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의 부모는 인터넷 사진에서 봤어서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윤설은 김신걸의 팔을 다정하게 끼고 도발과 적대시가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긴 복도가 갑자기 좁아진 거 같았다.원유희는 밥 먹으러 나왔다가 원수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윤설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조차도 원유희와 원수정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특히 장미선.약간의 경계와 원한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김신걸의 깊고 예리한 검은 눈동자에 빠진 것도 잠시뿐.정신을 차린 후 원유희는 시선을 돌려 뒤에 있는 원수정을 보며 말했다.“가요.”원수정은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힘껏 움켜쥔 채로 원유희를 따라 오른쪽으로 걸었다.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그러나 윤설은 그들의 뜻대로 되게 할 생각은 없었다."공교롭네.원유희."윤설은 그들이 떠나려는 의도를 저지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지난번 인터넷 사건에 너까지 연루되게 해서 미안해.나를 탓하지는 않겠지?"원유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연루?난 오히려 그게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기왕 사실대로 말한 이상 다른 사람을 탓하면 안 되지."윤설은 속으로 잘난 척하는 원유희를 엄청 경멸했다.모든게 다 사실이다?그의 일도 포함한다는 건가?아니면 자신이 김신걸의 아이를 가진 적이 있다고 알려주는 건가?윤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개까지 했다."참.우리 부모님을 뵌 적이 없지?소개해 줄게.우리 아빠와 엄마셔.어제 귀국했어."왜 이런 걸 말해주는 거지?원유희는 그녀가 어떤 목적인지 알고 있다.자신에겐 부모님의 총애와 완벽한 가정이 있지만 원유희에겐 단지 제삼자인 어머니만 있을 뿐이라고.적은 많고 아군은 적으니 누가 한 수 위인지 안 봐도 뻔했다."부모님께서 이젠 제성에서 지낼거야.다시는 헤어지지 않아도 돼."윤설은 김신걸한테 기대어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원수정이 원유희를 끌어당겼다."누구는 엄마가 없는 것처럼 말하네.가자."이때 장미선이 말했다."원수정.우리 그래도 '오랜 친구'인데. 이렇게 오
설마 그녀를 귀찮게 하러 온 김신걸은 아니겠지?만약 원수정이 자신 부모님 사이의 감정에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윤설은 틀림없이 김신걸을 찾아가 울며 하소연했을 것이다.그리고 김신걸은 자신의 여인을 그렇게 아끼는데.재수 없어지는 건 그녀 뿐이겠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좀 귀찮아하는 감정까지 섞여있었다."집에 있는 거 다 알아.열지 않으면 문을 걷어찰거야."김명화의 목소리.원유희의 팽팽했던 신경이 비로소 느슨해졌다.그나저나 이 사람은 무슨 일때문에 온 거지?문을 열었다.진짜 김명화였다.그는 양복에 가죽 신발을 신고 두 손을 양복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위아래로 원유희를 한 번 훑었다."목욕하고 있는 줄 알았네."그러고는 원유희가 들어오라고 하기도 전에 버젓이 집에 들어섰다.원유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다."저한테 볼일이 있으세요?"원유희가 물었다.주소가 알려진 것도 모자라 함부로 드나들기까지 하다니.느낌이 정말 별로야.하지만 목숨이 잡혀있는 이상 너무 철저히 반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김명화는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꼬며 말했다."차 한 잔이라도 따르지?"원유희는 어이가 없어서 차를 준비하러 갔다.하지만 그의 앞에 놓여진 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이었다."물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마셔요."김명화는 컵을 한 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자신을 도와준 은인에게 이렇게 대하는 거야?"원유희가 의아해했다."무슨 은인?""예를 들면 인터넷상의 열전말이야.내가 윤설 부모님의 프라이버시를 폭로해서 너를 구한 거야."김명화는 입꼬리가 살짝 올리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표원식은 수단마저 너무 부드러워.돈을 써서 실시간 검색어를 덮어버리면 영원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악으로 악을 제압할 줄 알아야 한다고."원유희는 드디어 대체 어디가 수상했는지 알아냈다.윤설의 가족사를 폭로하는 건 표원식의 스타일이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는데.김명화가 한 짓이라니."어떻게 알았어요?""외국에 친구가 있어.
