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그녀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정소월은 소파에 엎어졌고, 그녀의 한쪽 손은 마침 자신의 아픈 다리를 짓눌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정소월은 두 손으로 소파를 짚으며 일어났다.그녀는 땅에 무릎을 꿇으며 황급히 다리에 붕대를 풀었다.아까 그 눌림은 너무 심해 정소월이 살짝 그녀의 다리를 스치기만 해도 심유진은 아파서 이를 악물 정도였다.허태준은 물건을 가지고 침실에서 나왔다. 정소월의 다급한 표정과 심유진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무슨 일인데?”그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심유진도 울지 않았는데 정소월이 먼저 눈물을 흘렸다.“죄송해요 죄송해요!”그녀는 계속 이 네 글자만 반복했고,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그녀는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흘렸고, 온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었다.심유진은 보다 못해 허태준한테 말했다.”휴지를 가져와서 닦아줘요.”허태준은 휴지를 연속으로 몇 장 뽑아 전부 정소월의 손에 쥐여줬다.“너는?”그는 머리를 숙여 심유진의 아픈 다리를 바라보고 물었다.”다리를 또 다친 거 아냐?”“똑똑하네요.”심유진은 힘겹게 웃어 보여 분위기를 만회하러 했지만 허태준은 그녀를 째려봤다. 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아픈 다리를 피한 채 그녀를 안아올렸다.“병원에 데려다줄게.”그는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고, 정소월은 얼굴을 닦고 황급히 따라나섰다.“저도 같이 가요!”그녀는 차에서는 멀쩡했지만 응급실에 가서 의사가 상처에 대해 묻자 또 흑흑거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방안 사람들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저 때문이에요...”그녀의 언어능력은 아까보다 많이 나아졌다.”일어설 때 중심을 못 잡아 심유진 씨의 몸에 넘어지면서 다리를 누르게 됐어요...”의사는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골절 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렇게 조심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그의 말투는 그다지 엄숙하지 않았고, 책망이 조금 섞였을 뿐인데 정소월은 못 참겠다는 듯이 울면서 뛰쳐나갔다.허태준은 그
허태준은 이미 정소월을 잘 달랬고, 눈가는 빨갰지만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없어졌다.“병은 다 보였어?”허태준이 심유진에게 물었다.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목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네.”그녀는 입을 뻥긋했고,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의사가 뭐래?”“또 찢어졌대요. 의사가 다시 고정해줬 어요.”심유진은 상처가 더 심해졌다는 말을 도로 삼켰다.정소월은 입을 삐죽했다. 눈가에는 또 눈물이 아른거렸다.“다 제 잘못이에요...”“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허태준은 부드럽게 위로해 줬다.정소월이 다시 평온해지자 심유진은 말했다.”갈까요? 얼어 죽을 것 같아요.”허태준은 그제야 그녀가 얼마나 얇게 입었는지를 알아챘다.그는 입을 오므렸고, 정장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딱딱한 재질에도 그의 체온이 남아있었으며 담담한 박하 향도 났다.심유진은 마다하지 않고 그의 외투를 더욱 꽉 잡았다.정소월은 뒤에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허태준은 먼저 정소월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는 새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심유진이 저번에 갔던 허태준의 둘째 삼촌 집과는 다른 곳이었다.허태준은 그녀의 집 아래에 차를 세워 두었고, 정소월이 내릴 때 허태준도 같이 내렸다.유진은 뒷좌석에 누워 그들 둘이서 차 밖에서 얘기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바래다줄까?”허태준은 물었다. 정소월은 고개를 저었고, 턱으로 차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심유진 씨 혼자 차 안에 있는 건 안전하지 않아요. 얼른 같이 돌아가요.” “그래.”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봐요~”정소월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웃어 보였고, 돌아서서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허태준은 제자리에 서서 정소월이 들어간 후 위쪽을 바라보았다.