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이는 오늘 외출해서부터 지금까지 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근데 지금 처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리자 즐겁게 얘기를 나누던 주위 어른들이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특히는 지안이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손주가 왜 이럴까? 배가 고픈가?” 정은결이 웃음을 참으면서 지안이를 살짝 째려봤다. “아니에요, 제가 안는 게 싫은가 봐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정은결이 심유진을 바라봤다. “유진 씨가 좋은가 봐요. 그나저나 저한테도 이렇게까지 붙어있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질투가 날 지경이네요.” 심유진은 조금 쑥스러웠지만 지안이가 계속 울자 다급히 지안이를 다시 안았다. 신기하게도 심유진이 안자마자 지안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는 다시 그 똘똘한 눈을 깜빡이며 심유진을 쳐다만 봤다. “지안이가 유진 씨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얼른 하나 낳아야겠어.” 심유진은 입을 앙다물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척했다. 심유진이 웃으며 지안이를 부르자 지안이가 대답이라도 하듯이 방긋 웃었다. 허태준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때 마침 허태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지 한데 몰려있었다. 허태준은 어머니가 보낸 문자가 생각나 발걸음을 다그쳤다. “잠시 비켜주시겠어요?” 인파를 비집고 그 사이로 들어가자,아이를 안은 채 환히 웃고 있는 심유진이 보였다. 그 장면이 너무 사랑스러워 허태준은 멍하니 쳐다만 보며 발걸음을 옮길 생각도 못 했다. “허태준?” 누군가 허태준을 알아봤다. “태준아, 오늘 못 온다며.” “바쁜 일은 다 마무리한 거야?” 모두 허태준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 소란스러움에 허태준은 머리가 아파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두 가족들이었으니 낯선 사람을 대하듯 차갑게 굴어서는 안 됐다. 허태준은 예의상 웃어 보이며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어머니 곁으로 올 수 있었다. “유진이가 넘어졌다면서
모두가 와서 싸움을 말렸다. 어머니는 허태준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결국 손을 놓았다. 심유진은 방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몰라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허태준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심유진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봐요, 당신 조카예요.” 심유진이 지안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허태준은 지안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못생겼어.” 아이 엄마가 앞에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허태준 때문에 심유진은 당황해서 다급히 정은결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태준 씨는 그런 뜻이 아니라...” 정은결도 몹시 당황했다. 정확히 말하면 불쾌했다. 하지만 상대가 허태준이었기에 기분이 나빠도 얘기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원래 신생아 때는 다 못생겼거든요. 저랑 애 아빠도 못생겼다고 막 놀리고 그랬어요.” 심유진은 당연히 이게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허태준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이 말을 보탰다. “봐, 친부모도 못생겼다 하는 거 보면 진짜 못생긴 거네.” 정은결은 이제 표정 관리도 하기 힘들었다. 심유진은 마음속으로 허태준을 욕하며 눈짓으로 그만 말하라고 눈치 줬다. “지안이가 얼마나 예쁜데요.” 심유진이 지안이를 바라보며 얼굴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 눈을 좀 봐요. 똘망똘망하니 얼마나 예뻐요. 피부는 또 얼마나 좋고요! 크면 무조건 여자아이들이 환장하는 미남일걸요.” 심유진은 예의상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허태준은 지금 심유진 품에 있는 아이가 우리 둘의 아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 기대를 하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어머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를 안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허태준이 언젠가는 후회할 거라 생각하며 어머니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재하와 심연희가 떠나려고 할 때 그들은 다급히 들어오는 허태준을 마주쳤다. 심연희는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오빠, 태준오빠한테 유독 관심이 많네?” 정은결이 웃으면서 일부러 정재하를 놀렸다. “관심 있는 거 아냐?” 정재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기는.” “아니 방금 진짜 그래 보였다니까.” “넌 애 엄마라는 사람이 어쩜 아직도 그러냐. 애가 보고 따라 배울까 봐 무섭다.” 정재하가 동생을 가르치려 들 때 심연희는 또 심유진 쪽에 찰싹 달라붙었다. “언니도 경주에 잠깐 머물렀다가 가는 거야?” “아마도?” 심유진이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심유진도 확답을 주기 어렵긴 했다. 다시 발령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연희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허태준은 지안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저도 안아봐도 돼요?” 심연희가 정은결에게 물었다. “그럼요.” 정은결이 시원하게 대답했다.“근데 지안이가 울지도 몰라요.”정은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연희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심연희의 품에 안기자마자 지안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심연희는 그 울음소리에 당황해서 하마터면 아이를 바닥에 떨어트릴 뻔했다. 정은결도 더 이상 심연희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아 재빨리 지안이를 받아 안았다. 정은결은 마음속의 불만을 간신히 삼키고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안이는 유진 누나만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럼,제가 조금 더 안고 있을까요?” 