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영은 차에서 내려 장미꽃 앞으로 다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하영은 도무지 정유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양다인한테 차였다고 지금 다시 나한테 온 거야? 내가 가라면 가고 부르면 오는 똥개도 아니고.’강하영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자, 빠르게 남자가 전화를 받더니 기분 좋은 말투가 들려왔다.“얘기해.”강하영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정 대표님, 돈이 넘치게 많아서 쓸 데가 없나 보죠?”강하영의 말에 정유준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가 싹 가시면서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굳어지기 시작했다.“무슨 애기야?”“장미꽃을 선물하는 이런 유치한 행동을 할 사람이 정 대표님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요.”그 말에 정유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배현욱이 분명 장미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말했는데, 강하영은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비꼬는 말투로 얘기하다니, 한 번도 여자를 위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지금 감히 나를 무시한 거야?’체면을 구길 수 없었던 정유준은 그저 억지로 우길 수밖에 없었다.“내가 할 짓이 없어서 너한테 꽃을 보내겠어?”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정 대표님이 보낸 게 아니라면 사람을 시켜 팔아버리라고 할게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정유준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방금 뭐라고? 장미꽃을 팔아 버리겠다고?’정유준은 화가 치밀어 올라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런 낭패를 맛본 정유준은 짜증이 밀려왔다.정유준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던지고 굳은 얼굴로 일어서서 세 아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카펫에 앉아 놀고 있던 세 아이는 정유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망연한 표정으로 유준을 주시했다.정유준은 그들의 얼굴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시선을 강세희한테 고정했다.강세준 이 자식은 늘 자신과 맞먹기 좋아하니 뭔가 알아내고 싶으면 강세희부터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강세희.”정유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름을
정유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데, 질문에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방금 분명 요구를 먼저 얘기하고 저를 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거절할 권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인형은 줘야 해요.”정유준의 얼굴에 순식간에 칠흙 같은 어둠이 드리웠다.‘한 명만 다루기 어려운 줄 알았더니, 두 명 다 이렇게 힘들 줄이야.’아크로빌.강하영은 전화 한 통으로 장미꽃을 몇백만 원에 되팔고 옷을 정리한 뒤에 병원으로 향했다.강하영은 병실에 들어사자 부진석이 간이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하영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깊이 곯아떨어졌다.강하영은 앞으로 다가가 아주머니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돌려 부진석에게 이불을 덮어주려 했다.막 이불에 손이 닿았을 때 부진석이 갑자기 벌겋게 충혈된 눈을 떴는데 미간에는 여전히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강하영은 깜짝 놀라 손을 거두었다.“깼어? 좀 더 자.”부진석은 몸을 일으키며 이마를 문질렀다.“좀 잤으니 괜찮아. 이따가 저녁에 당직을 서야 하거든.”강하영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이것저것 바삐 신경 쓰게 해서 정말 미안해…….”“별 말씀을.”부진석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은 뒤 한숨을 내쉬며 아주머니를 살폈다.“아주머니가 이미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이미 식물인간 상태야.”두 손을 움찔한 강하영의 눈가에는 싸늘한 기운과 고통이 떠올랐다.“내가 곁에서 돌볼게.”강하영은 수믕ㄹ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 빚은 반드시 톡톡히 갚아줄 거야!’강하영의 생모는 비록 소씨 집안사람이고, 하영의 몸에도 소씨네 집안 피가 흐르고 있지만 이번 일만큼은 혈연관계라고 해도 절대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소 노인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체면을 중시한다고 했지? 그럼 그 가식적인 가면을 조금씩 벗겨줄게!’3일 후, MK 그룹.허시원이 황급히 대표실 문을 두드리며 사무실로 들어와 태블릿 PC를 정유준
수업 활동이 끝난 후, 어린이들은 물을 마시러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고, 정희민이 막 주전자를 받아 뚜껑을 열려는 순간 코끝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희민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세희가 비명을 질렀다.“희민 오빠! 피!”강세준도 세희의 비명에 고개를 돌리자 정희민이 코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티슈를 꺼내 희민의 코를 막아 주고는 다급하게 외치기 시작했다.“내가 선생님을 불러올게.”“그럴 필요 없어.”정희민이 휴지로 코를 막은 채 강세준의 옷을 잡고 고개를 저으니, 강세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사소한 일이 아니잖아.”“나 정말 괜찮아, 어쩌면 물을 적게 마셔서 건조해서 그런지도 몰라.”옆에 있던 강세희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 오빠,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어?”“어젯밤에도 코피가 흘렀는데 금방 멈췄어.”희민이가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얘기하자 두 아이도 안심이 됐다. 아마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으면 나쁜 아빠가 희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지도 모르니까.잠시 후, 정희민의 코피가 멈추는 것을 보고 세준이와 세희는 나쁜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저녁, 난원.