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영이 많은 사람 앞에서 정유준을 꾸짖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이내 강하영을 흘겨보았다.“내 동의도 거치지 않고 멋대로 내 아이를 데려갔으면서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미리 얘기하지 못한 건 미안해! 하지만 아빠로서 다짜고짜 애한테 물으면 애가 겁먹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희민이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그럴수록 더 관심하고 따뜻하게 대해야지.”강하영의 말에 정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내 아이 일인데 네가 왜 흥분하고 그래?”“…….”‘큰일 났네. 방금 희민이 생각만 하느라 정유준이 아직 나와 희민이 사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강하영은 바로 말을 돌렸다.“그냥 아이한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거야.”정유준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강하영한테 다가갔다.“내 아들한테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궁금해지내. 양다인한테 복수할 방법이 없으니까 지금 아이한테 접근해 친하게 지내면서 복수할 계획이야?”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정유준을 노려보았다.‘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아이한테 손을 댈 정도로 비겁해 보였어?’“내가 네 생각을 알아맞혀서 대답할 수 없는 거야?”“정 대표님!”그때 부진석이 앞으로 나서며 강하영을 자기 뒤에 세운 뒤 정유준의 시선과 마주하고 차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부디 우리 하영이 의도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희민이가 양다인한테 학대받으며 아이 심리에 문제가 조금 생겼으니 지금은 많이 관심해 줘야 할 시기여서 하영이가 희민이를 데리고 놀러 온 것도 치료 방법중의 하나입니다.”정유준이 턱을 치켜 올리며 부진을 무시했다.“그쪽은 아직 나와 얘기할 자격이 없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허시원이 서둘러 앞으로 다가와 부진석에게 얘기했다.“부 선생님, 부디 대표님과 강하영 씨 일에 끼어들지 마시죠.”“나쁜 놈!!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강하영 곁에 서 있던 강세희가 어느새 정유준 앞으로 돌진하
“오랫동안 함께 지낼수록 서로 닮는다는 거 몰라? 세준이가 너를 닮았다고? 눈이 잘못된 거 아니야?”“얘들아 집에 가자!”강하영은 정유준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쏘아붙이더니 두 아이를 보며 말했다.하영은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의심이 많은 정유준이 분명 이상한 점을 느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하영은 아직 정유준과 아이 문제로 다툴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기고 싶었다.강하영이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에 정유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희민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서 노는 게 좋아?”“네.”정희민이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와 강하영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혹시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렵지 않아?”정유준은 비록 양다인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지만 아들만큼은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정희민의 안위가 걱정됐다.지금 중요한 문제는 강하영이 무슨 속셈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찌 됐든 강하영이 5년이나 참다가 돌아왔으니 말이다.만약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 강하영을 도울 생각이지만 아들만큼은 절대 휘말리게 할 수 없는 게 정유준의 마지막 한계였다.정희민은 혹시나 정유준이 다시는 놀러 가지 못하게 할까 바 얼른 고개를 들고 초조핞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좋은 분이에요!”희민의 대답에 정유준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고작 짧은 시간의 접촉만으로 희민이가 강하영이 좋은 사람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럴수록 정유준은 강하영의 행동이 더욱 의심스러웠는데, 이때 허시언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대표님, 강하영 씨는 절대 아이한테 손댈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강하영에 대해 잘 알아?”정유준의 반문에 허시원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그저 대표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강하영 씨를 그리워하셨으니 어떤 분인지는 대표님께서 잘 아시겠죠. 만약
강하영은 쓰린 심장을 움켜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리고 방문을 나서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가 곤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강하영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은 뒤 아이들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세준과 세희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그들을 품에 안았다.이 꿈은 요즘 아이들에게 소홀한 자신을 일깨워 주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귀국한 뒤로 양다인에게 복수할 생각만 하면서 아이들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으니, 요즘 기회를 봐서 경호원을 들여 아이들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강하영이 눈을 감자 강세준이 졸린 눈을 떴다.‘엄마가 웬일이지? 왜 갑자기 우리 방에 들어와 주무시는 걸까?’세준은 나쁜 아빠가 별장 입구에서 양다인이라는 사람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엄마와 원한 관계라도 되는 걸까?’강세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내일 당장 양다인에 대해 알아봐야겠어.’일요일.강하영은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어 어젯밤에 발생한 일과 경호원을 들이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확실히 아이들한테 소홀한 것 같아. 경호원은 내가 알아볼 테니, 정유준 쪽은 내가 최대한 그가 아이들을 조사할 수 없게 막아볼게.”“오빠.”그때 강하영이 소예준의 말을 끊었다.“양다인을 막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야. 정유준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껏해야 아이들을 데려가겠지.”“그래 알았어. 내가 사람을 시켜 양다인을 주시하도록 당부할게. 하영아, 너도 조심하고, 회사 일이 너무 바쁘면 나한테 얘기해.”“그래, 알았어.”이때 계단에서 두 아이가 난간에 매달려 강하영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강세준이 강세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세희야, 지금 임부를 수행해.”강세준은 아침에 강세희한테 어떻게든 엄마가 아래층에 계시도록 당부했다.그 사이에 세준은 엄마의 서재에 가서 컴퓨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젯밤 세준은 컴퓨터에서 비밀 파일을 발견했다.강세희가 몸을 곧게 펴고 대답했다.“알았어! 오빠!”말을 마친 강세희가 토끼를 안고 아래
