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의 병실 주변에는 경호원들로 가득했다. 이 모습에 심유진은 결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허태준의 비서가 병실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여형민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분은 누구십니까?"심유진은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당황했다.여형민도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간결하게 설명했다."여긴 심유진 사모님이세요."비서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여형민은 병실을 가리키며 물었다."대표님 지금 상태가 어때요?"비서가 어두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방금 수술실에서 나오셨습니다, 총알은 무사히 제거되었고 아직 의식은 없습니다.""총알이요?"심유진이 경악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결혼식에 참가한 것뿐이었다. 위험할 게 없었다.비서는 그들을 빈 병실로 이끌었다. 엿듣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허태서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이번 기회에 그를 제거하기 위해 총알을 쐈으나, 우연히 대표님이 대신 다치셨습니다."여형민이 눈썹을 비틀며 말했다."우연히 다쳤다고요? 확실합니까?"비서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말했다."네, 범인이 직접 자기 입으로 한 말입니다."우연히 잘못 쐈다는 말을 의심할 필요가 있었다."대표님 외에 다친 사람 있습니까?"여형민이 물었다."허태서 씨도 부상을 당했지만,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그럼 다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전부 호텔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따가 귀국할 예정입니다.""정소월은요?""정소월 씨는 호텔에 계십니다."여형민이 차갑게 웃었다."대표님의 생사가 오가는 마당에, 정소월은 모습도 비추지 않는다는 겁니까?"비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랑 유진 씨는 대표님 뵈러 가죠."여형민이 심유진에게 눈짓했다.허태준은 병원에서 가장 좋은 1인실에 누워있었다. 국내의 일반 병실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병실 안에는 하나밖에 없었다.허태준은 두 눈을 감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허태준은 많은 결점이 있었지만 심유진의 마음속에 그 사람은 항상 대단했고 강대했으며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언젠가 그가 허약한 상태로 병실침대에 누워 영양제를 주사하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뼈마디가 선명한 큰 손위에 덮었다.섬에는 일년 내내 여름이지만 허태준의 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가웠다.너무 차가워 심유진의 마음도 조금씩 아파왔다.오래동안 참았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방울 한 방울 새하얀 이불커버에 떨어져 짙은 눈물자국을 남겼다.그를 깨우게 될까 봐 심유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여형민은 문어구에 서서 문틈사이로 병실침대 변두리에서 흐느끼며 움직이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살며시 문잡이에 올려 두었던 손을 내렸다.이미 총을 쏜 킬러를 잡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경찰도 캐낸 정보가 없었다.허태준의 조수가 여형민에게 전달한 메세지도 킬러가 보디가드한테 잡혔을 때 자기 입으로 분 것들이었다.경찰의 유일한 공헌이란 범행현장에서 획득한 CCTV파일이었다.킬러는 처음에는 호텔의 직원으로 위장을 하여 인파속에 숨어있었다.허태서가 심유진의 팔을 안고 레드카펫을 지나 허태준의 옆에까지 왔을 때 킬러는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 허태서를 향해 쏜 것이다.하지만 총소리가 울렸을 때 쓰러진 것은 허태서 옆의 허태준이었다.사람들이 놀라있을 때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사면팔방에서 몰려와 킬러를 제압하고 허태준을 들어올려 인파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영상으로 봤을 때 이 사건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허태서가 킬러 앞을 지나갈 때 일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을 때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허태준이 쓰러진 후 장내 모든 사람들이 다음 타겟이 될까 봐 놀라 도망갔지만 킬러의 목표물이었던 허태서는 유난히 진정되어 보였다.