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죽첨은 섭정왕의 것이 아닙니까? 그건 섭정왕도 왕비의 그림 실력을 믿지 않는다는 거겠지요. 왕비가 어떻게 이런 미인도를 그려낼 수 있겠습니까?”“다른 사람들은 얘기할 것도 없지요. 다들 제가 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왕비가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리겠습니까?”류훼향은 다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절대 낙청연이 그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부진환이 어두워진 눈빛으로 입을 열려고 할 때 낙청연이 먼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류 소저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군요. 왕야께서 텅 빈 광주리에 죽첨을 넣은 것이 과연 저에게 투표해주기 위해서였을까요?”“왕야께서는 제 그림 실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류 소저에게 투표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류 소저가 창피해할까 선심을 써서 류 소저께 투표해주신 것이죠.”“분명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인데 어찌 이리 모함하십니까?”낙청연이 의미심장하게 질문하자 류훼향은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주위 사람들도 쑥덕거리기 시작했다.“그렇군. 난 또 섭정왕이 눈이 좋지 않은 줄 알았네. 사실은 투표해주는 사람이 없어 류훼향의 체면을 지켜주려 그런 것이었군.”“하지만 겨우 하나뿐인데, 텅 빈 광주리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렵겠소.”죽첨 하나가 들어 있는 게 더욱 쪽팔린 일이었다.그 유일한 죽첨마저도 상대의 부군이 선심을 쓰듯 베푼 것이기 때문이다.아주 치욕적인 일이었다.부진환의 잔뜩 구겨졌던 미간이 조금 풀렸다. 낙청연은 의외로 반응이 빨랐다.꽤 총명하군!류훼향은 주위에서 수군덕대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는 창피하다 못해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낙운희도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너무 명백한 일이었다. 그림 위에 남겨진 서명도 낙청연의 것이 맞았기에 어떻게 더 항변할 수가 없었다.류훼향은 조바심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왕비, 당신이 그린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군지 아
“류 소저께서 이리 억지를 부리시니 저도 어찌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괜찮은 변명거리라도 들고 와서 저를 모함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류훼향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낙운희는 깜짝 놀라더니 그녀를 부축하려고 달려갔다.“훼향 언니!”류훼향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주위에서는 의논이 분분했다.류훼향이 먼저 나서서 온계람의 얘기를 꺼내자 구석에 있던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제야 기억나오. 진백리의 전처가 온계람이라고 들었소.”“온계람이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가는 바람에 류훼향이 정실 자리에 앉았고 들었는데, 류훼향이 온계람을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일은 아니지.”그 말에 누군가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외간 남자와 도망쳤다는 말이오? 그런데 낙청연은 꿈에서 그녀가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져 죽임을 당한 것이라 하지 않았소?”낙청연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다만 생각지 못한 점이라면 온계람이 사고를 당한 후 외간 남자와 함께 도망갔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이었다.온계람과 그녀의 아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 안에 갇혀 영원히 불타오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거라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뿐이었다.류훼향은 참으로 지독한 인간이었다.온계람은 비통하면서도 화가 났다. 그녀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눈치챈 낙청연은 얼른 화폭을 돌돌 감았다.그녀는 류훼향을 보면서 말했다.“류 소저, 저와의 내기는 아직 유효합니까? 승패에 승복하시렵니까? 진태위의 손주며느리이신데 태위부의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되지요.”류훼향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었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고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듯한 눈빛들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낙청연처럼 잘난 것 하나 없는 추녀에게 무릎
