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강하영은 애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병원을 떠났다.병원 입구에 도착해 콜택시를 부르려던 순간 하얀 실루엣과 부딪쳤고, 그 충격에 강하영은 잠시 비틀거리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었지만, 하영과 부딪친 사람은 바닥에 심하게 주저앉았다.강하영이 시선을 돌려 보니 흰 잠옷을 입은 초라한 행색의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는데,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도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다만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죄……, 죄송합니다…….”“아니에요, 괜찮으세요?”여자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눈시울을 붉히자 강하영은 고개를 저으며 여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바닥이 차요. 제 손 잡고 일어나세요.”그런데 뜻밖에도 강하영의 행동에 여자는 더욱 놀라며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자, 강하영은 깜짝 놀라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강하영의 물음에 여자는 악의가 없다고 느꼈는지 그제야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강하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입을 열었다.“방금 누가 쫓아와서 실수로 부딪쳤어요.”여자는 말을 하면서도 두려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강하영은 피투성이가 된 여자의 맨발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할 때, 갑자기 여자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황급히 배를 움켜잡은 여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미안해요, 배가 고파서 그만…….”“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집으로 같이 가는 건 어때요? 발에 있는 상처도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어요.”여자는 깜짝 놀란 표정을 하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어서 저를 여기서 데려가 주세요!”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아크로빌.캐리는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가 강하영에게 전화를 걸려던 순간 입구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자 주방에서 나오며 강하영에게 말했다.“G, 다녀왔어? 저녁 준비 다 해놨으니까……, 어?
강하영은 여자의 상처에 약을 갈아주고 또 갈아입을 깨끗한 옷을 가져다준 뒤, 캐리와 여자가 식사하러 간 틈을 타서 정희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전화를 받은 사람은 세희였다.“엄마, 또 나랑 오빠들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그래, 다만 다른 용건이 있거든. 혹시 세준이 바꿔줄 수 있어?”“오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세희가 전화기 너머로 세준을 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세준이 전화를 받았다.“엄마, 무슨 일이세요?”강하영은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여자를 보며 강세준에게 물었다.“세준아, 혹시 한 사람의 정보를 알아봐 줄 수 있어?”“그럼요. 누구 정보가 필요한데요?”“나도 잘 몰라서 그래. 이따가 사진 한 장 보내줄 테니까 대략 언제쯤 알아낼 수 있는지 알려줘.”“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의뢰 비용이 만만치 않을걸요?”강세준의 사악한 웃음에 강하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너 이 자식, 사흘 동안 안 본 새에 많이 컸네?”“농담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엄마.”다른 사람의 부탁이었으면 꽤 많은 돈을 벌었겠지만, 아쉽게도 엄마의 부탁이니 공짜로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몇 마디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은 뒤 강하영은 전화를 끊고 여자의 사진을 정희민에게 보냈다.사진을 받은 강세준은 빠르게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보통 때와 같았으면 사진만 있으면 몇 분 안에 그 사람의 자료를 찾아냈겠지만, 이번에는 30분이나 걸려도 두서를 잡지 못했다.마치 이 여자의 자료만 누군가 일부러 지운 것만 같았다.처음으로 이런 실패를 맛본 강세준은 작은 손으로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불쾌함을 분출시키는 것 같았다.“세준아, 그만해.”그때 곁에서 보다 못한 정희민이 입을 열자 강세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이상하지 않아?”“맞아.”정희민은 노트북 화면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데이터가 지워진 이상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어.”강세준은 정희민의 말에 힌트를 얻었다.“참, 너 데
정보를 찾을 수 없게 되자, 강하영은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당분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내일 경찰서에 가서 상황을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강하영은 여자를 위해 따로 방을 마련해주려고 했지만 여자는 혼자 있는 게 무섭다면서 기어이 강하영 곁에 붙어있으려 했고, 하영도 어쩔 수 없이 여자를 깨끗이 씻겨준 다음 자기 곁에서 자게 했다.“이름이 뭐예요?”강하영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여자가 하영의 이름을 물었다.“강하영이에요.”“강하영…….”하영의 이름을 중얼중얼 반복하는 여자에게 하영이 웃으며 되물었다.“그쪽은요? 본인 이름은 기억나세요?”하영의 물음에 여자의 눈동자가 약간 어두워졌다.“백지영, 이 세글자만 기억나요.”“그럼 앞으로 지영 언니라고 부를게요.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떠오를 테니까, 당분간 안심하고 여기서 지내요.”강하영의 위로에 백지영의 두 눈이 밝아졌다.“정말 그래도 돼요?”“그럼요.”다른 문제라면 물어봐도 아마 소용없을 것 같았다. 아마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너무 자극을 주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그래서 강하영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다음날, 토요일.정유준의 전화에 잠에서 깬 강하영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백지영을 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무슨 일이죠?”“김호진이 애들을 데리고 그쪽으로 갔을 거야. 요 며칠 일이 좀 생겨서 애들을 돌볼 시간이 없어.”정유준의 잠긴 목소리엔 짙은 피로가 묻어있었다.“네, 알았어요.”정유준이 전화를 끊고 하영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백지영이 하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저 때문에 깼어요?”백지영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그 생각은 뒤로 하고, “배고파요.”라고 대답했다.“그래요. 제가 가서 아침 식사 준비해 줄게요.”세수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애들이 도착했고, 강세준과 강세희는 하영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품
