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석이 집을 떠나서 꼬박 4시간이 지나, 저녁 식사 전에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강하영은 얼른 주스를 한 잔 따라주며 상황을 물었다.“어떻게 됐어? 뭔가 소식이 있어?”부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파에 앉아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입을 뗐다.“아니. 사진을 보여줬지만 아무런 결과도 없었어.”“그럼 이제 어떡하지?”찾는 사람도 없고 정신질환마저 있는 사람을 집에 남겨 두는 건 조금 불안했다. 게다가 아이들도 집에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보낸다면 어디로 보내야 하지? 병원에 보내는 건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냥 밖에 내보낼까?’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밖에 내보냈다가 또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하영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때 캐리가 소파에 누워 사과를 베어 물며 입을 열었다.“그냥 내 말대로 주운 곳에 다시 되돌려 보내는 건 어때?”“안 돼.”“그건 안 되지!”동시에 캐리의 말에 반박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캐리는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부진석은 강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너만 괜찮다면 의사를 찾아 여자의 상태를 살펴보게 하고 싶은데.”“그럴 수밖에 없겠네.”이야기를 마친 강하영은 애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세수를 시킨 뒤, 방에 데려가 이불을 덮어주자 강세희가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엄마, 이모는 왜 그러는 거죠?”강하영은 세희의 작은 볼을 살짝 꼬집었다.“괜찮아. 이모가 아파서 그런 거니까 치료받으면 괜찮아 질 거야.”“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석 아빠한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그래. 얼른 자. 이모 앞에서 이런 말 하면 안 돼. 알겠지?”애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희민도 낮은 목소리로 강하영한테, “엄마, 잘 자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강하영은 세 아이의 이마에 각각 뽀뽀를 해줬다.“잘자…….”늦은밤.어두컴컴한 어린이 방에 작은 그림자 하나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얼른 코를 막으며 침대맡에 있는 휴대폰을 찾았다.그리고
“백지영 씨는 아마 심각한 폭행을 당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로 인해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아 보호 체계가 이루어지면서 두려움이 분노로 변하여 남성을 공격하는 것 같네요. 초기 진단 결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정신 장애에 이르렀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입원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네요.”“제가 가족이 아니라 지영 씨를 대신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다른 치료 방법은 없을까요?” 구 선생님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뗐다.“제가 당분간 여기 남아 약물치료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봐 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가족을 찾아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정말 감사합니다, 구 선생님!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제가 출근해야 해서 당분간 지연 언니를 부탁할게요. 비용이 얼마든지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맞춰드릴게요.”감격에 찬 하영의 말에 구 선생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아닙니다. 비용이라면 부 선생님께서 이미 지불하셨거든요.”자신을 도와 비용까지 지불했다는 말에 강하영은 깜짝 놀랐고, 구 의사는 그런 강하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부 선생님과 사이가 아주 좋으신가 봐요.”강하영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낮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오후.강하영은 애들을 데리고 임씨 아주머니를 만나러 연세 병원으로 향했다.차에서 내린 뒤 곧장 입원실로 향하고 있던 네 사람은 그들 뒤에 하얀 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차 안에는 양다인이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강하영과 아이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들어 입원동이라고 적힌 건물을 바라보며 의문을 가졌다.‘여긴 누구를 만나러 온 거지?’양다인은 이내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얼른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서 내려 그들의 뒤를 밟았다.병원 꼭대기 층.강세희는 놀란 얼굴로 앞에 있는 병실을 바라보았다.“엄마, 여기 너무 예뻐요. 저도 여기서 살고 싶어요.”하영은 세희의 말에 웃지도 울지도 못
