도 뻔뻔하시네요. 제가 여기에 왜 왔는지 확실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원하는 금액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왕대관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어떻게 감당하라는 말이야?’소지한은 어디서든 분당 수 억을 벌고 있었다.그 액수는 그들과 같은 소형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왕대관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소지한한테 더 이상 미움을 사면 안 돼.’그는 몇 차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소지한 씨가 기꺼이 도와주신다면, 제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생활이나 광고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주세요.”소지한은 비웃으며 말했다.“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입을 다무세요. 쓸데없이 비행기
소지한은 진미선과 왕대관을 싫어했지만, 그는 프로였고 또 성연이 부탁한 일이었다.광고 촬영에 있어서는 진미선과 왕대관을 난처하게 하는 일 없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진미선은 쉬는 시간을 틈타 학교로 성연을 찾아왔다.주연정은 오늘따라 성연과 함께 하교하고 싶었다.친구끼리는 뭐든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평소 냉정해 보이는 성격의 성연이지만 주연정이 성연을 좋아하는 데 하등 문제가 되진 않았다.연정은 활발한 성격을 가진 소녀였다.그녀는 성연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퍼부었고, 성연은 단답으로 대답할 뿐이다.하지만 성연은 연정을 싫어하지 않았다.연정은 보기 드물게 순진하고 나쁜 마음이 없었다.성연도 작은 태양처럼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성연아, 북성시 시내에 엄청 맛있는 꼬치집이 있대! 다음에 시간 되면 우리 같이 먹으러 가자.”서로 친해지면서 연정도 성연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그래.”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또래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꽤 신기했다.“같이 가기로 한 거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어!”연정이 활짝 웃었다.“알겠어.”성연도 입술을 오므렸다.성연과 연정은 교문까지 걸어갔고 연정은 성연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다른 길로 걸어갔다.연정은 방방 뛰며 매우 행복해했다.성연은 때때로 아무 걱정 없이 해맑은 연정이 부럽기도 했다.얼굴의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고개를 돌린 성연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진미선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완전히 사라지고 무표정해졌다.“여기서 뭐 하세요?”진미선은 이런 성연의 무관심에 익숙해져 있었다.성연의 달라진 표정을 본 진미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연정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물었다.“성연아, 쟤가 네 친구니? 학교에서 몇 명 정도 친구를 더 사귀렴. 그래야 네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질 거야.”“무슨 상관이에요. 왜 찾아오셨어요? 앞으로 부탁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잖아요.”성연
진미선은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성연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드디어 그들은 작은 별장 입구에 도착했다.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여기서 밥을 사겠다는 말이야?’‘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진미선은 혹여나 성연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성연아, 여긴 엄마가 사는 곳이야. 오늘 엄마가 널 위해서 요리를 다 해 놨으니까 가서 한 입만 먹어.”성연은 진미선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집에 들어간 후, 성연은 진미선이 자신을 왕씨 집안에 데려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성연은 화가 났다.‘지금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그녀는 고개를 돌려 진미선을 바라봤다.진미선은 돌아서서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성연아, 얼른 들어가자.”집 안에는 왕대관과 그의 어머니, 왕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다 모여 있었다.성연을 본 왕대관이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성연이 왔니? 다들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이 아이가 성연이야?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진미선의 시어머니도 반가운 척 친절하게 말했다.그들 앞에는 커다란 접시가 놓여 있었고, 마치 성연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 같았다.성연은 입술을 오므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사람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진미선의 태도를 보면 왕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그들과 그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있자 왕대관과 시어머니는 조금 당황스러웠다.특히 시어머니는 체면도 내려놓고 성연에게 말을 걸었기에 더 그랬다.한참이나 나이 어린 여자애가 완전 자신을 무시한 것이다.‘누가 그 엄마에 그 딸 아니랄까 봐.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드는군.’그녀는 진미선을 바라보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그 표정은 마치 ‘이게 네가 키운 딸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성연의 행동에 진미선도 난처했다.그래서 그녀는 성연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성연아, 이왕 왔으니 날
