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천둥번개가 치듯이 맹렬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했다.소지연을 데리고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소씨 집안과의 우호협력 관계가 무너졌음을 선포했다.소씨 집안은 순식간에 파산 직전의 상태에 놓였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의 채무 독촉, 공급업체들의 납품 거절, 판매 통로의 단절 등 여러 난관에 직면했다.북성에 자리 잡은 소씨 집안 역시 지역의 주요 명문가 중 하나였다.소씨 집안의 가장 큰 우호 세력이 바로 WS그룹이었다.그런데 지금 WS그룹에서 모든 투자를 철회하고 나오는 바람에 소씨 집안이 휘청거리는 상황에 직면한 것.소씨 집안 저택은 짙은 근심으로 차 있었다. 소파 위에 앉은 소지연의 부친과 모친의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어둡다.자신들의 딸 소지연이 돌아오자마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무진이 말한 대로 소지연의 목숨은 건드리지 않았다. 되려 그녀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그러나 소씨 집안을 파산시켰다.집안 분위기가 몹시도 암울했다.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모님들을 보면서 소지연은 두 분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그래서 핑계를 대고 다급히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그러나 극심한 충격에 빠진 나머지 딸 소지연을 상대할 여우가 없었던 부모님들은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소지연의 모친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우리 무진이에게 뭐 잘못한 거 없지 않아요? 무진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건 정말 우리를 사지로 모는 거나 마찬가지예요.”소지연의 부친도 왜 무진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역시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무진이가 이러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무진의 심기를 거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우리 두 사람 내내 집안에만 있으며 무진이에게는 윗사람으로서 우리 위치에 맞게 잘 대했잖아요? 어떻게 무진이에게 잘못할 수가 있겠어요?” 짙은 울음이 섞인 소지연 모친의 음성은 몹시도 불쌍하게 들려왔다.“설마... 우리
결국 소지연의 부모는 상의한 결과 무진을 찾아가기로 했다.적어도 무슨 까닭으로 자신들을 이렇게 죽일 듯이 잡는지는 알아야 했다.만약 무진이 마음이 약해져서 자신의 회사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차에 올라탄 소지연의 부친과 모친의 표정은 몹시 불안해 보였다.“당신, 무진이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 같아요?”소지연 부친의 안색이 어두웠다. 무진이 이렇게 그간의 정을 끊으면서까지 한 걸 보면 절대 작은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그 역시 자신이 없었지만 아내가 이미 저렇게 초조해하고 있으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할 수는 없는 노릇.그냥 적당한 말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무진이 부모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 우리도 나름 도와줬으니, 무진이도 그때를 생각해서 한 번 봐주지 않겠어?”남편의 말에 소지연의 모친은 좀 안심이 되었다.“맞아요, 맞아. 우리가 무진일 도와준 적이 있죠. 무진이 착한 아이이니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를 줄 거예요.”부친의 얼굴은 여전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찾아간다 해도 좋은 소식은커녕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소지연의 부모는 직접 엠파이어 하우스로 무진을 찾아갔다.무진은 그들의 방문을 거절하지 않고 만남에 동의했다.이번 일을 겪으면서 소지연의 부모는 안색이 눈에 띄게 초췌했다.무진은 두 어르신을 보면서 차마 박정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소지연이 한 짓에 너무 화가 났다.소지연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지연은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아래층으로 내려온 무진은 집사를 시켜 소지연의 부모님께 차를 올리게 했다.마주 앉은 소지연의 부모가 무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무진의 안색이 평온해 보였다. 마치 자신들에게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오히려 소지연의 부모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결국 회사의 상황을 생각한 소지연의 부친이 먼저 입을 열었다.“무진아, 만약 우리 소씨 집안에 불만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우리
소지연 부모의 방문과 소씨 집안의 파산 소식에 안금여와 강운경이 모두 깜짝 놀랐다.두 집안은 예로부터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그리고 무진 또한 그동안 소씨 집안의 두 어른과 잘 지내왔는데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관계가 변한 건지.안금여는 전화를 걸어 무진을 고택으로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볼 참이었다.무진이 강씨 집안 고택으로 갔을 때, 강운경과 안금여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소파에 앉아 있다가 거실에 들어서는 무진을 본 안금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무진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멀쩡하던 사이가 이렇게 된 거니?”무진은 할머니 안금여가 이 일 때문에 자신을 불렀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이미 대답할 말을 속으로 생각해 두었다. 무진은 두 사람에게 소지연이 성연에게 한 짓을 모두 말했다.무진이 살짝 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할머니, 그래도 제가 지나쳤다고 생각하십니까?”무진의 말을 들은 안금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다른 일은 일단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소지연이 성연을 죽이려 하다니. 이 일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다.원래는 소씨 집안과의 정을 생각해서 무진을 만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간의 사정을 똑똑히 듣고 난 안금여는 마음속의 생각을 지웠다.소씨 집안 사람들이 먼저 잘못했으니 그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마땅한 일.“부드럽고 유해 보이던 소지연이 그런 짓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소씨 집안에서 자신들의 딸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야. 우리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대로 당하고 있으면 안되지.” 지금의 안금여는 무진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강운경은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씨 집안과의 계약해지는 사실 WS그룹에도 영향을 주었다.그러나 소지연이 그런 짓을 저질렀음에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 역시 앞으로 회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터였다.그럴 바엔 차라리 협력관계를 깨는 게 나을 것이다.성연이 무진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신