“제가 잘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절 용서해주십시오.”그 말을 내뱉으면서 류훼향은 당장이라도 벽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었고 낙청연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녀는 낙청연에게 꼭 복수하리라 속으로 다짐했다.류훼향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자 낙청연은 속이 시원했고 온계람은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그래요, 류 소저. 약속은 지키시는군요.”“회현루의 규칙대로 저와 류 소저 간의 원한은 이제 없는 것입니다. 류 소저께서 앞으로 저에게 시비를 거신다면 그것은 섭정왕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낙청연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녀는 류훼향의 속내를 빤히 꿰뚫고 있었다.말을 마치고 난 뒤 그녀는 옆에 앉아있는 부진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안 그렇습니까, 왕야?”부진환은 낙청연의 입가에 걸린 의미심장한 미소에 순간 움찔했다. 낙청연은 자신이 옳은 일이라 여긴 일에서는 상대를 사정없이 몰아붙였다.그러나 부진환은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고말고.”정신을 차리고 난 뒤 부진환은 뒤늦게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를 깨달았고, 조금 전 자신의 행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친김에 말했다.“오늘 회현루에서 발생했던 일은 전부 회현루에서 끝맺지. 류 소저가 오늘 왕비를 모욕한 일을 본왕은 따져 묻지 않겠소.”“하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부진환이 드디어 자신을 왕비라고 인정하려는 걸까?아마도 사람들 앞이라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그런 걸지도 몰랐다.낙월영이 없으니 다행이지, 만약 그녀가 있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부진환의 차가운 어조와 위협적인 말투에 류훼향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그녀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낙운희는 떨고 있는 류훼향을 부축하며 일어섰다.낙청연도 몸을 일으키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고 부진환도 때마침 일어나 낙청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런데 몇몇 공자들이 우르르 몰려
“그러게, 류 소저는 우리에게 돈을 배상해야지요!”“돈을 물어주십시오!”류훼향은 백성들의 배상해달라는 소리를 듣자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은자가 들어있는 커다란 상자가 섭정왕의 앞에 놓였다.“왕야, 이것은 왕야께서 이기신 것입니다.”부진환이 손을 뻗기도 전에 낙청연이 그것을 냅다 받아서 들며 씩 웃었다.“고맙구나.”점원은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저희야말로 왕비 마마께 감사드립니다.”말을 마친 뒤 점원은 곧바로 떠났다.밖에서 벌어진 노름판도 사실은 회현루의 사람들이 조직한 것이기에 이것 또한 그들이 돈을 벌고 이름을 널리 알려 손님을 끌어모으는 수단 중 하나였다.“낙청연.”등 뒤에서 부진환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쾌함이 섞여있었지만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몸을 돌려 부진환의 그윽한 눈빛을 마주한 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왕야, 이 돈은 제가 왕야에게서 빌린 것입니다. 제가 돈을 건 것이지요. 그러니 이 돈은 제 돈입니다.”그녀의 수중에 들어온 돈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왕야께서도 겨우 이 정도 돈을 저에게서 빼앗으려 하지는 않겠지요?”부진환은 뒷짐을 진 채로 낮게 웃었다.“겨우 이 정도 돈이라?”적어도 몇만 냥은 되는 돈이었다.낙운희는 류훼향을 부축하며 옆으로 지나갔다. 류훼향의 서글픈 얼굴을 본 낙운희는 도저히 분을 삼킬 수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발을 뻗어 낙청연에게 발을 걸려 했다. 만약 낙청연이 넘어진다면 그 은표들은 전부 물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낙운희는 그때 가서도 낙청연이 저렇게 의기양양할 수 있을지 지켜볼 셈이었다.그러나 낙운희가 발을 뻗었을 때 부진환이 곧바로 눈치를 챘다.낙청연 또한 그것을 눈치채고는 일부러 힘껏 발을 밟았다.“아!”낙운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아픈 발을 부여잡았고 그 바람에 류훼향도 바닥에 고꾸라지게 됐다.“낙청연!”낙운희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면서 화를 냈고 손을 번쩍 들었다.그러나 바로 다음
