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요리 완전 맛있어요! 갈비도 예술입니다. 아줌마, 요리 솜씨가 죽여주네요!”양 볼 잔뜩 음식을 밀어놓은 백희연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햄스터 같았다.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면 걸신이라도 들린 줄 알았을 것이다.물론 걸신보다 그녀의 나이가 더 많은 건 비밀이었다.무려 청교의 여왕이 반지에 봉인되어 천 년이 지나서야 겨우 빛을 보게 되는 날이 다시 오다니!청교에 있었던 과거를 되짚어 보면 그녀는 식자재가 아무리 귀해도 안중에 없었고, 입에 대지도 않았다.청교의 여왕이 흡족할 만한 식자재는 전 세계에서도 최상급에 속했다.그러나 지금은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였고, 뭘 먹어도 맛있었다.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설령 신일지언정 천 년 동안 굶으면 입맛이 돌기 마련이다.게다가 그녀는 고작 여우 요괴에 불과하지 않은가?“주인... 무현아, 난 정말 먹을 복을 타고났나 봐.”자칫 말실수할 뻔한 백희연은 잽싸게 호칭을 바꾸었다.염무현은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는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미인이 곁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눈에 띄기 마련인데, 매력적인 목소리로 주인님이라는 호칭까지 부른다면 더더욱 오해하기에 십상이다.식탁 위의 요리는 전부 염무현과 우예원이 즐겨 먹는 반찬이지만, 지금은 불청객에게 싹쓸이당하는 중이었다.다행히 압도적인 비주얼로 꿀 발린 말까지 아끼지 않는 덕분에 정은선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다.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백희연을 점점 받아들이고 성격이 시원시원한 여자아이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맛있으면 많이 먹어.”정은선은 이내 새우 하나를 집어서 백희연의 접시 위에 놓았다.“엄마! 저도 아직 맛보지 못했는데!!”우예원이 투덜거리자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넌 항상 먹잖아. 이번에 못 먹는다고 죽기라도 해? 우리 희연이는 처음 먹어 본다고.”우예원은 입을 삐쭉거렸다. 대체 누가 친딸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자, 넌 갈비 먹어.”그나마 딸의 편을 들어주는 건 아
염무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태연하게 손을 빼냈다.“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이 있다고.”“한밤중에 나가서 무슨 일 본다고?”백희연은 또다시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이번에는 황당하게 무려 가슴 사이에 꼭 끌어안았다.봉긋한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탄력이 넘쳤다.이 요괴가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한 건가?염무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을 보탰다.“싸움이 벌어질 거라 여자가 따라오면 불편해.”이내 말을 마치고 다시 팔을 빼내려고 했다.하지만 백희연은 그에게 도망갈 틈을 주지 않고 더욱 꽉 껴안으며 고집스레 말했다.“왜 불편해? 싸우는 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고, 금세 흥분으로 물들었다.이는 누가 봐도 구미가 당기는 모습이었다.“네가?”염무현이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말하자 백희연은 발끈했다.“나쁜 주인 같으니라고, 감히 날 무시해? 내가 싸움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지? 일찍이 전 세계를 휩쓸어 적수가 없을 정도라고.”“허풍은! 천하무적이라는 사람이 왜 반지에 갇혀 있어?”“에잇! 남의 약점이나 들춰내고!”백희연은 짐짓 화난 척 연기했다.“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안 되겠어, 주인님으로서 보상해줘야 해.”“어떻게 해줄까?”염무현은 일부러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두 눈에 흥분의 물결이 일렁거렸다.“나도 데리고 놀러... 아니, 싸우러 가.”세상 무서운 것 없는 모습은 사고를 치지 못해 안달 난 듯싶었다.그제야 염무현은 미인은 재앙의 근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되었다.예쁜 왕비를 얻으려고 강산을 잃은 왕이 있는가 하면, 미녀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남자가 있다고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그런 여자와 비교하면 백희연도 못지않았다.만약 옛날이었다면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장본인이 되었을 것이다.“그래, 가는 건 상관없지만 반드시 약속을 지켜 줘.”염무현은 그녀의 애교에 넘어가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내 곁에 딱 붙어 있되 말썽