강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양다인은 분명 하영을 찾으러 유치원에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겁 없이 돌아올 때는 언제고 차에서 내리는 건 못 하겠어? 왜, 겁먹은 거야?”양다인의 초조한 모습에 강하영은 알 것 같았다. 어제 형사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마 양다인의 신고 때문이었겠지.하영에게 차에서 내려 자신이 강하영인 것을 인정하기라도 하면 녹음을 해서 경찰서에 신고할 생각인 것 같은데 하영은 아직 그런 속임숙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그저 말다툼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을 풀 수는 없으니 굳이 차에서 내릴 필요도 없었다.강하영이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자, 경호원들이 빠르게 차에서 내려 양다인의 미친 행동을 제지하기 시작했다.양다인이 미친년처럼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강하영은 회사로 차를 출발시켰다.회사에 도착하자 비서인 소라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오늘 일정을 강하영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강 대표님, 오늘 오전에 회의가 있고, 오후에는 공장에 다녀와야 합니다. 새로운 기계가 이미 도착했습니다.”비서의 말에 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혹시 잊을 수도 있으니 이따가 다시 한번 얘기해 줘.”오전에 강하영은 회의를 마치고 공장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면서 카페에 들려 캐리가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실수로 누군가와 부딪쳤는데, 그때 손에 든 커피도 상대방 옷에 전부 쏟아버리고 말았다.“정말 죄송합니다…….”고개를 들며 급히 사과하던 강하영은 깜짝 놀라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지금 하영의 앞에 구겨진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는 바로 배현욱이었다.“괜찮아요.”배현욱은 몸에 묻은 커피 얼룩을 손으로 툭툭 털며 고개를 들었다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선글라스를 쓴 강하영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통해 강하영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순간 배현욱이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란 듯 소리 질렀다.“강하영 씨?!”“사람을 잘못 보셨
배현욱은 강하영이 말을 끊을 틈을 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정유준에 관한 일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강하영은 커피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나를 위해 2년 동안 술을 마셨다고?’5년 동안 자신을 찾아다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2년 동안 술에 빠져 살았던 건 믿기지 않았다.“유준이 왜 양다인 씨와 파혼했는지 알아?”배현욱이 강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배 대표님, 저는 두 사람 사이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강하영 씨 때문이야. 당시 자신을 구한 사람이 하영 씨라는 것을 알았거든. 그래서 술만 마시면 하영 씨한테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닌데, 만약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다 내줄 거라고 참회하기 시작했어.”강하영은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정유준이 그 사실을 알았구나…….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 건데? 이미 벌어진 일인데 5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강하영은 괴로움을 삼키며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 저와 유준 씨 사이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어요.”강하영의 말에 배현욱의 표정도 약간 차갑게 변했다.“정말 유준이한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아?”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다시 정유준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배 대표님, 저와 유준 씨 사이는 한두 마디 말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유준 씨가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는 알겠지만,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잖아요.”말을 마친 강하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따가 누군가 옷을 보내올 겁니다. 먼저 가볼게요.”강하영은 배현욱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카페를 나섰다.배현욱은 쓸쓸해 보이는 강하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고 곧바로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배현욱은 정유준을 비웃었다.“유준아, 이제부터 너의 고생길이 열렸구나.”“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나 방금 강하영 씨를 만났어. 내가 지난 2년 동안 너의 눈부신 업적을 얘기해 줬는데,
