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피하지 않았다.침서와 가까워지자 낙청연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비수를 뽑아 들었고 그것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찌르려 했다.하지만 침서가 칼날을 잡는 바람에 비수는 끝부분만 살짝 들어갔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피가 낙청연의 흰옷 위로 뚝뚝 떨어졌다.낙청연은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침서는 그녀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은 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침서는 피범벅이 된 손으로 낙청연의 턱을 쥐었고 새빨간 피로 그녀의 입술에 빨간색을 칠했다.낙청연은 그의 가슴께를 걷어찼지만 침서는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그는 곧바로 낙청연의 손목을 잡고 머리 위로 올렸다.“감히 제게 손을 댄다면 당신을 갈가리 찢어버릴 겁니다!”낙청연은 노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눈이 벌게져 그를 노려보았다.그러나 침서의 눈동자에는 오히려 흥분이 감돌았다.“아주 기대되는구나!”그는 몸을 기울였다.낙청연은 그의 손에서 벗어난 뒤 또 한 번 따귀를 때리려 했지만 침서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침서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이를 가진 것이냐?”그의 눈빛은 마치 배신당한 사람의 것 같았다. 곧이어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그는 낙청연의 손목을 부서뜨릴 듯이 꽉 쥐고 있다가 낙청연을 끌어 올렸고 그녀를 눈밭으로 밀쳤다.그의 차가운 눈빛에서 무자비함이 보였다.낙청연은 너무 추워서 몸을 덜덜 떨며 산 아래로 도망치려 했다.그녀는 맨발로 숲속을 달렸는데 한기 때문에 점차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뼛속을 파고드는 냉기에 낙청연은 배를 감싸 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침서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눈밭에서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는 낙청연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시체 같았다.얼마나 나약하고 불쌍한가?그러나 침서는 마음속 화를 도저히 가라앉힐 수 없었다.그는 낙청연의 곁으로 걸어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약을 마셨음에도 낙청연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몸을 떨면서 기침해댔다.“콜록콜록...”침서는 미간을 좁힌 채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몸이 왜 이렇게 약해진 것이냐?”“예전보다 훨씬 못하구나.”낙청연은 몸을 떨었다.“약을... 콜록콜록...”침서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져봤다. 약을 마셨는데도 여전히 몸이 불덩이 같았다. 심하게 허약한 모습을 보니 산속에서 캔 일반 약초로는 부족한 듯싶었다.“침서... 침서...”그녀는 살려 달라는 듯이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의식을 잃었다.낙청연의 부름에 침서는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다.그는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간 뒤 방문을 닫고 약초를 캐러 갔다.한참 동안 약재를 찾은 뒤에야 그것을 들고 와서 약을 달였다.어느새 밤이 깊어졌다.낙청연은 머리까지 이불 안에 넣고 계속 기침했다.침서는 약을 달여 그녀에게 먹었고 방 안에서 그녀의 곁을 지키며 불을 더 세게 지폈다.침서는 더워서 땀이 날 정도였지만 침상 위의 낙청연은 여전히 추워했고 심지어 목소리마저 떨렸다.낙청연은 비몽사몽 또 말했다.“침서... 춥습니다. 약을 주세요...”침서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그녀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결국 그는 방을 나섰고 어두운 밤 약재를 사러 산에서 내려갔다.한참 지난 뒤에도 침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낙청연은 그제야 몸을 일으켜 앉은 뒤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신발도 없어서 맨발로 눈을 밟고 달렸다. 마치 칼날 위를 달리듯 뼈가 콕콕 쑤셨다.그렇게 낙청연은 달리고 또 달려 산에서 내려왔다.하지만 이대로 경도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럴 힘도 없었다.그래서 산 아래 한 마을에 멈춰 섰는데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객잔의 장궤가 그녀를 가련히 여겨 그곳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게 해줬고 두꺼운 옷도 건네줬다.“고맙소. 내일 사람을 시켜 돈을 내겠소.”낙청연은 옷을 받은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문
긴박한 순간, 성문 안에서 갑자기 기마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리고 그 순간, 발이 바람에 날리는 바람에 침서는 마차 안에 앉아있는 낙청연을 보았고 낙청연도 침서를 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침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바로 그때, 익숙한 사람이 낙청연의 시야에 들어왔다.“소서!”소서는 말을 타고 앉아 성 밖까지 뒤져 왕비를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는 낙청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안색이 달라졌다.“왕비 마마!”소서는 곧바로 말에서 내렸다.“왕비 마마! 괜찮으십니까?”낙청연은 곧바로 마차 안에서 나와 침서를 가리켰다.“저자를 잡거라!”침서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더니 이내 몸을 날려 도망쳤다.“낙요야, 넌 도망칠 수 없다.”침서의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소름이 돋았다.다행히 소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그를 뒤쫓게 했기에 침서가 그녀를 낙요라고 부르는 걸 듣지 못했다.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왕비 마마, 어디로 가신 겁니까? 초조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왕야께서도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고 왕비 마마도 갑자기 사라지셔서...”