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은 우아하게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둘씩 풀어 헤쳤다.심유진은 느긋하게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셔츠가 풀어지는 방향을 따라 시선이 아래로 옮겨졌다.밖에 드러난 그의 얼굴과 목은 이미 눈으로 목격했었다. 그의 하얀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 가슴골과 복근에는 탄탄한 근육 외에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급히 재촉했다.“빨리 셔츠 벗어요.”허태준은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이렇게 급해?”심유진은 그제야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야한 말을 뱉었는지 깨달았다.“난... 그냥 몸에 생긴 상처를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에요.”그녀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허태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셔츠를 옆에 벗어던졌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부드러운 입술로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다른 걸 원하면... 해도 돼.”그의 중저음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그 속에는 웃음기도 뒤섞여 있었는데 그녀를 놀리면서도 꼬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심유진은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그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두려웠다.허태준은 심유진의 불안에 떠는 눈초리와 다리 위에 꼭 잡은 두 손을 보고는 결국 놀리려던 마음을 도로 거두었다.그는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적절한 시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무슨 생각해?”허태준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난 그냥 약 발라달라고 벗은 건데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조금 전 그가 그냥 그녀를 놀린 것뿐이라는 걸 눈치챈 심유진은 참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허태준은 입꼬리를 더 세게 올리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여기.”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허리를 만지며 말했다.“좀 아파.”그의 손가락이 닿은 곳에 눈에 띄는 멍 자국이 있었는데 주먹만큼 했다.보기만 해도 아픈게 느껴질 정도였다.“병원에 가봤어요?”“아니.”허태준은 미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를 풍기는 동시에 찐득한 촉감의 치료용 오일이 싫었던 허태준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결국 잠자코 가만히 있는 것을 선택했다.허태준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꽉 깨물고 부정적인 마음을 잠재웠다.그의 찌그러진 표정을 본 심유진은 자신이 너무 세게 힘을 준 탓에 그런 줄 알고 조심스럽게 힘을 줄였다.“아파요?”그녀는 허태준에게 물었다.허태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안 아파.”그는 총도 맞고 칼도 맞아본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주무르는 건 아프기는커녕 그저 모기에 물린 정도에 불과했다.“아프면 꼭 말해요!”심유진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말을 덧붙였다.여형민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이윽고 그는 소파 위에 반나체로 누워있는 허태준과 그의 등을 주무르고 있는 심유진을 발견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이상야릇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여형민은 다급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계속해.”심유진은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잠시만요!”**여형민은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소파에 기대고 앉아있었다. 느긋한 자세만 보면 마치 제집에 앉아있는 듯했다.“내 탓 하지 말아요.”그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두 사람 아까 행동은... 누가봐도 오해할 상황이었어요.”심유진이 붕대로 오일을 바른 부위를 감아놓은 뒤에야 허태준은 느긋하게 셔츠를 입었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여형민을 힐끗 쳐다보며 애써 분노를 눌러 삼켰다.“휴게실에 데려다줄게.”심유진에게 말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여형민에게 말했다.“하진에게 배달 음식 하나 주문하라고 얘기해줘.”하진은 그의 비서 이름이었다.“배달 음식?”여형민은 심유진을 보며 물었다.“여동생이 도시락 들고 인사하러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도 커피랑 샌드위치가 있는데 허 대표한테 아무것도 없다고요? 아,
그의 질타 소리에 심유진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휴대폰 스피커를 막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며 허태준에게 말했다.“나가서 연락 좀 받고 올게요.”“그래.”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레스토랑에서 나온 뒤 심유진은 그제야 손을 내려놓고 정재하에게 물었다.“제가 언제 심연희를 데리고 바에 갔다고 그래요?”“이틀 동안 심연희가 심유진 씨랑 있었잖아요. 당신이 아니면 누군데요?”정재하는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함부로 말을 꺼냈다.그의 태도에 심유진도 화가 북받쳐 올랐다.“죄송한데 정재하 씨, 당신 여자친구를 데리고 바에 간 사람 나 아니에요.”그녀의 말투는 평온했고 눈빛은 싸늘했다.“누구랑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알고 싶으면 직접 물어봐요. 함부로 추측하고 억울한 사람 만들지 말고요. 제가 사람을 잘 돌보는 건 아니니까 당신 여자친구는 당신이 직접 챙겨요.”정재하는 그녀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 그리고 어젯밤 허 대표님과 여 변호사님께서 당신 여자친구 구하려다가 다치셨어요.”심유진은 일부러 과장하여 말을 꺼냈다.“정재하 씨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네요? 허 대표님과 여 변호사님 병원비는 보상해 주실 건가요?”그녀의 말에 정재하는 발끈했다.“심연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단 걸 알면서도 왜 저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요?”그의 당당한 말투에 심유진은 화가 나는 동시에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심연희가 직접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기분 나쁘면 심연희한테 직접 찾아가서 물어요. 두 사람한테 해야 할 도리는 다했으니까 앞으로 두 사람 사이 일에 날 끼워넣지 말아 주세요.”그녀는 곧바로 통화를 끊었고 정재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심유진이 레스토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허태준은 이미 주문을 완료한 상황이었다.웨이터는 주문한 음식들을 다시 되뇌며 그녀에게 추가할 메뉴가 있는지 물었다.“양념갈비? 삼계탕?”심유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허 대표님께서 싫어하는 음식들 아니에요?”그
