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 어머니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심유진은 한숨 돌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태준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운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내는 심유진을 백미러로 보며 허태준도 여러 번 입꼬리를 올리긴 했다. “어머니한테 귀찮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저런 자리에 나서질 마.” 허태준이 얘기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심유진도 다시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참이었다. “근데 지안이가 귀엽긴 했어요. 잔소리 들은 보람이 있네요.” “왜, 애 가지고 싶어졌어?” 심유진은 빠르게 부정했다. “아니요!” 다른 집 아이와 놀아주는 거랑 자신이 아이를 가지는 건 완전히 딴판이라는 걸 심유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서 심유진은 항상 신중했다. 허태준은 실낱같은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필 이때 심유진은 눈치 없이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어머님은 정말 손주를 보고 싶으신 것 같더라고요.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얼른 저랑 이혼하고 정말 사랑하는 아내 만나서 손주 안겨드리세요.” 허태준은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그건 내 일이니까 신경 꺼.” “네.” 심유진이 낮게 대답했다. 거의 집에 도착할 때쯤 허태준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차량 스피커와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던 탓에 정소월의 다급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태준아, 허태서가 또 찾아왔어. 벨 누르고 있는데 나 너무 무서워. 빨리 와줘.” 심유진은 당황했지만,아무것도 못 들은 척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무서워하지 마.” 허태준이 정소월을 달랬다. “금발 갈게. 일단 끊고 조금 있다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안 끊으면 안 돼?” 정소월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네 목소리 듣고 싶어.”
허태준은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명령했다. “조용.” 허태준은 심유진을 집에 데려다준 후 곧장 정소월이 사는 곳으로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집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앞에 발자국이 몇 개 찍힌 것이 보였는데 그 크기를 보아하니 남자 발자국이 분명했다. 허태준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정소월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왔으니까 문 열어.” 2분 후 대문이 열렸다. 허태준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정소월이 뛰쳐나오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정소월은 허태준을 꼭 안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태준아, 드디어 왔구나.” 정소월의 눈물이 허태준의 셔츠를 적셨다. 허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줬다. “괜찮아, 이미 갔어.” 정소월은 한참을 흐느끼다가 진정했다. 허태준은 집 안으로 들어온 뒤 따뜻한 물을 한 컵 따라서 정소월에게 건넸다. 그리고 허태준은 정소월의 옆에 십 센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정소월은 아직도 몸을 떨고 있었다. 눈가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이 아직도 고여있었다. 정소월이 물을 한입 마시고는 말했다. “이 집 위치를 그 사람이 이미 알아버렸어. 이젠 안전하지 않아.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여기에서 지낼 수는 없어.”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하려고 사둔 집이 몇 채 있어. 내일 한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서 살아.” “태준아...” 정소월이 허태준의 손을 잡았다. 입꼬리가 축 처진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내가 어디로 가던 허태서가 쫓아올 거야. 그리고 또 찾아올 거고.” 허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녀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계속 곁에 있어 주면 안 돼?” 정소월은 다시 한번 허태준을 안았다.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제발. 나 너무 무서워.” 허태준이 정소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계속 옆에 있을 수는 없어,그렇게 무서우면 보디가드를 붙여줄게.” “다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허태준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녀와 입술이 닿기 전에 그는 이미 손으로 정소월의 입을 막았다. 정소월은 입술에 차가운 손바닥이 닿자 당황해하며 눈을 떴다. 그녀는 한참 상황을 파악하더니 허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결벽증이 있어서.” 허태준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잖아, 스킨십 잘 못하는 거.” 허태준이 스킨십을 싫어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직 정소월에게만 손을 잡는 행동이나 포옹 등이 허락되어 있었다. 정소월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그 결벽증도 많이 호전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똑같은 상황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심유진이랑은...” 정소월이 줄곧 신경 쓰고 있던 문제를 물어봤다. 비록 허태준이 심유진에게 별 감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부부이니 일정한 스킨십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했어.” 허태준이 정소월을 달래는 투로 말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각방 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정소월이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널 왜 속여.” 