백지영은 겉보기엔 서른 살 좌우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알 수 없었으니 이모라고 부르는 것도 틀리진 않았다.백지영은 깜짝 놀라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방금 나한테 이모라고 한 거야?”“여기 엄마랑 이모밖에 없는데 제가 엄마를 이모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강세희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얘기하자, 백지영은 그제야 반응하기 시작했는지 웃기 시작했다.“그래, 이모라고 불러주니 듣기 좋네.”백지영은 계단에서 내려와 애들 앞에 쪼그리고 앉은 뒤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한 번만 더 불러 줄래? 듣고 싶어.”“이모!”“그래!”강세희가 달콤한 목소리로 이모라고 부르자, 백지영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모, 안녕하세요.”곁에 있던 강세준도 따라서 이모라고 부르자 백지영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라고 대답했다.낯을 많이 가리는 정희민은 그저 옆에 서서 입술을 달싹이더니 결국 입을 열지 못했고, 강하영도 그런 희민이를 강요하지 않았다. 아직 아이 마음속에 남아있는 트라우마 때문에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강하영은 다시 주방에 들어가 바삐 돌아쳤고, 애들은 백지영을 끌고 같이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이때, 교외 별장.정유준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파에 앉아, 서늘한 표정으로 앞에 한 줄로 서 있는 경호원들을 보고 있었고, 바닥에는 정유준이 깨뜨린 유리 조각들이 가득했다.그 모습에 경호원들은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다들 고개를 숙이고 야단맞기를 기다렸다.“자리를 비운 지 1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왜 못 찾은 거야! 나한테서 돈 벌기가 참 쉽다고 생각하지?”정유준이 싸늘한 말투로 따져 묻자, 경호원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더욱 고개를 푹 숙였다.사실 그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사모님이 어떻게 15분 만에 사라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CCTV를 따라 찾을 수 있었지만, 그 뒤로는 아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이렇게 큰 김제에서 솔직히 사람을 찾는다는 건 바다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것
자리에 앉자마자 문 앞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제가 열게요.”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강세준이 물컵을 들고 문을 여니, 백발이 성성하지만 기운은 좋아 보이는 노인 한 명이 강세준 앞에 나타나자 강세준이 웃으며 물었다.“누구시죠?”정 노인은 눈을 드리우고 강세준을 내려다보고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흥분된 표정으로, “꼬마야, 너는 누구냐?”라고 묻자 강세준이 웃으며 답했다.“할아버지, 집에 불쑥 찾아오셔서 주인한테 누구냐고 묻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아요?”“말투가 정말 유준이를 똑 닮았구나!”그 말을 들은 강세준은 이내 경계 태세를 취하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준아, 누가 왔어?”“어떤 할아버지가 오셔서 이상한 말씀을 하세요.”세준의 말에 머리에 경보음이 울리며 급히 현관으로 다가간 강하영이 정 노인을 마주한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정유준을 미처 경계할 새도 없이 이제는 정 노인까지 찾아왔다!만일 세준의 몸에 정씨 집안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아이를 빼앗기게 된다는 생각에 강하영은 주먹을 꽉 쥐고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갔다.“정 어르신.”강하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 노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손으로 강세준을 가르켰다.“저 아이 유준이 아이지?”강하영은 대답 대신 세준이 곁으로 다가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줬다.“세준아, 애들이랑 같이 위층에 올라가서 놀고 있어. 엄마가 여기 계신 할아버지랑 할 얘기가 있거든.”강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거실로 돌아가 희민이와 세희를 데리고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구석진 곳에 숨어 희민이와 세희의 손을 잡고 쪼그리고 앉았다.“오빠, 몰래 엿들으려는 거야? 정말 재밌을 것 같네!”흥분하며 말하는 세희를 향해 강세준이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하자 세희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강하영이 정 노인을 거실로 안내하는 것을 지켜보던 정희민이 어두
“너는 참 예외구나!”“칭찬 감사합니다.”정 노인은 맹수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마디 하자 강하영도 전혀 사양하지 않는 눈치였다.정 노인은 다시 계단을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부터 아이에 대해 얘기해 볼까?”“어르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 아이에 관해 묻는 겁니까?”강하영의 경계심 가득한 눈빛에 정 노인의 안색이 보기 싫게 구겨지기 시작했다.“유준이를 똑 닮았더구나!”“그렇다고 해서 정유준 씨 아이는 아닙니다!”“좋아! 그러 친자확인을 해보면 되겠구나! 유전자 검사 결과는 조작할 수 없겠지! 저 아이가 만약 유준이 아이라면, 우리 정씨 집안 핏줄을 절대 너 같은 여자 곁에 둘 수 없으니 양육권도 우리가 가져갈 거다!”강하영은 손에 땀을 쥐고 정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정유준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겠지만, 정 노인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면 돌이키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내 아이만큼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어!’