정유준은 세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서재로 향했다.허시원이 TYC 회사의 법인 대표가 바로 강하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대체 어떻게 5년 안에 거액의 자금을 모아 의류 회사를 세운 걸까?’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G와 강하영의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뿐이고, 강하영이 사라진 5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지금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캐리가 지난번에 얘기했던 강하영의 패션 디자인 방면에서 캐리를 도와줄 정도로 큰 재능이 있다는 정보였다.‘혹시 같은 업계에 종사하면서 강하영과 G가 알게 된 건가?’모든 자료를 확인한 정유준은 소파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G가 과연 강하영의 축하 파티에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하군.’이런 생각을 하던 정유준이 휴대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어,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게 무슨 뜻이야?”부진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하영의 눈을 바라보자, 강하영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소 어르신의 생신이 지나면 우리 만나 보는 게 어때?”“방금 뭐라고 했어?”강하영의 말에 부진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떨리는 입술로 되묻자, 강하영도 긴장했는지 물을 마셨다.“무슨 뜻인지 잘 알잖아. 진석 씨한테는 불공평할 수도 있겠지만…….”“그런 거 없어.”부진석은 재빨리 하영의 말을 끊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동시에 그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6년 만에 드디어 그 말을 듣게 되네.”부진석의 말에 강하영도 한숨을 돌리며 웃었다.“진석 씨만 괜찮으면 돼.”“한 번도 괜찮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앞으로 아이들과 생활 방면은 내가 알아서 잘 돌볼게.”강하영의 작고 예쁜 얼굴은 부진석의 말에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지금까지 계속 돌봐주고 있었잖아.”“지금 하고 있는 건 앞으로와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부진석이 그런 하영을 보며 웃었다.……식사를 마친 강하영은 부진석과 함께 병원에 가서 임씨 아주머니 곁을 지키다가 다시 아크로빌로 돌아왔다.그리고 부진석에게 했던 말을 우인나에게 얘기하자, 우인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기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진짜야? 너 방금 한 얘기 진짜지?”우인나의 호들갑에 강하영은 급히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했다.“이웃들한테 피해주지 말고 목소리 낮춰.”“알았어, 알었어! 부진석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진 셈이네!우인나의 말에 강하영의 마음이 약간 아파왔다.“내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릴 걸 그랬지?”“아니지! 한 번 사랑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 좀 더 조심스러운 게 뭐가 잘못됐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시간 따위는 문제가 아니야!”우인나의 말에 강하영은 슬며시 웃었다.“네가 나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다?”“당연하지! 네가 부진석 씨랑 만
하영은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양다인과 소 노인을 해결하기 전까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납치되는 일을 또다시 감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무리 아쉬워도 마음을 모질게 먹고 아이를 정유준 곁에 놔둘 수밖에 없다.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니까.강하영은 강세준과 정희민을 동시에 품에 안고, 네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가, 강하영이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얘들아, 엄마는 항상 곁에 있으니까,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너희들을 보러 올게. 그러니까 며칠만 참을 수 있지?”강세준과 강세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독 정희민만이 아무 반응이 없자, 강하영은 정희민을 껴안고 있던 손을 풀고 고개를 숙여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아?”그제야 정희민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앞으로 저도 엄마를 따라갈 수 있어요?”그 말을 들은 강하영은 가슴이 에이듯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대답했다.“물론이지! 희민이도 소중한 아들인데 어떻게 혼자만 내버려 두겠어?”하영의 말에 정희민의 새하얀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며 뭔가 말하려던 순간 강세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엄마! 그 사람이 저를 떠보려 했어요!”“아빠가?”강하영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강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세희는 똑똑하니까 엄마를 배신하지 않았어요.”순간 강하영의 머릿속에 장미꽃이 떠올랐다.‘대체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아이한테서 내 취향을 알아보고 싶었을까? 내가 아직도 5년 전의 강하영인 줄 아나 봐?’강하영은 강세희의 작은 코를 쓱 훑어주었다.“우리 세희 점점 똑똑해지네. 이젠 떠보는 것도 다 알고!”“그럼요! 저는 엄마 딸이잖아요!”“자뻑이 심하네.”그때 강세준이 한 마디 끼어들자 강세희는 세준을 흘겨보았다.“오빠는 말하지 않아도 돼!”“그래,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아이들과 함께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강하영은 회사로 향했다.저녁, 웨스턴