심지어 허태준의 상처를 보는 여유까지 있었다;또한 그 킬러는 엉뚱한 사람을 죽여 놓고 선 허태서를 향해 총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심유진의 머리는 무거운 물건에 쿵하고 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아팠다.그녀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는 웅웅하는 소리만 들렸고 시선도 모호해졌다.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변하더니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침대위로 옮겨진 후였다.공기중에 소독약 냄새가 그녀가 아직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심유진은 목을 움직였다. 고개를 들자 옆침대에 누워있는 허태준이 보였다.그는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다. 생명이 없는 정교한 나무인형 같았다.심유진은 코끝이 시리더니 눈물이 났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드디어 안정을 찾았다.이불속에서 고개를 내미니 여형민도 있었다.그녀는 급히 손등으로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을 닦아내고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언제 왔어요?”“삼사 분 전에.” 여형민은 동정과 연민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부는 피부로 와닿는 것 같았다.”너무...슬퍼하지는 말아요. 의사도 그랬잖아요.태준이가 깨어날 확률은 크다고.”심유진은 일어나 앉고는 멍하니 허태준을 바라보았다.그의 이러한 모습은... 깨어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녀는 여형민처럼 낙관적일수 없었다.“휴…”여형민은 그녀의 침대 끝자락에 앉아 시험삼아 물었다.”사실은...태준이를 좋아하고 있죠?”허태준이 습격을 받은 이후로 심유진은 줄곧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가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여형민은 온전한 연애 한번 못해봤지만 그녀가 허태준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허태준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그녀가 그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여형민의 갑작스런 질문은 심유진을 멍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정곡이 찔려 고개를 숙였다. 여형민한테 이상한 모습을 들킬까 봐서였다.“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요?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그녀는 입만 살아서 반박했다.”불쌍하다고 생각할뿐이예요! 사촌 형의 결
심유진의 수면 품질에는 큰 개선이 있었다.거의 밤 11가 되면 피곤했고 눈을 감은지 이분도 안돼서 의식을 잃었다.그녀는 깊이 잠들었으며 꿈도 꾸지 않은 채 온밤을 잤다. 눈을 뜨면 날이 밝고 기분도 상쾌했다.하지만 이상한 것은 가끔씩 몸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처음에는 무의식간에 침범을 당했나 싶기도 했지만 병실밖에는 허태준의 보디가드들이 문을 지키고 있고 병실내에는 혼수상태인 허태준뿐이라 이런 가설은 성립되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과로하고 심지어... 욕망 때문이라 생각했다.필경... 그녀도 곧 서른이였으니까.**허태준의 상황이 어느정도 안정되자 심유진도 호텔로 돌아가 출근을 했다.그녀가 돌아간 첫날부터 허택양은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말을 걸려는 것보다 허태준의 정황을 묻기 위함이었다.“저랑 큰형님 모두 태준형을 걱정하고 있어요. 그날 상황이 너무 위급해 반응도 하기 전 보디가드들이 태준형을 데려갔더라구요. 나중에 병원에 가봤지만 보디가드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허택양은 멋쩍게 말했다.”그래서...태준형은 괜찮은 가요?”심유진은 여형민이 특별히 당부한 말들을 되새겼다. 침통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태준씨는...”일부러 연기할 필요는 없었다. 이 시각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허택양은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네?”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태준형이 그렇게 많이 다쳤나요?”심유진은 눈을 깜빡하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네.”그녀는 티슈 한 장을 뽑아 눈가를 닦고는 훌쩍이며 말했다.”의사가 한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요.”허택양은 이 소식을 소화하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고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태준이 형은 꼭 깨어날 거예요.”심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러길 바래야죠.”**심유진은 간만에 부문 매니저 특권을 사용했다. 앞으로의 한달동안 잔업근무를 안배하지 않았다.여섯 시 반만 되면 손
