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고 달걀을 꺼내려고 하다가 한참을 냉장고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심유진에게 물었다. “어제 케이크는 다 먹었어?” “아니요.” 심유진이 휠체어에 탄 채 냉장고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한 조각만 먹고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어제 태준 씨가 저녁을 안 먹고 들어와서 아마 조금 먹었을걸요.” “그럼 남은 건?”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확인했다. 케이크를 제외하고는 냉장고 안의 모든 재료가 어제 그대로였다. 심지어 쓰레기통에서조차 케이크의 잔해를 찾지 못했다. 이 미스터리는 허태준이 집에 돌아와서야 풀렸다. “케이크? 내가 먹었어.” “다 먹었다고요?” 심유진이 놀라서 물었다.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느끼하지 않았어요?” 심유진은 단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그 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어도 느끼했다. 게다가 허태준은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겠던데? 배고팠나 보지 뭐.” 그리고 그다음 날, 심유진은 전날에 만들어서 넣어둔 에그타르트 6개가 또 깔끔하게 사라진 걸 발견했다. 역시나 허태준이 먹은 것이었다. “저녁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배가 안 불러서.” 세 번째 날도, 네 번째 날도... 상황은 여전히 똑같았다. 나중에 심유진은 아예 디저트를 만들고 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아니라 식탁에 올려뒀다. 이러면 허태준이 재차 가열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허태준 어머니는 매일 찾아와서 심유진에게 베이킹을 가르쳐주는 동시에 허태준이 고양이에 대한 태도도 물어봤다. “태준이는 고양이랑 잘 지내?” “나쁘지 않아요.” 심유진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허태준은 이제 고양이를 던져버리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가깝게 지내지 않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이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다음 단계를 진행해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저녁에 다른 일정 있니?”
어차피 어머니도 허태준이 꼭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기에 심유진도 딱히 강요하지 않았다. “토요일에 아이한테 줄 케이크 만들어야 하니까 태준 씨 몫까지 만들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요. 저녁 꼭 잘 먹고 들어와요.” 요즘 매일 저녁 디저트를 먹는 허태준이 생각나 심유진이 신신당부했다. 허태준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줄 시간은 있고 날 위해 만들 시간은 없어?” “아이가 이번에 돌이래요. 선물로 케이크를...” “내가 케이크 하나 사 갈 테니까 당신이 만든 건 나한테 줘.” 허태준이 명령했지만,심유진은 대꾸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은 심유진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 있었다. “돌아와서도 고양이 보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아, 알겠어요. 태준 씨 것도 만들게요.” 심유진이 얼른 대답했다. 허태준은 오랜만에 고양이를 다리에 올려놓은 채 자상하게 털을 쓰다듬어 줬다. 태준 어머니는 허태준이 식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어도 딱히 놀랍지 않았다. 허태준이 자신을 잘 알고 있듯 그녀 역시 허태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심유진이 얘기하면 조금 져주지는 않을지 기대를 걸어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가게 할 방법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돌잔치는 로열호텔에서 진행됐다. 식탁이 네 개밖에 없는 방이었다. 돌잔치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모임 정도의 분위기였다. 어머니가 다 한 가족이니 긴장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 “한 가족”의 범위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보였다. 바로 심연희였다. 심연희는 붉은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어깨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대부분 편하게 입고 온 자리에 과하게 격을 차린 모습이 위화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정장을 빼입은 정재하가 보였다. 심연희는 정재하의 팔짱을 낀 채 그 형식적인 웃음을 띠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정재하는 내내 무표정으로 어딘가 넋이
“그래도 삼촌인데 참석은 못하더라도 선물은 보내야지.”어머니는 겸손하게 얘기했지만,표정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러 찾아왔다. 얘기가 아니라 아부를 떨려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그때 중년 부부 한 쌍이 이쪽으로 걸어왔다.“안녕하세요, 허 사모님.”“정 사장님, 정 사모님. 안녕하세요.”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어머님이 심유진에게도 그들을 소개했다.“이쪽은 태하 그룹의 정준성 사장님이시고 이쪽은 사모님이셔.”태하그룹이 어떤 회사인지 심유진도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눈앞의 이 두 분이 정재하의 부모님일 것이다. 정재하가 마침 이쪽을 쳐다봤다. 심유진과 눈이 마주치자,그가 바로 예의 있게 미소를 지었다. 심유진도 같이 미소로 화답했다.심연희는 그 눈 맞춤을 어두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정재하를 끌고 심유진 쪽으로 다가왔다.“어머님, 아버지.”심연희가 정준성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그 둘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냉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심연희는 입술을 깨물더니 심유진 옆으로 다가와서 애교스럽게 불렀다.“언니~”이 호칭에,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유진이가 동생이 있었더라?”허태준 어머니가 물었다. 요즘 거의 날마다 심유진과 함께 있었으나 한 번도 동생 얘기를 꺼내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심연희는 긴장해하며 심유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웃음마저 경직되는 것 같았다.“저희 이모 딸이에요.”심유진이 담담하게 얘기했다.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연희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허태준 어머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에 심유진의 자신의 이모를 사영은 이라고 소개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지금 심유진을 언니라고 부르는 이 여자애가 바로 심 씨네 집안의 딸, 어쩌면 그때 파혼한 그 계집애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정재하 부모님도 이 바닥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상대했던 터라 허태준 어머니의 감정변화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