“누구시죠?”“제가 누군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임씨 아주머니의 아들인 홍수혁이 양다인에게 되묻자, 양다인은 가볍게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아주머니께서 지금 큰 사고를 당하시고 지금 연세 병원의 입원동 꼭대기 층에서 치료받고 있어요.”“네?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까?”홍수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못 믿으시면 직접 연세 병원에 찾아가 봐도 좋아요.”“만약 장난 전화면 신고할 줄 알아요!”“홍수혁 씨, 임씨 아주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예전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좋은 마음으로 전해드리는 건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되죠. 화를 내려면 이미 이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한테 알리지 않은 사람한테 화를 내야죠.”양다인은 임씨 아주머니의 상황을 전부 홍수혁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홍수혁의 화를 한껏 돋운 후에야 비로소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방금 연기를 하면서 흘린 거짓 눈물을 닦은 다음 자리에 앉아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길 기다렸다.입원동.강하영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찍히자, 강하영은 병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쪽이 강하영이야?”“누구신데요?”“나 임연수 아들 홍수혁이야!”홍수혁의 화난 어조에 강하영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홍수혁이 왜 나한테 전화를 한 거지?’예전에 임씨 아주머니한테서 들은 얘기로는, 아주머니가 홍수혁을 출국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홍수혁이 아주머니와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아주머니가 아무리 아들에게 전화를 해도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중에는 아예 모자 관계까지 끊으려 했다고 들었다.그 뒤로 두 사람은 거의 10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왜 갑자기 찾아온 거지?’“제가 강하영인데 무슨 일이죠?”“우리 엄마 어떻게 된 거야?”홍수혁의 사나운 질문에 강하영은 누군가 홍수혁에게 이 일을 알려줬다는 것을 알았다.“홍수혁 씨, 이제서야 전화하는 거 조금 웃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X발,
자초지종을 들은 캐리는 화를 참지 못했다.“그게 인간이 할 짓이야?”강하영은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그러니까 시끄럽게 굴지 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 한 명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강하영 씨, 방금 입구에서 누군가 강제로 침입하려 해서 저희가 막았습니다.”그 말에 강하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홍수혁이 벌써 찾아온 건 아니겠지?’“X년아, 당장 나오지 못해?”홍수혁을 떠올리기 바쁘게 문밖에서 욕설이 들려왔고, 캐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를 냈다.“내가 가서 패버릴게!”강하영은 그런 캐리의 옷을 잡아당기며 그의 행동을 막았다.“그러지 마!”“G! 저 양심도 없는 놈이 여기까지 찾아와 너한테 욕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내가 해결할 테니 끼어들지 마.”“안 돼! 나도 같이 가!”캐리의 집요한 모습에 강하영도 어쩔 수 없었다.“그럼 절대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마.”“알았어!”캐리가 언짢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강하영은 그제야 안심하고 캐리와 함께 입구로 향했다.문밖.홍수혁은 경호원들의 손에 제지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여전히 욕설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았다.홍수혁은 강하영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XX년, 우리 어머니가 다치셨는데 감히 그 사실을 숨겨? 너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다쳤으니까 당장 손해배상비 내놔!”이웃들도 있으니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싶지 않았던 강하영은 경호원들에게 홍수혁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오라고 했다.문이 닫힌 후, 강하영은 싸늘한 표정으로 홍수혁을 바라봤다.“누가 이 사실을 얘기한 거죠?”“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난 그냥 우리 어머니가 너 때문에 병원에 누워 계신다고 들었어!”강하영은 홍수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소파에 앉았다.“결국엔 원하는 게 돈이잖아요.”“그렇다면 어쩔 건데?”강하영은 뻔뻔스럽게 묻는 홍수혁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돈이라면 줄 생각 없어요.
