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허태준은 많은 결점이 있었지만 심유진의 마음속에 그 사람은 항상 대단했고 강대했으며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언젠가 그가 허약한 상태로 병실침대에 누워 영양제를 주사하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뼈마디가 선명한 큰 손위에 덮었다.섬에는 일년 내내 여름이지만 허태준의 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가웠다.너무 차가워 심유진의 마음도 조금씩 아파왔다.오래동안 참았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방울 한 방울 새하얀 이불커버에 떨어져 짙은 눈물자국을 남겼다.그를 깨우게 될까 봐 심유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여형민은 문어구에 서서 문틈사이로 병실침대 변두리에서 흐느끼며 움직이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살며시 문잡이에 올려 두었던 손을 내렸다.이미 총을 쏜 킬러를 잡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경찰도 캐낸 정보가 없었다.허태준의 조수가 여형민에게 전달한 메세지도 킬러가 보디가드한테 잡혔을 때 자기 입으로 분 것들이었다.경찰의 유일한 공헌이란 범행현장에서 획득한 CCTV파일이었다.킬러는 처음에는 호텔의 직원으로 위장을 하여 인파속에 숨어있었다.허태서가 심유진의 팔을 안고 레드카펫을 지나 허태준의 옆에까지 왔을 때 킬러는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 허태서를 향해 쏜 것이다.하지만 총소리가 울렸을 때 쓰러진 것은 허태서 옆의 허태준이었다.사람들이 놀라있을 때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사면팔방에서 몰려와 킬러를 제압하고 허태준을 들어올려 인파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영상으로 봤을 때 이 사건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허태서가 킬러 앞을 지나갈 때 일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을 때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허태준이 쓰러진 후 장내 모든 사람들이 다음 타겟이 될까 봐 놀라 도망갔지만 킬러의 목표물이었던 허태서는 유난히 진정되어 보였다.심지어 허태준의 상처를 보는 여유까지 있었다;또한 그 킬러는 엉뚱한 사람을 죽여 놓고 선 허태서를 향해 총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심유진의 머리는 무거운 물건에 쿵하고 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아팠다.그녀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는 웅웅하는 소리만 들렸고 시선도 모호해졌다.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변하더니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침대위로 옮겨진 후였다.공기중에 소독약 냄새가 그녀가 아직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심유진은 목을 움직였다. 고개를 들자 옆침대에 누워있는 허태준이 보였다.그는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다. 생명이 없는 정교한 나무인형 같았다.심유진은 코끝이 시리더니 눈물이 났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드디어 안정을 찾았다.이불속에서 고개를 내미니 여형민도 있었다.그녀는 급히 손등으로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을 닦아내고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언제 왔어요?”“삼사 분 전에.” 여형민은 동정과 연민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부는 피부로 와닿는 것 같았다.”너무...슬퍼하지는 말아요. 의사도 그랬잖아요.태준이가 깨어날 확률은 크다고.”심유진은 일어나 앉고는 멍하니 허태준을 바라보았다.그의 이러한 모습은... 깨어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녀는 여형민처럼 낙관적일수 없었다.“휴…”여형민은 그녀의 침대 끝자락에 앉아 시험삼아 물었다.”사실은...태준이를 좋아하고 있죠?”허태준이 습격을 받은 이후로 심유진은 줄곧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가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여형민은 온전한 연애 한번 못해봤지만 그녀가 허태준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허태준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그녀가 그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여형민의 갑작스런 질문은 심유진을 멍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정곡이 찔려 고개를 숙였다. 여형민한테 이상한 모습을 들킬까 봐서였다.“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요?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그녀는 입만 살아서 반박했다.”불쌍하다고 생각할뿐이예요! 사촌 형의 결
