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간도 늦었으니까, 내일이 되어야 고양이를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심유진이 손을 꼼지락 대면서 말했다. “오늘 밤만 같이 놀아도 될까요?” 심유진의 조심스러운 말투에 기대가 잔뜩 묻어있었다. 허태준은 고양이를 심유진 품에 안겨줬다. “딱 오늘 밤까지만 이야.” “만약 얘가 집을 더럽히기라도 하면 바로 던져버릴 거야.”“그럴 리가 없어요!”심유진이 고양이를 품에 감싸며 말했다. 허태준이 일어나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저녁은 먹었어?”“먹었어요.” 심유진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점심에 어머님이 가져온 반찬이 좀 많더라고요. 저녁에 마저 데워 먹었어요.” “그럼 나는?”갑작스러운 질문에 심유진이 당황했다. “네?” “난 뭐 먹냐고.” 심유진은 그제야 허태준이 먹다 남은 반찬을 또다시 먹는 걸 싫어한다는 게 생각났다. “음...” 심유진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냉장고에 얼마 전에 어머니가 보내준 만두도 있고 제가 만든 케이크도 있어요.” “직접 만든 케이크라고?” 허태준이 조금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네, 어머니가 어제 가르쳐준 대로 해봤는데 맛이 괜찮더라고요. 단거 싫어하면 조금만 잘라서 먹어봐요.” 심유진은 자신의 솜씨에 자신이 있었다. 허태준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허태준이 뭘 하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모든 신경이 눈앞의 이 귀염둥이한테 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돼. 알겠지?” 심유진이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톡톡 치면서 혼을 내는 척했다. “아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고양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손가락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심유진은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점점 더 돌려보내기 싫어졌다. 반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허태준이 거실로 나왔다. 심유진은 여전히 고양이한테 정신이 팔려 허태준 쪽을 쳐다보지도
아기 고양이는 심유진의 품을 떠나자 불안해 보였다. 낯선 환경에서 심유진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고양이는 쏘파 구석에 몸을 숨기고 울기만 했다. 바들바들 떠는 고양이를 보며 허태준은 그날 응급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심유진이 떠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작은 몸이 따뜻한 온기를 내뿜으며 허태준의 손을 덥혀줬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행동을 따라 하며 천천히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허태준은 불과 몇 분 만에 이 작은 존재로 인해 자신의 마음도 많이 따뜻해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는 저도 모르게 심유진과 고양이가 겹쳐 보였다. 어쩌면 고양이를 남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샤워를 마치고 거실도 뛰어나왔다. 하지만 거실은 걱정과는 달리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다. 허태준은 TV채널을 이리저리 넘기고 있었고 고양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사고 안 쳤죠?” 심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쳤어.” 허태준의 대답에 심유진은 그제야 안심했다. 심유진은 조심스레 고양이를 들어 올리고 케이지에 넣은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잘 자라고 인사해 줬다. “저도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심유진이 방문을 열려는 찰나 허태준이 말했다. “그렇게 돌려보내기 싫으면 그냥 남겨둬도 돼.” “뭐라고요?” 심유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허태준은 TV를 끄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맨날 심심하다고 귀찮게 굴까 봐 그러는 거야.” “대신...” “나 결벽 심한 거 알지.”심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서 털 한 가닥도, 아무런 배설물도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알아서 잘해.” “그럼요! 제가 꼭 잘 챙길게요!” 심유진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러던지.” 허태준이 말했다. 다음날, 허태준 어머니는 고양이가 아무 탈 없이 쏘파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자기 아들 성격이라면 이미 고양이를 죽이고도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고 달걀을 꺼내려고 하다가 한참을 냉장고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심유진에게 물었다. “어제 케이크는 다 먹었어?” “아니요.” 심유진이 휠체어에 탄 채 냉장고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한 조각만 먹고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어제 태준 씨가 저녁을 안 먹고 들어와서 아마 조금 먹었을걸요.” “그럼 남은 건?”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확인했다. 케이크를 제외하고는 냉장고 안의 모든 재료가 어제 그대로였다. 심지어 쓰레기통에서조차 케이크의 잔해를 찾지 못했다. 이 미스터리는 허태준이 집에 돌아와서야 풀렸다. “케이크? 내가 먹었어.” “다 먹었다고요?” 심유진이 놀라서 물었다.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느끼하지 않았어요?” 심유진은 단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그 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어도 느끼했다. 게다가 허태준은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겠던데? 배고팠나 보지 뭐.” 그리고 그다음 날, 심유진은 전날에 만들어서 넣어둔 에그타르트 6개가 또 깔끔하게 사라진 걸 발견했다. 역시나 허태준이 먹은 것이었다. “저녁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배가 안 불러서.” 세 번째 날도, 네 번째 날도... 상황은 여전히 똑같았다. 나중에 심유진은 아예 디저트를 만들고 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아니라 식탁에 올려뒀다. 이러면 허태준이 재차 가열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허태준 어머니는 매일 찾아와서 심유진에게 베이킹을 가르쳐주는 동시에 허태준이 고양이에 대한 태도도 물어봤다. “태준이는 고양이랑 잘 지내?” “나쁘지 않아요.” 심유진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허태준은 이제 고양이를 던져버리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가깝게 지내지 않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이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다음 단계를 진행해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저녁에 다른 일정 있니?”