“언니는 진짜...”심연희는 눈빛에 자책과 속상함이 가득했다. 심유진이 어떡하면 이 “우애 깊은 자매”를 연기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휠체어가 자동으로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 얘기하면 허태준 어머니가 휠체어를 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휠체어에 기대 있던 심연희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정재하가 빠르게 심연희를 부축했다.“죄송해요.”허태준 어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며느리랑 저쪽에 아이도 좀 보러 가야 해서요. 나중에 또 얘기하죠.”정재하 부모님도 인사를 나눴다.“그래요. 나중에 뵐게요.”거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정준성이 차가운 눈길로 정재하를 바라봤다. 정재하는 고개를 숙이고는 심연희의 손을 꽉 잡으며 낮게 말했다.“이만 가자.”심연희는 멀어져 가는 심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정재하는 심연희를 방안의 어느 한구석에 데리고 왔다. 모두 오늘의 주인공 아니면 이 자리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허태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느라 그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우린 먼저 가자.”정재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안돼!”심연희의 반응이 격했다.“난 안 가!”“연희야!”정재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는 심연희의 눈물에 또 마음이 약해졌다.“내 말대로 하자. 응? 여기 뭐 재밌는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잖아. 저번에 가고싶다던 레스토랑 지금 갈까? 어때?”“싫어!”심연희의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정재하는 그 모습이 마음 아팠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주며 가볍게 볼에 입을 맞췄다.“울지 마.”정재하는 이제 심연희를 달래기 시작했다.“우리 가족들이랑 친해지고 싶은 건 알겠지만 이렇게 급해할 필요는 없어. 여차하면 경주에 돌아와서 일해도 되고.”심연희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하지만 내 사업은 이제 시작인걸…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로 승진할지도 몰라…“정재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뭔가 괜찮은 방안이 떠올랐는지 말을 꺼냈다.
지안이의 엄마인 정은결이 고개를 들고는 기뻐하며 대답했다. “이모!” 허태준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벌렸다. “나도 한번 안아보자.” 자애로운 눈길이 정은결 품에 안겨있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정은결이 아이를 넘겨주며 말했다. “지안아, 이모할머니한테 한번 안길까?” 지안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도 울지 않는 순한 아이였다. 허태준 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부둥부둥 달랬다. “지안아, 할머니 알아보겠어? 아이고,울지도 않고 너무 착하네.” 심유진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오늘 허태준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얼른 아이를 가져야 한다며 재촉할 게 뻔했다. 심유진이 한창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정은결이 입을 열었다. “유진 씨는 태준 오빠랑 언제 아이 가질 생각이세요?” 허태준 어머니가 행동을 멈추고 심유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심유진은 어김없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저희는 결혼한 지도 얼마 안 돼서 아마 아직도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혼한지 얼마 안된게 무슨 큰 문제라고.“ 허태준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은결이도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애 가졌어. 지안이 좀 봐, 얼마나 귀여워!” 심유진은 더 이상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허태준 어머니의 동생도 말을 보탰다. “태준이 좀 잘 설득해 봐요. 결혼도 늦었는데 아직도 애 가질 생각이 없으면 어떡해. 나이도 제일 많은 애가 제일 늦으니까,동생들도 다 따라가지. 그래도 우리 연명이는 결혼도 하고 애도 가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허태준 어머니야말로 마음이 조급했지만 차마 심유진 앞에서 자기 아들을 욕보일 수는 없었다. ”다 큰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무슨 잔소리를 그렇게 해.” 어머니가 일부러 쿨한 척 대답했다. “아이고, 너희 시어머니 쿨한 척하는 것 좀 봐. 말은 이렇게 해도 손주 보고 싶어 죽으려 하신다. 그러니까 얼른 손주