그때 문득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와 강하영과 정 노인이 고개를 돌리니, 부진석이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급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진석 씨가 어떻게…….”“아빠, 다녀오셨어요?”강세준이 갑자기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잇달아 세희의 앳된 목소리도 들려왔다.“아빠, 뭐 맛있는 거 사 오셨어요?”강세준이 하영을 향해 눈을 깜빡이자, 그제야 두 녀석이 입장이 난처해진 하영을 위해 이 연극을 준비했다는 것을 눈치챘다.강하영도 얼른 일어나 부진석 곁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오늘 일찍 돌아왔으니 애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있겠네.”부진석도 빠르게 눈치채고 다정한 말투로 대답했다.“오늘 별다른 일 없어서 일찍 왔지.”말을 하며 애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정 노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이분은 누구셔?”“정유준 씨 아버님이야.”부진석의 물음에 강하영이 웃으며 답해줬다.“정 어르신, 안녕하십니까.”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정 노인이 다시 자세히 살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하영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내가 무슨 덕을 쌓아서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을까?”“쾅-”그때 갑자기 위층에서 뭔가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와 모두가 위층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캐리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이……, 이거 놔…….”강하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에 얼른 위층으로 뛰어갔고, 아이들도 엄마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부진석이 그들을 막았다.2층에 올라간 강하영은 백지영이 캐리의 몸 위에 올라탄 채로 캐리의 목을 조르면서 입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것을 목격했다.“죽어! 죽어버려!”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캐리가 백지영의 손가락을 풀어보려고 애썼다, 반격할 수도 있었지만 강하영이 데려온 손님이니 함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강하영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백지영의 팔을 붙잡았다.“지영 언니! 어서 캐리를 놔줘요!”백지영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강하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나 막지 마. 이 나쁜 놈들은 전부 죽어야 해!”“지영 언니!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제 친구니까 그만 풀어줘요.”“아니야!”백지영은 고함을 지르며 거절하더니 더욱 세게 캐리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강하영이 그런 두 사람을 떼 놓으려고 몸을 일으킬 때 부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할게.”말을 마친 부진석은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백지영 손목의 혈 자리를 눌러 손쉽게 백지영을 캐리의 몸에서 떨어지게 했다.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캐리는 심하게 기침을 해댔고, 백지영은 부진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개자식! 이거 놔! 남자는 다 쓰레기야! 너희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나도 다 죽여버릴 거야!”그 사이 재빨리 몸을 일으킨 캐리는 목을 움켜쥐면서 강하영 뒤로 몸을 숨겼다.“G! 콜록콜록……, 나 믿어줘. 나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갑자기 미친 여자처럼 콜록콜록……, 나한테 달려들어 내 목을 졸랐다니까.”캐리
부진석이 집을 떠나서 꼬박 4시간이 지나, 저녁 식사 전에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강하영은 얼른 주스를 한 잔 따라주며 상황을 물었다.“어떻게 됐어? 뭔가 소식이 있어?”부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파에 앉아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입을 뗐다.“아니. 사진을 보여줬지만 아무런 결과도 없었어.”“그럼 이제 어떡하지?”찾는 사람도 없고 정신질환마저 있는 사람을 집에 남겨 두는 건 조금 불안했다. 게다가 아이들도 집에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보낸다면 어디로 보내야 하지? 병원에 보내는 건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냥 밖에 내보낼까?’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밖에 내보냈다가 또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하영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때 캐리가 소파에 누워 사과를 베어 물며 입을 열었다.“그냥 내 말대로 주운 곳에 다시 되돌려 보내는 건 어때?”“안 돼.”“그건 안 되지!”동시에 캐리의 말에 반박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캐리는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부진석은 강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너만 괜찮다면 의사를 찾아 여자의 상태를 살펴보게 하고 싶은데.”“그럴 수밖에 없겠네.”이야기를 마친 강하영은 애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세수를 시킨 뒤, 방에 데려가 이불을 덮어주자 강세희가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엄마, 이모는 왜 그러는 거죠?”강하영은 세희의 작은 볼을 살짝 꼬집었다.“괜찮아. 이모가 아파서 그런 거니까 치료받으면 괜찮아 질 거야.”“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석 아빠한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그래. 얼른 자. 이모 앞에서 이런 말 하면 안 돼. 알겠지?”애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희민도 낮은 목소리로 강하영한테, “엄마, 잘 자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강하영은 세 아이의 이마에 각각 뽀뽀를 해줬다.“잘자…….”늦은밤.어두컴컴한 어린이 방에 작은 그림자 하나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얼른 코를 막으며 침대맡에 있는 휴대폰을 찾았다.그리고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