어차피 어머니도 허태준이 꼭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기에 심유진도 딱히 강요하지 않았다. “토요일에 아이한테 줄 케이크 만들어야 하니까 태준 씨 몫까지 만들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요. 저녁 꼭 잘 먹고 들어와요.” 요즘 매일 저녁 디저트를 먹는 허태준이 생각나 심유진이 신신당부했다. 허태준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줄 시간은 있고 날 위해 만들 시간은 없어?” “아이가 이번에 돌이래요. 선물로 케이크를...” “내가 케이크 하나 사 갈 테니까 당신이 만든 건 나한테 줘.” 허태준이 명령했지만,심유진은 대꾸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은 심유진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 있었다. “돌아와서도 고양이 보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아, 알겠어요. 태준 씨 것도 만들게요.” 심유진이 얼른 대답했다. 허태준은 오랜만에 고양이를 다리에 올려놓은 채 자상하게 털을 쓰다듬어 줬다. 태준 어머니는 허태준이 식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어도 딱히 놀랍지 않았다. 허태준이 자신을 잘 알고 있듯 그녀 역시 허태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심유진이 얘기하면 조금 져주지는 않을지 기대를 걸어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가게 할 방법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돌잔치는 로열호텔에서 진행됐다. 식탁이 네 개밖에 없는 방이었다. 돌잔치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모임 정도의 분위기였다. 어머니가 다 한 가족이니 긴장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 “한 가족”의 범위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보였다. 바로 심연희였다. 심연희는 붉은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어깨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대부분 편하게 입고 온 자리에 과하게 격을 차린 모습이 위화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정장을 빼입은 정재하가 보였다. 심연희는 정재하의 팔짱을 낀 채 그 형식적인 웃음을 띠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정재하는 내내 무표정으로 어딘가 넋이
“그래도 삼촌인데 참석은 못하더라도 선물은 보내야지.”어머니는 겸손하게 얘기했지만,표정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러 찾아왔다. 얘기가 아니라 아부를 떨려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그때 중년 부부 한 쌍이 이쪽으로 걸어왔다.“안녕하세요, 허 사모님.”“정 사장님, 정 사모님. 안녕하세요.”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어머님이 심유진에게도 그들을 소개했다.“이쪽은 태하 그룹의 정준성 사장님이시고 이쪽은 사모님이셔.”태하그룹이 어떤 회사인지 심유진도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눈앞의 이 두 분이 정재하의 부모님일 것이다. 정재하가 마침 이쪽을 쳐다봤다. 심유진과 눈이 마주치자,그가 바로 예의 있게 미소를 지었다. 심유진도 같이 미소로 화답했다.심연희는 그 눈 맞춤을 어두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정재하를 끌고 심유진 쪽으로 다가왔다.“어머님, 아버지.”심연희가 정준성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그 둘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냉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심연희는 입술을 깨물더니 심유진 옆으로 다가와서 애교스럽게 불렀다.“언니~”이 호칭에,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유진이가 동생이 있었더라?”허태준 어머니가 물었다. 요즘 거의 날마다 심유진과 함께 있었으나 한 번도 동생 얘기를 꺼내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심연희는 긴장해하며 심유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웃음마저 경직되는 것 같았다.“저희 이모 딸이에요.”심유진이 담담하게 얘기했다.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연희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허태준 어머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에 심유진의 자신의 이모를 사영은 이라고 소개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지금 심유진을 언니라고 부르는 이 여자애가 바로 심 씨네 집안의 딸, 어쩌면 그때 파혼한 그 계집애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정재하 부모님도 이 바닥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상대했던 터라 허태준 어머니의 감정변화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
“언니는 진짜...”심연희는 눈빛에 자책과 속상함이 가득했다. 심유진이 어떡하면 이 “우애 깊은 자매”를 연기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휠체어가 자동으로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 얘기하면 허태준 어머니가 휠체어를 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휠체어에 기대 있던 심연희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정재하가 빠르게 심연희를 부축했다.“죄송해요.”허태준 어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며느리랑 저쪽에 아이도 좀 보러 가야 해서요. 나중에 또 얘기하죠.”정재하 부모님도 인사를 나눴다.“그래요. 나중에 뵐게요.”거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정준성이 차가운 눈길로 정재하를 바라봤다. 정재하는 고개를 숙이고는 심연희의 손을 꽉 잡으며 낮게 말했다.“이만 가자.”심연희는 멀어져 가는 심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정재하는 심연희를 방안의 어느 한구석에 데리고 왔다. 모두 오늘의 주인공 아니면 이 자리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허태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느라 그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우린 먼저 가자.”정재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안돼!”심연희의 반응이 격했다.“난 안 가!”“연희야!”정재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는 심연희의 눈물에 또 마음이 약해졌다.“내 말대로 하자. 응? 여기 뭐 재밌는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잖아. 저번에 가고싶다던 레스토랑 지금 갈까? 어때?”“싫어!”심연희의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정재하는 그 모습이 마음 아팠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주며 가볍게 볼에 입을 맞췄다.“울지 마.”정재하는 이제 심연희를 달래기 시작했다.“우리 가족들이랑 친해지고 싶은 건 알겠지만 이렇게 급해할 필요는 없어. 여차하면 경주에 돌아와서 일해도 되고.”심연희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하지만 내 사업은 이제 시작인걸…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로 승진할지도 몰라…“정재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뭔가 괜찮은 방안이 떠올랐는지 말을 꺼냈다.
