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희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며, 독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말을 잃었고,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런 로희의 반응에 도민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요? 내 보물, 귀엽지 않나요?”‘변, 변태야! 독사를 보물이라고 부르다니?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독사를?’로희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혹여나 독사가 자기를 물기라도 하면 어쩌나 두려워서. 그러나 팔에도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뭔가가 자기 셔츠 소매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눈동자만 겨우 굴리며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의 거미가 로희의 어깨를 타고 빠르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검은색과 짙은 갈색이 교차한 껍질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 모습은 흉측하고 무서웠다. 이에 로희는 미칠 것만 같았다.“소개해 줄게요.”민혁은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 “내륙 타이판 뱀이에요. 독액이 코브라의 50배는 되죠. 한번 물면 쥐 20만 마리를 죽일 수 있을 정도고요.”“그러면 우리 비서님을 몇 번이나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아, 이건 깔때기그물거미예요. S시에서 가져온 거죠. 독니에 있는 독은 15분 안에 5명에서 8명까지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옆방에서는...“대표님!”기준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둘째 도련님이 점점 더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것을 회사에 가져오다니, 유 비서가...”“그렇게 동정심이 많다니, 절에서 관음보살 대신 백 실장을 모셔야겠군.”민우의 얼굴은 냉정했고, 짜증스럽게 화면을 끄며, 차갑게 말했다. “스파이가 되겠다면, 그만한 각오를 해야지.”민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고, 기준은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정말로 유 비서를 신경 쓰지 않으실 건가요?”민우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한 마디만 남겼다. “회의 가야지.”기준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사무실을 지나가면서, 방음이 잘 되어 있는지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우의 눈앞에는
“대, 대표님.”로희는 흐릿한 시야로 도민우를 바라보며,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유 비서!” 기준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급히 다가가 로희를 부르며 말했다. 로희는 웃어 보이려 했지만, 힘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민우가 민혁의 얼굴에 주먹을 세게 날리는 모습이었다.또다시 민우가 자신을 구해주었다. 로희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형, 왜 이렇게 흥분해?”입가의 피를 닦으며, 민혁은 웃으며 말했다. “이런 비서 따위를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항상 음흉하게 계산하던 민혁의 눈이, 바닥에 쓰러진 로희를 탐색하듯 바라보았다.“망할 놈!”민우는 민혁의 시선을 막으며, 로희의 셔츠에 맺힌 핏자국을 보고는 눈동자가 잠시 붉게 물들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또 한 번 주먹을 날리며 말했다.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책임져야 할 거야!”민우는 지금 당장이라도 민혁을 죽이고 싶었지만, 로희가 위태로운 상태라 그녀를 안고 재빨리 밖으로 달려갔다. 민우의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손등에는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로희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민우는 로희가 무사해야만 했다.“형, 왜 그렇게 서둘러?”두 번이나 맞았으면서도, 민혁은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문 앞을 가로막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이딴 비서 나부랭이 때문에 우애가 망가져도 괜찮다는 거야?”“비켜.”민우는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민혁을 쏘아보며, 차갑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진지함을 알아차린 민혁은 손을 들었다.“형, 진정해. 그건 그냥 평범한 뱀이라 독이 없어.” 민혁이 말했다. “그러니 이 비서도 죽지 않을 거라고.”“내륙 타이판 뱀이 아니었나요?” 기준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물었다. “그리고 그 깔때기그물거미도...”“다 들었나 봐?”민혁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냥 비서를 놀라게 하고 싶어서 그랬어. 그런 치명적인
로희는 다음 날이 되어 정오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눈을 떴다.깨어난 로희를 보고 미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제 정신이 좀 돌아왔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 독 없는 뱀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넌... 도민혁도 참 너무해. 어떻게 뱀을 회사까지 데려올 수가 있어?”로희는 눈을 깜빡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순간, 불길한 예감이 밀려오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이미 환자복으로 갈아입었고, 가슴을 감싸던 천도 사라진 상태였다.놀란 로희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이불을 급히 끌어당겼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나... 어떻게 병원에 온 거야? 그리고 이 옷은 대체 누가...” “뭐라고? 아직 몰랐구나.”미정은 어깨를 살짝 움츠리더니 곧 말을 이었다.“도 대표님이 너를 안고 병원까지 데려왔어. 이 병실도, 의사도 전부 도 대표님이 직접 마련하신 거야. 아마 옷은 간호사한테 부탁하신 게 아닐까?”로희는 미정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쓰러지기 전에 봤던 그 장면이 정말이었어? 착각이 아니고?'‘도민우가 날 구해준 거야? 그렇다면... 그 다정했던 위로는 진짜일까, 아니면 꿈이었을까?'미정은 로희의 얼굴을 보며 안타까운 듯 말을 이었다.“미안해할 거 없어. 도씨 가문에서 저지른 일이잖아. 넌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야.”미정은 로희를 대신해 화를 내며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완쾌될 때까지 병원에 있어. 도씨 가문에서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이고, 그 사람들이 너한테 보상을 해줘야 마땅해.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야? 직장인은 무슨 인권도 없는 건가?”로희는 잠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불을 몰래 위로 끌어올렸다. 딱 가슴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다행히 아직 아무도 로희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로희에게, 갑자기 미정이 다가왔다.“너! 솔직하게 말해봐!”“뭐?”순간, 제 발이 저린 로희였다.“뭐... 뭘...”“도 대표님이 너를... 혹시 좋아하는 거 아니야?
