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희를 포함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웨이브 머리 여자가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고 물었다.“당신이 허 대표님한테 다른 마음을 품고 핑곗거리를 찾아 접근하는 여자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연희를 노려보았다.심연희는 조금 전 굳건한 태도를 거두고 눈물을 흘리며 심유진의 품에 안겼다.“언니! 저 사람들이 날 괴롭혔어! 난 그저 허 대표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꼬리 친다고 얘기하잖아!”심연희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웨이브 머리 여자는 단번에 표정이 돌변했다.“당신이 이 여자 언니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 대표님 친구라고 했단 말이에요! 역시 두 사람 모두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게 아니네요! 소진 씨, 빨리 경호원들 불러서 이 사람들 내쫓아요!”“네!”이름을 불린 여자가 곧바로 테이블 위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CY 그룹 경호원들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저 허 대표님 가족 맞아요, 안 믿기신다면--”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제가 지금 당장 허 대표님께 연락할 수도 있어요.”“이런 사기 수단은 조금 전 당신 동생이 이미 사용했었어요.”웨이브 머리 여자는 비꼬듯 말을 이었다.“방법 한 번 바꿔봐요.”심유진은 눈빛으로 심연희에게 눈치를 주었다.심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울한 말투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허 대표님께서 내 연락을 두 번이나 끊어버리셨어.”심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그건 아마 허 대표님 미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웨이브 머리 여자는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속에 담긴 비웃음도 점점 짙어졌다.“허 대표님 오늘 오전에 미팅 없어요! 좀 허술하지 않은 핑계 좀 대보죠?”심유진은 의아했다.여형민은 전에 허태준이 사용하는 번호가 두 개라고 얘기했었다. 하나는 업무용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용이라고 했었다. 그녀가 저장해 놓은
“네?”심유진은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등 뒤로 숨기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니에요.”심연희는 타이밍 맞춰 자신이 든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이게 허 대표님 거예요!”허태준은 힐끔 스쳐보기만 할 뿐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내 사무실로 가.”그는 심유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란 나머지 입이 떡 벌어졌다.심연희는 이를 꽉 깨문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허태준의 사무실은 심유진이 상상한 것보다 퍽 작았다. 면적은 그의 안방과 비슷했는데 사무 존과 손님 존 두 존으로 나뉘었다.사무 존에는 테이블 하나, 의자 그리고 책이 가득 담긴 책장이 있었고 손님 존에는 소파 한 개와 티테이블 한 개가 놓여있었다. 그사이에는 선명한 경계선이 없었기에 비교적 공간이 넓어 보였다.사무실 안은 온통 검은색, 흰색, 회색 세 가지 컬러였고 사진만 보면 다들 서재로 오해할 것이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소파에 앉힌 다음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그의 중저음 목소리에는 은은한 부드러움이 뒤섞여 있었다.심연희 앞에서 일부러 연기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과도한 설정에 심유진은 불편한 듯 표정을 구겼다.“심연희가...”그녀는 딱딱한 자세로 옆에 앉아있는 심연희를 보며 말했다.“어젯밤 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찾아왔어요.”심연희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허리 숙여 손에 든 주머니를 허태준 앞에 있는 티 테이블 위에 놓았다.그녀는 아무래도 특별히 호텔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는지 심유진에게서 빌렸던 후드티 대신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니트는 오버핏인데다 옷깃이 넓어 몸을 숙일 때 그녀의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 다 보일 정도였다.“어젯밤... 고마웠어요, 허 대표님. 이건 제 소소한 마음이니까 받아주세요.”심연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허태준은 내내 심유진의 얼굴만 뚫어져라
심연희는 그녀보다 더 당황스러웠다.“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미처 몰랐어요!”그녀는 다급히 음식들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제가 밥 살게요! 대표님께서 좋아하시는 레스토랑에서 마음껏 주문하세요!”“그럴 필요 없어.”허태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어제 내가 당신을 구해준 건 단지 당신 언니가 걱정돼서 그랬던 것뿐이야. 고마워할 거면 당신 언니한테 고마워해.”심연희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심유진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니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죠~ 하지만 허 대표님께서 저를 구하시다가 다치기까지 하셨는데 당연히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죠~”다쳤다고?심유진은 본능적으로 허태준을 휙 쳐다보았다.어제 그녀가 경찰들을 데리고 퀸 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형민이 그들을 제압한 뒤였기에 과정을 확인하진 못했다. 게다가 그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었기에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던 것이다.그도 부상을 입었단 말인가?“진짜 고마우면--”허태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심유진을 확 끌어안으며 말했다.“언니를 좀 빌려줬으면 하는데.”심유진과 심연희는 동시에 또 한 번 멈칫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연희는 억지 미소를 지은 채 복잡한 눈빛으로 심유진을 보며 말했다.“좋아요. 그럼... 먼저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그녀는 주머니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심유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저녁에 다시 만나, 언니~”심연희는 다급히 자리를 떴다.심유진은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 닦는 모습을 발견했다.“연희--”그녀가 심연희의 뒤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허태준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 타이밍에 심연희는 문을 박차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심연희 우는 것 같아요,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심유진은 다급히 허태준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하지만 허태준의 손은 마치 그녀의 몸에 붙기라도 한 듯 좀처럼 떼어낼 수 없었다.“너 심연희 싫어하잖아?”그의