만약에...만약에 그가 원수정을 오해한 거라면?비록 김씨네 집안 일 때문에 원수정의 신빙성이 다 떨어지긴 했지만.그는 여전히 원수정을 믿고 이해하고 싶었다.만약...만약 원수정이 정말 고집불통이라면 그는 절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것이다!"잠깐만!" 김명화가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내 차를 타고 가."원유희는 자신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알고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김명화에게 묻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김명화에게 강제로 차에 밀려 올라탔다.아우디 A8은 동네를 빠져나와 큰 길에서 질주했다."어디로 갈건데?"김명화가 물었다."우리 엄마집이요."김명화는 더는 묻지 않았다.그러고는 사거리에서 익숙하게 요리조리로 돌면서 목적지로 향해 질주했다.주소를 말 할 필요도 없었다.이에 원유희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그는 제성에서 아무런 프라이버시도 가질 수 없었다.하지만 운전대를 잡고 운전에 집중하는 김명화의 옆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했다.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왜 저를 도와주는 거죠?"원유희가 물었다."왜 김신걸을 득의양양하게 만들지?나와 그 자식이 앙숙이라는 걸 몰라?"김명화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말투로 말했다."그리고.너를 망가드리면 나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지?"“마치 저와 그쪽이 한편인 것처럼 말하네요.”"아닌가?"원유희는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차가 집 앞에서 멈췄다.원유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 앞에 이미 주차된 차를 보았다.원수정의 차는 아니었다.심지어 방안에서 다투는 소리와 물건을 던지는 소리까지 들렸다.원유희는 생각도 하지 않고 급히 집안으로 뛰어갔다.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유리 조각을 밟았다.거실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되었다.장미선과 윤설의 얼굴엔 분노와 거만함이 묻어있었고 원수정은 땅에 넘어져 있었다.머리카락은 부스스하고 얼굴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을 한 채로."엄마!"원유희는 바삐 달려갔다."괜찮으세요?"원수정은 두 모녀를 이길 힘이 없더라도 끝까지 견지하고 양보하지 않았
김명화가 약간 놀랐다.장미선과 윤설은 순간 충격에 빠졌다.원유희가 이렇게 미친 짓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며 말했다."장미선을 잡아주세요."김명화는 순간 원유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그러고는 아무런 질의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윤설과 장미선은 다소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뭐하는 거야?" 윤설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김명화는 신속히 장미선의 손을 잡았다.그러고는 원유희가 건네 준 칼을 그의 손에 집어넣어 칼자루를 꼭 잡게 했다."잘 쥐고 있어."임무를 끝마친 김명화는 몸을 돌려 다시 거실 입구의 위치로 돌아갔다.칼날엔 온통 피투성이었다.장미선은 비명을 지르며 칼을 땅에 던졌다."당신들 무슨 뜻이야?아.알겠다.당신들 경찰이 원유희의 손에 난 상처가 내가 습격한 거라고 착각하게 하려는 거지?"바보라도 알 법한 목적이었다.원유희는 부인하지 않았다.오늘 이 두 모녀와 끝장을 보고 말거야!제멋대로 여기까지 달려와 원수정을 다치게 하다니.원유희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윤설은 그녀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설마 경찰을 부르면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제성은 김신걸의 천하야."원유희는 피를 흘리는 자신의 팔을 포함해 휴대폰으로 현장을 구석구석 촬영하며 중얼거렸다."최종 결과는 김신걸이 덮어줄 수 있겠지만 과정이 인터넷에 올려지면 여러 방면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 거야.김신걸도 골치가 많이 아플 거고."그녀는 확실히 윤설과 장미선을 법으로 단속할 수 없다.그러나 이렇게라도 매섭게 소란을 피워 그들에게 경고를 주지 않으면 다음에도 여전히 여기로 달려와 원수정을 상대할 것이다!윤설은 한참 생각하더니 얼굴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그에 관한 사건이 방금 인터넷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가라앉았는데.이번에 또 인터넷에 오르내리게 되면...게다가 김명화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만약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면 그들은 발을 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원유희는 단지 윤설을 놀라 물리