허태준이 웃었다. 하지만 그 깊은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태준은 그날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심유진은 전혀 놀랍지도 않았다. 냉장고에는 심유진이 어제 만들어 놓은 망고 케이크가 손도 안 댄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결국은 심유진의 아침 메뉴가 되어버렸다. 심유진이 케이크를 막 한술 뜨려고 할 때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유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허태준이 들어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점심을 가져다주러 허태준 어머니가 오셨다고 하기에는 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심유진은 포크를 내려놓고 휠체어에 탄 채 거실로 갔다.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심유진의 물음에 어머니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양이 간식 좀 사 왔어. 일찍 와서 보고 싶더라고.” 심유
어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됐어, 오늘도 새로운 메뉴에 한 번 도전해 볼까?” “좋아요!” 심유진의 주의력도 금방 다른 곳으로 이전됐다. 둘은 오후까지 내내 바삐 돌아쳤고 어머니는 휠체어를 끌고 산책도 시켜주셨고 함께 낮잠도 잤다. 허태준은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대에 돌아왔다. 현관 쪽에 낯선 신발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허태준은 단번에 그것이 어머니의 신발임을 알아봤다. 거실의 불은 켜져 있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허태준은 주방으로 직행했다. 역시나 두 사람 모두 싱크대 앞에서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심유진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심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말투가 매우 따뜻했다. 어머니 앞에서 심유진은 다정한 아내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어.” 허태준이 대답하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뭐 하고 있어?” “어머님이 닭을 한 마리 사 오셨어요. 그래서 삼계탕 만드는 방법 배우고 있었어요.”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없으니까 나가.” 허태준의 말에 어머니가 차갑게 대답했다. 허태준과 심유진 모두 얼음장 같은 그 태도에 놀랐지만,아이에 관한 일로 아직도 분이 덜 풀렸겠다고 생각하며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허태준은 여기에 있어봤자 화만 더 낼 것 같아 주방에서 나갔다. 심유진은 분위기가 확 다운된 것 같은 느낌에 아까보다 목소리도 낮췄다. 어머니는 칼로 닭을 거칠게 손질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이 기회에 화를 표출하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차마 말을 걸지도 못하고 그냥 요리에 필요한 물건들이나 제때 가져다드렸다. “됐어, 도마 한번 씻어주면 돼.” 심유진은 도마를 씻으며 그 위에 깊게 파인 칼자국들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뒤처리했다. 저녁은 금방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심유진에게 먼저 식탁에 앉아있으라고 말한 뒤 완성한 음식들을 하나둘 식탁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밥을 풀 때 어머니는 두 그릇만
어머니와 허태준이 서재로 들어갔다. 심유진이 걱정돼서 따라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가 막아섰다. “유진아, 이건 모자지간에 해야 할 얘기야. 너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서재의 문이 굳게 닫히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이 크게 혼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허태준은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서재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평온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뭐라고 하셔도 전 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는 더욱 화가 나서 서재에 꽂혀있는 책을 아무거나 집어서 허태준에게 던졌다. “내가 지금 아이 일로 널 부른 줄 알아?” 허태준이 멈칫했다. 그걸 제외한다면 어머니가 화를 낼 이유가 뭐가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소월이랑 붙어있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었지.” “근데 어젯밤에 뭐 하러 갔어.” 어머니가 또 손에 잡히는 대로 허태준에게 던졌다. 이래야만 자신의 화가 풀릴 것 같았다. 허태준은 날렵하게 그 책을 받아 안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젯밤에 정소월이랑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 심유진이 말했을까? 하지만 아까 심유진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엄마 앞에서 어제 정소월이랑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누가 말해줘야 알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찌나 높았던지 밖에 있던 심유진까지 그 소리를 들었다. “인터넷에 너랑 정소월 기사가 쫙 깔렸어. 얼굴까지 확실하게 찍혔다고. 근데 네가 감히 나한테 거짓말을 하려고 해?” 허태준이 당황했다. 오늘 내내 일에 집중하느라 인터넷 기사는 확인하지 못했다. 직원들도 허태준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아무리 큰 스캔들이 떠도 허태준에게 얘기해 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과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걸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애초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는