‘시계?’‘내가 실수로 가지고 갔던 그 시계?’‘난데없이 왜 갑자기 시계 타령이지?’가슴이 한 줌만 해진 로희이다.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사무실 안에서 더욱 큰 소리가 들려왔다.“위치 추적 시스템이 있다고? 그럼, 한 번 알아봐. 어떻게든 찾아내! 어떻게든 꼭!”‘위치 추적 시스템?’로희는 마침내 사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어리석은 자신이 몹시나 한스러운 순간이었다.한두 푼도 아닌 물건에 위치 추적 시스템과 같은 첨단기술이 깃들어 있는 것도 놀라울 일이 아니니 말이다.하물며 일반인도 아니고 부잣집 도련님의 물건이니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일이다.로희는 지금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이윽고 심란해진 로희는 바로 뒤돌아서서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긴장한 나머지 어느새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비틀거리면서 벽을 잡은 로희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그때 은행 카드가 땅으로 뚝 떨어지면서 ‘툭’하고 ‘죽음의 소리’를 내고 말았다.떨어진 은행 카드를 바라보면서 로희는 심장이 그대로 멈추는 것만 같았다.“누구시죠?”이윽고 민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듣고서 바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어진 로희는 바로 황급히 은행 카드를 주우면서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대표님, 저... 유은빈입니다.”지난번 일로 로희는 민혁 쪽에서 보내온 스파이가 아님을 완전히 증명할 수 있었다.그로 인해 민우는 로희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덜어낸 듯했다.“점심시간에 무슨 일이죠? 점심 먹으러 가지 않았어?”“이 카드 돌려주려고 온 겁니다.”로희는 아랫입술을 사리물었다.“대표님, 제가 받기에는 너무 과분한 보상입니다. 제가 겁이 하도 많아서 일어난 일이고 병원비용까지 전부 부담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그러한 의미에서... 대표님, 고맙습니다만 카드는 받지 않겠습니다.”바보인지 아니면 단순한지 순간 뭐라고 판단할 수 없는 로희의 반응이었다.어떻게든 회사의 돈을 ‘뜯어’내려고 아등바등하는
청순한 스타일, 도도한 스타일, 지적인 스타일...민우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얼마든지 곁에 둘 수 있다.‘도민우, 내가 너한테 어울려? 네가 나한테 어울려?’되묻는 로희의 말에 민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로희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그렇게 한참 지나서 민우는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열심히 일이나 해.”로희는 민우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시계에 위치 추적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그녀를 미치게 했으니 말이다....다음날 오전.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로희는 그렇게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채로 출근했다.점심 시간까지 겨우 버틴 로희는 동료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틈을 타서 신중하게 포장해 놓은 시계를 몰래 꺼냈다.손수건 안에 들어 있는 ‘애물단지’를 만지면서 로희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기념으로 남긴 건데...’상황이 어찌 됐든 그날은 로희의 첫 경험이었으니 말이다.그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로희는 뭐라도 좀 남기고 싶었다.하지만 정체가 들통 날 위험한 상황에 비하면 기념품 따위는 더없이 부질없었다.잠시 망설이고 나서 로희는 대표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점심 시간이니 민우 역시 점심 먹으러 갔을 것이다.대표실 바로 앞에 있는 또 다른 비서 역시 5분 정도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이다.미친 듯이 팔딱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로희는 겨우 시계를 대표 사무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자기 자리로 돌아온 로희는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안정시켰다.“야! 인삼이라도 몰래 먹고 있는 거야?”누군가의 목소리에 로희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민아였다. 민아는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활짝 웃었다.“안녕, 자기야.”“민아야!”로희는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지나가는 길에 들렸어.”주위를 훑어보면서 민아는 웃으면서 덧붙였다.“너 여기서 일하는 거 보고 싶어서 왔어. 왜?
