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장미선은 웃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기대는 남편이 너무 좋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다만 조금 전 원유희를 바라보는 윤정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원유희는 젊고 예쁜 데다가 남자를 꼬시는데 도가 틀지 않았는가!“원수정이 애를 낳고도 혼자 살 줄을 누가 알았겠어? 원수정이랑 김영이 이번에 금방 이혼했는데 애 낳은 것을 숨기고 결혼한 것이 들켰던 거지.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엄마가 다 있대? 딸내미를 나 몰라라 하면서 자기는 결혼해서 호강하고. 정말 형편없어도 너무 없어.”장미선은 고개를 저으며 경멸이 담긴 어조로 얘기했다.이 말은 듣자 윤정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어디서 들은 얘기야?”“조금만 알아봐도 다 알 수 있는 얘기야. 우리 설이 시댁이 될 집안인데 그래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조사해 본 거야. 근데 신걸이는 약혼식에 아버지 쪽 사람들을 안 초대 할 거래. 그 누구도.”역시 김신걸과 김명화의 사이가 나쁘다는 건 풍문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약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병원에 가지 않고 바로 아파트로 향했다.단지 아래까지 왔을 때 그녀는 원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원수정은 또다시 의구심이 들었다.“너 설마 연애하니?”“아닌데요.”“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네 엄마인데 이것도 못 알아볼 것 같아? 친구가 아니라 남자친구랑 같이 밥 먹은 거지?”원수정의 직감이 얘기하고 있었다. 원유희의 식사 상대가 친구가 아니라 남자인 것을.“진짜 아니에요.”“나 아까 처치실에 가서 물어봤어. 너 어떤 남자랑 같이 나갔다고 하더라. 간호사의 얘기로는 인물이 훌륭하고 돈도 좀 많아 보인다고 하던데. 너 그 남자 때문에 표원식을 거절한 거야? 혹시 표원식과 차이가 너무 큰 그런 남자라면 난 허락 못 한다!”헛된 상상을 시작한 원수정을 보자 원유희는 그저 사실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김명화
뭐지? 사기 쳐서 돈 뜯어내려는 걸까? 아니, 근데 자기한테서 뭐 얻어낼 것이 있다고?“발을 삔 것 같네.”윤정은 고통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원유희는 퍽 난감했다. 모르는 체하고 지나갈까 아니면 도와줘야 할까? 발을 삐면 운전도 못 하는 거 아닌가?“혹시 운전할 줄 아는가? 시간이 된다면 병원까지 데려다 줄 수 있으면 좋겠건만…”윤정은 원유희를 보며 도움을 청했다.원유희는 심적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그냥 보고 넘어갈 순 없었는지라 윤정을 데리고 병원에 가게 되었다.병원에 도착한 윤정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원유희는 병원 의자에 앉아 기다렸는데 도무지 남자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왜 자기 처자식한테 전화를 안 하지? 심지어 처자식을 언급조차 하지 않아 그녀가 윤설에게 전화하기도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하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또 꼬시느니 마느니 이상한 소리를 할 게 불보듯 뻔했다. 암튼 좀 있다 윤정이 나오는 대로 그녀는 가려고 생각했다.십몇 분이 지났을까 물 한 잔이 그녀의 앞에 놓였다.원유희가 고개를 들어 보니 검사를 마친 윤정이가 의자에 앉았다.“큰 문제는 아니고 그냥 좀 부어서 며칠 휴식하면 괜찮아진다네.”윤정은 검사 결과를 얘기해주었다.“물 좀 마시게.”마침 원유희는 목이 말랐지만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이를 보자 윤정은 웃음이 났다.“왜 내가 물에 뭐라도 탔을까 봐 걱정하는 건가? 병원의 물이니까 안심하고 마시게.”“그건 아니고…”사실 원유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대낮에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안심하고 종이컵을 들어 몇 모금 마셨다.이상하게도 그녀는 앞에 있는 남자에게 별 거부감이 없었고 원수정이 얘기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열심히 일하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항상 깨어있는 사람. 원수정은 윤정을 그렇게 평가하였다. 윤정은 장미선에겐 좋은 남편이 아닐지라도 윤설에겐 그저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였고 원유희는 그런 사랑을 받는 윤설이 부러웠다.원유희에겐 두 명의 어머
2시간 후, 윤정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손에 쥐었다.검사 결과에 따르면 원유희는 그의 친딸이 맞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윤정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원수정이 그의 아이를 가졌다니! 그녀는 도대체 언제쯤에 임신 소식을 알았을까? 헤어지기 전에? 아니면 헤어진 다음에?의자에 앉아있던 윤정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너무 괴로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는 자기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아이에게 사랑도 관심도 그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무거운 죄책감이 그를 옥죄이었다.원유희는 혼자 집에 있다가 할일이 없겠다 싶어 아이들의 신발을 사러 아동복 매장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원유희는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윤정을 발견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 있지? 윤정은 원유희쪽으로 걸어갔고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동안 놓쳐버린 세월을 다 되찾으려는 듯 진지하고 애틋하게 바라보았다.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할 윤정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아버지 노릇도 못한 주제에 무슨 염치로 아버지란 소리를 바라겠는가? 그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원유희가 자신의 딸임을 알고 그는 뒷조사를 통해 이 아이의 지난 세월들을 알게 되었다. 힘들게 자란 것도 모자라 김신걸때문에 갖은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윤정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원유희는 그와 물었다.“왜 저를 계속 쳐다보세요?”윤정은 받쳐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여기에 잠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우연히 자네를 보았어. 아동복 매장으로 가는 건가?”“네… 그냥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어요.”윤정은 장미선과 윤설을 통해 원유희과 관련된 많은 일을 듣게 되었고 그녀가 유산하게 된 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여 윤정은 그녀가 아동복 매장에서 아이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고 생각했고 갑자기 가슴이 아파 났다.“점심시간도 거의 되었는데 시간이
