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나 지났는데 된 거 아닌가?그렇게 연약한 척하지마."김신걸은 강압적인 수단을 썼다."며칠만.며칠만 더...""손이 망가지는 꼴을 보고싶지 않으면 순순히 말 듣지 그래?"김신걸이 경고했다."안 돼.싫어......"원유희는 울면서 손으로 벽을 꼭 짚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힘으로는 김신걸과 저항할 수가 없었다.사람은 끌려갔고.하얀 벽에는 긴 손톱 자국이 몇 줄만 남았다...원유희는 그가 김신걸을 건드리든 말든을 떠나서 마지막 결말이 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숨쉬어도 안 되는 듯했다.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방 안은 아주 어수선했다.그건원유희도 그랬다.원유희는 베개를 안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울었다.누구도 없는 방에는 그의 통곡소리만 울려퍼졌다.한참을 울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그래.다 울었으면 일어나야지.아이들도 돌봐야 하는데.그녀가 당한 죄를 아무에게도 알리면 안 돼.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해.그의 가방은 거실에 버려져 있었다.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을 때 두 개의 부재중 전화가 떴다.둘 다 원수정이었다.원유희는 다시 원수정에게 전화를 쳤다."무슨 일이세요?""너가 보이지 않아서.어젯밤에 돌아간 거야?""네.""너도 참.집에 사람을 숨긴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네.정말 한시도 떠나고 싶지 않은 모습이야."원수정이 투덜거렸다."아니에요."원유희는 땅을 보며 말했다."오후에 가도 될까요?""그래.어차피 간병인을 구했고.우리가 돈을 낼 필요도 없으니까."마치 입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즐기러 온 것 같았다.원유희는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갔다.제철 과일도 사들고.병실의 문을 열려는 순간 안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남자의 목소리였다.원유희가 의아해했다.원수정에게 병문안을 올 정도로 사이가 좋은 남자가 있었던가?설마 김영?자세히 들어보니 아닌 것 같았다.원유희는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먼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안의 사람이 나오면 한 눈에 볼수 있게.하지만 10분이 지
“안 얘기해줬는가…?”“얘기해줬으면 제가 왜 직접 찾아와서 물어보겠어요?”조금 전에는 장미선 모녀가 한바탕 난동을 부렸고, 어젯밤에는 김신걸이 자신을 괴롭혔는지라 원유희는 도저히 상냥하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그리고 설령 원수정이 내연녀라고 할지언정 바람을 피운 윤정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순 없다.침착함을 유지하던 윤정은 망설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너희 엄마랑은 예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사이일세. 너희 엄마는 진짜 내연녀가 아니고 난 이혼하고 너희 엄마랑 만났어.”“그럼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이혼 얘기가…다 사실이란 말이에요?”원유희는 멈칫하다가 덧붙여 설명했다.“절대 지난 일을 다시 꺼내서 상처를 주려는 거 아니고요. 그저 진실이 알고 싶은 거예요.”“못 말할 것도 없지. 다 사실이니까 너희 엄마를 오해하진 말게. 너희 엄마는 아주 좋은 여자야.”원유희는 어리둥절해 났다.내연녀,첩,나쁜 년…지금까지 원유희의 기억 속에서 있었던 원수정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다 저런 얘기였다. 온갖 욕설과 모욕이 담긴 얘기로 원수정에게 수모를 줬고 자존심을 짓밟았다. 하지만 ‘좋은 여자’라니? 처음으로 원수정에 대한 호평을 듣게 되자 원유희는 어리둥절해졌다.“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얘기했네. 너희 엄마에겐 평생… 사죄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네.”“그쪽의 딸을 위해서 헤어지자고 한 거죠?”원유희는 차가운 어조로 물어보았다.윤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묵인했다.그런 윤정을 보고 원유희는 코웃음을 쳤고 담담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지난 일들은 그냥 지난 걸로 하죠. 지금 따져봤자 아무 의미도 없을 거니깐요. 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쪽은 삶과 가정을 선택했고 결정을 내린 이상 다신 저희를 찾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돌아가서 처자식과 얘기를 잘하셨으면 하네요.”“그래, 이미 얘기를 했네.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호통을 쳤으니 안심하게.”윤정의 얘기를 다 듣고 원유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올해 나이가 어떻