차 세 대가 산꼭대기로 향했다.“무현 님, 우두머리 집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네요.”진경태가 웃으면서 말했다.“희연 씨를 데리고 좀 둘러보는 게 어때요? 비록 인위적으로 만든 풍경이 대부분이지만 구경할 맛이 꽤 날 거예요.”“그래요.”이왕 온 김에 여기저기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백희연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염무현의 팔을 끌어안았다.염무현은 빼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너무 꽉 끌어안은 탓에 두어 번 시도한 끝에 실패하자 발버둥 치기를 포기하고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본 공규석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속으로는 위기감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사실 예전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소꿉친구인 우예원 또는 연씨 가문의 아가씨 연희주, 심지어 전 와이프인 양희지마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왜냐하면 딸아이 역시 못난 점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백희연은 레벨 자체가 달랐다.“규석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나도 알아.”진경태가 웃으며 말하자 공규석이 반문했다.“그런데도 무현 님과 단둘이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거예요?”진경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감정은 억제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한번 싹트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막지. 혜리가 백희연의 라이벌이 안 될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공규석이 쓴웃음을 지었다.“맞아요, 백희연에 비하면 혜리는 전혀 우세가 없죠.”진경태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모든 사람은 장점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도 대체할 수 없지. 무현 님은 대단하신 분이라 외모만 보는 얄팍한 인간이 아니거든. 이렇게 간단한 도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겠어?”공규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렇다고 해서 우리 혜리한테 기회가 있다는 뜻은 아니잖아요.”“왜 이렇게 고집불통이야?”“그게 무슨 말이죠?”진경태가 옆에 있는 정자를 가리키자 두 사람이 걸어가서 앉았다.“무현 님처럼 매력이 넘치는 남자는 이성의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지난번 용병들이 임기욱을 납치하려고 도사를 몰살하고 스스로 주인 행세를 사칭하지 않았는가?옆에 있던 백희연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불쾌한 듯 말했다.“사원을 보니 기분이 언짢군.”천 년 전에 골탕 먹은 것도 다름 아닌 늙다리 도사 때문이지 않은가?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원한을 잊은 적이 없었다.“아니면 먼저 집에 가 있을래?”염무현의 말에 백희연은 눈을 흘기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고작 도사 따위가 뭐라고? 설마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 여기까지 왔는데 순순히 돌아갈 리가 있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다리를 움직여 염무현과 함께 안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이 막 들어서는 순간 의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혹시 염무현...?”이내 고개를 돌리자 염무현은 낯익은 모습을 발견했다.“문 선배?”청순한 미모의 여자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문성은은 염무현의 대학교 선배로서 학교 다닐 때 그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당시만 해도 친구들은 그녀가 염무현을 좋아하는 건 아닌지, 이대로 연상연하 커플이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물론 나중에는 루머가 알아서 잠잠해졌다. 왜냐하면 염무현은 초반에 양소민과 사귀다가 양희지로 갈아탔기 때문이다.그리고 문성은은 대학교를 졸업했고, 염무현이 출근하기 시작할 때 여러 번 통화하면서 직장 경험을 꽤 많이 전수해줬다.시간이 흘러 염무현이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진짜 너였어?”문성은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서둘러 다가왔다.“멀리서 비슷해 보였는데 섣불리 아는 체하기가 어려웠어. 진짜 많이 변했네?”지금의 염무현은 풋풋한 대학생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4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청산하고 염라대왕이라는 신분까지 얻게 되면서 그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직장 다닌 지 얼마 안 돼서 결혼했다며?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없었어?”그제야 백희연을 발견한 문성은이 무심코 말했다.“희지도 많이 변했네? 만약 다른 곳에서 마주쳤더라