“왜 그러십니까?”부경한이 궁금한 듯 물었다.“소문처럼 아무런 재간도 없는 무능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부진환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고 부경한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확실히 소문과는 다르지요. 덕분에 오늘 정말 시야를 크게 넓혔습니다.”“오늘 어렵게 출궁했는데 저랑 같이 금춘루(錦春樓)에 가주세요.”부경한은 부진환을 끌고 가면서 말했고 부진환은 표정을 굳히며 대꾸했다.“청루에 가려는 것입니까? 하지만…”“그런 소리 마십시오. 얼른 갑시다!”부경한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면서 부진환을 억지로 끌고 갔다.—낙청연은 잔뜩 들뜬 얼굴로 돈이 든 커다란 상자를 안고 왕부로 돌아왔다.왕비의 신난 모습에 장미는 얼른 낙월영에게 소식을 전하러 갔다.낙청연은 처소로 돌아와 은표 천 냥을 꺼내 등 어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기회를 찾아 이 돈을 소유에게 건네주거라.”등 어멈은 상자 안의 은덩이와 은표를 보며 놀라워했다.“왕비 마마, 외출 한 번 하신 것뿐인데 어찌 이리도 많은 돈을 들고 오신 겁니까?”“내가 번 것이다.”낙청연은 은표와 은냥을 나눠놓으며 자세히 세어봤다.총 만 삼천육백 냥이었다.낙청연에게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하지만 낙운희를 생각해 보면…낙청연은 그중 은표 오천 냥을 꺼내 품 안에 넣었다.“한 번 더 나가봐야겠다!”저택을 나선 뒤 낙청연은 곧장 태부부로 향했다.—낙청연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낙용은 직접 그녀를 마중하러 나왔고 기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요 이틀 할아버지께서 무척 너를 그리워하셨다.”“할아버지 몸은 어떻습니까?”“괜찮다. 걱정하지 말거라.”“그럼 랑랑 언니는요?”낙청연이 걱정스레 묻자 낙용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사실 난 가끔 랑랑이 너만큼 용기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저번 연회에서 약에 당했다고는 하나 나쁜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그리고 외부 사람들도 랑랑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지 못하니 그 아이의 명성은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그런데 랑랑은 뭐가
말을 마치고 난 뒤 낙청연은 낙랑랑을 만나러 갔다.낙랑랑은 낙청연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몹시 기뻐하며 계집종들에게 차와 다과를 준비하라고 일렀다.“청연!”낙랑랑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낙청연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낙랑랑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고 혈색도 좋은 걸 보니 거의 다 회복한 듯했다.“랑랑 언니, 몸도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어찌 방에만 계십니까?”낙청연이 궁금한 듯 묻자 낙랑랑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대꾸했다.“나는… 아직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사실 낙랑랑은 나가기 싫은 게 아니라 겁을 먹어 나가지 못하는 것이었다.그 점을 알고 있는 낙청연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했다.“오늘은 제가 재밌는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낙청연은 오늘 회현루에서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얘기했다.낙청연이 비웃음을 당했다는 말에 낙랑랑은 긴장한 얼굴로 옷자락을 잡으면서 말했다.“정말 너무한 사람들이구나!”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그렇습니다. 가시 돋친 말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더군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어떻게 했느냐?”낙랑랑은 미간을 잔뜩 구기면서 걱정스럽게 물었고 낙청연은 웃으며 대답했다.“류훼향을 걷어차서 물에 빠뜨렸습니다!”낙랑랑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낙청연의 성격에 사람들 앞에서 류훼향을 물에 빠뜨리다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낙청연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계속해 얘기했고 그 얘기를 듣는 내내 낙랑랑은 긴장감과 시름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낙청연이 류훼향과 서화를 겨루게 된 얘기를 듣게 되자 낙랑랑은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럼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제가 이겼지요! 류훼향은 무릎 꿇고 저에게 사죄했습니다. 체면을 완전히 구긴 셈이지요. 마지막에는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습니다.”낙청연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대꾸했다.잔뜩 좁혀져 있던 낙랑랑의 미간이 그제야 펴졌다. 그녀는 놀라움과 기쁨에 가득 차서 낙청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청연아, 지금의