“네, 전 그냥 이렇게 살려고요.”원수정은 이런 원유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곤 애가 잘못됐나 싶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얘 봐라, 뭔 일 있었어?”“별일 없었어요.”원유희는 원수정의 손길을 피하며 말하다가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엄마, 우리 제도를 떠날까요?”“왜?” 원수정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혹시 윤씨 집안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 난 그놈들이 전혀 두렵지 않아. 하지만 네가 떠나고 싶은 거라면 엄마는 얼마든지 함께 가줄 수 있어.”예상 밖의 전개여서 그런지 원유희 얼굴에서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전 엄마가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요.”“엄마는 그 집안사람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아. 그저 역겨울 뿐이야. 그리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사실 이말고도 원유희는 또 다른 걱정을 안고 있었는데 바로 아이들이었다.이제 기회 되면 아이들 얘기도 꺼내야 할 텐데…원수정이 낮잠에 든 모습을 보고 갑자기 뭔 일이 생각난 원유희는 김신걸에게 문자를 보냈다. ‘윤설네 아버지가 병원에 왔을 때 잠깐 얘기를 나눴어. 그 사람이 얘기하더라. 이혼하고 솔로가 됐을 때 우리 엄마를 알게 되었대. 그니까 상간녀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어.’어쨌거나 그녀는 오해받기 싫었고 김신걸한테 오해받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앞으로 약혼녀가 심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신한테 시비를 건다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오후에 윤설은 약혼 식장의 일로 김신걸을 찾아갔으나 마침 김신걸은 일때 문에 외출하고 있었다. 그의 핸드폰은 테이블위에 놓여있었고 윤설이 바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메시지 알람이 뜨자 윤설은 핸드폰을 가져왔다.장금을 해제하고 메시지 내용을 확인 윤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원유희 이 여유같은 년! 몰래 김신걸을 꼬시는 것도 부족해 이젠 윤정에게도 접근해?윤설은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런게 바로 그 엄마에 그 딸 뭐 그런 것인가?반면 원유희는 자기가 보낸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 탓에 당황한 원유희는 바로 뒤로 피했고 자리를 떠났다.“저녁은 엄마랑 먹어야 하니까 그냥 혼자 드세요.”원유희는 칼같이 거절했다.“너 원래 이런 배은망덕한 사람이었어?”김명화는 허리를 곧게 펴고 비꼬는 말투로 얘기했다.“며칠 전만 해도 은혜를 갚으니, 뭐니 하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넌 은혜를 이렇게 갚아?”이 소리를 듣고 원유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감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로만 끝내는 것은 확실히 도리에 어긋났다.“어디 가서 드시고 싶은데요?”김명화는 환한 미소와 함께 얘기했다.“가자, 근심은 넣어둬. 해산물은 안 먹을 거니까.”원유희는 임무를 완수하듯이 그를 따라 레스토랑에 갔다.그 곳은 제성에서도 유명한 맛집이었다.2층 창문 쪽에 있는 자리에 앉으면 아름다운 야경이 한눈에 안겨 왔다.“여기엔 커플이나 가족들이 자주 오는데, 우리는 그럼 어느 쪽에 속하는 걸까?”김명화가 물었다. 그는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백자기 찻잔을 만졌고 케어를 자주 받은 손톱은 가지런하고 깨끗했다.원유희는 그를 힐끔 쳐다보곤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채무 관계죠.”김명화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웃음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로움도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네가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란걸 왜 이제야 알았지?”“제가 뭐 원숭이도 아니고 뭐가 재밌는데요?”원유희는 달갑지 않았다.“에이, 어느 원숭이가 해산물을 먹고 그러겠어?”김명화는 놀리며 말했다.“아니, 나 해산물 알레르기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은 또 처음 보잖아.”“제가 언제…”원유희는 말하다 말고 자기 앞에 멈춰 선 남자와 그 옆에 있는 장미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장미선은 자기 남편의 팔짱을 끼고 있었고 아주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반면 윤정은 초점 잃은 눈으로 계속 원유희를 바라보았다.원유희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자꾸 쳐다보지? 여기서 만난 게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김명화는 원유희의 시선을 따라 뒤돌아보니 그