길옆에 어두운 불빛을 빌어 심유진은 그의 턱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가에 스쳐 지나간 어두운 빛을 보았다.정소월 앞에서 다정스러웠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심유진은 점점 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정소월이 그녀의 다리를 짓누른 탓에 심유진의 휴가는 무한정으로 연장되었다.하지만 화로 인해 복을 얻는다 하였는가, 허태준은 더는 정소월을 데려오지 않았다.심유진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집에 가만히 앉아 티비를 보고 핸드폰을 노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허아주머니가 날씨가 좋을 때마다 그녀를 데리고 집 아래를 산책하지 않았으면 그녀는 무료해서 죽어버렸을 것이다.이날 점심 후 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데리고 집 아래 광장에서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이 시간에는 광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노인네들뿐이었다. 심유진 나이대의 젊은이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허아주머니도 다른 분들과 자주 만나 안면이 터 앉아 있을 때 얘기도 할 수 있었다.“친딸이에요?”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심유진을 가리키며 허아주머니에게 물었다.허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며느리예요. 친딸처럼 친해요.”심유진은 가슴이 따뜻해졌고, 햇볕을 쬐는 것보다 더 좋았다.“네.”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허아주머니와 집안 얘기를 더 나누었다.십여 분이 지나 핑크색 패딩을 입은 여자아이가 바람처럼 아주머니 앞으로 달려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소리쳤다.”할머니 나 목말라!”아주머니는 보온병을 열어 아이에게 건넸다.”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물을 마시자 아이는 또 바람처럼 뛰어갔고, 다른 아이들과 광장 중심에 있는 미끄럼틀을 기어올라갔다.아주머니는 아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안전하게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보온병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허아주머니가 물었다.”애들을 혼자 보세요?”아주머니는 대답했다.”네. 애 아빠랑 엄마가 다 바쁘기도 하고 계속 외지로 출장을 가게 되어서 애를 볼 시간이 아예 없어요. 집에 도우미를 부르자니 뉴스에 도우미가 애들을 학대한다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볼 수밖에요. 그래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유치원에 가니까 거기는 선생님이 돌봐주잖아요. 저는 주말 이틀만 좀 고생하면 돼요.”“네.”허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
허 아주머니는 일이분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심유진한테 물어보았다.”유진아,너랑 태준이, 언제 애를 가질 생각이니?”그리고는 급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들이 빨리 애를 가지라는 게 아니야.오해는하지 말고!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때 가서 미리 준비라도 할 수 있게.”허 아주머니의 모습은 심유진까지 미안하게 하였다.“그게...태준씨랑 의논한 적이 없어서요.”심유진도 심유진이지만 그녀와 허태준은 각자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계약결혼을 한 사이일 뿐이였다. 애시당초 아기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허 아주머니와 말씀 드릴수는 없어서 미루었을 뿐이다.허 아주머니는 실망스레 손을 비볐다.”그래.” **허 아주머니는 오늘 여기에서 오래 머물렀다.평소대로라면 해볕을 쪼이고는 돌아가셨는데 지금은--심유진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을 보고 불안해졌다.다른 게 아니라--허태준이 또 정소월을 데리고 올가봐여서였다.다른 때에 정소월을 집에 데려오는 것은 괜찮았다--자기 세뇌를 거친 후 심유진은 더 이상 그들 둘 사이의 친밀함 때문에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허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만일 서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그녀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녀는 허태준한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어머님이 집에 오셨어요.저녁 드시고 가실 건가 봐요.”허태준은 간단하게 답장했다.”OK”표정만 하나 보냈다. **아마도 허아주머니가 계셨기 때문인지 허태준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오늘은 퇴근이 빠르구나.”허아주머니는 문을 열자마자 허태준을 봐서 놀랐다.“유진이가 와계신다고 하길래 같이 밥 먹으려고 일찍 돌아왔어요.”허태준은 이쁜 말을 했다.허아주머니는 그의 얼굴을 만지면서 칭찬했다.”역시 내 아들이야!”허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심유진은 소파에 앉아 그들 모자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무심결에 웃음꽃이 피었다.“유진아 태준이 왔다. 밥 먹자~”허 아주머