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뭐라고? 왕야께서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왕야는 어디 계시냐?”소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궁에 계십니다.”“궁은 지금 어떤 상황이냐?”낙청연은 성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찬 바람 때문에 또다시 기침이 시작됐다.“궁 안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저희는 누군가 부르지 않으면 입궁할 수 없습니다. 7황자께 부탁했는데 7황자께서도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그래도 왕비 마마께서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다행입니다.”두 사람 모두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왕비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낙청연은 초조한 얼굴로 말을 타고 섭정왕부로 돌아왔다.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뒤 입궁할 생각이었다.지초는 계속 울다가 낙청연이 돌아온 걸 확인하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울지 말고
편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위에는 수세라고 똑똑히 적혀 있었다.낙청연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잠시 사고가 정지됐다.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부진환을 따라잡았다.“왜입니까?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계획이 실패했습니까?”“왜 갑자기 수세를 쓴 겁니까?”낙청연은 지금 당장 설명이 필요했다.하지만 부진환의 눈빛은 더없이 차가웠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낙청연, 본왕은 지금 너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 널 보고 싶지도 않고!”“물건을 정리한 뒤 나가거라! 내가 손을 쓰게 하지 말고!”부진환은 차갑게 말을 마친 뒤 걸음을 옮겼다.낙청연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대체 왜?낙청연은 받아들일 수 없어 부진환의 서방까지 쫓아갔지만 그가 안에서 문을 잠가버렸고 낙청연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지 않았다.“왕야! 제대로 설명하십시오! 왜 갑자기 저에게 수세를 주는 겁니까?”“함께 난관을 극복할 거라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그런데 왜 절 밀어내는 겁니까?”“제대로 설명해 보십시오!”안에서 부진환의 노여움 섞인 목소리가 차갑게 들려왔다.“네가 본왕을 속이지 않았느냐? 그것으로 부족하냐?”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제가 뭘 속였다는 겁니까? 제대로 말씀하십시오!”부진환은 의자에 앉아 가슴을 움켜쥐며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를 참았다.“꺼지거라! 본왕은 널 보고 싶지 않다!”낙청연은 당황스러웠고 또 답답했다.그녀는 분개하며 떠났고 곧바로 입궁했다.부운주는 몇 명의 대신들과 일을 의논하고 있었고 낙청연은 태감에게 가로막혀 어서방 밖에 서 있었다.“왕비 마마, 5황자께서는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뵙기는 어려우니 잠시 뒤에 오시지요.”낙청연은 떠나려 하지 않고 계속 밖에서 기다렸다.찬 바람 때문에 낙청연은 또다시 기침하기 시작했다.“콜록콜록...”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고 얼굴이 초췌했다.어서방에 있던 부운주는 밖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 때문에 결국 사람들을 물렸다.뒤이어 그는 방문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됩니까?”낙청연은 말하면서 또 기침하기 시작했다.부운주는 그녀의 기침 소리에 마음이 아파 그녀의 등을 두드려줬다.“상처가 낫지 않은 것 같군. 고뿔에 걸린 건가? 형님이 수세를 써줬으니 당분간 궁에서 몸조리하지.”낙청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쳐냈다.“가식 떨지 마십시오.”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바로 궁을 나설 생각이었지만 궁문에 다다랐을 때 태상황의 곁을 지키는 진 공공(陳公公)이 찾아왔다.“공주마마, 태상황께서 공주마마가 입궁하신 걸 알고 오라고 하십니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호칭마저 달라지다니.태상황은 부진환이 그녀에게 수세를 써준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태상황께서는 최근 몸이 괜찮으신 듯하군. 난 일이 있어 다음에 가보겠네.”진 공공이 웃으며 말했다.“공주마마께서는 심하게 앓고 있는 것 같군요. 추운 겨울 버티기 힘드실 텐데 공주마마께서는 궁에서 몸조리하시지요. 태상황께서는 공주마마를 무척 걱정하고 계십니다.”낙청연은 망설이다가 결국 승낙했다. 태상황에게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생각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고 해도 태상황은 반드시 알고 있을 것 같았다.낙청연은 진 공공을 따라 태상황의 침궁에 도착했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태상황은 의자에 앉아 부러운 눈빛으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청연은 태상황의 등 뒤에 섰다.“태상황께서는 밖에 나가 걷고 싶으신 겁니까?”태상황은 천천히 말했다.“짐은 눈과 바람 속에서 거닐던 감각이 그립다.”“짐이 밖에 나가 걸을 수 있겠느냐?”그는 고개를 돌려 낙청연에게 물었고 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밖은 너무 춥습니다. 갑갑하시면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쐴 수는 있지만 외출할 수는 없습니다.”“몸에 좋지 않습니다.”태상황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그렇다면 너도 얌전히 이곳에 있거라. 밖에 나가지