강하영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려할 때 배현욱이 재빨리 하영의 말을 끊었다.“강하영 씨, 유준이는 사람 찾으러 온 거야.”배현욱도 따라 앉으며 설명하자 강하영은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신분의 직원들이라 정유준이 직접 찾으러 올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강하영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은 농담도 참 잘하시네요. 이런 곳에 정 대표님이 직접 만나러 올 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강하영 씨는 아닌 것 같아?.”“저는 그럴만한 자격이 못 되죠.”웃으며 되묻는 배현욱의 말에 강하영이 바로 반박하자 옆에 있던 정유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너 찾으러 온 거 아니니 괜히 딴생각하지 마. 난 G를 만나러 온 거야.”정유준이 확실히 자신의 목적을 밝히자 강하영은 오히려 멍해지고 말았다.이때 그 말을 들은 캐리로 얼른 강하영을 바라보며 하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어떡해, 저 두 사람은 너 찾으러 왔나 봐!”강하영은 얼른 캐리를 흘겨보며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알았으니까, 귓속말 좀 하지 마.”만약 정유준이 이 사실을 알면 또 하영을 귀찮게 할 게 뻔했다. 곧 부진석과 함께하게 될 텐데 더 이상 정유준과 쓸데없는 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우인나도 인차 머리를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정 대표님, G는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최고의 디자이너인데, 어떻게 하영이 회사에 나타날 수 있겠어요?”정유준이 그런 우인나를 힐끗 쳐다보며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배현욱이 말을 가로챘다.“모든 건 가능성이 있답니다. 우인나 씨.”그 말에 우인나는 헛웃음을 치며 반문했다.“그럼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90퍼센트는 있다고 생각해요.”“증거 있어요?”“패션에 관한 온라인 상의 네티즌들의 댓글과 예약이 증거가 아닐까요?”배현욱의 반문에 우인나도 되물었다.“그럼 G와 강하영이 아는 사이라고 확신하는 건가요?”“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바로 이때, 파티장의 음악이 뚝 그쳤고, 메일의 수신 알림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정유준은 날카로운 시선이 강하영과 캐리 쪽으로 향했고, 캐리가 휴대폰을 꺼내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정유준을 힐끗 쳐다보았다.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캐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쳤지만 이내 모른 척하며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유준은 캐리가 바로 G라고 확신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큰 조건을 내걸며 모셔 오려 해도 꿈쩍도 안 하더니 알고 보니 강하영 옆에 있었다.‘왜? 행동으로 자기 진심을 표현하려는 건가? 아무리 큰 유혹이라도 자기 눈엔 강하영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순간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정유준이 잔을 들어 술잔을 전부 비우자, 우인나는 정유준의 잔에 술을 따라줬다.‘대표님이 취하기만 하면 더는 하영이를 귀찮게 하지 않겠지!’우인나는 정유준 곁에서 꼬드기기 시작했다.“정 대표님, 혼자 무슨 재미로 술을 마셔요? 배 대표님도 함께 마셔야죠!”우인나는 배현욱에게도 술을 가득 따르려 하자, 배현욱은 눈치 빠르게 얼른 잔을 치웠다.“우인나 씨는 왜 본인 상사와 같이 안 마셔요? 찔리는 거라도 있나?”그 말에 우인나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제 신분으로 어찌 사장님이랑 같이 술을 마시겠어요? 배 대표님은 사장님 친구분이면서 왜 마시지 않아요?”“유준이 우인나 씨랑 안 마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네요. 차라리 나랑 마시는 건 어때요?”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는 배현욱의 모습은 우인나의 눈에는 마치 도발하는 것처럼 보여, 우인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바로 언성을 높였다.“지금 그게 무슨 눈빛이죠?”“아무것도 아닌데, 왜 나랑도 못 마시겠어요?”누구랑 술을 마셔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던 우인나는 배현욱의 도발에 이를 악물었다. “마셔요! 오늘 밤 누가 이기나 한번 두고 보죠!”“……”두 사람의 모습에 강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아니 왜 갑자기 싸우다가 술
하영의 말에 입술을 깨문 정유준의 어둡게 가라앉는 눈빛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하나만 묻고 싶어. G와는 무슨 관계야?”“……”‘G와 무슨 관계라니? 내가 나랑 대체 무슨 관계겠어? 혹시 다른 사람을 G라고 생각하는 거야?’“내가 그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는 것 같네요.”강하영의 대답에 정유준은 하영을 힐끗 쳐다보고 일깨워 주듯 입을 열었다.“G라는 자는 오만방자하고 멀리 내다보는 성격도 아닌 것 같으니, 아무리 한 방면에서 출중하다고 해도 미래가 보이지는 않는 것 같군.”“꼭 그렇게 장사꾼 시선으로 한 디자이너의 미래를 내다봐야겠어요?”강하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유준과 합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야가 좁은 사람이 돼버리다니.‘꼭 MK와 손을 잡아야만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지난 5년 동안 강하영은 누구에게도 의지한 적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꿈을 이루고 최고가 되었다.정유준은 손에 든 술잔을 천천히 흔들며 분석하기 시작했다.“돈을 벌 생각 없이 디자인만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질투심이 강한 인간들에게 눌려 어떻게 될지 모르지. 듣기 싫게 말해서 배후에 강한 세력이 지지해 주지 않는다면, 조만간 그 장사꾼들한테 삼켜져 뼈도 추리지 못할 거야. 내 비서로 오랫동안 함께 일했으면서 이 바닥이 얼마나 복잡한지 아직도 내가 얘기해 줘야 알아?”강하영은 정유준의 말에서 그 어떠한 흠집도 찾아낼 수 없었다. 확실히 누군가 질투에 눈이 멀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큰 곤경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특히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신생 회사라면.‘혼자서 강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강하영은 침착하게 술잔을 기울였다.“충고 고마워요. 앞으로 조심할게요.”“가끔은 네가 미처 막아낼 수 없는 일도 있어. 충고하나 하겠는데, G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통제하고 네 능력으로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그러니까 캐리가 바로 G라고 생각하는 거예요?”강하영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묻자, 정유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