문성은은 단지 후배를 만나 기쁜 나머지 약혼자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이때, 근육질의 건장한 남자가 다가오자 설문호는 그제야 마지못해 눈길을 돌리며 소개했다.“여기는 내 지인, 지필승이라고 해요.”문성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무현아, 우리랑 일행이야.”염무현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지만, 상대방의 리액션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그들은 염무현이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백희연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대로 잡아먹을 기세였다.이렇게 예쁠 수가! 비주얼은 물론 몸매까지 완벽했다.그동안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들은 백희연과 비교하면 미운 오리 새끼에 불과했고 비교할 가치조차 없었다.설령 문성은일지언정 마찬가지였다.이는 지필승만 드는 생각이 아니라 설문호도 같았다.그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미인이 대체 왜 염무현 같은 사람과 함께 있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갔다.분명 흔하디흔한 애송이인데!머리부터 발끝까지 딱히 내세울 만한 옷도 없고, 신분을 대표할 사치품도 보이지 않았다.대체 무슨 수로 이런 여자를 만난단 말이지? 설마 미인 분께서 눈이 멀었나? 이성에게 굶주려서 가라지 않을 정도인가?문성은이 다시 물었다.“무현아, 아직 이 미인 분의 소개를 안 해줬네?”염무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이름은 백희연이고, 여동생... 아니, 사촌 여동생이에요.”사실 ‘친구’라고 말하려다 친구끼리 이렇게 다정한 포즈를 취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급히 사촌 여동생이라고 했다.설령 둘이 성이 달라도 말이 되었으니까.문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촌 여동생이구나. 양희지인 줄 알고 아까 깜짝 놀랐잖아.”설문호와 지필승의 눈빛이 순식간에 흥분으로 물들었다.알고 보니 염무현의 여자친구가 아니었단 말인가?하긴, 눈이 멀지 않은 이상 염무현 같은 평범한 남자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성은 씨 후배라면 서로 친구죠, 뭐. 두 분도 우두머리 집회를 구경하려고 칠성각에 온 거죠?”설문호가 웃으면서 말했다.“아래에서
설문호는 듣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진짜요?”“눈썰미가 뛰어나고 정확한 판단만 하면 100% 장담해.”지필승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우두머리 집회에 참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선수들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거든? 날 따라 배팅하면 절대 밑지지는 않을 거야.”미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백희연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주변 풍경을 살피기 바빴다.“그럼 오늘 형님만 믿고 가겠습니다!”설문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우두머리 집회는 언제부터 시작해요? 어떻게 들어가야 하죠?”심지어 문성은마저 은근히 기대했다. 물론 돈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고대 무술 능력자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아 오늘 제대로 구경할 셈이다.지필승은 두 사람의 반응에 아주 흡족하면서 저도 모르게 의기양양했다.“시간이 얼추 된 것 같으니 이제 경기장에 들어가도 돼. 이만 가볼까?”지필승이 말했다.하지만 태연자약한 염무현과 백희연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우두머리 집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니?설마! 그렇다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뭐람?단순히 경치를 구경하러?그건 말이 안 되었다. 대체 누가 어두컴컴한 밤에 이런 인적 드문 곳에 오겠는가?설령 대낮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지필승은 두 사람이 아직 우두머리 집회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그렇다고 판단했다. 이따가 내부로 들어가면 뜨거운 분위기에 동화되면 달라질 거로 확신했다.그때 가서 자신에게 진두지휘할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며, 본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겼다.따라서 미인의 호감을 사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마련이다.염무현이 내기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즉, 돈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에게 돈은 단지 숫자에 불과했다.첫 번째 자릿수가 점점 커지거나 뒤에 0이 몇 개 붙어 있냐의 차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무현아, 여기까지 온 이상 경기장을 구경할 기회를 놓치기에 아