허태준은 심유진을 주방까지 안고 왔다. 그리고 그녀를 그녀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사실 그의 집 주방에는 누구의 자리라는 것이 없었다. 다들 앉고 싶은 대로 앉았었다. 하지만 허 아주머니는 소녀같은 마음이 있으신 분이라 원래는 귀찮아서 간섭하려 하지 않았지만 매일 이리로 오시니 많은것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아무 포인트도 없는 가구들이었다.집안에 더 사람 냄새가 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장식품을 샀다. 집안 곳곳에서 허 아주머니의 장식품들을 볼 수 있다.허태준의 집에 책상과 걸상은 모두 목재였다. 여름에는 편안했지만,겨울이 되면 추웠다.허 아주머니는 의자마다 털이 보들보들한 애니 의자 방석을 깔아놓았다.그리고는 매개인의 자리까지 규정하였다.심유진은 토끼,허태준은 곰,허 아주머니 자신은 허 아저씨가 절대 기르지 못하게 하는 고양이였다.허태준은 집안의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꾸미신 것이니 그는 원망할수가 없었다.심유진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이런 것들을 배치하면서 허 아주머니와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허 아주머니는 일찌감치 저녁 준비를 끝마쳤다. 허태준을 기다리기 위해 음식이 식지 말라고 반찬마다 반찬 덮개를 덮어놓았다.허태준은 일일이 반찬 덮개를 열고 밥을 퍼담기 시작했다.허 아주머니의 자리는 주방과 마주하고 있어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주방에서 움직이는 허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름이 놓였다.“우리 태준이가 사람을 참 잘 챙겨.”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을 향해 눈을 찡그렸다. “마누라가잘 가르쳐준 덕분이지.”심유진은 고개를 숙였다.얼굴은 빨개졌다.그리고는 허태준을 위해 변명을 했다.”태준씨는 늘 사람을 잘 챙겼어요.”“너라서 그래.”허 아주머니는 입을 삐죽거렸다.그리고는 다른 얼굴을 하고는 화가 나서 말했다.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이런 일은 다 하인을 시켰지.”허태준은 밥 두 공기를 가져왔다.그리고는 심유진과 허 아주머니 앞에 놓았다.그는 차갑게 허
저녁을 먹고 나서도 허 아주머니는 떠날 생각이 없었다.심유진이 휴양을 해야 하므로 매일 밤 여덟 시 반이면 침대에 올라가서 잤다. 1분이라도 늦으면 허태준이 화를 냈다.그녀가 눕자 허 아주머니는 티비를 껐다. 빈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허태준을 향해 손을 까딱했다.”와서 앉아. 엄마가 할 얘기가 있어.”허태준은 의혹스러워하며 가서 앉았다.“왜요?”“너랑 유진이 언제 아기를 가질 거니?”허 아주머니는 직접적으로 물었다.허태준은 아무 심리 준비도 없어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 저희는 애를 안 가질 거예요.”이것은 엄숙한 분위기였고 신중한 대화였다.그는 좀 더 기다렸다가, 가족들이 심유진을 받아들이면 그때 얘기하려고 했다.그때 가서는 그들이 불만족스러워도 그더러 심유진을 포기하라고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허 아주머니가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낼 줄 몰랐다.그는 허 아주머니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허 아주머니가 이 때문에 심유진한테 의견이 생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제가 원하지 않아요.” 그는 책임을 전부 자신한테 돌렸다.“왜?!”허 아주머니는 놀랐다.”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아니?!”“알고 있어요.” 허 아주머니의 격동에 비해 허태준은 평온하였다.“저는 애들이 싫어요.”그는 말했다. ”너무 시끄러워요.”“너는 아직 너무 어려!” 허 아주머니는 머리를 저었다.”니 아버지도 옛날에 너랑 같은 생각이었어. 애들이 시끄럽고 장난쳐서 머리가 다 커지겠대! 하지만 너처럼 극단적이진 않았지. 나랑 상의를 해서 늦게 애를 갖자고 했지. 나는 동의하는 척하고 나중에 바늘로 콘돔에 구멍을 내서 너를 가졌어. 니가 갖 태어났을 때는 원숭이처럼 못생겨서 나도 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하지만 너희 아버지는--”무슨 생각 했는지 허 아주머니는 푸흡하고 웃었다.”매일 니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었지. 니가 울면 바로 안아서 달랬어. 너보다 더욱 인내심 있었지! 젖 먹이는 건 할수가 없으니,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켜주고 재우고 하는 건