태상황은 움직임이 느렸고 장기를 둘 때 생각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낙청연은 무료하게 기다렸다.진 공공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태상황, 5황자께서 즉위식에 참석하시겠냐고 물으셨습니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즉위식?부운주가 황제가 된다는 말인가?태상황이 대답했다.“가지 않겠다. 짐의 이 팔과 다리로는 걸을 수 없다.”“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진 공공이 떠나고 태상황은 계속해 장기를 두었지만 낙청연은 움직이지 않았다.부진환은 부운주가 황위에 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부운주는 부경한을 죽였는데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을뿐더러 심지어 부진환이 그녀에게 수세를 써주게 했다.부운주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낙청연은 불쾌한 얼굴로 태상황을 바라보았다.“태상황께서는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5황자가 그런 짓을 했는데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까?”“부경한도 태상황의 아들이지 않습니까?”낙청연의 어조에서 불만이 느껴졌다.태상황은 그녀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며칠 내내 그 말을 참고 있었겠구나.”“이제야 짐에게 불만을 털어놓는구나. 그동안 힘들었겠다.”말을 마친 뒤 그는 한숨을 쉬었다.“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짐이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내게 그럴 마음이 있다고 해도 이젠 능력이 없다.”“짐은 다만 천궐국이 평화롭고 백성들이 평안하길 바랄 뿐이다.”“다섯째는 오랫동안 인내했다. 용기도 있고 계략도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이다. 황제의 자리에 잘 어울리지.”“짐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부경한이 어떻게 죽은 건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겁니까?”태상황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부경한이 죽지 않는다면 부운주는 그저 대리로 정무를 돌볼 뿐이다. 부경한이 죽어야 부운주가 정정당당하게 황위에 오를 수 있다.”“피할 수 없는 일이다.”더없이 차갑고 무정한 말이었다.낙청연은 놀란 표정으로 태상황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태
“이궁의 난 때문이지요.”“하지만 이궁의 난에서 모함당한 건 여비입니다. 전부 태후 마마의 짓이었지요! 태후 마마는 여비를 없애기 위해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태후 마마는 순수한 혈통을 가진 천궐국인이고 배경 또한 대단하지요. 하지만 태후 마마가 태상황께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까?”“결국에는 왕야에게 섭정왕의 자리를 내어줘 엄씨 가문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지 않았습니까?”낙청연의 말에 태상황은 흠칫했다.그는 심장이 철렁했다.잠깐이지만 어떻게 반박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낙청연의 말은 정확했고 그는 하마터면 그녀의 말에 설득될 뻔했다.하지만 그날 부진환은 그를 찾아와 상처를 보여주며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었다.천궐국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황제를 둘 수 없었다.그렇기에 부진환은 섭정왕이 되어 부운주의 황위를 안정시키고 천궐국을 영원히 평안하게 해야 했다.그리고 그의 유일한 소망은 낙청연의 발목을 잡지 않는 것이었다.태상황은 곧바로 마음을 먹었다.낙청연도 알고 있었다. 태상황의 뜻을 바꾼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걸 말이다. 태상황의 말처럼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젠 그럴 능력이 없었다.그는 죽은 사람처럼 몇 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었기에 예전처럼 권력이 대단하지 않았다.게다가 즉위식 준비가 끝났다. 부운주 본인이 황제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들려가야 했다.-섭정왕부.마당에 눈이 두껍게 쌓였지만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소유가 탕약을 들고 왔다.“왕야, 조금 나아지셨습니까?”“이제 곧 즉위식입니다. 왕야께서도 입궁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부진환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는 얇은 옷차림으로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고 그의 옷과 바닥에는 핏자국이 낭자했다.소유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진환은 그제야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알겠다.”그는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었고 소유는 약을 들고 들어왔다.소유는 부진환의 안색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엄내심은 웃었다.“난 원하는 바는 모두 이루는 사람이다.”“내가 이 모든 걸 얻을 수 있었던 건 당시 네가 날 여러 번 거절한 덕분이지.”낙청연은 덤덤히 웃었다.“고마워하지 않아도 됩니다.”“하지만 황후의 자리는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엄내심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난 정도 사랑도 없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것에 목맬 일도 없지. 황후의 자리가 뭐가 그리 어렵겠느냐?”“난 사랑에 푹 빠진 너와는 다르다.”낙청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당신은 황후의 자리를 얻었으니 원하는 것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당신의 무자비함과 수단은 저도 탄복하는 바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말한 것처럼 황후의 자리에 잘 앉아있길 바랍니다.”“부진환은 황위에 욕심이 없으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 그를 놓아주시지요.”엄내심은 웃었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를 걱정하는 것이냐?”“부운주는 이제 막 황위에 올랐다. 그는 조정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천궐국은 전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할 일이 많지.”“천궐국은 지금 부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내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널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내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지.”