근데 윤설은 또 무슨 일로 자기에게 전화를 거는 것일까?저번에 그런 일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인가?그녀는 원래 전화를 받기 싫었으나 윤설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윤설은 자기가 전화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걸 것이 분명했다.화장실에 들어간 원유희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왜 그래?”“나 모레 약혼식 하는데 널 초대하려고 전화했지.”윤설은 담담하게 얘기하려고 했으나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의기양양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원유희는 정말로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를 초대한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를 초대한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너 제정신이니?”원유희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다.“왜? 와서 볼 자신이 없는 거야?”“어, 그래. 자신이 없어.”윤설은 저렇게 얘기하면 원유희를 도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안 돼, 넌 꼭 와야 해. 아니면 어떻게 너의 미련을 잘라버릴 수 있겠어? 안 오면 내가 직접 사람을 불러서 널 데리러 갈게.”원유희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져 갔다. 윤설은 설마 아직도 내가 김신걸을 좋아하고 있다고 믿는 걸까? 그들의 약혼식을 부러워할 만큼 아직도 미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연적을 약혼식에 초대할 만큼 그리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아, 정확히 얘기하면 윤설은 원주희를 연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기껏해야 김신걸이 놀다 버린 장난감으로 취급했다.“주소 찍어.”원유희는 윤설이 자기 집까지 찾아오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윤설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김신걸의 경호원밖에 없는데 그들과 맞서면 손해 볼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하루걸러 원유희는 차 타고 약혼식 장소로 갔다.평범한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약혼식장에 들어서니 원유희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현장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다 정·재계에서 유명한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럼 얘기해줘. 왜 원유희랑 같이 밥 먹고 있었는데? 도대체 뭘 하려고 그랬던 거야?”장미선은 윤설의 약혼식을 기회 삼아 이 일을 크게 키우려고 했다.장미선은 소란을 피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가지면 안 될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었다.이런 장미선을 보자 윤정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오늘 설이 약혼식이잖아. 장소를 가리면서 얘기했으면 좋겠어. 이 일은 집에 가서 계속 얘기하자고.”“왜 꼭 돌아가서 얘기해야 하는데? 지금 얘기하면 안 돼? 못 말하는 거 보면 뭐 켕기는 일이라도 해나 봐?”장미선은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럼 약혼식을 취소해도 괜찮다는 얘기네?”윤정의 표정은 이미 더없이 굳어졌고 이 얘기를 들은 장미선 모녀는 윤정이 정말로 화났음을 깨닫고 심장이 철렁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을 보게 된 윤설은 몹시 당황했다.약혼식을 취소한다고? 그건 안 되지. 김신걸과의 결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윤설은 재빨리 장미선에게 눈치를 줬다.장미선도 윤정이 이토록 원유희의 편을 들어주리라곤 상상도 못 했고 생각 밖으로 심각한 상황 때문에 당황했다.화가 난 장미선은 더 이상 얘기할 수 없게 되자 뒤돌아서서 다른 사모님들이랑 수다를 떨었다. 조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약혼식은 다시 진행되었다.윤설은 김신걸을 향해 걸어가 그의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얘기했다.“큰일 아니고 그냥 오해야.”김신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소를 보였고 고개를 돌려 윤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원유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윤정은 원유희를 데리고 휴게실로 갔고 이를 본 장미선과 윤설의 낯빛이 변했다사람들의 관심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니 원유희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괜찮아?”윤정은 걱정이 담긴 말투로 물어봤다.“네, 괜찮아요.”“어쩌다