지안이의 엄마인 정은결이 고개를 들고는 기뻐하며 대답했다. “이모!” 허태준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벌렸다. “나도 한번 안아보자.” 자애로운 눈길이 정은결 품에 안겨있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정은결이 아이를 넘겨주며 말했다. “지안아, 이모할머니한테 한번 안길까?” 지안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도 울지 않는 순한 아이였다. 허태준 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부둥부둥 달랬다. “지안아, 할머니 알아보겠어? 아이고,울지도 않고 너무 착하네.” 심유진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오늘 허태준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얼른 아이를 가져야 한다며 재촉할 게 뻔했다. 심유진이 한창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정은결이 입을 열었다. “유진 씨는 태준 오빠랑 언제 아이 가질 생각이세요?” 허태준 어머니가 행동을 멈추고 심유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심유진은 어김없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저희는 결혼한 지도 얼마 안 돼서 아마 아직도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혼한지 얼마 안된게 무슨 큰 문제라고.“ 허태준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은결이도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애 가졌어. 지안이 좀 봐, 얼마나 귀여워!” 심유진은 더 이상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허태준 어머니의 동생도 말을 보탰다. “태준이 좀 잘 설득해 봐요. 결혼도 늦었는데 아직도 애 가질 생각이 없으면 어떡해. 나이도 제일 많은 애가 제일 늦으니까,동생들도 다 따라가지. 그래도 우리 연명이는 결혼도 하고 애도 가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허태준 어머니야말로 마음이 조급했지만 차마 심유진 앞에서 자기 아들을 욕보일 수는 없었다. ”다 큰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무슨 잔소리를 그렇게 해.” 어머니가 일부러 쿨한 척 대답했다. “아이고, 너희 시어머니 쿨한 척하는 것 좀 봐. 말은 이렇게 해도 손주 보고 싶어 죽으려 하신다. 그러니까 얼른 손주
지안이는 오늘 외출해서부터 지금까지 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근데 지금 처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리자 즐겁게 얘기를 나누던 주위 어른들이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특히는 지안이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손주가 왜 이럴까? 배가 고픈가?” 정은결이 웃음을 참으면서 지안이를 살짝 째려봤다. “아니에요, 제가 안는 게 싫은가 봐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정은결이 심유진을 바라봤다. “유진 씨가 좋은가 봐요. 그나저나 저한테도 이렇게까지 붙어있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질투가 날 지경이네요.” 심유진은 조금 쑥스러웠지만 지안이가 계속 울자 다급히 지안이를 다시 안았다. 신기하게도 심유진이 안자마자 지안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는 다시 그 똘똘한 눈을 깜빡이며 심유진을 쳐다만 봤다. “지안이가 유진 씨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얼른 하나 낳아야겠어.” 심유진은 입을 앙다물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척했다. 심유진이 웃으며 지안이를 부르자 지안이가 대답이라도 하듯이 방긋 웃었다. 허태준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때 마침 허태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지 한데 몰려있었다. 허태준은 어머니가 보낸 문자가 생각나 발걸음을 다그쳤다. “잠시 비켜주시겠어요?” 인파를 비집고 그 사이로 들어가자,아이를 안은 채 환히 웃고 있는 심유진이 보였다. 그 장면이 너무 사랑스러워 허태준은 멍하니 쳐다만 보며 발걸음을 옮길 생각도 못 했다. “허태준?” 누군가 허태준을 알아봤다. “태준아, 오늘 못 온다며.” “바쁜 일은 다 마무리한 거야?” 모두 허태준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 소란스러움에 허태준은 머리가 아파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두 가족들이었으니 낯선 사람을 대하듯 차갑게 굴어서는 안 됐다. 허태준은 예의상 웃어 보이며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어머니 곁으로 올 수 있었다. “유진이가 넘어졌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