심유진이 손을 뻗었다. “아니에요.” 정은결은 더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았다. “한참 안고 있었는데 좀 쉬셔야죠. 전 지안이 우유 좀 먹이고 올게요.” 정은결이 아이를 안고 떠나자,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졌다. “재하야, 잠깐 나 좀 보자.” 정준성이 불렀다. 낯빛을 보아하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닌 듯싶었다. 정재하는 노심초사하며 그를 따라나섰다. “방금 연희 데리고 나가지 않았니? 왜 아직 여기 있어?” “제가 데리고 왔어요. 허 대표님이랑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앞으로 걔 데리고 이런 자리 참석하지도 마!” 정준성이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떴다.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트릴 뻔한 탓에 모두 심연희를 질책하고 원망하는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심연희는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심유진에게 불쌍한 척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언니,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심연희는 심유진에게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허태준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에 하는 말이었다. “알아.” 심유진은 담담하게 대답할 뿐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허태준의 반응은 더욱 냉담했다. 허태준은 심연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연희는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던지 핏줄마저 튀여 나와있었다. “언니, 대표님이랑 언제 엄마 아빠 보러 올 거야?” 심연희가 다시 심유진 곁에 앉아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얘기를 하면서도 심연희는 계속 허태준의 눈치를 살폈다. “안가.” 심유진은 매정하게 그 손을 빼내며 차갑게 말했다. “연희야, 너희 가족들이 나한테 했던 짓들 난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이미 주위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기에 심유진도 더 이상 좋은 언니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난 이제 영원히 그 집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니까 나를 이용해서 뭔가 해볼 생각 하지 마.” 심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심연희는 살을 꼬집으며 억지로 눈물을 흘렸다. “언니, 지난번 일은 정말 나랑 아무런 관계도 없어.” 아직도 변명을 해대는 모습을 보며 심유진은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 “정말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너도 잘 알 거야. 물론 나도 잘 알고 있고. 네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파악했으니까 연기 그만해. 나도 당하고만 사는 멍청한 놈 아니야. 항상 너한테 맞춰줄 수도 없고.” 심연희는 아직도 발악하고 있었다. “언니, 정말 오해야...” “됐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허태준이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끼어들었다. “시끄러워. 라임 엔터처럼 되고
사람들은 이런 가정사를 듣기 좋아하기 마련이다. 다들 하던 얘기를 멈추고 이쪽을 주목했다. 따가운 시선이 등 뒤로 느껴졌다.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 심유진이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 “오늘은 기쁜 자리니까 이런 일로 흥을 깨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 하지만 심연희는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심연희는 심유진이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자리 아니면 언제 언니를 만날 수 있겠어?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받고 집에 찾아가도 문도 안 열어주고.” 또 눈물을 흘리려는 심연희를 보며 심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타협했다. “그래, 굳이 얘기하고 싶은 거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왜 그래야 돼? 그냥 다들 듣는 데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되지.” 심연희는 오늘 꼭 심유진이 시어머니의 친척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 싶었다. 심유진이 시어머니에게 사랑받는 모습도 꼴 보기가 싫었다. 정재하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심유진에 대한 미움이 더욱 커졌다. “무슨 시비를 가린다는 거지?” 정적 속에서 허태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여기가 법원도 아니고 누구도 가정사를 해결해 줄 수 없어요.” 허태준 어머니가 나서서 얘기하자 심연희는 당황했다. 그냥 심유진이 시어머니와 사이가 악화되기를 바랐을 뿐 자신이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연희는 아직도 자신이 그 집 며느리가 되는 날을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심연희가 얼른 사과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아무 소리나 막 했네요.” 심연희가 불쌍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한평생 심연희 같은 인간들을 많이 봐왔었다. “정 사모님.” 허태준 어머니가 뒤에 숨어있던 정재하 어머님을 불렀다. “미래에 집안 며느리가 될 애인데 좀 관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남 잔치에 와서 뭔 행패