허태준은 우아하게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둘씩 풀어 헤쳤다.심유진은 느긋하게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셔츠가 풀어지는 방향을 따라 시선이 아래로 옮겨졌다.밖에 드러난 그의 얼굴과 목은 이미 눈으로 목격했었다. 그의 하얀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 가슴골과 복근에는 탄탄한 근육 외에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급히 재촉했다.“빨리 셔츠 벗어요.”허태준은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이렇게 급해?”심유진은 그제야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야한 말을 뱉었는지 깨달았다.“난... 그냥 몸에 생긴 상처를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에요.”그녀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허태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셔츠를 옆에 벗어던졌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부드러운 입술로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다른 걸 원하면... 해도 돼.”그의 중저음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그 속에는 웃음기도 뒤섞여 있었는데 그녀를 놀리면서도 꼬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심유진은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그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두려웠다.허태준은 심유진의 불안에 떠는 눈초리와 다리 위에 꼭 잡은 두 손을 보고는 결국 놀리려던 마음을 도로 거두었다.그는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적절한 시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무슨 생각해?”허태준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난 그냥 약 발라달라고 벗은 건데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조금 전 그가 그냥 그녀를 놀린 것뿐이라는 걸 눈치챈 심유진은 참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허태준은 입꼬리를 더 세게 올리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여기.”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허리를 만지며 말했다.“좀 아파.”그의 손가락이 닿은 곳에 눈에 띄는 멍 자국이 있었는데 주먹만큼 했다.보기만 해도 아픈게 느껴질 정도였다.“병원에 가봤어요?”“아니.”허태준은 미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를 풍기는 동시에 찐득한 촉감의 치료용 오일이 싫었던 허태준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결국 잠자코 가만히 있는 것을 선택했다.허태준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꽉 깨물고 부정적인 마음을 잠재웠다.그의 찌그러진 표정을 본 심유진은 자신이 너무 세게 힘을 준 탓에 그런 줄 알고 조심스럽게 힘을 줄였다.“아파요?”그녀는 허태준에게 물었다.허태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안 아파.”그는 총도 맞고 칼도 맞아본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주무르는 건 아프기는커녕 그저 모기에 물린 정도에 불과했다.“아프면 꼭 말해요!”심유진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말을 덧붙였다.여형민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이윽고 그는 소파 위에 반나체로 누워있는 허태준과 그의 등을 주무르고 있는 심유진을 발견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이상야릇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여형민은 다급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계속해.”심유진은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잠시만요!”**여형민은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소파에 기대고 앉아있었다. 느긋한 자세만 보면 마치 제집에 앉아있는 듯했다.“내 탓 하지 말아요.”그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두 사람 아까 행동은... 누가봐도 오해할 상황이었어요.”심유진이 붕대로 오일을 바른 부위를 감아놓은 뒤에야 허태준은 느긋하게 셔츠를 입었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여형민을 힐끗 쳐다보며 애써 분노를 눌러 삼켰다.“휴게실에 데려다줄게.”심유진에게 말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여형민에게 말했다.“하진에게 배달 음식 하나 주문하라고 얘기해줘.”하진은 그의 비서 이름이었다.“배달 음식?”여형민은 심유진을 보며 물었다.“여동생이 도시락 들고 인사하러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도 커피랑 샌드위치가 있는데 허 대표한테 아무것도 없다고요? 아,
그의 질타 소리에 심유진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휴대폰 스피커를 막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며 허태준에게 말했다.“나가서 연락 좀 받고 올게요.”“그래.”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레스토랑에서 나온 뒤 심유진은 그제야 손을 내려놓고 정재하에게 물었다.“제가 언제 심연희를 데리고 바에 갔다고 그래요?”“이틀 동안 심연희가 심유진 씨랑 있었잖아요. 당신이 아니면 누군데요?”정재하는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함부로 말을 꺼냈다.그의 태도에 심유진도 화가 북받쳐 올랐다.“죄송한데 정재하 씨, 당신 여자친구를 데리고 바에 간 사람 나 아니에요.”그녀의 말투는 평온했고 눈빛은 싸늘했다.“누구랑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알고 싶으면 직접 물어봐요. 함부로 추측하고 억울한 사람 만들지 말고요. 제가 사람을 잘 돌보는 건 아니니까 당신 여자친구는 당신이 직접 챙겨요.”정재하는 그녀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 그리고 어젯밤 허 대표님과 여 변호사님께서 당신 여자친구 구하려다가 다치셨어요.”심유진은 일부러 과장하여 말을 꺼냈다.“정재하 씨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네요? 허 대표님과 여 변호사님 병원비는 보상해 주실 건가요?”