심유진의 수면 품질에는 큰 개선이 있었다.거의 밤 11가 되면 피곤했고 눈을 감은지 이분도 안돼서 의식을 잃었다.그녀는 깊이 잠들었으며 꿈도 꾸지 않은 채 온밤을 잤다. 눈을 뜨면 날이 밝고 기분도 상쾌했다.하지만 이상한 것은 가끔씩 몸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처음에는 무의식간에 침범을 당했나 싶기도 했지만 병실밖에는 허태준의 보디가드들이 문을 지키고 있고 병실내에는 혼수상태인 허태준뿐이라 이런 가설은 성립되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과로하고 심지어... 욕망 때문이라 생각했다.필경... 그녀도 곧 서른이였으니까.**허태준의 상황이 어느정도 안정되자 심유진도 호텔로 돌아가 출근을 했다.그녀가 돌아간 첫날부터 허택양은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말을 걸려는 것보다 허태준의 정황을 묻기 위함이었다.“저랑 큰형님 모두 태준형을 걱정하고 있어요. 그날 상황이 너무 위급해 반응도 하기 전 보디가드들이 태준형을 데려갔더라구요. 나중에 병원에 가봤지만 보디가드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허택양은 멋쩍게 말했다.”그래서...태준형은 괜찮은 가요?”심유진은 여형민이 특별히 당부한 말들을 되새겼다. 침통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태준씨는...”일부러 연기할 필요는 없었다. 이 시각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허택양은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네?”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태준형이 그렇게 많이 다쳤나요?”심유진은 눈을 깜빡하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네.”그녀는 티슈 한 장을 뽑아 눈가를 닦고는 훌쩍이며 말했다.”의사가 한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요.”허택양은 이 소식을 소화하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고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태준이 형은 꼭 깨어날 거예요.”심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러길 바래야죠.”**심유진은 간만에 부문 매니저 특권을 사용했다. 앞으로의 한달동안 잔업근무를 안배하지 않았다.여섯 시 반만 되면 손
”정소월씨.”그녀는 정소월을 불렀다.정소월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말했다.”심유진씨?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그녀는 몹시 놀랐다.그녀의 질문은 심유진더러 웃음케 하였다.“제 남편이 안에 누워있는데 왜 여기에 있겠나요?”“남편이라니요!”정소월은 그녀를 흘겨보고 마땅치 않게 말했다.”태준씨는 이미 저한테 다 말해줬어요. 두사람은 분명히 계약 결혼이고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 뿐이라구요!”심유진은 멈칫했다.조금 의외였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허태준은 당연히 정소월과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했을 것이다. 아니면 정소월이 오해를 하면 또 첫사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꼴이 될 테니까.사람을 잃을 수는 있어도 싸움에서 질 수는 없었다.심유진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계약 결혼이라 하지만 저랑 태준씨는 결혼증명이 있어요. 제가 남편이라고 부르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남편이라 부르려면 불러요.”정소월은 그녀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그녀라는 정실부인을 눈에 두지 않는듯 말이다.”태준씨가 모르는 체하면 창피한 사람은 유진 씨예요.”“상관없어요. 어차피 지금 병실로 들어가지 못해 소리를 질러 망신 당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심유진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정소월 앞을 지나 씩씩하게 허태준의 병실로 들어갔다. 정소월은 화가 나 이를 깨물었다.심유진은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 큼직하고 듬직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다시 문어구를 막아나섰다.“다들 비켜!”정소월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미지고 뭐고 없이 정신이 나간 아줌마처럼 보디가드한테 발길질 하고 때리고 물기까지 하였다.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도 경호원들은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그들은 금방 그녀를 제압했다. 그 중 한 경호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한테 말했다.”아가씨. 떠나주셔야겠습니다. 허 대표님은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해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손님?”이 두 글자는 정소월을 또다시 자극했다.”내가 손님이라구요?