“미쳤네.”강하영은 양다인을 상대하기도 귀찮아 유치원으로 향했다.“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지? 좋아, 내가 인정하도록 만들어 줄게!”강하영의 머릿속에 악몽을 꿨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강하영은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양다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하게 웃기 시작했다.“왜? 내가 애들이라도 데려갔을까 봐 두려워?”강하영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그럴 능력도 없으면서.”“그건 내가 판단해. 강하영, 내가 한 번을 이겼으면 두 번째도 내가 이겨!”음산하게 웃는 양다인을 향해 반박하려던 순간 커다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하영은 침착한 모습으로 웃으며 물었다.“양다인, 또 어떤 수법으로 나를 상대할 생각이야? 또 살인 현장이라도 꾸며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내가 똑같은 수법을 두 번이나 사용할 것 같아?”양다인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당연히 네 약점을 잡아야지! 정희민을 모르는 건 아니지? 지금 내가 정희민 엄마야! 내가 정희민을 납치하면 올 거야? 안 온다면 정희민한테 손을 쓸 수밖에 없고, 네가 온다면 평생 감옥에서 썩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양다인의 마지막 두 마디는 정확하게 양다인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남자의 귀에 들어갔다.“희민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남자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고,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양다인 귀에 들리는 순간 양다인은 고개를 홱 돌렸다.정유준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양다인은 빠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미처 생각 없이 말을 툭 내뱉었다.“유준 씨, 다 들었어?”정우준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어두워졌다.“희민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묻잖아!”정유준의 고함에 양다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유준 씨, 나는 그냥 강하영에게 겁을 주려고 한 얘기였어! 유준 씨도 강하영이 돌아온 걸 알고 있었어? 살인자 주제에 유치원까지 찾아온 건, 분명 희민이한테 무슨 짓 하려는 게 틀림
저녁.강하영은 약속 장소인 라운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캐리가 강하영을 발견하고는 신사적인 태도로 강하영에게 의자를 빼주며 웃었다.“우리 사랑하는 G, 어서 자리에 앉으시죠.”강하영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봤다.“캐리, 안 하던 짓 좀 하지 마. 습관이 안 되니까.”하영의 말에 캐리는 헤헤 웃었다.“어때? 방금 내 표현 괜찮았지?”‘표현?’강하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보았다.“무슨 표현?”캐리가 입술을 내밀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저기 봐봐. 네가 그렇게 미워하고 사랑하는 남자 맞지?”강하영은 깜짝 놀라며 캐리가 가르킨 방향을 바라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배현욱과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정유준이 한눈에 들어왔다.방금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강하영은 입술을 실룩거렸다. 정유준이 있는 줄 알았다면 죽어도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강하영은 억지로 시선을 거두고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캐리를 보았다.“내가 미워하고 사랑하는 남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캐리는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거렸다.“네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기어이 나한테 사진까지 보여주며 얘기해 줬잖아.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역시 술이 문제야!’캐리가 갑자기 강하영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였다.“내가 계속 애인인 척 연기해 줄까? 나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벽한 커플이라고 믿게 해줄게, 아마 다시는 너한테 집적…… 어…….”캐리는 말을 반쯤 하다 말고 말을 멈췄고, 강하영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대충 대답했다.“됐어. 어차피 의심병이 많은 사람이라 믿지 않을 테니까, 괜히 일 만들지 마.”“허, 내가 의심병이 있는 줄은 몰랐네?”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차가운 말투에 강하영은 흠칫 놀랐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자 정유준이 강하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정 대표님, 몰래 엿듣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닌 것 같네요!”“대놓고 들은 건데?”정
정유준의 물음에 캐리는 순간 흥분하며 입을 열었다.“강하영은 나한테 신 같은 존재죠!”배현욱은 옆에서 더욱 부추기기 시작했다.“뭔데요? 얘기해 봐요.”캐리가 한숨을 내쉬었다.“하영은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하영을 금방 알았을 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했어요. 애들한테는 제일 좋은 것만 먹이고 자신은 마른 빵만 먹으며 지냈어요. 하영이와는 패션 디자인 경기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하영이가 저한테 그런 말을 했었죠. 내가 당신을 도와 이 경기에서 이기게 해주면 1,500만 달러만 줄 수 있냐고. 그 경기는 제가 10년 동안 노력해서 얻은 명예가 달린 경기였기 때문에 1,500만 달러가 아니라 만달라를 요구해도 줄 수 있었죠! 나중에 하영이가 저의 디자인 원고와 샘플 옷에 몇 군데만 손을 봐줘서 제 작품을 표절한 사람을 이길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하영은 저의 신이 되었죠!”캐리의 말에 정유준과 배현욱은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배현욱은 그제야 강하영이 오후에 했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이렇게 보면 정유준의 고통은 강하영이 처참하게 살아온 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정유준은 끝없는 자책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기 시작했다.강하영은 방금 속을 비우고 세면대를 짚고 양치질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하영의 뒤로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거울 속으로 정유준이 눈시울을 붉힌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강하영은 깜짝 놀라 술이 깨는 기분이 들며 몸을 돌렸다.“무슨 일이죠?”“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약간 잠긴 듯한 정유준의 말투에 강하영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무슨 말이요?”“그렇게 힘들게 살았다고 왜 얘기하지 않았어?”“별로 얘기할 것도 없어요.”정유준은 마음이 아픈 듯 목소리마저 떨려왔지만 강하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강하영,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항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정유준이 잘못을 인정하자 강하영의 가슴이 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