장미선이 바삐 윤설을 부축하고는 화가 나서 말했다."네가 감히 얘한테 손을 대?너 얘가 누군지 몰라?김신걸의 약혼녀야!"김명화는 눈꺼풀을 살짝 치켜들었다."난 왜 몰랐지?자칭?""약혼식이 바로 이번 주야.만약 우리 설이한테 일이라도 생긴다면 너 감당할 수 있겠니?"장미선이 기고만장한 말투로 물었다.하지만 김명화는 여전히 비키지 않았다.원유희는 '약혼녀'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잠깐 멍해 있다 다시 무시했다.원수정의 얼굴에 찍힌 손바닥 자국이 그의 눈과 마음을 찔렀다.약혼이 그와 무슨 상관인데?오늘 일은 반드시 끝장을 봐야 돼.아니면 윤설이 끝도 없이 도발하러 올거니까!김명화가 물러서지 않는 이상 장미선과 윤설은 아무리 조급해도 소용이 없었다."일단 가서 상처를 처리하자."원수정이 원유희의 손을 급히 잡아당겼다.원유희는 손을 빼며 거절했다."됐어요."어차피 죽지도 않을 건데.30분도 안 돼서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했다.그들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엉망진창인 거실을 보았다.그러다 원유희 손에 묻은 피를 보더니 먼저 구조대원들에게 즉시 현장에서 지혈하라고 요구했다."누가 집주인입니까?""접니다."원수정이 말했다."그쪽이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이 물었다."제가 신고했어요."상처를 치료받고 있는 원유희가 말했다."어찌된 일이죠?" 경찰이 물었다.이에 원수정이 대답했다."저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 두 여자가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물건을 부스고 저의 뺨을 때리는 거예요.저의 딸은 말리려고 나선 거였는데 저 여자가 칼로 저의 딸의 팔을 그었어요.애 팔을 좀 봐요.상처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그러다 팔이 잘못되면 어쩌죠?"그는 걱정스럽게 구조대원을 바라봤다.하지만 구조대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장미선이 화가 나서 반박했다."경찰 양반.이 여자 말을 듣지 마요.쟤가 직접 칼로 그은 거라고요.저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내가 직접 그었다고?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원유희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못 믿으시겠으면 칼을 가지고
거실의 제한된 공간은 그 강대한 압박감을 채 담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압박감이 묵직하게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짓눌러 감히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다."형."김명화가 담담하게 웃으며 불렀다.이에 김신걸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유희를 집까지 바래다주느라고."김명화는 중요한 일을 건너뛰고 가벼운 일만 골라 말했다.경찰은 즉시 다가가 인사를 하며 그들이 온 원인을 설명했다.김신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경찰의 진술을 듣고 있었다. 깊고 검은 눈동자는 원유희와 거즈를 감은 그의 팔을 쳐다보고 있었다.원유희는 땅을 쳐다보며 마음속의 불안함을 짓누르고 있었다.압박감이 장난이 아닌 시선도 받으며.긴장하기 그지 없는 원수정의 몸에는 맞은 흔적도 있었다.그는 딸의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모두 김신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설이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갔다."엄......엄마가 너무 화가 난다며 나를 끌고 와서 이치를 따지려 한 거야.그런데 원수정이 아빠랑 진정한 사랑이라며 제삼자가 아니라고 그러는 거야.원수정이 아저씨와 아줌마의 감정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우리 부모님 사이의 감정도 파괴한 거잖아.그래서 진짜 참을 수가 없었어......”"난......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원수정이 반박했다."당신들이 들어오자마자 말도 없이 물건을 부순 거잖아."그러나 그의 말은 완전히 무시 당했다."그리고 원유희 손에 난 상처는 본인이 직접 칼로 그은 거야.그러고는 나와 우리 엄마를 모함하는 거야."윤설이 눈물을 흘리며 계속 말했다."이건 내가 증명할 수 있어!"장미선이 말했다.이에 원유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친모녀끼리 증언을 하다니.참 우습네.착각하지 마.너희들이 찾아와서 일을 버린 거지 우리가 아니야.남의 집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는 억울함을 외치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잘 봐.나와 엄마는 지금 모두 다쳤고 당신 둘은 머리카락도 흐트러지지 않았어.김명화가 막지 않았다면 일은 더욱 심
