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월이 그녀의 다리를 짓누른 탓에 심유진의 휴가는 무한정으로 연장되었다.하지만 화로 인해 복을 얻는다 하였는가, 허태준은 더는 정소월을 데려오지 않았다.심유진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집에 가만히 앉아 티비를 보고 핸드폰을 노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허아주머니가 날씨가 좋을 때마다 그녀를 데리고 집 아래를 산책하지 않았으면 그녀는 무료해서 죽어버렸을 것이다.이날 점심 후 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데리고 집 아래 광장에서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이 시간에는 광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노인네들뿐이었다. 심유진 나이대의 젊은이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허아주머니도 다른 분들과 자주 만나 안면이 터 앉아 있을 때 얘기도 할 수 있었다.“친딸이에요?”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심유진을 가리키며 허아주머니에게 물었다.허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며느리예요. 친딸처럼 친해요.”심유진은 가슴이 따뜻해졌고, 햇볕을 쬐는 것보다 더 좋았다.“네.”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허아주머니와 집안 얘기를 더 나누었다.십여 분이 지나 핑크색 패딩을 입은 여자아이가 바람처럼 아주머니 앞으로 달려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소리쳤다.”할머니 나 목말라!”아주머니는 보온병을 열어 아이에게 건넸다.”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물을 마시자 아이는 또 바람처럼 뛰어갔고, 다른 아이들과 광장 중심에 있는 미끄럼틀을 기어올라갔다.아주머니는 아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안전하게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보온병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허아주머니가 물었다.”애들을 혼자 보세요?”아주머니는 대답했다.”네. 애 아빠랑 엄마가 다 바쁘기도 하고 계속 외지로 출장을 가게 되어서 애를 볼 시간이 아예 없어요. 집에 도우미를 부르자니 뉴스에 도우미가 애들을 학대한다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볼 수밖에요. 그래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유치원에 가니까 거기는 선생님이 돌봐주잖아요. 저는 주말 이틀만 좀 고생하면 돼요.”“네.”허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
허 아주머니는 일이분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심유진한테 물어보았다.”유진아,너랑 태준이, 언제 애를 가질 생각이니?”그리고는 급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들이 빨리 애를 가지라는 게 아니야.오해는하지 말고!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때 가서 미리 준비라도 할 수 있게.”허 아주머니의 모습은 심유진까지 미안하게 하였다.“그게...태준씨랑 의논한 적이 없어서요.”심유진도 심유진이지만 그녀와 허태준은 각자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계약결혼을 한 사이일 뿐이였다. 애시당초 아기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허 아주머니와 말씀 드릴수는 없어서 미루었을 뿐이다.허 아주머니는 실망스레 손을 비볐다.”그래.” **허 아주머니는 오늘 여기에서 오래 머물렀다.평소대로라면 해볕을 쪼이고는 돌아가셨는데 지금은--심유진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을 보고 불안해졌다.다른 게 아니라--허태준이 또 정소월을 데리고 올가봐여서였다.다른 때에 정소월을 집에 데려오는 것은 괜찮았다--자기 세뇌를 거친 후 심유진은 더 이상 그들 둘 사이의 친밀함 때문에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허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만일 서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그녀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녀는 허태준한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어머님이 집에 오셨어요.저녁 드시고 가실 건가 봐요.”허태준은 간단하게 답장했다.”OK”표정만 하나 보냈다. **아마도 허아주머니가 계셨기 때문인지 허태준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오늘은 퇴근이 빠르구나.”허아주머니는 문을 열자마자 허태준을 봐서 놀랐다.“유진이가 와계신다고 하길래 같이 밥 먹으려고 일찍 돌아왔어요.”허태준은 이쁜 말을 했다.허아주머니는 그의 얼굴을 만지면서 칭찬했다.”역시 내 아들이야!”허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심유진은 소파에 앉아 그들 모자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무심결에 웃음꽃이 피었다.“유진아 태준이 왔다. 밥 먹자~”허 아주머
