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걔 데리고 이런 자리 참석하지도 마!” 정준성이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떴다.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트릴 뻔한 탓에 모두 심연희를 질책하고 원망하는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심연희는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심유진에게 불쌍한 척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언니,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심연희는 심유진에게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허태준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에 하는 말이었다. “알아.” 심유진은 담담하게 대답할 뿐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허태준의 반응은 더욱 냉담했다. 허태준은 심연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연희는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던지 핏줄마저 튀여 나와있었다. “언니, 대표님이랑 언제 엄마 아빠 보러 올 거야?” 심연희가 다시 심유진 곁에 앉아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얘기를 하면서도 심연희는 계속 허태준의 눈치를 살폈다. “안가.” 심유진은 매정하게 그 손을 빼내며 차갑게 말했다. “연희야, 너희 가족들이 나한테 했던 짓들 난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이미 주위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기에 심유진도 더 이상 좋은 언니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난 이제 영원히 그 집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니까 나를 이용해서 뭔가 해볼 생각 하지 마.” 심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심연희는 살을 꼬집으며 억지로 눈물을 흘렸다. “언니, 지난번 일은 정말 나랑 아무런 관계도 없어.” 아직도 변명을 해대는 모습을 보며 심유진은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 “정말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너도 잘 알 거야. 물론 나도 잘 알고 있고. 네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파악했으니까 연기 그만해. 나도 당하고만 사는 멍청한 놈 아니야. 항상 너한테 맞춰줄 수도 없고.” 심연희는 아직도 발악하고 있었다. “언니, 정말 오해야...” “됐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허태준이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끼어들었다. “시끄러워. 라임 엔터처럼 되고
사람들은 이런 가정사를 듣기 좋아하기 마련이다. 다들 하던 얘기를 멈추고 이쪽을 주목했다. 따가운 시선이 등 뒤로 느껴졌다.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 심유진이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 “오늘은 기쁜 자리니까 이런 일로 흥을 깨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 하지만 심연희는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심연희는 심유진이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자리 아니면 언제 언니를 만날 수 있겠어?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받고 집에 찾아가도 문도 안 열어주고.” 또 눈물을 흘리려는 심연희를 보며 심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타협했다. “그래, 굳이 얘기하고 싶은 거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왜 그래야 돼? 그냥 다들 듣는 데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되지.” 심연희는 오늘 꼭 심유진이 시어머니의 친척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 싶었다. 심유진이 시어머니에게 사랑받는 모습도 꼴 보기가 싫었다. 정재하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심유진에 대한 미움이 더욱 커졌다. “무슨 시비를 가린다는 거지?” 정적 속에서 허태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여기가 법원도 아니고 누구도 가정사를 해결해 줄 수 없어요.” 허태준 어머니가 나서서 얘기하자 심연희는 당황했다. 그냥 심유진이 시어머니와 사이가 악화되기를 바랐을 뿐 자신이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연희는 아직도 자신이 그 집 며느리가 되는 날을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심연희가 얼른 사과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아무 소리나 막 했네요.” 심연희가 불쌍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한평생 심연희 같은 인간들을 많이 봐왔었다. “정 사모님.” 허태준 어머니가 뒤에 숨어있던 정재하 어머님을 불렀다. “미래에 집안 며느리가 될 애인데 좀 관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남 잔치에 와서 뭔 행패
“우리 엄마 화나신 거 안 보여?” 정재하의 말투가 매우 차가웠다. “당연히 보이지!” “근데 언니랑 대화가 아직 안 끝났어. 난 못 가.” “너 이게 어떤 자리인지 알기나 해? 근데 너희 언니랑 있었던 일을 왜 여기서 해결하려고 하는 거냐고.” 정재하는 이쯤 되니 심연희가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헷갈렸다. “좀 눈치 있게 행동할 수는 없어?” 정재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당황한 건 심연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정재하는 한 번도 자신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다.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거야?” 심연희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정재하도 금방 마음이 약해져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랬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아서 순간 욱했나 봐.” 그의 스트레스는 모두 부모님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들은 한 번도 심연희와의 교제를 인정해 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정재하가 하고 있는 사업도 위기가 가득했다. 부모님 몰래 투자했던 항목들을 모두 손해를 봤고 저축해 놓은 돈도 곧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심연희는 계속 자신이 데리고 있는 bj들에게 선물을 보내달라 하고 명품 옷이며 가방을 사달라고 졸라대니 돈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심연희에게 털어놓기에는 자신이 너무 무능력해 보일 것 같았다. 심연희는 한참을 울고는 겨우 진정했다. 정재하는 심연희에게 맹세했다. “내가 꼭 언니랑 만날 수 있게 도와줄게.” 심연희가 떠났지만,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다들 억지로 맞춰주기만 할 뿐 저도 모르게 심유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다행인 건 허태준 어머니가 심유진을 대하는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재하 부모님은 심유진을 찾아와 사과까지 건넸다. “우리 아들이 데려온 손님인데 당연히 저희가 사과해야죠.” 심유진은 그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누가 봐도 그들 역시