남녀가 한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허태준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적었지만,정소월과 허태서가 이혼하려고 한다는 사실은 최근 경주에서 가장 핫한 뉴스였다. 일반인이라면 허태준과 허태서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소월이 아직 이혼을 안 한 상태에서 그녀는 아직도 유부녀였다. 허태준이 유부녀와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은 대중의 질타를 받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심지어 많은 사람은 허태준이 돈이 더 많아서 정소월이 허태서와 이혼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댓글을 보니 대부분 허태준과 정소월의 불륜을 욕하고 허태서를 동정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허태준은 댓글을 한번 훑어보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올라온 기사들 다 삭제해.” “지금 지워서 무슨 소용이 있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봤어. 내가 일찍 와서 인터넷 선을 뽑아뒀으니 망정이지 안그러면 유진이도 볼뻔했어. 도대체 정소월이랑 무슨 사이인지 똑바로 말해.” 허태준은 엄마를 속이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가며 얘기했다. “정소월이 허태서와 이혼하려고 하는데 허태서는 동의하지 않나 봐요. 그래서 지금 법정 다툼까지 간 상태예요.” “그건 나도 아니까 중점만 말해.” “허태서가 조금 폭력적인 경향이 있으니까 보복당할까 봐 무서워서 저한테 도움을 청한 거예요. 그래서 전 빈집을 빌려줬고요.” “왜 하필 너한테 도움을 청하는 건데?” 어머니는 그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집을 빌려준 건 그렇다 쳐, 넌 왜 거기에서 밤을 지새우고 온 건데? 너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저한테 도움을 청한 건 정소월이 아는 사람 중에 허태서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저밖에 없기 때문이었고 정소월이 혼자 못 있겠다고 해서 같이 있어 준 것뿐이에요. 아무 일도 없었고 각자 자기 방에서 잤어요
심유진이 고개를 들고 허태준을 바라봤다. “네?” 허태준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팔 부분에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어머니가 사정없이 꼬집는 손길이었다. “어젯밤 일은 미안해.” 허태준이 말했다. 심유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젯밤 무슨 일이요?” 어머니는 그 반응을 보며 며느리가 더욱 안타까워졌다. “어제 태준이가 소월이를 도와주러 가다가 기자들한테 사진이 찍혔나 봐.” 어머니가 허태준을 대신해서 말했다.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그 눈빛을 보며 심유진은 더욱 당황했다. “근데 왜 저한테 사과하는 거예요?” ”사진 찍힌 걸로 사과하는 게 아니야. 한밤중에 정소월을 찾아가고 거기서 외박을 한 게 사과할 일이지.” 어머니가 말하면서 허태준을 매섭게 노려봤다. “하여튼 이번 일은 너무 심했어. 유진아 때리던지 욕을 하던지 마음대로 해. 난 네편이야.” 허태준을 때리거나 욕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 태준 씨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심유진은 배려심 넘치는 척하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토닥거렸다. “어젯밤에 소월 씨가 태준 씨한테 전화할 때 저도 옆에 있었어서 다 들었어요. 다급한 상황인 것 같아서 저도 많이 걱정했고요.” “태준 씨도 제가 혹시 질투할까 봐 갈지 말지 많이 망설였어요. 제가 설득해서 그제야 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소월 씨랑 함께 있어 주라고 얘기했고요.” 심유진이 책임을 자신에게 넘기자 어머니도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 일로 많이 소란스러워져서 너한테 영향이라도 갈까 봐 그래.” 어머니가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 두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집에만 있는 사람인데 무슨 영향이 있겠어요. 다리도 다 낫고 출근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이 일도 잠잠해질 거예요.” 그리고 호텔에서 허택양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허태준의 아내인 걸 아는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심유진이 이렇게 허태준을 감싸는
심유진이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러려고 결혼한 건데요 뭐.” 허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깊은 눈이 슬픔에 잠겼다. 식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소월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준아, 기사 봤어? 우리 둘이...” 정소월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조금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응.” 허태준이 대답하며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심유진을 한번 쳐다봤다. “이미 기사 내리라고 얘기했어.” “하지만 허태서가 이미 봤을 거야.”정소월은 겁에 질려 있었다. “또 찾아올까 봐 무서워.” “그렇게 빨리 찾아낼 리가 없어.” 허태준은 이미 사람을 시켜 정소월의 이사를 도왔다. “그리고 이미 보디가드가 옆을 지키고 있으니까,허태서가 널 해칠 일도 없고.” “그래도 무서워 태준아.” 정소월이 흐느끼며 말했다. “보고 싶어... 지금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안 될 것 같아.” 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이 젓가락질을 멈췄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그 기사 우리 엄마도 봤어.” 허태준의 시선이 심유진 쪽으로 갔다가 또 금방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오늘 나 찾으러 오셨어. 그래서 한동안은 너한테 못 갈 것 같아.” 허태준의 말투가 매우 부드러웠다. 조금의 아쉬움도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난 어떡해? 태준아, 네가 없으면 난 무서워서 잠도 못 자.” “미안.” 허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엄마를 안 챙길 수는 없어.” 심유진은 허태준이 이렇게 효자인 줄은 몰랐다. 이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니 부모를 비롯한 그 누구의 말도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다. 정소월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 “알겠어. 그럼 혹시 매일 밤 영상통화 해도 돼?” “당연하지.” 심유진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허태준이 한마디 보탰다. “심유진이 어머니한테 보고하지만 않는다면.” 심유진이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그럴 일은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