심유진은 어렴풋이 수화기 반대 켠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 마세요.” 정재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심유진이 물었다. “정재하 씨는요? 같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 얘기는 하지 마!”심연희는 정재하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듯 그 이름만 들어도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 빨리 데리러 와줘. 너무 춥고 힘들어.” 심연희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매우 가련하고 힘들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심유진은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정재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 심연희를 들이는 건 자신에게 귀찮은 일만 더하는 짓이라며 한소리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심연희를 혼자 돌려보내는 것도 알맞지 않았다. 결국 심유진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급히 문 앞으로 뛰여갔다.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심연희가 기다리다 못해 먼저 가버린 건가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경비실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경비는 심연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뭐라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입모양만 보일뿐 뭐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심연희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억지로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우정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대우였다. 경비실의 창문이 다 닫혀있었기에 심유진이 다가가서 가볍게 창문을 두드리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심연희가 경비에게 뭐라 얘기하다 그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어줬다. 심연희는 곧장 달려 나와 심유진의 품에 안겼다. “언니, 나 정재하랑 헤어질 거야!” 심연희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심유진은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하는 말은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유진은 심연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했다. “화내지 마.” 경비가 따라 나와 큰 캐리어 두 개를 건넸다. “이 아가씨 겁니다.” 그는 이 상황을 바라보며 낄 타이밍을 잡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었다. 심유진은 그를 보며 웃음 지었다. “
심연희의 꿈은 아름다웠고 존중해 줄 만했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대구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정은 조금 충동적인 것 같다고 심유진은 생각했다. 심연희는 평생을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왔기에 실패나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취직을 어린애들 장난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자리는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특히 너 같은 인턴은 회사경험도 많지 않아서 큰 회사에 들어가기는 힘들어.” 심연희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친구한테 부탁해서 일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하면 돼. 나 친구도 많고 다들 직장도 다양하거든. 그리고 그냥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거라 월급 같은 면에서 요구도 높지 않아.” 심연희가 이렇게까지 결심을 내렸다니 심유진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현실을 직면하면 자연스럽게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견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건 심연희의 인생이기에 심유진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늦었으니까 얼른 씻고자.” 심유진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심연희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언니.” 심연희가 불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 대구에 남으면 언니랑 같이 살면 안 돼?” 심유진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 애석하게도 심연희는 아직 심유진을 잘 알지 못했다. “최대로 일주일까지만 여기서 지내게 해 줄게. 일주일 뒤에도 직장도 집도 못 구하면 그냥 경주로 돌아가. 독립하겠다는 꿈 그때는 접고 그냥 계속 공주님으로 살아.” 심연희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심연희가 심유진의 집에 머물 동안 심유진은 매우 바빴기에 심연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가끔 집에 있을 때 밥을 차려줬고 그 외의 시간에는 모두 심연희 혼자 시켜 먹거나 사 먹는 방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정재하는 수시로 심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사과를 했고 그다음부터는 심연희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자신을 바짝 낮추며 심유진