”정소월씨.”그녀는 정소월을 불렀다.정소월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말했다.”심유진씨?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그녀는 몹시 놀랐다.그녀의 질문은 심유진더러 웃음케 하였다.“제 남편이 안에 누워있는데 왜 여기에 있겠나요?”“남편이라니요!”정소월은 그녀를 흘겨보고 마땅치 않게 말했다.”태준씨는 이미 저한테 다 말해줬어요. 두사람은 분명히 계약 결혼이고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 뿐이라구요!”심유진은 멈칫했다.조금 의외였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허태준은 당연히 정소월과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했을 것이다. 아니면 정소월이 오해를 하면 또 첫사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꼴이 될 테니까.사람을 잃을 수는 있어도 싸움에서 질 수는 없었다.심유진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계약 결혼이라 하지만 저랑 태준씨는 결혼증명이 있어요. 제가 남편이라고 부르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남편이라 부르려면 불러요.”정소월은 그녀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그녀라는 정실부인을 눈에 두지 않는듯 말이다.”태준씨가 모르는 체하면 창피한 사람은 유진 씨예요.”“상관없어요. 어차피 지금 병실로 들어가지 못해 소리를 질러 망신 당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심유진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정소월 앞을 지나 씩씩하게 허태준의 병실로 들어갔다. 정소월은 화가 나 이를 깨물었다.심유진은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 큼직하고 듬직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다시 문어구를 막아나섰다.“다들 비켜!”정소월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미지고 뭐고 없이 정신이 나간 아줌마처럼 보디가드한테 발길질 하고 때리고 물기까지 하였다.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도 경호원들은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그들은 금방 그녀를 제압했다. 그 중 한 경호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한테 말했다.”아가씨. 떠나주셔야겠습니다. 허 대표님은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해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손님?”이 두 글자는 정소월을 또다시 자극했다.”내가 손님이라구요?
여형민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입을 벌린 채 동공은 커져갔다.“뭐... 뭐라구요?”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시선은 정소월의 얼굴을 따라 아래로 가 그녀의 불러오지 않은 배에 멈췄다.정소월은 배에 원을 그리면서 어루만졌다.”태준씨의 아이를 가졌어요.”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말투는 자랑스러웠다.여형민은 믿지 않았다.허태준은 절대로 그녀를 다쳤을 리가 없다.“정소월 씨, 임신을 하셨으면 병원에 다니지 마세요. 여기는 세균이 많고 임산부는 저항력이 낮아요. 아프면 큰일이예요.” 이 시각 그의 유일한 바램은 정소월을 돌려보내 심유진과 마주칠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심유진은 그와 달랐다. 정소월이 임신한 것을 알면 아이가 허태준의 아이일 거라 확신할 것이다.허태준이 깨어난다면 모든 것은 이미 늦어버린 뒤일 것이다.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이라 하였는가.심유진은 문고리를 잡으면서 아무 표정 없이 정소월한테 얘기했다.”정소월씨, 들어오세요.”그녀는 정소월이 허태준이 사고 난지 오래 되어서야 보러 오는 것이 괘씸했지만 정소월은 필경 허태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허태준이 깨어났다면 두말 않고 그녀를 용서했을 것이다.더욱이 정소월은 이미 허태준의 아이를 가졌다.심유진은 생각했다. 허태준은 정소월을 보고 싶을 것이라고.여형민은 두 눈을 크게 떴다.심유진이 그보다 한발 먼저 와있을 줄을 몰랐다.그렇다는 것은... 그와 정소월의 대화를 이미 다 들었다는 말인가?그의 가슴은 쿵쿵 뛰었다. 허태준이 깨어난 후 마주하게 될 후폭풍을 보는 것만 같았다.심유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경호원들도 조용히 한편으로 비켜 길을 냈다.허태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심유진의 말을 이렇게 잘 듣자 정소월은 화가 났다. 그들 곁을 지나갈 때 일부러 그들을 노려보았다.경호원은 못 본 척하고서 물끄러미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소월은 허태준의 몸에 엎드렸다.