‘가장 역겨운 사람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당신들이야.’성연은 왕대관과 그 어머니의 위선적인 얼굴이 너무 역겨웠다.‘내가 모를 것 같아?’그들은 분명 성연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들은 강씨 집안이라는 목적만을 생각하고 행동했다.만일 그녀가 강무진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연을 본체만체 했을 게 뻔했다.그녀의 운명은 진미선에게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었다.진미선은 왕씨 집안에서 남의 비위를 맞추며 비참한 삶을 살았는데 그녀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진미선의 팔에 난 상처를 생각하면, 성연은 그 시어머니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지금의 진미선은 그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에 불과했다.분명 진미선은 혼자 좋은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남의 시중이나 들며 살고 있었다.성연은 그녀를 동정해서는 안 됐다.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시어머니와 왕대관은 계속해서 말을 꺼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그러자 그들은 침묵을 유지했고 분위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진미선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그녀는 성연이 시어머니의 위신을 깎아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가다간 시어머니가 자신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게 뻔했다.항상 그랬다.진미선은 집에 있는 과일을 깎아 성연에게 갖다 줬다.“성연아, 내가 사온 과일이야. 한 번 먹어봐. 꽤 달아.”성연은 그 과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꽤나 비싸 보였다.평소 왕씨 집안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그러나 이건 그들의 능력과 맞지 않았다.‘이렇게 돈을 써대니 회사가 그 모양이지. 회사가 굴러가는 게 이상해.’이를 보니 왕대관이 필사적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했다.그가 물질적인 면에서는 진미선에게 아끼지 않는 것 같았다.어쩌면 이게 진미선이 원하는 삶일지도 모른다.왕대관이 그녀에게 어떤 짓을 하든 그가 진미선의 삶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만 있으면 된 거였다.성연은 어이가 없었다.이전에 진미선은 자신
진미선은 마음이 불편했다.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그럴 만했다. 성연을 이용해 지위를 올리려면 이런 것쯤은 견뎌야 했다.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던 진미선은 혼자 돌아갔다.시어머니는 방금 성연이 자신에게 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돌아온 진미선을 본 그녀는 즉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진미선에게 표출했다.그녀는 직설적으로 진미선을 조롱했다.“딸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니? 정말 교양도 없고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구나. 강씨 집안만 아니었으면 이 집안에 발도 못들이게 했을 거야.”시어머니의 친절은 연기에 불과했다.성연은 강씨 집안의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시골 소녀였다.‘감히 내 앞에서 그렇게 오만 방자하게 굴어?’‘눈 씻고 봐도 예의를 찾을 수가 없는데, 강씨 집안 같은 재벌가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진미선은 그저 성연이 안타까울 뿐이었다.성연 때문에 그런 좋은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여전히 등 뒤에서 그녀를 욕하고 있었다.참다 못한 진미선이 입을 열었다.“어머니, 성연이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요.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세요.”시어머니는 진미선이 딸을 위해 대드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화가 났다.그녀는 더욱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얼굴만 믿고 남자를 유혹하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강씨 집안이 왜 그 아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모르겠어.”그녀가 하는 모든 말은 진미선의 가슴에 대못으로 박혔다.진미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러나 그녀 역시 시어머니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그녀는 시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하고 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시어머니는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이 일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인지 진미선은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진미선은 멍하니 옆에 서 있었다.시어머니는 가만히 있는 진미선의 모습에 더욱 열이 올랐다.‘우리 아들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감히 누구한테 불쌍한 척하는 거야
수학 올림피아드가 다가오고 있어 성연은 매일 밤 늦게까지 문제를 풀었다.무진은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서재로 들어갔다.돌아와 보니 성연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무진은 마음이 아팠다. 피곤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엎드려 잠들지 않았을 텐데.몸을 기울여 성연을 안아 들고 침대에 데려가 눕히려 했다.그녀의 팔을 감싸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연의 살결이 느껴졌다.그것도 잠시, 피부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그는 손을 들어 뜨거운 성연의 이마를 짚었다.무진은 걱정스러워 급하게 성연을 방으로 데려갔다.성연의 몸에서 열이 펄펄 끓었다.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무진은 황급히 방을 나왔다.거실에 있던 집사가 다급히 나오는 무진을 보며 물었다.“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성연이 열이 높아요. 얼른 의사한테 연락해서 빨리 오라고 하세요.”무진이 무거운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이 말을 들은 집사는 작은 사모님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심각한 일이었다.그는 서둘러 말했다.