심연희는 여기서 지내는 내내 자주 물었었다. “언니, 왜 대표님이랑 데이트 안 해?” “대표님도 불러서 같이 식사하면 안 돼?” “내가 방에 잠시 들어가 있을 테니까 대표님이랑 시간 보낼래?”... 하도 자주 얘기하는 탓에 심유진은 심연희가 허태준을 좋아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하면 심유진은 지금 허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니다. 그리고 심연희는 일방적으로 정재하와 헤어지겠다고 통보했으니 심연희가 허태준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심연희는 분명 허태준이 심유진의 남자친구인걸 알면서도 자꾸 입에 담는다는 것이었다. 심유진은 이런 점이 조금 불편했다. “방해하는 거 맞아.” 심유진은 일부러 이렇게 대답했다. 심연희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언니는 우정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지?” 심연희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심유진을 질책했다. “그럼.” 심유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놓은 지 보름이 되여서야 심유진은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아가씨, 혹시 혼자 집을 내놓으셨어요?” 전화를 건 직원은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심유진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요, 부동산에 다 맡겼잖아요.””거짓말하지 마세요.” 직원이 코웃음을 쳤다. “오늘 집 보러 오신 분이랑 같이 갔는데 이미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그분이 그러시던데요. 심유진 씨와 직접 계약하셨다고요. 집주인 맞으시죠?” 심유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집주인은 맞는데요. 계약한 적이 없는데요? 정말 제가 세를 내준 게 아니에요.” 부동산 직원이 전혀 믿지 않자 심유진이 말을 보탰다. “제가 내일 가서 확인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다음날 퇴근 후 심유진은 그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열쇠를 꽂으려고 노력해도 열쇠가 구멍에 맞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키 크고 덩치 있는 중년 남성 한 명이 나왔다. 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심유진을 쳐다
집안에서 계속 상황을 지켜보던 여인이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들었다. 남성은 손에 들었던 문서들을 팍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문을 쾅 닫았다. 심유진이 제때에 뒤로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부딪혔으면 어디 하나쯤은 부러졌을 것이다. 심유진은 다시 문을 두드리지 않고 문서들을 주은 후 조용히 서서 경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경찰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와서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진상 규명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20분쯤 지나서야 경찰 두 명이 느릿느릿 집 앞으로 왔다. 그 둘은 심유진을 힐끗 쳐다봤다. 비록 그녀가 신고 내용 중의 “주거지에 침입한 여성 사기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너무 덤덤한 모습에 또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집주인분이신가요?” “제가 집주인인데요. 안에 모르는 분이 살고 계셔서요.” 심유진이 벨을 눌렀다. “자초지종을 잘 조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구랑 이 집을 계약했는지도요.” “네?” 경찰들이 놀라서 서로 마주 봤다. 신고전화랑 내용이 정말 달랐다. 중년남성이 다시 문을 열었다. 경찰들을 보자 조금 격양된 어조로 얘기를 시작했다. “이분 완전 사기꾼이에요. 집주인이라고 속이더니 위조한 집문서랑 신분증까지 보여주더라니까요. 저희 집에 들이닥쳐서 물건을 훔치려던 것 같아요.” 경찰들은 둘을 번갈아보며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눈치였다. “제가 집주인 맞고요. 집문서도 위조한 거 아니에요.” 심유진이 문서를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은 한참을 바라보더니 난감해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것만 보고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그 말을 듣자 남성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무조건 사기꾼이죠! 저희 집주인분은 복사본이 아니라 집문서 원본을 가지고 오셔서 저희랑 계약하셨어요.” 원본이라는 말을 듣자 심유진은 왠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원본은 조건웅에게 있었고 조건웅이 사라지면서 문서들도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
“여기 사시는 분이세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경찰이 물었다. “네.” 장아줌마가 맞은 켠 집을 가리켰다. “여기 살아요.” “혹시 이분을 아세요?”경찰이 심유진을 짚으며 말했다. “당연히 알죠! 1년 반동안이나 이웃으로 지냈는데. 이사 와서 인테리어 할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그녀는 심유진을 위해 열렬히 변호했다. “짜고 치는 거 아니고요?” 중년남성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장아줌마는 열쇠로 집문을 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여보!” “응.” 안에서 장아줌마의 남편이 웃으며 뛰여왔다. “오늘 또 야근했어? 왜 이렇게 늦었어.” 중년남성은 할 말을 잃었다. 경찰들이 말했다. “집주인이라는 분이랑 연락 좀 해보세요.” 남성은 스피커폰으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무슨 일 있으세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이소연이라는 걸 심유진은 단번에 알아챘다. 남성이 심유진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어떤 여자가 찾아와서 집주인님 집문서는 가짜고 자신이 진짜 집주인이라고 그러는데 지금 잠시 여기로 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 집문서가 가짜일리가요!” 이소연이 발끈했다. “저희 아들이 남기고 간 집문서예요. 제 아들 이름이 써져있는 거 똑똑히 보셨잖아요.” 남성이 그녀를 변호했다. “저랑 제 와이프 모두 확인했죠. 근데...” “제가 얘기할게요.” 심유진이 휴대폰을 뺏어 들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심유진이에요.” 상대방은 조용했다. 심유진은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 집을 살 때 돈은 다 제가 냈어요. 조건웅 씨는 일전 한 푼 보태지 않았을뿐더러 불법으로 이 집을 자기 명의로 바꿔놨고요. 전에 고소했는데 얼마 전에 결과가 나왔더라고요. 법원이 이 집을 다시 저한테 돌려줬어요. 그래서 지금 가지고 계신 집문서는 이제 무효니까 제 집을 함부로 넘기실 권한은 없으세요.” 이소연은 몇 초간 침묵했다. 심유진의 말을 이해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