선두에 있는 도사는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고대 무술 능력자의 기운까지 풍겼다.다른 도사들도 일반인은 아니었기에 불만이 있어도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입씨름만 했다.고개를 치켜든 채 으스대는 지필승의 모습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물론 도사들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부로 들어가면 그만이니까.안성무관의 둘째 도련님이라는 신분만 내세우면 식은 죽 먹기였다.“초대장을 보여주세요.”도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지필승은 넋을 잃고 말았다.“무슨 초대장?”“우두머리 집회에 소속된 맴버만이 내부로 입장할 수 있죠. 초대장이 없다면 일절 접근 금지입니다.”도사는 단호하게 말했다.설문호가 다가와 큰 소리로 말했다.“눈 크게 뜨고 똑똑히 봐, 이 분은 무려 안성무관의 둘째 도련님 지필승 씨라고! 첫째 도련님인 지필립 씨는 경기에 참여하기로 한 선수야. 이래도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을 건가?”도사가 콧방귀를 뀌었다.“형은 들어가도 되지만 남동생은 초대장을 받지 못했으니 입장 불가합니다.”지필승은 슬슬 짜증이 나가 시작했다.“매년 입장했는데 올해는 왜 안 된다는 거지? 누가 규칙을 바꾼 건가?”아까만 해도 가슴을 두들기며 사람들을 내부로 들여보내 주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는가? 눈 깜짝할 사이에 뒤통수 맞을 줄이야.게다가 미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어찌 이런 수모를 참을 수 있단 말인가!“그쪽 사원장이랑 서로 아는 사이인데, 체면을 봐서라도 이만 들여보내 주시지?”지필승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도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말은 누가 못하죠? 어떻게 증명할 건데요? 설령 지인이라고 해도 초대장이 없으면 출입 불가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새로운 사원장님께서 정한 규칙이거든요, 알겠어요?”지필승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돈 줄게, 됐지? 얼마나 필요한데? 말만 해. 달라는 대로 낼 테니까.”도사가 코웃음을 쳤다.“돈만 있으면 다 인가? 여긴 우두머리 집회가 열리는 곳이지 동물원이 아니라고
그때 공혜리는 왜 도사의 이름을 묻지 않냐고 했고, 인연이 있으면 언젠간 만날 텐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냐고 대답했던 거로 기억했다.하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다.게다가 이 사람이 어떻게 칠성각의 사원장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내 도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그러자 젊은 도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여러분들은 우두머리 집회를 구경하러 온 건가요?”“맞아요, 다들 도심에서 이 멀리까지 찾아왔죠.”“산꼭대기에 올려보낼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입장 불가가 말이 됩니까? 무슨 이따위 규칙이 다 있죠? 어차피 들여보내지 않을 거 진작 말하지, 다들 괜히 헛걸음이나 했잖아요.”“그나마 볼거리가 있다고 해서 외딴곳이라도 왔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한가해서 한밤중에 이런 데를 찾겠어요?”젊은 도사는 사람들의 원망 섞인 푸념에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그러다 우연히 인파 틈에 서 있는 염무현을 보고는 순식간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리 또 만났네요? 어쩌면 진짜 인연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정녕 운명인가요?”염무현도 웃으면서 말했다.“고성에서 헤어진 게 고작 며칠 전인데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아직 도사님의 법명을 여쭤보지 못했군요.”“태일 도사라고 합니다.”젊은 도사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염무현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태초에는 존재하는 게 없었고, 모든 건 하나(일)부터 생겨나는 것이라...”이는 고대 학자가 했던 말이다.태일 도사는 깜짝 놀랐다. 염무현이 법명의 유래를 단번에 파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학문의 깊이가 남다른 것 같은데 감탄이 저절로 나오네요. 혹시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결국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지난번 고성에서 상대방의 이름을 서로 묻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죽이 척척 맞은 셈이었다.“염무현이라고 합니다.”염무현도 자기 이름을 밝혔다.태일 도사는 진지한 얼굴로 읊조리며 이름 석 자를 마음속에 새겼다.“도사님이 어쩌다가 칠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