‘짝’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장미는 뺨을 맞고서는 얼빠진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낙청연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얘기해보거라.”장미는 억울한 듯 뺨을 감싸 쥐더니 울면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왕비 마마, 정말 너무하십니다! 이 돈은 둘째 아씨께서 얼굴을 치료하기 위해 가져온 돈입니다. 이렇게 빼앗아버리시면 둘째 아씨의 얼굴은 어떡합니까…”낙청연은 옆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낙월영을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치료를 위한 돈이라 했느냐? 그럼 말해보거라. 아버지께서 너에게 돈을 얼마나 줬느냐? 이 상자 안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느냔 말이다!”낙월영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훌쩍이면서 억울한 듯 말했다.“언니께서 돈이 필요하신 건 알겠습니다. 제가 받은 돈의 절반을 나눠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조금은 남겨주셔야지요. 그래야 저도 얼굴을 치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눈물을 쥐어짜 내면서 얼버무리려는 수작은 낙청연이 지겹도록 봐온 것이었다.류훼향과 같은 사람과는 논쟁이라도 할 수 있지, 낙월영은 그저 울기만 할 줄 알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낙청연은 낙월영의 울먹이는 모습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울음소리도 얼마나 시끄러운지 고막이 아플 정도였다. 그래서 낙청연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낙월영의 뺨을 때렸고 낙월영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장미는 낙월영에게 다가가서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둘째 아씨!”“쓸데없는 얘기는 집어치우거라. 또 한 번 성가시게 군다면 네가 올 때마다 네 뺨을 때릴 것이다.”낙청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살기 어린 눈빛은 싸늘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다.낙월영은 이를 사리물더니 분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낙청연을 쳐다봤다.“언니, 저희 자매 사이의 정은 전혀 고려치 않으시는 겁니까…”낙청연은 코웃음을 쳤다.“누가 너랑 자매라는 말이냐?”때마침 내원에 들어선 부진환은 그들의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다.낙월영은 부진환이 돌아온 모습을 확인하고는 어지러운
낙청연은 심지어 부진환이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경고하거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낙월영을 해하지 말라 위협하는 모습들까지 말이다.심지어 그녀를 벌하면서 낙월영의 분풀이를 해줄지도 몰랐다.서방 안, 부진환은 눈을 감은 채로 깊은 사색에 잠겼다. 낙청연에게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예전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낙청연의 무능한 모습은 절대 꾸며낸 게 아니었다.오늘 그 그림은 어떻게 그려낸 것인지, 그날 밤 낙월영이 갑자기 제정신이 아니게 된 일도 그녀가 한 것인지 묻고 싶었다.낙청연은 대체 무얼 감추고 있는 걸까?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낙청연이 서방에 도착했을 때 사위는 고요했다. 낙청연은 평온한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왕야.”부진환이 입을 열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낙청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차분한 표정의 낙청연은 감정이라고는 담기지 않은 어조로 또박또박 얘기했다.“저에게 수세를 써주세요.”그 말에 부진환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 것 같았다.낙청연의 표정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오늘 그녀의 얼굴에서 분노나 억울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무척이나 평온했다.그 깊은 고요로 인해 낙청연이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그것이 부진환의 화를 돋웠다.“뭐라고 했느냐?”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저에게 수세를 써주세요.”낙청연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제가 그때 귀신에게 홀려 왕부에 시집오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왕야께서도 충분히 화를 내셨고 저 또한 왕야를 많이 도왔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지요.”오후 내내 심사숙고한 결과였다.사실 그녀는 산명 대사가 실토하게끔 만들어 부진환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게 됐을 때 그와 갈라서려 했다.하지만 산명 대사는 죽었고, 낙청연은 자신이 유일하게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부진환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이러한 의심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채 떠나야 하니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