여형민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입을 벌린 채 동공은 커져갔다.“뭐... 뭐라구요?”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시선은 정소월의 얼굴을 따라 아래로 가 그녀의 불러오지 않은 배에 멈췄다.정소월은 배에 원을 그리면서 어루만졌다.”태준씨의 아이를 가졌어요.”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말투는 자랑스러웠다.여형민은 믿지 않았다.허태준은 절대로 그녀를 다쳤을 리가 없다.“정소월 씨, 임신을 하셨으면 병원에 다니지 마세요. 여기는 세균이 많고 임산부는 저항력이 낮아요. 아프면 큰일이예요.” 이 시각 그의 유일한 바램은 정소월을 돌려보내 심유진과 마주칠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심유진은 그와 달랐다. 정소월이 임신한 것을 알면 아이가 허태준의 아이일 거라 확신할 것이다.허태준이 깨어난다면 모든 것은 이미 늦어버린 뒤일 것이다.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이라 하였는가.심유진은 문고리를 잡으면서 아무 표정 없이 정소월한테 얘기했다.”정소월씨, 들어오세요.”그녀는 정소월이 허태준이 사고 난지 오래 되어서야 보러 오는 것이 괘씸했지만 정소월은 필경 허태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허태준이 깨어났다면 두말 않고 그녀를 용서했을 것이다.더욱이 정소월은 이미 허태준의 아이를 가졌다.심유진은 생각했다. 허태준은 정소월을 보고 싶을 것이라고.여형민은 두 눈을 크게 떴다.심유진이 그보다 한발 먼저 와있을 줄을 몰랐다.그렇다는 것은... 그와 정소월의 대화를 이미 다 들었다는 말인가?그의 가슴은 쿵쿵 뛰었다. 허태준이 깨어난 후 마주하게 될 후폭풍을 보는 것만 같았다.심유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경호원들도 조용히 한편으로 비켜 길을 냈다.허태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심유진의 말을 이렇게 잘 듣자 정소월은 화가 났다. 그들 곁을 지나갈 때 일부러 그들을 노려보았다.경호원은 못 본 척하고서 물끄러미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소월은 허태준의 몸에 엎드렸다.“태준씨!”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정소월은 동작을 멈추고 멍해서 물었다.”무슨 뜻이예요?”“뜻인즉슨 심하게 다쳐 아직 혼수상태예요. 24시간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해요.”심유진은 빠릿하게 자신의 짐을 캐리어에 넣고 말했다.”원래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이지만 정소월 씨가 왔으니 정소월 씨한테 맡길게요.”정소월은 심유진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잠깐만요!”그녀는 급급히 심유진을 멈춰 세웠다.”혼수상태라니 무슨 뜻이예요?”“말 그대로예요.”심유진은 그녀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해 뒤로 반발자국 물러나 옆으로 비켰다.“매일 몸을 한번씩 닦아주고 수염도 깎아주고 머리가 기름 지면 감겨주고 소변도 차면 바꿔야 하고 링거가 끝나면 간호사를 찾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구요. 모르겠으면 간호사한테 여쭤보세요. 그럼 이만.”심유진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말했다.”저희는 다시 보지 말아요.”정소월의 머리는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그렇게 많은 일을 하려니 무서웠다.“저는 임산부예요!”그녀는 당당하게 소리쳤다.”이런 일을 어떻게 제가 해요? 아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지실 건가요?”“내 아이도 아닌데 제가 무슨 책임을 져요?”심유진은 차갑게 대꾸했다.”내키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마세요. 정소월 씨도 말했다시피 저랑 허태준 씨는 계약 결혼이니 그 사람이 어떻게 되어도 저랑 상관이 없어요.”“...너!”정소월은 할 말이 없어졌다. 분하고 치가 떨렸다.심유진은 마음속 걱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떠났다.여형민은 문어구에 서있다가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자 막아나섰다.“진짜 가시게요?”그는 소리를 낮춰 물었다.“네.”심유진은 웃었다.”며칠동안 제가 보살폈는데 할 만큼 한 거죠.”여형민은 그녀를 잡고 싶었으나 상황이 이러하니 잡으려는 말도 하지 못했다.“이쪽은 제가 잘 마무리할게요.”그는 약속했다.”태준이는... 심유진 씨가 없으면 안돼요.”심유진은 비웃듯이 웃고는 말했다.”그 사람한