허태준은 심유진을 주방까지 안고 왔다. 그리고 그녀를 그녀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사실 그의 집 주방에는 누구의 자리라는 것이 없었다. 다들 앉고 싶은 대로 앉았었다. 하지만 허 아주머니는 소녀같은 마음이 있으신 분이라 원래는 귀찮아서 간섭하려 하지 않았지만 매일 이리로 오시니 많은것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아무 포인트도 없는 가구들이었다.집안에 더 사람 냄새가 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장식품을 샀다. 집안 곳곳에서 허 아주머니의 장식품들을 볼 수 있다.허태준의 집에 책상과 걸상은 모두 목재였다. 여름에는 편안했지만,겨울이 되면 추웠다.허 아주머니는 의자마다 털이 보들보들한 애니 의자 방석을 깔아놓았다.그리고는 매개인의 자리까지 규정하였다.심유진은 토끼,허태준은 곰,허 아주머니 자신은 허 아저씨가 절대 기르지 못하게 하는 고양이였다.허태준은 집안의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꾸미신 것이니 그는 원망할수가 없었다.심유진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이런 것들을 배치하면서 허 아주머니와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허 아주머니는 일찌감치 저녁 준비를 끝마쳤다. 허태준을 기다리기 위해 음식이 식지 말라고 반찬마다 반찬 덮개를 덮어놓았다.허태준은 일일이 반찬 덮개를 열고 밥을 퍼담기 시작했다.허 아주머니의 자리는 주방과 마주하고 있어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주방에서 움직이는 허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름이 놓였다.“우리 태준이가 사람을 참 잘 챙겨.”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을 향해 눈을 찡그렸다. “마누라가잘 가르쳐준 덕분이지.”심유진은 고개를 숙였다.얼굴은 빨개졌다.그리고는 허태준을 위해 변명을 했다.”태준씨는 늘 사람을 잘 챙겼어요.”“너라서 그래.”허 아주머니는 입을 삐죽거렸다.그리고는 다른 얼굴을 하고는 화가 나서 말했다.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이런 일은 다 하인을 시켰지.”허태준은 밥 두 공기를 가져왔다.그리고는 심유진과 허 아주머니 앞에 놓았다.그는 차갑게 허
저녁을 먹고 나서도 허 아주머니는 떠날 생각이 없었다.심유진이 휴양을 해야 하므로 매일 밤 여덟 시 반이면 침대에 올라가서 잤다. 1분이라도 늦으면 허태준이 화를 냈다.그녀가 눕자 허 아주머니는 티비를 껐다. 빈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허태준을 향해 손을 까딱했다.”와서 앉아. 엄마가 할 얘기가 있어.”허태준은 의혹스러워하며 가서 앉았다.“왜요?”“너랑 유진이 언제 아기를 가질 거니?”허 아주머니는 직접적으로 물었다.허태준은 아무 심리 준비도 없어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 저희는 애를 안 가질 거예요.”이것은 엄숙한 분위기였고 신중한 대화였다.그는 좀 더 기다렸다가, 가족들이 심유진을 받아들이면 그때 얘기하려고 했다.그때 가서는 그들이 불만족스러워도 그더러 심유진을 포기하라고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허 아주머니가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낼 줄 몰랐다.그는 허 아주머니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허 아주머니가 이 때문에 심유진한테 의견이 생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제가 원하지 않아요.” 그는 책임을 전부 자신한테 돌렸다.“왜?!”허 아주머니는 놀랐다.”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아니?!”“알고 있어요.” 허 아주머니의 격동에 비해 허태준은 평온하였다.“저는 애들이 싫어요.”그는 말했다. ”너무 시끄러워요.”“너는 아직 너무 어려!” 허 아주머니는 머리를 저었다.”니 아버지도 옛날에 너랑 같은 생각이었어. 애들이 시끄럽고 장난쳐서 머리가 다 커지겠대! 하지만 너처럼 극단적이진 않았지. 나랑 상의를 해서 늦게 애를 갖자고 했지. 나는 동의하는 척하고 나중에 바늘로 콘돔에 구멍을 내서 너를 가졌어. 니가 갖 태어났을 때는 원숭이처럼 못생겨서 나도 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하지만 너희 아버지는--”무슨 생각 했는지 허 아주머니는 푸흡하고 웃었다.”매일 니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었지. 니가 울면 바로 안아서 달랬어. 너보다 더욱 인내심 있었지! 젖 먹이는 건 할수가 없으니,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켜주고 재우고 하는 건