그 말에 낙청연은 의아한 듯 미간을 구겼다.“무슨 약속 말입니까?”엄내심은 소매에서 성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부운주는 널 귀비로 책봉할 것이다.”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돌변했다.성지를 열어보니 귀비로 책봉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전 동의하지 않습니다!”낙청연의 태도는 결연했다.엄내심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내가 해야 할 일은 이걸 너에게 건네주는 것뿐이다. 네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랑은 상관없다.”말을 마친 뒤 엄내심은 자리를 떴다.사실 그녀도 낙청연이 입궁하길 바라지 않았다.낙청연의 말대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황후의 자리에 앉은 그녀는 누군가 그녀의 자리를 위협하길 바라지 않았다.그리고 낙청연은 그녀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
정확한 위치를 얻고 초경은 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동하국 사람들은 무서울 것 없으니, 먼저 약사를 해결해야 한다!바람이 불어오자마자 초경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는 바로 도림으로 도착했다.그가 도림에 나타나자, 불어온 바람이 꽃잎을 떨어뜨렸다.초경은 걸음을 옮겨 앞에 있는 정원을 향해 걸어갔다.그는 왠지 모르게 이곳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뱀의 기운이다.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정원을 살펴본 후 손을 들어 장풍으로 정원 문을 부쉈다.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초경은 걸음을 옮기며 정원을 관찰하다 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떠나려 했다.그 순간, 그의 시선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으로 향했다.뱀의 기운이다!그는 앞으로 걸어가 그림을 젖혔고 역시나 문 하나가 나타났다.그는 문을 열고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구불구불한 형태의 아래로 향해 있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암도였다.아래로 걸어가니 밀실이 보였다.그곳에는 뱀의 기운이 가득했다.구석진 곳에 바구니가 가득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가 뱀을 잡아 약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그는 장풍으로 밀실 문을 열고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상대를 죽이려 했다.하지만 상대에게 가까이 가자, 밧줄에 묶인 채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보고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제때 공격을 멈추었다.그가 내뿜은 살기가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움직였다.그녀는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초경이 그녀를 한 번 훑어보았다.“너는 누구냐? 약사는 어디 있느냐?”그녀는 일반 백성 차림에 묶여 있었다. 그녀의 옷은 더러웠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있어 이곳에 갇힌 듯했다.“전... 묵계라 합니다.”여자는 무서워하는 듯 말을 더듬었다.“너한테 관심 없다. 약사는 어디에 있느냐?”“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약사는 보통 이 시진에 바다에 있습니다.”묵계가 얌전히 답했다.답을 들은 초경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묵계는 깜짝 놀랐
“그럼, 동하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늦추려는 것이오? 그 여인을 상대로 우리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오.”부진환이 사색에 잠긴 그때, 갑자기 옆에 누군가 걸어와 당당하게 말했다.“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한 번 만나보겠소.”걸어온 사람은 초경과 송천초였다.“방금 말한 그 사람이 정말 보통 사람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면 나밖에 상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불필요한 희생을 피하려면 나한테 지도를 주시오. 내가 만나보고 오겠소.”“그 여인을 해결한 후 다시 동하국을 공격해도 늦지 않았소.”그의 말을 듣고 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지도를 건네주었다.“좋소.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시오.”“어찌 됐든 동하국의 땅이니,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오. 꼭 조심하시오.”초경은 지도를 건네받았다.“좋소. 지금 바로 출발하겠소.”초경은 지도를 품에 넣으며 몸을 돌려 송천초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곧 돌아올 것이오.”송천초가 고개를 끄덕였다.“조심하십시오.”그리고 초경은 동하국으로 떠났다.그의 속도로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바다에 있는 그 나라를 찾았다. 비교적 큰 섬을 찾으면 되는 일이니 어려운 것 없었다.바다에서 나타난 그를 보고 동하국 병사들은 깜짝 놀라 적의 기습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다들 모여들어 해안가에 칼을 겨누었지만 가까이 온 사람이 초경 한 명인 것을 보고 외쳤다.“감히 이곳에 혼자 오다니!”“당장 생포하거라!”병사들이 그를 에워쌌지만, 초경이 소매를 휘두르자 다들 멀리 날아갔다.동하국 사람들은 깜짝 놀라 더 이상 그를 얕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초경의 상대가 아니었다.압도적인 초경의 힘 앞에서 그들은 조금도 반항할 힘이 없었다.그렇게 초경은 동하국 왕궁까지 쳐들어갔다.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자,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약사를 부르거라! 어서 약사를 부르거라!”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온 적을 보고 동하국은 대량의 병사를 보내 그가 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헀다.동하국 왕은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