그러자 장미선은 웃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기대는 남편이 너무 좋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다만 조금 전 원유희를 바라보는 윤정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원유희는 젊고 예쁜 데다가 남자를 꼬시는데 도가 틀지 않았는가!“원수정이 애를 낳고도 혼자 살 줄을 누가 알았겠어? 원수정이랑 김영이 이번에 금방 이혼했는데 애 낳은 것을 숨기고 결혼한 것이 들켰던 거지.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엄마가 다 있대? 딸내미를 나 몰라라 하면서 자기는 결혼해서 호강하고. 정말 형편없어도 너무 없어.”장미선은 고개를 저으며 경멸이 담긴 어조로 얘기했다.이 말은 듣자 윤정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어디서 들은 얘기야?”“조금만 알아봐도 다 알 수 있는 얘기야. 우리 설이 시댁이 될 집안인데 그래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조사해 본 거야. 근데 신걸이는 약혼식에 아버지 쪽 사람들을 안 초대 할 거래. 그 누구도.”역시 김신걸과 김명화의 사이가 나쁘다는 건 풍문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약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병원에 가지 않고 바로 아파트로 향했다.단지 아래까지 왔을 때 그녀는 원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원수정은 또다시 의구심이 들었다.“너 설마 연애하니?”“아닌데요.”“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네 엄마인데 이것도 못 알아볼 것 같아? 친구가 아니라 남자친구랑 같이 밥 먹은 거지?”원수정의 직감이 얘기하고 있었다. 원유희의 식사 상대가 친구가 아니라 남자인 것을.“진짜 아니에요.”“나 아까 처치실에 가서 물어봤어. 너 어떤 남자랑 같이 나갔다고 하더라. 간호사의 얘기로는 인물이 훌륭하고 돈도 좀 많아 보인다고 하던데. 너 그 남자 때문에 표원식을 거절한 거야? 혹시 표원식과 차이가 너무 큰 그런 남자라면 난 허락 못 한다!”헛된 상상을 시작한 원수정을 보자 원유희는 그저 사실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김명화
뭐지? 사기 쳐서 돈 뜯어내려는 걸까? 아니, 근데 자기한테서 뭐 얻어낼 것이 있다고?“발을 삔 것 같네.”윤정은 고통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원유희는 퍽 난감했다. 모르는 체하고 지나갈까 아니면 도와줘야 할까? 발을 삐면 운전도 못 하는 거 아닌가?“혹시 운전할 줄 아는가? 시간이 된다면 병원까지 데려다 줄 수 있으면 좋겠건만…”윤정은 원유희를 보며 도움을 청했다.원유희는 심적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그냥 보고 넘어갈 순 없었는지라 윤정을 데리고 병원에 가게 되었다.병원에 도착한 윤정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원유희는 병원 의자에 앉아 기다렸는데 도무지 남자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왜 자기 처자식한테 전화를 안 하지? 심지어 처자식을 언급조차 하지 않아 그녀가 윤설에게 전화하기도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하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또 꼬시느니 마느니 이상한 소리를 할 게 불보듯 뻔했다. 암튼 좀 있다 윤정이 나오는 대로 그녀는 가려고 생각했다.십몇 분이 지났을까 물 한 잔이 그녀의 앞에 놓였다.원유희가 고개를 들어 보니 검사를 마친 윤정이가 의자에 앉았다.“큰 문제는 아니고 그냥 좀 부어서 며칠 휴식하면 괜찮아진다네.”윤정은 검사 결과를 얘기해주었다.“물 좀 마시게.”마침 원유희는 목이 말랐지만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이를 보자 윤정은 웃음이 났다.“왜 내가 물에 뭐라도 탔을까 봐 걱정하는 건가? 병원의 물이니까 안심하고 마시게.”“그건 아니고…”사실 원유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대낮에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안심하고 종이컵을 들어 몇 모금 마셨다.이상하게도 그녀는 앞에 있는 남자에게 별 거부감이 없었고 원수정이 얘기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열심히 일하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항상 깨어있는 사람. 원수정은 윤정을 그렇게 평가하였다. 윤정은 장미선에겐 좋은 남편이 아닐지라도 윤설에겐 그저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였고 원유희는 그런 사랑을 받는 윤설이 부러웠다.원유희에겐 두 명의 어머