허 아주머니가 간 후 허태준은 홀로 거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그는 당연히 허 아주머니가 한 말이 홧김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진짜로 관계를 끊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허 아주머니는 허태준이 말을 듣지 않으면 심유진을 꼬드길 것이다.그는 심유진과 미리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아침을 먹으면서 허태준은 심유진을 찔러보았다. ”요 며칠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어?”심유진은 놀랐다. ”태준 씨와도 얘기하셨어요?”“응.”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얘기했어요?”심유진은 급급하게 물었다.어제 아무 말도 안 했으니 망정이지 허태준의 이유와 맞물리지 않다면 어머님이 의심하실것이다.“애를 안 좋아하니 안 갖겠다고 했어.” 허태준은 말했다.심유진은 더 놀랐다.아무리 생각해도 허태준이 모든 것을 감당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그의 용기에 박수라도 날리고 싶었다.“어머님이 뭐라세요? 타협하셨어요?”“아니.” 허태준은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너를 꼬드기려 할 거야. 아무튼 뭐라 하든 내가 아이를 안 갖겠다고 했다 그래. 너도 날 설득하지 못했다고.”심유진은 머그잔을 잡았다. 따뜻한 우유의 온도는 머그잔을 통해 그녀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 그녀는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혼 할건데 몇 년 지나서 아이를 갖는다고 하지... 그럼 지금부터 화를 내시진 않을 거아니예요.”“내가 말했지--”허태준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는 경고가 숨어있었다. ”이혼 하지 않을 거야. 너도 이런 생각을 더는 하지 마.”“칫.”심유진은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이혼을 안 했기 때문이잖아요? 태준씨가 이혼을 안 한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붙잡고 명분 하나 안 줄 건가요?”허태준은 그녀와 이런 화제를 토론하기 싫었다.그는 컵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 커피를 다 마셨다. 혀도 데여
”사모님, 분부대로 물건을 다 놓았습니다.”“네.” 허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돌아가세요.”그들이 떠난 후 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데리고 주방에 왔다.“이게 내가 베이킹할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란다.” 허 아주머니는 소개했다. ”그리고 밀가루랑 크림이랑 식재료들.”그녀는 주방안에 오븐을 보고 말했다. ”허태준이 집에 인테리어를 하면서 오븐을 놓았는데지금 여기서 삼사 년 살았지, 새것 봐라 쯧쯧쯧.”심유진은 더 말하려는것을 참았다. 오븐뿐이겠어요,주방에 모든 물건이 다 새것 그대로인데. ** 며느리와의 식후활동은 집 아래에서 산책하고 햇볕을 쪼이는것에서부터 베이킹을 하는것으로 바뀌었다.심유진은 요리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허 아주머니가 가르치기만 하면 다 잘했다.첫 번째 케이크는 태웠지만 두 번째 케이크는 허 아주머니가 한 것마냥 완벽해 허 아주머니는 한참을 칭찬했다.금방 시작했기에 허 아주머니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고 크림 케이크부터 시작했다.휘핑크림을 만드는 것에는 애를 썼지만,성과는 좋았다.케이크에 크림을 잘 바르고 꽃 같지 않은 꽃을 만들어 얹은 후 수습용으로 과일을 올렸다.심유진은 다 만든 케이크를 한입 먹었다. 밖에서 파는 것 못지않았다. **생활이 충실해지니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다.눈 깜빡 할 사이에 해는 이미 저물었다.밥때가 되자 심유진은 허 아주머니를 저녁 드시고 가라고 했지만 허 아주머니는 굳이 가겠다고 했다.허 아주머니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그 불효 자식을 보고 싶지 않다!”심유진은 생각했다. 아마 어제 저녁에 허태준과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이렇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허태준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심유진이 누구랑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 안고파?우유 줄까?”“어쩜 이렇게 예쁘지~”“너무 귀엽다!”말투가 너무 부드러워 그는 질투 날 지경이다.눈에 어두운 빛이 지나갔다. 그는 재빨리 신을 갈아신고 큰 걸음으로 거실로