격리실의 문은 잠겨 있었다.“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어요. 다만, 윤설이 저를 불러서 왔을 뿐이에요…….” 유희가 얼굴을 붉히며 저항했다.두 손으로 신걸의 가슴을 힘껏 밀었지만, 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강하고 단단한 그의 힘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신걸은 유희의 손목을 붙잡아 뒤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둘의 몸이 더욱 밀착되게 만들었다. “고분고분 말 좀 들으라구, 알겠어?”“비켜요, 날 놔줘요…….”유희가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유희의 몸부림은 둘의 거리를 더 좁힐 뿐이었다.“나한테 오고싶어 하던 거 아니었나?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신걸이 유희의 손목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유희의 턱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곧이어 신걸의 입술이 유희의 입술을 덮쳤다.“읍!”유희는 정말이지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미친 사람인 게 분명해!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하이힐 굽 소리가 유희가 있는 격리실 쪽을 향했다.몸부림을 치던 유희가 소리에 깜짝 놀라 숨을 죽였다. 신걸도 처음엔 놀라는 듯 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아까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유희야, 너 안에 있니?”윤설이 물었다.유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넌 약혼식에 참석한 걸로 됐어. 그러니 이만 가 봐.” 윤설이 명령조로 말했다.하지만 안에서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윤설이 참지 못하고 문을 당겼다.“원유희, 여기에 너 있는 거 다 알아. 그러니까 장난 그만 치고 나와, 빨리!”유희는 겁이 덜컥 났다. ‘나도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난 지금 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야. 혹시라도 내지 말아야 할 소리를 낼까봐 두렵기만 해.'윤설은 문이 열리지 않자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만약 안에 있는 사람이 유희가 아니라면, 굳이 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거지? 이상해. 분명히 도둑질 같은걸 하려는 걸거야.“유희 너, 왜
김신걸이 뒤돌아보자 그의 각진 옆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온기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본처가 되고 싶다는 얘기야?”“…아니.”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 아니, 어떻게 저 뜻이 되는 거지?김신걸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앞으로 직진했다. 원유희에게 남긴 것은 그의 무정한 뒷모습뿐이었다.원유희는 힘이 풀린 몸으로 문에 기댔다.원유희는 김신걸의 무서울 정도로 심각한 독단적인 성격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얘기를 듣지도 않았으며 그저 그녀에게 “내연녀”라는 딱지를 붙여주려고 안달 났다.윤설이 다시 돌아올까 봐 두려운 원유희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고 서둘러 호텔 뒷문으로 빠져나왔다.저녁, 약혼식이 끝난 후 장미선은 계속 윤정과 오전에 일어난 일을 따졌다.“도대체 왜 원유희랑 같이 밥 먹었냐고?”“이 얘긴 그냥 여기서 끝내면 안 될까?윤정은 외투를 벗으며 또 덧붙였다.“김신걸은 좋은 신랑감이 아니야. 설이가 고생할 것 같은데.”“설이가 왜 고생하겠어? 김신걸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고 제성의 모든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되면 설이도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게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찾고 싶어 찾을 수 없는 1등 신랑감이라고.”표정이 굳은 윤정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몸을 돌려 서재로 갔다.“당신 아직 얘기 안 했잖아. 대체 왜 원유희랑 같이 있었냐고! 설마 아직도 원수정에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거야? 우린 지금 부부고 설이도 이미 어른이 됐어. 심지어 오늘은 설이의 약혼식이었는데 당신이 이러면 김신걸이가 우리 설이를 어떻게 생각하겠냐고?”이 말을 듣자 윤정은 고개를 돌려 장미선을 차갑게 바라봤다.“그러는 당신은? 꼭 설이의 약혼식에서 난동을 부려야만 속이 후련했어?”장미선도 자기 잘못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계속 변명했다.“나는 그저 원유희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김신걸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리라고 그런 거 였어.”“원유희와 많이는 아니지만 몇 번 만나봤는데 심성
이건 도대체 누구의 생각이란 말인가? 김신걸? 아니면 윤설?원유희는 원래 한번 떠보려고 전화를 걸었던 것인데 정말로 못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럼 정말로 떠날 기회를 잃었단 말인가?원유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는 윤설의 기분에 맞춰 주려고 자기를 제성에서 추방하더니. 갑자기 왜 생각을 바꾼 것일까? 설마 사이가 틀어진 것일까?하지만 사이가 틀어졌다면 약혼식을 올릴 필요도 없게 되니 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그럼 정말로 그녀를 내연녀로 만들기 위해 올린 약혼식이란 말인가? 이건 또 무슨 전대미문한 신박한 개소리일까? 다만 김신걸의 변태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납득이 갈 수 있었다.벨 소리가 울렸고 원수정의 전화였다.“무슨 일 있어요?”“얘 봐라, 무슨 일이겠어! 떠난다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그… 좀 미루기로 했어요.”“왜 미뤄? 뭔 일이라도 생긴 거야?”원유희는 사실대로 얘기하기 무서웠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꽈악 눌렀다.“좀 미뤄요, 저 아직 해결할 일도 남았고…”“김신걸빼고 해결할 일이 또 뭐 있는데? 아니 걔도 참 이상해, 윤설과 약혼까지 했잖아? 왜 아직도 너를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건데? 지가 가진 권력을 믿고 이러는 거야?”원유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수정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해결할 일이 남았다는 핑계는 원수정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다시 생각해도 너무 후회돼. 내가 왜 하필 김영과 결혼했을까? 안 그러면 너도 그 악마 새끼를 만날 일은 없을 텐데!”원수정은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 미루면 그냥 미루는 대로 가면 되지.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와서 좀 운동하고 그래. 아 맞다, 상처 부위 실밥을 제거할 때가 됐지? 엄마가 같이 가줄게.”원유희는 원수정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또 윤정을 만나게 되었다. 윤정은 원유희를 보자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졌고 말을 꺼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