조수경은 지금 무진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궤도에 올라선 듯 보였다.무진과의 관계를 이용한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성실하게 출근하는 모습이 마치 진짜 뭐든지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조수경은 이렇게 해야만 강무진과 강운경의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또한 그래야만 두 사람이 자신을 진짜 믿게 될 거라는 것도.자신이 진짜 강무진과 강운경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조수경은 차를 운전하지 않고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다.그런데 회사에 막 도착하기 직전 조수경은 갑자기 나타난 인물에 의해 앞이 가로막혔다. 바로 조수경을 찾으러 북성에 온 손민철이었다.손민철을 본 조수경은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당신, 왜 여기에 있어요?”손민철이 점점 앞으로 다가서자 조수경은 두려운 듯 뒤걸음을 쳤다.조수경이 하는 양을 보던 손민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수경, 너 정말 날 비참할 정도로 모략했어. 게다가 하마터면 강무진이 나를 들이받게 할 뻔하고. 조수경, 너 도대체 목적이 뭐야?”손민철의 어조에는 힐난의 빛이 가득했다.조수경은 손민철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강무진 같은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어?’조수경이 눈살을 찌푸렸다.“손민철 씨,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요!”자신이 여기에 온 까닭을 결코 손민철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조수경의 말에 손민철이 순간 화를 냈다.사실은 조수경이 말한 것과 달랐다. 손민철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손민철이 조수경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그런데 조수경이 자신에 대한 손민철의 사랑을 이용한 것이다.손민철이 천리길을 마다하고 북성에 온 까닭은 오로지 조수경이 여기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조수경은 자신의 계획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다가선 손민철이 조수경을 구석에 가두었다. 눈에 짙은 분노를 띄며 말했다.“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데?
처음에는 조수경도 아주 격렬하게 저항했다.조수경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소리쳤다.“손민철, 당신 미쳤어? 빨리 나를 놓아줘.”조수경은 손민철의 몸 아래에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현격한 힘 차이 때문에 그대로 제압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자신이 도망칠 수 없음을 자각한 조수경은 발버둥을 포기했다. 심지어 손민철의 키스에 화답하기 시작했다.바뀐 조수경의 반응을 느낀 손민철의 동작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키스를 서서히 멈춘 손민철이 조수경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네가 진작 이렇게 내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너에게 그처럼 잘해 주었는데, 왜 항상 내 곁에서 도망가려고 해?”어차피 이미 지각에 주위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 조수경은 청순한 척하던 연기를 아예 포기하고 손민철을 향해 꿀 떨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생각해보면 손씨 집안도 내 야심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겠네요. 나 지금 WS그룹에서 일하고 있어요. 민철 씨와 같이 일을 진행해 볼 수도 있어요.”조수경의 음성에 손민철은 거의 녹아내릴 것 같았다.그러나 조수경의 말에 손민철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바로 조수경을 너무 믿었기에 오늘의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닌가.손민철은 조수경의 뺨을 쓰다듬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은 먼저 손민철의 어깨에 기대었다.“나를 위해서라면 얼마가 됐든 헌신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지금 내가 한 말도 못 믿으면서 어떻게 나를 위해 헌신한다는 거예요?”품에 아름다운 조수경을 안고 있지만 손민철은 끊임없이 속으로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를 터.손민철은 즉답을 피한 채 품에 안은 조수경의 머리카락을 희롱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느릿느릿 대답했다.“예전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많이 갖다 바쳤어도 네 눈에 안 들었어. 그런데 지금 나더러 어떻게 너를 믿으라는 거야?”손민철도 사실 속으로 무척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그 역시 조수경의 진
조수경은 짜증이 났지만 겉으로 웃었다. 더없이 유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처음엔 그다지 확신이 없었던 손민철도 이번에는 조수경에게 넘어가 화를 풀었다.손민철의 손이 조수경의 몸 위를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조수경이 손민철의 손을 붙잡았다.“조급하게 굴지 말아요. 나한테 처음 손을 대는 것도 아니잖아요?”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조수경을 본 손민철도 더 이상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바로 조수경을 자신의 품에 안은 채 떨떠름한 기색으로 말했다.“오늘 나 화 많이 났어! 말해 봐, 이제 어떻게 나한테 협력할 건지.”강무진의 명성이야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자신 또한 강무진보다 겨우 조금 못할 뿐이라 생각하는 손민철.자신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때, 아버지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바로 강무진의 이름이었다. 강무진을 자식들 교육의 교재로 삼은 것.강무진은 바로 전형적인 엄친아였다.‘이번에도 아버지는 강무진과 절대 부딪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지금 조수경의 말은 두 사람이 연합해서 강무진에게 맞서자는 거였다.정말 그렇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손민철은 판단하기 어려웠다.만약 실패한다면 손씨 가문 전체가 연루될 것이다.조수경이 바로 옆에서 제안했다.“내가 강무진의 회사에 들어갔어요. 시간은 좀 늦어지겠지만 내가 당신을 위해 일을 진행하면 손씨 가문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어요.”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손민철의 가슴도 두근거렸다.‘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강무진에게 맞서는 것도 아니야. 기껏해야 WS그룹과 관계된 거래처일 뿐.’‘손씨 가문은 이미 오랫동안 정체되어서 더 이상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어. 만약 WS그룹과 협력할 수만 있다면, 손씨 가문은 틀림없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거야.’손민철은 순식간에 흥미가 생겼다.“네 마음속에 대략적인 계획이 있어? 나한테 말해 봐, 내가 가능한지 한 번 볼게.”조수경은 손민철이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설사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손