그녀의 말에 정재하는 발끈했다.“심연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단 걸 알면서도 왜 저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요?”그의 당당한 말투에 심유진은 화가 나는 동시에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심연희가 직접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기분 나쁘면 심연희한테 직접 찾아가서 물어요. 두 사람한테 해야 할 도리는 다했으니까 앞으로 두 사람 사이 일에 날 끼워넣지 말아 주세요.”그녀는 곧바로 통화를 끊었고 정재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심유진이 레스토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허태준은 이미 주문을 완료한 상황이었다.웨이터는 주문한 음식들을 다시 되뇌며 그녀에게 추가할 메뉴가 있는지 물었다.“양념갈비? 삼계탕?”심유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허 대표님께서 싫어하는 음식들 아니에요?”그
심유진은 어렴풋이 수화기 반대 켠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 마세요.” 정재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심유진이 물었다. “정재하 씨는요? 같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 얘기는 하지 마!”심연희는 정재하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듯 그 이름만 들어도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 빨리 데리러 와줘. 너무 춥고 힘들어.” 심연희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매우 가련하고 힘들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심유진은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정재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 심연희를 들이는 건 자신에게 귀찮은 일만 더하는 짓이라며 한소리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심연희를 혼자 돌려보내는 것도 알맞지 않았다. 결국 심유진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급히 문 앞으로 뛰여갔다.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심연희가 기다리다 못해 먼저 가버린 건가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경비실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경비는 심연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뭐라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입모양만 보일뿐 뭐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심연희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억지로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우정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대우였다. 경비실의 창문이 다 닫혀있었기에 심유진이 다가가서 가볍게 창문을 두드리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심연희가 경비에게 뭐라 얘기하다 그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어줬다. 심연희는 곧장 달려 나와 심유진의 품에 안겼다. “언니, 나 정재하랑 헤어질 거야!” 심연희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심유진은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하는 말은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유진은 심연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했다. “화내지 마.” 경비가 따라 나와 큰 캐리어 두 개를 건넸다. “이 아가씨 겁니다.” 그는 이 상황을 바라보며 낄 타이밍을 잡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었다. 심유진은 그를 보며 웃음 지었다. “
심연희의 꿈은 아름다웠고 존중해 줄 만했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대구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정은 조금 충동적인 것 같다고 심유진은 생각했다. 심연희는 평생을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왔기에 실패나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취직을 어린애들 장난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자리는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특히 너 같은 인턴은 회사경험도 많지 않아서 큰 회사에 들어가기는 힘들어.” 심연희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친구한테 부탁해서 일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하면 돼. 나 친구도 많고 다들 직장도 다양하거든. 그리고 그냥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거라 월급 같은 면에서 요구도 높지 않아.” 심연희가 이렇게까지 결심을 내렸다니 심유진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현실을 직면하면 자연스럽게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견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건 심연희의 인생이기에 심유진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늦었으니까 얼른 씻고자.” 심유진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심연희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언니.” 심연희가 불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 대구에 남으면 언니랑 같이 살면 안 돼?” 심유진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 애석하게도 심연희는 아직 심유진을 잘 알지 못했다. “최대로 일주일까지만 여기서 지내게 해 줄게. 일주일 뒤에도 직장도 집도 못 구하면 그냥 경주로 돌아가. 독립하겠다는 꿈 그때는 접고 그냥 계속 공주님으로 살아.” 심연희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심연희가 심유진의 집에 머물 동안 심유진은 매우 바빴기에 심연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가끔 집에 있을 때 밥을 차려줬고 그 외의 시간에는 모두 심연희 혼자 시켜 먹거나 사 먹는 방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정재하는 수시로 심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사과를 했고 그다음부터는 심연희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자신을 바짝 낮추며 심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