홍수혁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얼른 대답했다.“좋아. 딱 일주일 줄 테니까 기다릴게!”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경호원들에게 홍수혁을 풀어주라고 했다.훙수혁이 떠나고 캐리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인간이 할 짓이야!”강하영은 소파에 기대며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세상에서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없는 놈들이 바로 이런 양아치들이야.”“그래서 정말 그 5천만 원을 죽겠다고?”“내 주머니 사정이 그 정도로 사치스럽진 않아.”강하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캐리를 바라보았다.‘이제 텔레파시도 통하지 않는 거야?’캐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했다.“알았어! 일단 시간을 끌자는 거지?”“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제일 중요한 건 그 소식을 전한 게 누구인지 알고 싶어.”캐리는 묵묵히 엄지를 척 내밀었다.“역시 우리 G!” 잠들기 전에 강하영은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자?”“아니, 무슨 일이야?”소예준의 말투는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여전히 그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오빠,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요즘 무슨 일 있어?”소예준은 소씨 집안의 재산을 전부 털고, 고객들을 비밀리에 이전시키려는 계획을 아직 하영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얘기했다가 강하영이 걱정할 게 틀림없으니, 반드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외할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 힘을 키우고, 유일한 여동생을 지켜야 했다.“내일 내가 한약이라도 지어 보낼 테니까, 잊지 말고 챙겨. 그리고 나 좀 도와줄 수 있어?”“무슨 일인데?”“아주머니가 폭행을 당하고 애들이 납치된 일에, 소씨 집안이 움직였다는 증거가 필요해…….”강하영은 오늘에 있었던 일을 소예준에게 알렸고, 그 얘기를 들은 소예준이 하영에게 물었다.“혹시 그 증거를 홍수혁한테 넘겨줘서, 홍수혁더러 할아버지와 양다인한테 찾아가 배상을 청구하게 하려는 거야?”“맞아. 사실 지난 빚까지 한꺼번에 갚아 주려고 했는데, 이번엔 회사까지 얽혀서 일단 일부 조치를
‘동생?’홍수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물었다.“혹시 강하영?”“맞아. 하지만 증거를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과 교환해야 할 거야.”“뭘 원하는데요?”“이 일을 당신한테 알려 주고, 강하영한테 찾아가 배상을 청구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만 말해.”소예준은 손에 들린 USB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확인할 방법이 있으니까 괜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런데 만약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증거를 손에 넣은 뒤에 또 내 동생한테 찾아가 귀찮게 한다면, 당신은 아마 살아서 김제를 벗어날 수 없게 되겠지. 그리고 또,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당신한테 달렸어.”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강제로 자신을 차에 태울 정도라면 무슨 일을 할 수 없겠는가?‘내가 그 여자의 인간관계를 간과했구나.”“좋아요. 말씀드릴게요. 저한테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통화 기록이 있습니다…….”홍수혁은 솔직히 설명하고 전화번호를 소예준에게 알려준 뒤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 배후가 누군지 저한테 얘기해 주고, 증거도 넘기고 저를 보내줄 수 있나요?” “급해하지 마. 확인해 봐야 하니까.”말을 마친 소예준이 차창을 내리고 번호를 경호원에게 넘긴 뒤 누군지 알아보라고 당부하자 몇 분 뒤, 경호원이 소예준에게 보고를 올렸다.“대표님, 양다인 씨가 다른 사람 정보로 등록한 휴대폰 번호였습니다.”경호원의 말에 소예준의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그래, 알았어.”그리고 USB를 홍수혁에게 건네주었다.“당신 어머니를 다치게 한 사람은 소백중과 양다인이 보낸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당신한테 전화를 걸어 이 일을 얘기해준 여자 말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 판단해.” 홍수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USB를 받고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이대로 그냥 넘겨줘도 괜찮을까요?”소예준은 멀어져가는 홍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 눈엔 내 할아버지가 그렇게 호락호