“우리 엄마 화나신 거 안 보여?” 정재하의 말투가 매우 차가웠다. “당연히 보이지!” “근데 언니랑 대화가 아직 안 끝났어. 난 못 가.” “너 이게 어떤 자리인지 알기나 해? 근데 너희 언니랑 있었던 일을 왜 여기서 해결하려고 하는 거냐고.” 정재하는 이쯤 되니 심연희가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헷갈렸다. “좀 눈치 있게 행동할 수는 없어?” 정재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당황한 건 심연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정재하는 한 번도 자신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다.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거야?” 심연희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정재하도 금방 마음이 약해져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랬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아서 순간 욱했나 봐.” 그의 스트레스는 모두 부모님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들은 한 번도 심연희와의 교제를 인정해 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정재하가 하고 있는 사업도 위기가 가득했다. 부모님 몰래 투자했던 항목들을 모두 손해를 봤고 저축해 놓은 돈도 곧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심연희는 계속 자신이 데리고 있는 bj들에게 선물을 보내달라 하고 명품 옷이며 가방을 사달라고 졸라대니 돈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심연희에게 털어놓기에는 자신이 너무 무능력해 보일 것 같았다. 심연희는 한참을 울고는 겨우 진정했다. 정재하는 심연희에게 맹세했다. “내가 꼭 언니랑 만날 수 있게 도와줄게.” 심연희가 떠났지만,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다들 억지로 맞춰주기만 할 뿐 저도 모르게 심유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다행인 건 허태준 어머니가 심유진을 대하는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재하 부모님은 심유진을 찾아와 사과까지 건넸다. “우리 아들이 데려온 손님인데 당연히 저희가 사과해야죠.” 심유진은 그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누가 봐도 그들 역시
허태준 어머니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심유진은 한숨 돌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태준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운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내는 심유진을 백미러로 보며 허태준도 여러 번 입꼬리를 올리긴 했다. “어머니한테 귀찮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저런 자리에 나서질 마.” 허태준이 얘기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심유진도 다시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참이었다. “근데 지안이가 귀엽긴 했어요. 잔소리 들은 보람이 있네요.” “왜, 애 가지고 싶어졌어?” 심유진은 빠르게 부정했다. “아니요!” 다른 집 아이와 놀아주는 거랑 자신이 아이를 가지는 건 완전히 딴판이라는 걸 심유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서 심유진은 항상 신중했다. 허태준은 실낱같은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필 이때 심유진은 눈치 없이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어머님은 정말 손주를 보고 싶으신 것 같더라고요.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얼른 저랑 이혼하고 정말 사랑하는 아내 만나서 손주 안겨드리세요.” 허태준은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그건 내 일이니까 신경 꺼.” “네.” 심유진이 낮게 대답했다. 거의 집에 도착할 때쯤 허태준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차량 스피커와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던 탓에 정소월의 다급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태준아, 허태서가 또 찾아왔어. 벨 누르고 있는데 나 너무 무서워. 빨리 와줘.” 심유진은 당황했지만,아무것도 못 들은 척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무서워하지 마.” 허태준이 정소월을 달랬다. “금발 갈게. 일단 끊고 조금 있다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안 끊으면 안 돼?” 정소월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네 목소리 듣고 싶어.”
허태준은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명령했다. “조용.” 허태준은 심유진을 집에 데려다준 후 곧장 정소월이 사는 곳으로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집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앞에 발자국이 몇 개 찍힌 것이 보였는데 그 크기를 보아하니 남자 발자국이 분명했다. 허태준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정소월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왔으니까 문 열어.” 2분 후 대문이 열렸다. 허태준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정소월이 뛰쳐나오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정소월은 허태준을 꼭 안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태준아, 드디어 왔구나.” 정소월의 눈물이 허태준의 셔츠를 적셨다. 허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줬다. “괜찮아, 이미 갔어.” 정소월은 한참을 흐느끼다가 진정했다. 허태준은 집 안으로 들어온 뒤 따뜻한 물을 한 컵 따라서 정소월에게 건넸다. 그리고 허태준은 정소월의 옆에 십 센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정소월은 아직도 몸을 떨고 있었다. 눈가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이 아직도 고여있었다. 정소월이 물을 한입 마시고는 말했다. “이 집 위치를 그 사람이 이미 알아버렸어. 이젠 안전하지 않아.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여기에서 지낼 수는 없어.”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하려고 사둔 집이 몇 채 있어. 내일 한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서 살아.” “태준아...” 정소월이 허태준의 손을 잡았다. 입꼬리가 축 처진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내가 어디로 가던 허태서가 쫓아올 거야. 그리고 또 찾아올 거고.” 허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녀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계속 곁에 있어 주면 안 돼?” 정소월은 다시 한번 허태준을 안았다.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제발. 나 너무 무서워.” 허태준이 정소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계속 옆에 있을 수는 없어,그렇게 무서우면 보디가드를 붙여줄게.” “다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