허태준 어머니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심유진은 한숨 돌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태준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운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내는 심유진을 백미러로 보며 허태준도 여러 번 입꼬리를 올리긴 했다. “어머니한테 귀찮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저런 자리에 나서질 마.” 허태준이 얘기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심유진도 다시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참이었다. “근데 지안이가 귀엽긴 했어요. 잔소리 들은 보람이 있네요.” “왜, 애 가지고 싶어졌어?” 심유진은 빠르게 부정했다. “아니요!” 다른 집 아이와 놀아주는 거랑 자신이 아이를 가지는 건 완전히 딴판이라는 걸 심유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서 심유진은 항상 신중했다. 허태준은 실낱같은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필 이때 심유진은 눈치 없이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어머님은 정말 손주를 보고 싶으신 것 같더라고요.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얼른 저랑 이혼하고 정말 사랑하는 아내 만나서 손주 안겨드리세요.” 허태준은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그건 내 일이니까 신경 꺼.” “네.” 심유진이 낮게 대답했다. 거의 집에 도착할 때쯤 허태준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차량 스피커와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던 탓에 정소월의 다급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태준아, 허태서가 또 찾아왔어. 벨 누르고 있는데 나 너무 무서워. 빨리 와줘.” 심유진은 당황했지만,아무것도 못 들은 척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무서워하지 마.” 허태준이 정소월을 달랬다. “금발 갈게. 일단 끊고 조금 있다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안 끊으면 안 돼?” 정소월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네 목소리 듣고 싶어.”
허태준은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명령했다. “조용.” 허태준은 심유진을 집에 데려다준 후 곧장 정소월이 사는 곳으로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집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앞에 발자국이 몇 개 찍힌 것이 보였는데 그 크기를 보아하니 남자 발자국이 분명했다. 허태준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정소월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왔으니까 문 열어.” 2분 후 대문이 열렸다. 허태준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정소월이 뛰쳐나오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정소월은 허태준을 꼭 안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태준아, 드디어 왔구나.” 정소월의 눈물이 허태준의 셔츠를 적셨다. 허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줬다. “괜찮아, 이미 갔어.” 정소월은 한참을 흐느끼다가 진정했다. 허태준은 집 안으로 들어온 뒤 따뜻한 물을 한 컵 따라서 정소월에게 건넸다. 그리고 허태준은 정소월의 옆에 십 센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정소월은 아직도 몸을 떨고 있었다. 눈가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이 아직도 고여있었다. 정소월이 물을 한입 마시고는 말했다. “이 집 위치를 그 사람이 이미 알아버렸어. 이젠 안전하지 않아.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여기에서 지낼 수는 없어.”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하려고 사둔 집이 몇 채 있어. 내일 한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서 살아.” “태준아...” 정소월이 허태준의 손을 잡았다. 입꼬리가 축 처진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내가 어디로 가던 허태서가 쫓아올 거야. 그리고 또 찾아올 거고.” 허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녀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계속 곁에 있어 주면 안 돼?” 정소월은 다시 한번 허태준을 안았다.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제발. 나 너무 무서워.” 허태준이 정소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계속 옆에 있을 수는 없어,그렇게 무서우면 보디가드를 붙여줄게.” “다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허태준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녀와 입술이 닿기 전에 그는 이미 손으로 정소월의 입을 막았다. 정소월은 입술에 차가운 손바닥이 닿자 당황해하며 눈을 떴다. 그녀는 한참 상황을 파악하더니 허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결벽증이 있어서.” 허태준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잖아, 스킨십 잘 못하는 거.” 허태준이 스킨십을 싫어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직 정소월에게만 손을 잡는 행동이나 포옹 등이 허락되어 있었다. 정소월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그 결벽증도 많이 호전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똑같은 상황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심유진이랑은...” 