밤은 차가웠다.심유진은 허태준의 와인 셀러에서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와 한잔 가득 따랐다.두 고양이는 얌전히 그녀의 곁에 있었다. 눈을 감고선 골골 거렸다.와인 한모금을 마시고 고양이를 한번 쓰다듬었다.이런 생활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할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씁쓸하고 고독하기만 했다.종이 울렸다.여형민이었다.그는 들어서자마자 탁자위의 와인을 보았다.“무슨 좋은 일이기에 혼자서 술을 마시나요?”그는 놀렸다,심유진은 웃으면서 물었다.”같이 마실래요?”“좋지요.”여형민은 대답했다.심유진은 잔을 들고 와 반 잔을 따랐다.두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히고 원 샷을 했다.“본론을 얘기하죠.”심유진은 티슈 한 장을 뽑아 입가에 묻은 술방울을 닦아내고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뭐 좀 가지러 왔어요. 급하지 않으니 몇 잔 더 할 수 있어요.”여형민은 말하면서 두사람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심유진은 거절하지 않았다.누군가 그녀와 얘기를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이 집은 더이상 예전처럼 크고 허하지 않았다.술이 몇 잔 들어가니 그녀의 의식도 점점 모호해졌다.“여기 앉아있어요. 태준이 서재에 가서 뭐 좀 가져올게요.”여형민은 일어서더니 천천히 그녀의 시선에서 사라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돌아왔다.그리고 문서 하나를 펼쳐 그녀의 앞에 놓았다.“이, 이게 뭐예요?”심유진은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문서 안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다 겹쳐 보였다. 그녀는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한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여형민은 그녀에게 알려주었다.”태준이가 사전에 준비해 놓은 이혼 계약서예요. 제가 직접 작성했고 모든 조건은 유진씨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어요. 저를 믿는다면 여기에 사인을 하세요.”그는 심유진의 손에 펜을 쥐여주었다. 검지로 종이에 공백처를 가리켰다.심유진은 여형민이 왜 갑자기 이혼계약서를 꺼내 그녀에게 주는지 생각할 힘이 없었다.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그녀의 첫 반응은 허
누가 기밀을 유출한 건지 “CY그룹 총재 허태준이 중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었다”라는 기사가 각 싸이트 메인에 떴다. 이로 인하여 CY의 주식은 하루새에 10%나 떨어졌다.심유진은 CY를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식이 터지니 허 씨 집안은 아마 발칵 뒤집혀 졌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그녀는 허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유진아 태준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니? 그 뉴스가 다 정말이니?”허 아주머니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심유진은 속이지 못했다.”...정말이예요.”전화기 너머에서는 몇 분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심유진은 허 아주머니의 점점 더 긴급하고 무거운 호흡을 들을 수 있었다.“태준이는...”허아주머니는 울먹이면서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니?”심유진은 병원주소와 병실번호를 알려주었다. 위로하는 말도 못했는데 허아주머니는 급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핸드폰을 서랍에 넣었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였다.문을 열자 집안은 환했다.심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심장이 순간 멈춘 것 같았다.하지만 이내 그녀는 신발장에 허 아주머니의 하이힐을 보았다.격동과 기쁨은 삽시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허아주머니는 고양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심유진이 돌아온 것을 보자 손안에 든 캔을 내려 놓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유진아, 이리 와서 앉으렴.”그녀는 심유진을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목소리는 쉬었고 두 눈은 빨갛게 부어 올랐다.아마 병원에서 울었을 것이다.“괜... 찮으세요?”심유진은 물으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괜찮아.”허아주머니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태준이가 목숨을 구한 것 만으로 만족해.”심유진은 안타까워 허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사실 내가 온 것은 너랑 태준이의 일을 상의하기 때문이란다.”허 아주머니는 웃음을 거두고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오늘에야 알게 되었구나. 정소월이 태준이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허 아주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