지안이는 오늘 외출해서부터 지금까지 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근데 지금 처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리자 즐겁게 얘기를 나누던 주위 어른들이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특히는 지안이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손주가 왜 이럴까? 배가 고픈가?” 정은결이 웃음을 참으면서 지안이를 살짝 째려봤다. “아니에요, 제가 안는 게 싫은가 봐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정은결이 심유진을 바라봤다. “유진 씨가 좋은가 봐요. 그나저나 저한테도 이렇게까지 붙어있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질투가 날 지경이네요.” 심유진은 조금 쑥스러웠지만 지안이가 계속 울자 다급히 지안이를 다시 안았다. 신기하게도 심유진이 안자마자 지안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는 다시 그 똘똘한 눈을 깜빡이며 심유진을 쳐다만 봤다. “지안이가 유진 씨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얼른 하나 낳아야겠어.” 심유진은 입을 앙다물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척했다. 심유진이 웃으며 지안이를 부르자 지안이가 대답이라도 하듯이 방긋 웃었다. 허태준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때 마침 허태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지 한데 몰려있었다. 허태준은 어머니가 보낸 문자가 생각나 발걸음을 다그쳤다. “잠시 비켜주시겠어요?” 인파를 비집고 그 사이로 들어가자,아이를 안은 채 환히 웃고 있는 심유진이 보였다. 그 장면이 너무 사랑스러워 허태준은 멍하니 쳐다만 보며 발걸음을 옮길 생각도 못 했다. “허태준?” 누군가 허태준을 알아봤다. “태준아, 오늘 못 온다며.” “바쁜 일은 다 마무리한 거야?” 모두 허태준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 소란스러움에 허태준은 머리가 아파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두 가족들이었으니 낯선 사람을 대하듯 차갑게 굴어서는 안 됐다. 허태준은 예의상 웃어 보이며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어머니 곁으로 올 수 있었다. “유진이가 넘어졌다면서
모두가 와서 싸움을 말렸다. 어머니는 허태준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결국 손을 놓았다. 심유진은 방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몰라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허태준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심유진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봐요, 당신 조카예요.” 심유진이 지안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허태준은 지안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못생겼어.” 아이 엄마가 앞에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허태준 때문에 심유진은 당황해서 다급히 정은결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태준 씨는 그런 뜻이 아니라...” 정은결도 몹시 당황했다. 정확히 말하면 불쾌했다. 하지만 상대가 허태준이었기에 기분이 나빠도 얘기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원래 신생아 때는 다 못생겼거든요. 저랑 애 아빠도 못생겼다고 막 놀리고 그랬어요.” 심유진은 당연히 이게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허태준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이 말을 보탰다. “봐, 친부모도 못생겼다 하는 거 보면 진짜 못생긴 거네.” 정은결은 이제 표정 관리도 하기 힘들었다. 심유진은 마음속으로 허태준을 욕하며 눈짓으로 그만 말하라고 눈치 줬다. “지안이가 얼마나 예쁜데요.” 심유진이 지안이를 바라보며 얼굴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 눈을 좀 봐요. 똘망똘망하니 얼마나 예뻐요. 피부는 또 얼마나 좋고요! 크면 무조건 여자아이들이 환장하는 미남일걸요.” 심유진은 예의상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허태준은 지금 심유진 품에 있는 아이가 우리 둘의 아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 기대를 하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어머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를 안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허태준이 언젠가는 후회할 거라 생각하며 어머니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재하와 심연희가 떠나려고 할 때 그들은 다급히 들어오는 허태준을 마주쳤다. 심연희는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오빠, 태준오빠한테 유독 관심이 많네?” 정은결이 웃으면서 일부러 정재하를 놀렸다. “관심 있는 거 아냐?” 정재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기는.” “아니 방금 진짜 그래 보였다니까.” “넌 애 엄마라는 사람이 어쩜 아직도 그러냐. 애가 보고 따라 배울까 봐 무섭다.” 정재하가 동생을 가르치려 들 때 심연희는 또 심유진 쪽에 찰싹 달라붙었다. “언니도 경주에 잠깐 머물렀다가 가는 거야?” “아마도?” 심유진이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심유진도 확답을 주기 어렵긴 했다. 다시 발령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연희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허태준은 지안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저도 안아봐도 돼요?” 심연희가 정은결에게 물었다. “그럼요.” 정은결이 시원하게 대답했다.“근데 지안이가 울지도 몰라요.”정은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연희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심연희의 품에 안기자마자 지안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심연희는 그 울음소리에 당황해서 하마터면 아이를 바닥에 떨어트릴 뻔했다. 정은결도 더 이상 심연희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아 재빨리 지안이를 받아 안았다. 정은결은 마음속의 불만을 간신히 삼키고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안이는 유진 누나만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럼,제가 조금 더 안고 있을까요?” 심유진이 손을 뻗었다. “아니에요.” 정은결은 더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았다. “한참 안고 있었는데 좀 쉬셔야죠. 전 지안이 우유 좀 먹이고 올게요.” 정은결이 아이를 안고 떠나자,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졌다. “재하야, 잠깐 나 좀 보자.” 정준성이 불렀다. 낯빛을 보아하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닌 듯싶었다. 정재하는 노심초사하며 그를 따라나섰다. “방금 연희 데리고 나가지 않았니? 왜 아직 여기 있어?” “제가 데리고 왔어요. 허 대표님이랑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