정소월이 줄곧 신경 쓰고 있던 문제를 물어봤다. 비록 허태준이 심유진에게 별 감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부부이니 일정한 스킨십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했어.” 허태준이 정소월을 달래는 투로 말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각방 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정소월이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널 왜 속여.” 허태준이 웃었다. 하지만 그 깊은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태준은 그날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심유진은 전혀 놀랍지도 않았다. 냉장고에는 심유진이 어제 만들어 놓은 망고 케이크가 손도 안 댄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결국은 심유진의 아침 메뉴가 되어버렸다. 심유진이 케이크를 막 한술 뜨려고 할 때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유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허태준이 들어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점심을 가져다주러 허태준 어머니가 오셨다고 하기에는 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심유진은 포크를 내려놓고 휠체어에 탄 채 거실로 갔다.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심유진의 물음에 어머니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양이 간식 좀 사 왔어. 일찍 와서 보고 싶더라고.” 심유
어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됐어, 오늘도 새로운 메뉴에 한 번 도전해 볼까?” “좋아요!” 심유진의 주의력도 금방 다른 곳으로 이전됐다. 둘은 오후까지 내내 바삐 돌아쳤고 어머니는 휠체어를 끌고 산책도 시켜주셨고 함께 낮잠도 잤다. 허태준은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대에 돌아왔다. 현관 쪽에 낯선 신발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허태준은 단번에 그것이 어머니의 신발임을 알아봤다. 거실의 불은 켜져 있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허태준은 주방으로 직행했다. 역시나 두 사람 모두 싱크대 앞에서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심유진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심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말투가 매우 따뜻했다. 어머니 앞에서 심유진은 다정한 아내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어.” 허태준이 대답하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뭐 하고 있어?” “어머님이 닭을 한 마리 사 오셨어요. 그래서 삼계탕 만드는 방법 배우고 있었어요.”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없으니까 나가.” 허태준의 말에 어머니가 차갑게 대답했다. 허태준과 심유진 모두 얼음장 같은 그 태도에 놀랐지만,아이에 관한 일로 아직도 분이 덜 풀렸겠다고 생각하며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허태준은 여기에 있어봤자 화만 더 낼 것 같아 주방에서 나갔다. 심유진은 분위기가 확 다운된 것 같은 느낌에 아까보다 목소리도 낮췄다. 어머니는 칼로 닭을 거칠게 손질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이 기회에 화를 표출하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차마 말을 걸지도 못하고 그냥 요리에 필요한 물건들이나 제때 가져다드렸다. “됐어, 도마 한번 씻어주면 돼.” 심유진은 도마를 씻으며 그 위에 깊게 파인 칼자국들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뒤처리했다. 저녁은 금방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심유진에게 먼저 식탁에 앉아있으라고 말한 뒤 완성한 음식들을 하나둘 식탁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밥을 풀 때 어머니는 두 그릇만
어머니와 허태준이 서재로 들어갔다. 심유진이 걱정돼서 따라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가 막아섰다. “유진아, 이건 모자지간에 해야 할 얘기야. 너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서재의 문이 굳게 닫히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이 크게 혼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허태준은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서재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평온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뭐라고 하셔도 전 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는 더욱 화가 나서 서재에 꽂혀있는 책을 아무거나 집어서 허태준에게 던졌다. “내가 지금 아이 일로 널 부른 줄 알아?” 허태준이 멈칫했다. 그걸 제외한다면 어머니가 화를 낼 이유가 뭐가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소월이랑 붙어있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었지.” “근데 어젯밤에 뭐 하러 갔어.” 어머니가 또 손에 잡히는 대로 허태준에게 던졌다. 이래야만 자신의 화가 풀릴 것 같았다. 허태준은 날렵하게 그 책을 받아 안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젯밤에 정소월이랑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 심유진이 말했을까? 하지만 아까 심유진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엄마 앞에서 어제 정소월이랑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누가 말해줘야 알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찌나 높았던지 밖에 있던 심유진까지 그 소리를 들었다. “인터넷에 너랑 정소월 기사가 쫙 깔렸어. 얼굴까지 확실하게 찍혔다고. 근데 네가 감히 나한테 거짓말을 하려고 해?” 허태준이 당황했다. 오늘 내내 일에 집중하느라 인터넷 기사는 확인하지 못했다. 직원들도 허태준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아무리 큰 스캔들이 떠도 허태준에게 얘기해 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과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걸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애초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