구조대원들이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김신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여기엔 검사할 수 있는 기구가 없습니다.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원유희가 말했다."정 사과하지 않겠다면 방법이 없죠.경찰 아저씨.그냥 절차대로 처리하시죠."말을 마친 원유희는 구조대원을 따라 병원으로 가려했다.이에 윤설이 급해하며 말했다."신걸 씨.쟤한테 동영상이 있어.인터넷에 올리려고 할거야!"김신걸의 눈빛이 순간 매서워졌다.경호원들이 다가와 원유희의 앞길을 막았다.김신걸이 다가갔다."핸드폰."원유희는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는 김신걸의 말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원수정이 즉시 딸을 감쌌다."당신들 뭐하려는 거죠?경찰 양반.다 보셨죠?이 자들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고요!권력이 있고 세력이 있으면 답니까?"경찰은 난처해서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심지어 이 곳을 떠나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졌다.제성에서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큰 인물의 미움을 샀다 간 결과는 매우 처참할 거니까!김명화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형.손은 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김명화."김신걸은 얼음장마냥 차가운 표정으로 김명화를 쳐다보았다.경고의 뜻이 선명했다."모든 일에 있어서 이치를 따져야 하지 않겠어?사과만 하라는데.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아니면 피아노 여신의 부드럽고 마음이 착한 이미지가 다 거짓인건가?"김명화가 비웃으며 물었다.장미선이 몰래 윤설을 살짝 밀었다.윤설은 뜻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아가 김신걸의 곁에 섰다."난 단지 내가 한 게 아니니까 사과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만약 사과하게 되면 간접적으로 내가 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잖아?아니야.그냥 내가 사과할 게.하지만 그 전에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원유희.넌 앞으로 절대 너의 어머니를 배우지 마.그러면 진짜 좋지 않아."뭐가 안 좋다는 거지?제삼자가 되는 게?그래도 좋든 나쁘든 넌 훈계할 자격이 없어!원유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걱정 마.
원수정의 표정이 순간 변해지더니 눈시울도 약간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꾹 참고는 억지웃음을 지었다."난 유희만 엄마를 믿으면 돼.다른 사람들은 뭐라 해도 다 상관없어.엄만 오늘만 여기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쭉 여기에서 지낼 거야.일단 일주일치를 묵고 봐야지.그리고 소비명세서는 전부 윤설에게 보내는 거야!아니야.따로 따로 보내야 되겠다.미쳐 날 뛰게 매일 매일 보낼 거야.더는 행패를 부리지 못하게.""전 엄마와 윤정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알고 싶어요."원유희가 말했다."아무일도 없었어.그냥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야.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자.나도 잘거야."원수정이 침대에 누웠다.침대 옆에 서있는 원유희의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바로 옆에 침대가 있었지만 원유희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원수정이 자신과 옛적의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니 아무리 물어봐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원유희는 아예 병실을 나섰다.김명화가 보이지 않아 전화를 했다."어디죠?""집에.내가 뭐 계속 같이 있어줘야 되는 거였어?""아니요.오늘 일은 고마웠어요."원유희가 말했다."앞으로 답례를 할 기회가 많을거야."통화가 끝난 후 원유희는 한동안 물끄러미 핸드폰을 주시했다.기분이 정말 안 좋았다.일파만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김신걸 쪽에서 자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까지해야 한다니.아무래도 당시 김신걸의 표정이 엄청 차가웠으니.하긴.당시 그가 윤설더러 '사과'하라고 그렇게 몰아붙였는데 김신걸이 무조건 마음이 아팠을 거야.자신의 약혼녀이고 미래의 사모님이니까.김신걸과 윤설이 결혼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더욱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야 했다.하지만 지금 원수정이 병원에서 가지 않으려고 하니.만약 떠나려고 한다면 원수정도 데리고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그렇지 않으면 원수정을 홀로 이 곳에 남겨두어 윤씨네 식구들과 대응하게 한다면 일은 틀림없이 더욱 엉망이 될 것이다.근데 같이 가면 애들 일이 들통나게 될 거고.정말 귀찮아...원유희는 입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