“네, 도련님. 지금 당장 의사에게 전화하겠습니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통화를 마친 집사가 무진에게 물었다.“도련님, 작은 사모님께서 열이 많이 납니까? 괜찮으신가요?”평소 무진을 살뜰히 챙기던 성연인 만큼 집사는 성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의사가 오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어요.”무진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집사도 의사가 빨리 오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기다렸다.30분이 지났을까, 의사가 엠파이어 하우스에 도착했다.집사가 성연의 방으로 의사를 안내했다.무진이 침대에 붙어서 살뜰히 성연을 돌보고 있었다.성연에게 다가가 상태를 먼저 살펴본 의사가 말했다.“작은 사모님 열이 심하군요. 체온을 먼저 재 봐야 할 것 같습니다.”그 말과 함께 의사는 무진에게 체온계를 건넸다.무진은 성연의 옷을 살짝 벌려 안으로 체온계를 밀어 넣었다.아무도 그녀의 속살을 볼 수 없도록 조심하면서.5분 후, 의사는 무진에게 체온계를 꺼내라고 요청했다.언뜻 봐도 열은 3
두 사람이 얘기를 마쳤을 때 마침 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곽연철이 거실에 있는 것을 본 무진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곽 대표님, 오늘 어떻게 시간이 나서 오셨어요?”“너무 오랫동안 성연이를 못 봐서 성연이하고 얘기를 나누러 왔어요. 내가 오지 않았다면 강 대표님과 성연이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거도 몰랐을 겁니다.”곽연철은 탓하듯이 말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직 준비 중입니다. 날짜가 확정되면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곽연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강무진과 보스의 결혼식인 이상 강무진이 반드시 잘 준비할 거야.’‘그건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어.’“얘기 나누세요. 나는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성연은 집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좀 아팠다.“내가 같이 갈까?” 무진이 바로 말했다.언제나 성연을 우선시하는 태도였다.“아니요, 곽 대표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무진 씨가 얘기 나누세요.” 성연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두 남자는 사업 얘기 말고는 다른 게 없었다.그러나 마침 돌아온 무진에게 곽연철이 정말 알려줄 얘기가 있었다.“지금 연기의 신 소지한 씨의 회사가 설립되어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우리 제왕그룹과 합작으로 연예인을 발굴할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곽연철이 근황을 말했다.무진은 자타가 공인한는 재계 정상에 서 있는 CEO다.그래서 곽연철은 무진에게 어떤 좋은 의견이 있는지 듣고 싶었다.무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소지한이 엔터테인먼트 업종을 선택한 건 예상했지만, 또 의외이기도 했어.’‘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쪽에서 말한다면, 소지한은 그 세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지.’‘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의 신이라고 일컬어졌기에, 연예계의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더욱 잘 알고 있을 거야.’‘다른 업계에 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소지한에게 가장 타당한 업종이야.’무진이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저도 같이 출자해서 프로젝트 규모를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곽
곽연철은 오자마자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성연과 무진이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직접 봤기에, 이제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되자 곽연철도 정말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잘됐네요, 보스. 강 대표님이 정말 보스에게 잘해 주시니 평생 맡길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 대표님의 능력은 강해서 보스를 잘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연철이 이렇게 칭찬하는 말을 듣자, 자신의 마음도 더없이 달콤했다.‘그래. 무진 씨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무진 씨는 줄곧 나를 잘 보호했고, 부딪칠 만한 것도 없었어.’‘가끔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무진 씨도 나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성연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자신이 복을 받았다고 느꼈다.“보스, 언제 결혼식을 올릴 계획입니까?” 곽연철은 그때 축의금을 크게 내야겠다고 생각했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결혼하게 되면 틀림없이 알릴 테니까 걱정 마.” 성연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몇 명에 불과했다.‘내 결혼식에는 모든 사람이 참석해야 해.’“이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스승님의 행방을 이렇게 오랫동안 찾지 못했는데, 혹시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최악의 경우 변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곽연철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성연도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애써 그 생각을 부정했다.‘그렇게 실력이 강한 스승님이 또 적지 않은 거물들도 치료하셨어.’‘스승님이 위험에 처할 리가 없어.’‘내가 찾고 있다는 걸 스승님도 분명히 알고 계실 거야.’‘다만, 만나러 오려고 하지 않으실 뿐이야.’‘때가 되면 오실 거고 이제 거의 다 됐어.’“아니야, 스승님은 항상 조심하고 신중하신 분이야. 신비한 분이지만, 제자의 결혼식에는 꼭 오실 거야.” ‘스승님이 이렇게 나를 총애하시는데.’그래서 성연은 스승님이 반드시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하기야 스승님은 뭐든지 주머니를 털어 보스에게 주셨지요. 결혼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