주위를 살펴보더니 민아는 마침내 유혹에 넘어갔다.아픔도 사라진 채 바로 시계를 덥석 잡았다.시계를 뒤집어 확인해 보더니 민아는 순간 놀란 나머지 숨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지난번 민우가 차고 있던 시계와 같은 브랜드로 그 시계보다 값이 더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전 세계적으로 딱 10개만 출시되었고 뒤쪽에는 번호가 적혀 있다.한 마디로 실거래가 없는 시계라는 것이다.이렇게 비싼 시계를 탁자 위에 함부로 놓다니... 부자인 건 알겠으나 가늠이 되지 않았다.욕망이 불타오른 민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시계를 자기 손목에 ‘착’ 감겼다.여러 각도로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심취한 모습을 드러냈다.하도 깊이 심취되어 있어서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누구야?”민우는 자기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난 민아를 보고서 바로 다가가 손목을 잡아당겼다.이윽고 그 시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지금 민우의 눈빛일 것이다.“이 시계는...”대경실색한 민아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도... 도 대표님... 저 아파요.”민우는 바로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물었다.“누구시죠?”“저 기억 나지 않으세요?”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민아가 물었다.큰돈을 들여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한 민아의 얼굴이다.민아와 같은 미인을 보고서 넋이 나가지 않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따라서 민아를 한 번 본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말이다.하지만 지금 민우는 마치 낯선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민아의 뜻을 오해한 민우는 눈살을 더욱더 세게 찌푸렸다.“그 날밤... 그쪽이었어요?”‘그 날밤? 무슨 밤?’민아는 시계를 보고 탁자 위의 손수건을 보더니 머릿속의 불현듯 무엇인가 스치는 것만 같았다.익숙한 손수건이었으니 말이다.인플루언서로서 민아는 자주 광고주의 초청을 받아 행사에 참가하곤 했었다.이 손수건은 그전에 참가하였었던 행사에서 받은 선물과 똑같았다.‘내가 로희한테 준
마음을 졸이면서 민아는 애써 덤덤한 척했다.“도 대표님도 알다시피 저 그날 밤에 도 대표님이랑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그때 마침 감기도 걸렸었고 그런 상황에서 목소리가 좀 달라지는 것도 정상이 아닌가요?”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민아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저 그날... 처음이라... 너무 아팠어요...”그 말을 듣고서 민우는 살짝 흔들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민우는 침대 시트를 유심히 살펴보았고, 한 곳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말인즉, 처음 겪는 일이 맞다는 뜻이었다. 민아는 제법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민우의 표정에는 여전히 믿기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가운 목소리로 이상한 요구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그럼, 그날 그 목소리로 뭐라도 해봐요.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래요.”순간 민아는 얼어붙고 말았다.이윽고 민우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도 그래도 80% 정도는 나오지 않겠어요?” 지금 민우의 눈빛은 차갑고 위험했다. 민아가 감히 입을 열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쫓아내 버릴 듯한 기세였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민아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그럼요.”가볍게 대답하고서 민아는 속으로 당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로희가 성우로 온라인에서 인기를 받고 있을 때 민아는 질투심에 로희를 일부러 모방한 적이 있었다.19금 댄스를 선보이면서 어렵게 팔로우를 받아낸 자기보다 단지 목소리 하나만으로 팬이 많았던 로희가 무척이나 눈꼴사나웠다.민아는 로희에게 성우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바보 같은 로희가 아주 적극적으로 발성을 도와줬었다.로희의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 맞았다.민아가 아무리 배우고 연습을 해보아도 그냥 얼버무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그날 밤에 전 이랬어요.”민아는 목을 가다듬으며 발성 방식을 조절하여 로희의 목소리를 흉내며 말했다.“도 대표님, 이 목소리 맞으세요?”달콤한 목소리가 머
그 소리에 민우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사람처럼 민아를 옆에 있는 휴게실로 밀어 넣었다.“들어가 있어요. 소리 내지 말고요.”민아 역시 가슴이 찔리고 있었다. 로희에게 모든 걸 들키게 될까 봐.의문을 제기하지도 않고 바로 민우의 말대로 아주 순순히 휴게실로 들어가 있었다.벽에 등을 꼭 대고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들어와.”“도 대표님, 이제 막 수정한 계획서입니다.” 로희는 서류를 건네며 탁자 위를 몰래 흘깃 살펴보았다. 손수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속에 있던 시계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로희는 다시 한번 민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민우는 차가운 얼굴로 아무런 변화 없이 평온해 보였다. 마치 시계를 찾았다고 해도 그에게 전혀 영향이 없는 것처럼. 로희는 순간 홀가분해야 할지, 실망해야 할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그래도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의 행방에 대해 더는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민우에게 들킬까 봐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멀어, 애써 좁히려 해도 결코 좁혀지지 않을 거리일 것이다. 민우는 겉으로는 무척이나 덤덤해 보였지만,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서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잡히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이렇게 진행하면 돼.”가기 전에 로희는 지금 회사 어딘가에 있을 민아를 떠올리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리 얘기하기로 했다.“도 대표님, 다른 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민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기억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친구 민...”로희가 한창 말하고 있을 때 휴게실에서 ‘쿵’하고 소리가 들려왔다.‘휴게실에 누가 있는 거야?’‘이 시간에 도민우의 개인 휴게실에 있다고?’로희는 궁금한 마음에 발꿈치까지 들면서 휴게실 쪽으로 바라보았는데, 문틈 사이에 끼인 치맛자락이 보였다.휴게실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