성연은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많은 학점을 앞당겨 이수했다. 대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학교 교과과정과 관련된 기초 지식들에 대해서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지금 성연은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긴 휴가를 얻었지만 성연은 한동안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국내로 돌아가 무진과 함께 하는 것이다.자신의 학업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무진과 줄곧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은 상태였다.‘지금 이 시간에 무진 씨 곁에 편안하게 있는 것도 정말 좋을 거야.’기숙사 안.앨리스는 성연을 바라보면서 아쉬워했다. “과연 천재는 달라. 너 겨우 몇 달 만에 몇 년 동안의 학점을 다 이수했어. 너무 부러워. 앞으로 학교에서 너를 볼 수 없다니.” 앨리스는 성연을 안은 채 손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성연은 다른 사람이 몸에 닿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앨리스가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냥 참다 보니 성연의 결점이 뜻밖에도 서서히 고쳐진 것.물론 절대적으로 가까운 사람만 그렇다는 의미이다.성연은 앨리스의 팔을 토닥이며 위로했다.“겨우 일부 과정만 이수했는 걸. 곧다시 돌아올 거야.”“성연아, 휴가가 그렇게 긴데 뭐 할 거야?” 앨리스가 궁금해서 물었다.성연이 그래도 유럽에 있다면 자신이 자주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다음 순간 성연이 한 말은 앨리스를 실망하게 만들었다.“나는 A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야.”앨리스가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아! 너는 A국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럼 언제쯤이면 너를 볼 수 있을까?”성연이 앨리스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걱정 마, 금방이야. 아니면 내가 A국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네가 여름 방학을 맞아 날 보러 A국으로 오면 되지. 내가 널 데리고 같이 여기저기 안내해 줄게.”앨리스도 내내 A국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차에 지금 성연의 말은 그녀를 더없이 설레게 만들
성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여행은 됐어요. 지금은 그렇게 멀리 가고 싶지 않아요.”‘무진 씨 원래부터 내가 사형이랑 자주 함께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만약 사형과 여행을 간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화를 낼 지, 어휴.’목현수도 성연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강무진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목현수는 어두워진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성연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성연이 고개를 드니 마침 샤넬 양이 목현수의 옆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샤넬 양을 본 성연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좁혔다.매번 샤넬 양과 만날 때마다 즐거운 기억이 없었기 때문.또 샤넬 양이 사형의 몸에 레이더라도 장착했는지, 어떻게 매번 사형이 어디에 있는지 잘도 알고 찾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난번 그 일로 샤넬 양과 사형 사이가 틀어진 줄 알았는데, 지금 샤넬 양이 여기 나타난 걸 보면 두 사람이 화해했나?’성연은 샤넬 양을 보고도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현수 씨, 왜 나를 부르지 않고 몰래 나왔어?” 샤넬 양은 목현수를 타박하면서 말했다.“갑자기 일이 생겨서 잠시 여기에 왔을 뿐이야. 너를 부르면 메이크업도 해야 하고 치장도 해야 하는데 너무 귀찮잖아.” 목현수는 오히려 샤넬 양에게 냉담하게 대하지 않았다.말투도 아주 가볍고 부드러웠다.‘샤넬 양과 목현수의 관계가 이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보아하니 두 사람은 정말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연인 사이 같아.’‘그럼 내 존재도 이제 두 사람 사이에 별 상관없겠지?’성연은 옆에서 놀리듯이 말했다.“아이고, 엊그저께도 싸우는 것 같더니 이렇게 빨리 화해했네요? 서로 감정이 이렇게 좋은데, 언제 결혼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꼭 국수 먹으러 갈 거예요.”성연이 입을 열자 샤넬 양은 겨우 고개를 들고 성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미안해요. 성연 씨에게 지난번에 내가 무례하게 굴어서 정말 미안해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
성연은 식당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그래함과 유채연을 기다렸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성연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그래함이 유채연을 데리고 가더라도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유채연의 외삼촌이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그러나 유채연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채연을 데려간다면 그래함은 반드시 외삼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그래함은 유채연과 함께 돌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외삼촌이 그래함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염려해서, 유채연은 원래 그다지 외삼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유채연도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생각해보니 외삼촌은 아마 동의할 것 같아.’