“태준씨!”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정소월은 동작을 멈추고 멍해서 물었다.”무슨 뜻이예요?”“뜻인즉슨 심하게 다쳐 아직 혼수상태예요. 24시간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해요.”심유진은 빠릿하게 자신의 짐을 캐리어에 넣고 말했다.”원래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이지만 정소월 씨가 왔으니 정소월 씨한테 맡길게요.”정소월은 심유진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잠깐만요!”그녀는 급급히 심유진을 멈춰 세웠다.”혼수상태라니 무슨 뜻이예요?”“말 그대로예요.”심유진은 그녀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해 뒤로 반발자국 물러나 옆으로 비켰다.“매일 몸을 한번씩 닦아주고 수염도 깎아주고 머리가 기름 지면 감겨주고 소변도 차면 바꿔야 하고 링거가 끝나면 간호사를 찾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구요. 모르겠으면 간호사한테 여쭤보세요. 그럼 이만.”심유진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말했다.”저희는 다시 보지 말아요.”정소월의 머리는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그렇게 많은 일을 하려니 무서웠다.“저는 임산부예요!”그녀는 당당하게 소리쳤다.”이런 일을 어떻게 제가 해요? 아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지실 건가요?”“내 아이도 아닌데 제가 무슨 책임을 져요?”심유진은 차갑게 대꾸했다.”내키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마세요. 정소월 씨도 말했다시피 저랑 허태준 씨는 계약 결혼이니 그 사람이 어떻게 되어도 저랑 상관이 없어요.”“...너!”정소월은 할 말이 없어졌다. 분하고 치가 떨렸다.심유진은 마음속 걱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떠났다.여형민은 문어구에 서있다가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자 막아나섰다.“진짜 가시게요?”그는 소리를 낮춰 물었다.“네.”심유진은 웃었다.”며칠동안 제가 보살폈는데 할 만큼 한 거죠.”여형민은 그녀를 잡고 싶었으나 상황이 이러하니 잡으려는 말도 하지 못했다.“이쪽은 제가 잘 마무리할게요.”그는 약속했다.”태준이는... 심유진 씨가 없으면 안돼요.”심유진은 비웃듯이 웃고는 말했다.”그 사람한
밤은 차가웠다.심유진은 허태준의 와인 셀러에서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와 한잔 가득 따랐다.두 고양이는 얌전히 그녀의 곁에 있었다. 눈을 감고선 골골 거렸다.와인 한모금을 마시고 고양이를 한번 쓰다듬었다.이런 생활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할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씁쓸하고 고독하기만 했다.종이 울렸다.여형민이었다.그는 들어서자마자 탁자위의 와인을 보았다.“무슨 좋은 일이기에 혼자서 술을 마시나요?”그는 놀렸다,심유진은 웃으면서 물었다.”같이 마실래요?”“좋지요.”여형민은 대답했다.심유진은 잔을 들고 와 반 잔을 따랐다.두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히고 원 샷을 했다.“본론을 얘기하죠.”심유진은 티슈 한 장을 뽑아 입가에 묻은 술방울을 닦아내고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뭐 좀 가지러 왔어요. 급하지 않으니 몇 잔 더 할 수 있어요.”여형민은 말하면서 두사람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심유진은 거절하지 않았다.누군가 그녀와 얘기를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이 집은 더이상 예전처럼 크고 허하지 않았다.술이 몇 잔 들어가니 그녀의 의식도 점점 모호해졌다.“여기 앉아있어요. 태준이 서재에 가서 뭐 좀 가져올게요.”여형민은 일어서더니 천천히 그녀의 시선에서 사라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돌아왔다.그리고 문서 하나를 펼쳐 그녀의 앞에 놓았다.“이, 이게 뭐예요?”심유진은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문서 안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다 겹쳐 보였다. 그녀는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한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여형민은 그녀에게 알려주었다.”태준이가 사전에 준비해 놓은 이혼 계약서예요. 제가 직접 작성했고 모든 조건은 유진씨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어요. 저를 믿는다면 여기에 사인을 하세요.”그는 심유진의 손에 펜을 쥐여주었다. 검지로 종이에 공백처를 가리켰다.심유진은 여형민이 왜 갑자기 이혼계약서를 꺼내 그녀에게 주는지 생각할 힘이 없었다.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그녀의 첫 반응은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