심유진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다친 다리를 들어 상처가 더 심해지는 걸 방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무릎을 바닥에 심하게 부딪혀 심유진은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허태준도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심유진을 보고 숨을 멈췄다. 당황스러움과 공포감이 그를 덮쳤다. 허태준이 고양이를 내려놓고 얼른 심유진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심하게 넘어졌어?” 허태준이 다급히 물어보며 붕대를 감은 다리를 살폈다. “다리는 안 아파? 상처 다시 벌어진 거 아니야?” 심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안 아파요. 괜찮아요.” 허태준이 대문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심유진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뭐해요?” “병원 가려고.” “병원에 왜 가요! 저 진짜 괜찮아요!” 순간 심유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고양이도 놀랐는지 울음소리를 내더니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재빨리 빠져나갔다. “고양이 도망갔어요! 얼른 찾아와요!” 허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딴 고양이가 당신 다리보다 중요해?” 심유진은 고양이가 멀리 나갔을까 봐 조급해져서 울음이 날 지경이었다. “중요해요. 그러니까 빨리 내려줘요! 빨리 찾아야 돼요!” 심유진은 허태준을 힘껏 때리며 문밖을 내다봤다. 허태준은 심유진을 쏘파에 내려놓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여기 가만히 있어. 쏘파에서 일어나지 말고. 아니면 고양이 찾아와도 던져버릴 거니까.” “절대 안 나갈 테니까 빨리요.” 허태준은 그제야 집문을 나섰다. 그는 2분도 안 돼서 고양이를 손에 든 채 돌아왔다. 심유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심유진은 허태준을 향해 손을 뻗으며 고양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허태준은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아 일부러 고양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고양이...” 심유진이 허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줘.” 허태준은 옆에 놓인 1인용 쏘파에 앉았다. 심유진과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이미 시간도 늦었으니까, 내일이 되어야 고양이를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심유진이 손을 꼼지락 대면서 말했다. “오늘 밤만 같이 놀아도 될까요?” 심유진의 조심스러운 말투에 기대가 잔뜩 묻어있었다. 허태준은 고양이를 심유진 품에 안겨줬다. “딱 오늘 밤까지만 이야.” “만약 얘가 집을 더럽히기라도 하면 바로 던져버릴 거야.”“그럴 리가 없어요!”심유진이 고양이를 품에 감싸며 말했다. 허태준이 일어나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저녁은 먹었어?”“먹었어요.” 심유진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점심에 어머님이 가져온 반찬이 좀 많더라고요. 저녁에 마저 데워 먹었어요.” “그럼 나는?”갑작스러운 질문에 심유진이 당황했다. “네?” “난 뭐 먹냐고.” 심유진은 그제야 허태준이 먹다 남은 반찬을 또다시 먹는 걸 싫어한다는 게 생각났다. “음...” 심유진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냉장고에 얼마 전에 어머니가 보내준 만두도 있고 제가 만든 케이크도 있어요.” “직접 만든 케이크라고?” 허태준이 조금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네, 어머니가 어제 가르쳐준 대로 해봤는데 맛이 괜찮더라고요. 단거 싫어하면 조금만 잘라서 먹어봐요.” 심유진은 자신의 솜씨에 자신이 있었다. 허태준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허태준이 뭘 하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모든 신경이 눈앞의 이 귀염둥이한테 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돼. 알겠지?” 심유진이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톡톡 치면서 혼을 내는 척했다. “아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고양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손가락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심유진은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점점 더 돌려보내기 싫어졌다. 반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허태준이 거실로 나왔다. 심유진은 여전히 고양이한테 정신이 팔려 허태준 쪽을 쳐다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