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채연의 외삼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외삼촌.” 유채연은 그래함의 뒤에 숨은 채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외삼촌은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어쩌다 내게 온정을 보이기도 했지만.’유채연도 외삼촌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외삼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토닥이면서 긴장을 풀고 모든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눈짓을 했다.“외숙부님.” 그래함이 유채연과 함께 외삼촌 맞은편에 앉았다.외숙부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외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험악판 표정을 지으며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당신 같은 조카는 없어.”그래함은 오히려 외삼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될 테니까 제가 외숙부님이라고 해야지요.”그래함의 말에 반박하려던 외삼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감에 가득 찬 유채연의 눈빛을 마주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외삼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래함을 쳐다보았다.“저는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더 잘 살 수 있게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
“나도 모르겠어.” 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이 옥노리개를 보고 유채연은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여전히 모든 걸 맡길 용기를 내지 못했다.“언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언니가 사형을 믿지 않는다면, 먼저 사형을 좀 지켜보다가 적당할 때 다시 승낙하면 돼요.” 성연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유채연을 너무 팽팽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의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어.’“하지만...”유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이건 언니하고 사형 두 사람의 일이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그래도 사형을 한번 만나보세요.” 성연은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언제 유채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합쳐진 옥노리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연이 마침내 용기를 냈다.“알았어. 그래함과 얘기해 볼게.”유채연도 그래함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말만 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야.’마침내 이 말을 듣자 성연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드디어 유채연을 설득한 것이다.“그래요. 언니에게 기회를 주고 그래함 사형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래도 고려해 봐야겠지요.” 성연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오늘 헛걸음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고마워.” 유채연은 손에 든 옥노리개를 꼭 쥐었다.‘만약 성연이가 내게 그렇게 많이 권하지 않았다면.’‘아마 그래함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비참해진 나한테 더이상 비참한 일은 없을 거야.’‘그러니 나도 한번 노력해보겠어.’“언니,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채연 언니가 사형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야.’“그럴게.” 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채연이 성연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성연은 그래함 때문에 사양했다.유채연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문을 열자, 그래함이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사형이 계속 이쪽의
성연이 보니 이제 때가 된 듯했다.그래서 유채연에게 그래함 얘기를 꺼냈다.“채연 언니, 사형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바로 언니 때문이에요. 사형은 바로 언니를 찾으려고 온 거죠. 사형이 언니한테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지 언니도 봤을 거예요. 사형은 정말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언니도 앞으로 결혼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요?”성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채연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다시피 했다.유채연에게는 전혀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유채연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래함에게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유채연이 또 눈물을 흘렸다.그래함의 찾아와서 유채연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자신은 이미 감히 그래함을 원할 수 없었다.성연은 유채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감정의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좋아하는데 그냥 함께 하면 돼잖아.’‘게다가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하지만 지금 채연 언니에게는 사형의 신분이 큰 문제야.’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미래가 정말 너무 막막할 거야.’성연이 갑자기 반쪽짜리 옥노리개를 꺼냈다.옥노리개를 본 유채연은 깜짝 놀라면서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이 옥노리개를 뜻밖에도 그래함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그래함 사형은 줄곧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줄곧 언니를 기다린 거예요.”유채연이 목에 차고 있던 다른 반쪽의 옥노리개를 이어 붙이자, 완전한 옥노리개가 되었다.흥분한 유채연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는 원래 그리움에 이 옥노리개를 남겨 두었을 뿐이야.’‘그동안 그래함도 나와 같은 생각일 줄은 전혀 몰랐어.’“그동안 그래함에게 정말 여자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유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