허 아주머니가 간 후 허태준은 홀로 거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그는 당연히 허 아주머니가 한 말이 홧김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진짜로 관계를 끊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허 아주머니는 허태준이 말을 듣지 않으면 심유진을 꼬드길 것이다.그는 심유진과 미리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아침을 먹으면서 허태준은 심유진을 찔러보았다. ”요 며칠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어?”심유진은 놀랐다. ”태준 씨와도 얘기하셨어요?”“응.”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얘기했어요?”심유진은 급급하게 물었다.어제 아무 말도 안 했으니 망정이지 허태준의 이유와 맞물리지 않다면 어머님이 의심하실것이다.“애를 안 좋아하니 안 갖겠다고 했어.” 허태준은 말했다.심유진은 더 놀랐다.아무리 생각해도 허태준이 모든 것을 감당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그의 용기에 박수라도 날리고 싶었다.“어머님이 뭐라세요? 타협하셨어요?”“아니.” 허태준은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너를 꼬드기려 할 거야. 아무튼 뭐라 하든 내가 아이를 안 갖겠다고 했다 그래. 너도 날 설득하지 못했다고.”심유진은 머그잔을 잡았다. 따뜻한 우유의 온도는 머그잔을 통해 그녀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 그녀는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혼 할건데 몇 년 지나서 아이를 갖는다고 하지... 그럼 지금부터 화를 내시진 않을 거아니예요.”“내가 말했지--”허태준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는 경고가 숨어있었다. ”이혼 하지 않을 거야. 너도 이런 생각을 더는 하지 마.”“칫.”심유진은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이혼을 안 했기 때문이잖아요? 태준씨가 이혼을 안 한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붙잡고 명분 하나 안 줄 건가요?”허태준은 그녀와 이런 화제를 토론하기 싫었다.그는 컵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 커피를 다 마셨다. 혀도 데여
”사모님, 분부대로 물건을 다 놓았습니다.”“네.” 허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돌아가세요.”그들이 떠난 후 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데리고 주방에 왔다.“이게 내가 베이킹할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란다.” 허 아주머니는 소개했다. ”그리고 밀가루랑 크림이랑 식재료들.”그녀는 주방안에 오븐을 보고 말했다. ”허태준이 집에 인테리어를 하면서 오븐을 놓았는데지금 여기서 삼사 년 살았지, 새것 봐라 쯧쯧쯧.”심유진은 더 말하려는것을 참았다. 오븐뿐이겠어요,주방에 모든 물건이 다 새것 그대로인데. ** 며느리와의 식후활동은 집 아래에서 산책하고 햇볕을 쪼이는것에서부터 베이킹을 하는것으로 바뀌었다.심유진은 요리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허 아주머니가 가르치기만 하면 다 잘했다.첫 번째 케이크는 태웠지만 두 번째 케이크는 허 아주머니가 한 것마냥 완벽해 허 아주머니는 한참을 칭찬했다.금방 시작했기에 허 아주머니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고 크림 케이크부터 시작했다.휘핑크림을 만드는 것에는 애를 썼지만,성과는 좋았다.케이크에 크림을 잘 바르고 꽃 같지 않은 꽃을 만들어 얹은 후 수습용으로 과일을 올렸다.심유진은 다 만든 케이크를 한입 먹었다. 밖에서 파는 것 못지않았다. **생활이 충실해지니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다.눈 깜빡 할 사이에 해는 이미 저물었다.밥때가 되자 심유진은 허 아주머니를 저녁 드시고 가라고 했지만 허 아주머니는 굳이 가겠다고 했다.허 아주머니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그 불효 자식을 보고 싶지 않다!”심유진은 생각했다. 아마 어제 저녁에 허태준과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이렇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허태준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심유진이 누구랑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 안고파?우유 줄까?”“어쩜 이렇게 예쁘지~”“너무 귀엽다!”말투가 너무 부드러워 그는 질투 날 지경이다.눈에 어두운 빛이 지나갔다. 그는 재빨리 신을 갈아신고 큰 걸음으로 거실로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