강하영이 후자를 선택한다면 다시는 희민이를 만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정유준의 분노를 감지한 허시원은 마음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네, 대표님.”그리고 대표 사무실을 나가려는 순간 정유준이 또 허시원을 불러세웠다.“새로 온 경호원들도 모두 해고하고, 기술팀도 전부 교체해!”그 말에 허시원의 가슴이 떨렸다.‘원래 있던 경호원들은 사모님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미 전부 교체를 하고 김호진 한 명만 남았는데, 오늘 또 강하영 씨 때문에 물갈이를 시작하다니, 이러다간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 것 같은데…….’그래도 허시원은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소씨 집안.양다인을 찾아간 홍수혁은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자 이번에는 저번보다 경험이 생겼다.“저기 두 분, 저는 소백중 어르신을 만나러 왔으니 부디 말씀 좀 전해주세요. 그저 녹음된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고 얘기하시면 됩니다.”“들어가서 여쭤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따라오세요.” 홍수혁이 밖에서 몇 분 정도 기다리자 경호원이 나오더니 홍수혁을 데리고 커다란 집안으로 안내했다.소씨 집안의 커다란 정원과 어마어마한 면적의 별장을 본 정수혁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별장에 들어선 홍수혁은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는 소 노인을 발견하고 얼른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르신, 안녕하십니까!”소백중은 고개를 돌려 홍수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나한테 전할 물건이 있다고?”소백중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홍수혁도 더는 숨기지 않았다.“그러니까 어르신이 보낸 사람 때문이 제 어머니가 많이 다쳤는데, 그건 어떻게 보상할 생각입니까? 저는 많이는 필요 없고 딱 1억이면 됩니다.”홍수혁은 소 노인의 어마어마한 집안을 보고 금액을 올렸고, 소백중은 싸늘한 눈빛으로 피식 웃었다.“내가 네놈 어머니를 다치게 했다고? 네놈 어머니가 대체 누군데?”“임연수. 바로 강하영의 집에서 도우미로 일
곧 변호사가 도착해 서류를 작성한 뒤에 각자 사인을 하고 나니, 소 노인은 통쾌하게 1억짜리 수표를 홍수혁에게 건네줬고, 홍수혁은 수표를 손에 넣은 순간에도 이렇게 쉽게 1억을 얻을 줄 생각도 못 했다. 홍수혁은 소백중이 보는 앞에서 휴대폰에 든 녹음을 삭제하고, USB도 소백중에게 넘겨준 뒤 수표를 들고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홍수혁이 떠나고 나니 소백중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고작 하찮은 놈 주제에 나한테서 1억을 뜯어낼 생각을 하다니. 꿈 깨!’소백중은 곁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싸늘한 말투로 지시를 내렸다.“가서 깨끗이 처리해!”“네!”오후.유치원 하원 시간이 되자 강하영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기다렸다.그때 귀청을 찌르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검은색 한정판 마이바흐가 하영의 뒤에 멈춰 섰다.이어 허시원이 운전석에서 내려 공손한 자세로 뒷좌석의 문을 열자, 검은 양복을 빼입은 정유준이 강한 카리스마를 뿜으며 차에서 내렸는데, 거뭇거뭇한 눈 밑만 보더라도 최근에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 미모를 가리지는 못했다.강하영은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지만 정유준은 하영을 발견하지 못한 듯 곧장 곁을 스쳐 지나갔다.‘지금 바쁜 일 끝내고 애들을 데리러 온 건가?’하영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려 애들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곧 선생님이 한 무리의 꼬마들을 데리고 학교를 나오기 시작했다.한눈에 강하영을 발견한 정희민이 세준과 세희와 함께 앞으로 달려가려던 순간, 정유준의 무뚝뚝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아빠가 왜 온 거지? 게다가 엄마랑 거리를 두고 계시네.’뭔가 불길한 예감이 정희민의 머리를 스치며 어느 쪽으로 발길을 향해야 할지 망설였는데 곁에 있던 강세희가 갑자기, “엄마가 오셨어!”라고 소리를 지르자 강세준이 정희민의 팔을 잡고 입을 열었다.“가자, 희민아. 집에 가야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시원이 정희민 앞으로 다가왔다.“작은 도련님, 이제 저희랑 돌아가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