2시간 후, 윤정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손에 쥐었다.검사 결과에 따르면 원유희는 그의 친딸이 맞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윤정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원수정이 그의 아이를 가졌다니! 그녀는 도대체 언제쯤에 임신 소식을 알았을까? 헤어지기 전에? 아니면 헤어진 다음에?의자에 앉아있던 윤정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너무 괴로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는 자기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아이에게 사랑도 관심도 그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무거운 죄책감이 그를 옥죄이었다.원유희는 혼자 집에 있다가 할일이 없겠다 싶어 아이들의 신발을 사러 아동복 매장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원유희는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윤정을 발견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 있지? 윤정은 원유희쪽으로 걸어갔고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동안 놓쳐버린 세월을 다 되찾으려는 듯 진지하고 애틋하게 바라보았다.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할 윤정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아버지 노릇도 못한 주제에 무슨 염치로 아버지란 소리를 바라겠는가? 그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원유희가 자신의 딸임을 알고 그는 뒷조사를 통해 이 아이의 지난 세월들을 알게 되었다. 힘들게 자란 것도 모자라 김신걸때문에 갖은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윤정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원유희는 그와 물었다.“왜 저를 계속 쳐다보세요?”윤정은 받쳐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여기에 잠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우연히 자네를 보았어. 아동복 매장으로 가는 건가?”“네… 그냥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어요.”윤정은 장미선과 윤설을 통해 원유희과 관련된 많은 일을 듣게 되었고 그녀가 유산하게 된 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여 윤정은 그녀가 아동복 매장에서 아이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고 생각했고 갑자기 가슴이 아파 났다.“점심시간도 거의 되었는데 시간이
근데 윤설은 또 무슨 일로 자기에게 전화를 거는 것일까?저번에 그런 일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인가?그녀는 원래 전화를 받기 싫었으나 윤설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윤설은 자기가 전화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걸 것이 분명했다.화장실에 들어간 원유희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왜 그래?”“나 모레 약혼식 하는데 널 초대하려고 전화했지.”윤설은 담담하게 얘기하려고 했으나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의기양양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원유희는 정말로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를 초대한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를 초대한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너 제정신이니?”원유희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다.“왜? 와서 볼 자신이 없는 거야?”“어, 그래. 자신이 없어.”윤설은 저렇게 얘기하면 원유희를 도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안 돼, 넌 꼭 와야 해. 아니면 어떻게 너의 미련을 잘라버릴 수 있겠어? 안 오면 내가 직접 사람을 불러서 널 데리러 갈게.”원유희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져 갔다. 윤설은 설마 아직도 내가 김신걸을 좋아하고 있다고 믿는 걸까? 그들의 약혼식을 부러워할 만큼 아직도 미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연적을 약혼식에 초대할 만큼 그리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아, 정확히 얘기하면 윤설은 원주희를 연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기껏해야 김신걸이 놀다 버린 장난감으로 취급했다.“주소 찍어.”원유희는 윤설이 자기 집까지 찾아오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윤설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김신걸의 경호원밖에 없는데 그들과 맞서면 손해 볼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하루걸러 원유희는 차 타고 약혼식 장소로 갔다.평범한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약혼식장에 들어서니 원유희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현장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다 정·재계에서 유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