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는 현장의 배치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어떤 곳이 배치가 타당하지 않아 재차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하성우는 차우미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하성우가 그녀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눈을 돌렸다.입을 오므린 채 웃는 듯한 하성우의 모습에 차우미가 눈살을 찌푸렸다.하성우가 이상해 보였다.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차우미는 별생각이 없었다.일이 끝난 뒤 왜 그러는지 물어보기로 했다.시간이 흘러 5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배치 문제에 관해서도 모두 토론한 뒤 다시 조정했다.하성우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5시인데 다 같이 식사하고 휴식하시죠. 내일부터 다음 단계로 넘어가요."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차우미가 하성우의 곁에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하성우는 의외가 아니라는 듯 다른 사람들과 간단히 말을 나눈 뒤 그녀에게 다가왔다. "형수 왜 그래?"하성우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다가와 물었다.하성우는 재밌는 일을 기다리는 것처럼 흥분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차우미가 하성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무슨 일 있어?""어?"하성우가 눈을 깜빡이며 일부러 더 놀란 듯 물었다. "일이라니? 무슨 일?""나 아무 일도 없는데, 형수는 무슨 일 있어?"차우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성우가 재빨리 말했다. "형수 무슨 일 있으면 말해."하성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친구분은 어디 계셔? 와서 같이 저녁 먹으라 해."차우미는 하성우의 모습이 수상했다.그래서 다시 묻기도 어려웠다."아니야, 저녁에 같이 밥 먹기로 했어. 나 빼고 가서 먹어. 난 친구랑 밥 먹고 회성 구경 좀 하고 들어갈 거야."하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성분이 이런 아저씨들과 저녁 하는 것보다는 둘이 가서 먹고 노는 게 훨씬 좋지.""형수 말대로 해, 가서 재밌게 놀아."차우미가 당황한 것 같았다.온이샘을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하성우의 모습에 당황했다.하성우가 말을 마치자 차우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다는
[안 바빠?]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여가현 뿐이다.차우미가 미소 지었다.여가현이 워낙 바빴던 탓에 영통이나 전화를 하기 어려웠다.차우미는 그녀가 바쁘지 않을 것으로 추측했다. 갑자기 그녀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내기 어려운 사람이기에.차우미가 그녀에게 답장했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온 소식을 알렸다.다섯 시가 되자 온이샘이 그녀에게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나 도착했으니까 천천히 와. 안 급해.]차우미가 답장을 하던 찰나 여가현이 전화를 걸었다.스크린에 찍힌 여가현의 이름에 차우미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요즘 너무 바빴지?"여가현이 서류 넘기는 소리가 휴대폰으로 들려왔다.차우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무리 바빠 봤자 너보다 바쁠까.""그건 그래.""넌 나랑 차원이 다르게 바쁘잖아. 네 능력은 우리보다 훨씬 대단한걸."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난 애초에 길을 잘못 들어섰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너희 아버지한테 목각 디자인을 배웠어야 했어. 이렇게 죽을 고생 할 줄 몰랐다니까."여가현이 하소연하듯 말했다.차우미도 여가현이 장난으로 꺼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가현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목각을 할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했다.감상하는 거면 몰라도 직접 만들라고 하면 못한다.차우미가 바깥을 바라보며 웃었다. "저녁 먹고 일해.""먹으면서 일해도 되고."차우미는 여가현이 끼니도 거르고 일을 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응, 이것만 끝내고 먹을거야.""참, 넌 어때? 선배 도착했어?"차우미가 살짝 놀랐다. "선배 회성 온 거 너도 알고 있었어?""당연하지!""며칠 전에 선배랑 통화했거든. 선배가 너보러 회성간다고 하더라. 마침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전화했어. 선배 회성 갔지?"여가현은 항상 차우미를 자기보다 더 관심했다."응, 왔어. 오늘 점심에."전화 너머로 여가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둘이 같이 있어?"창밖의 건축물을 볼 때쯤
차우미가 다시 시선을 옮겼다. "왜 그래?""그 쓰레기 안 왔지?"차우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여가현의 입에서 나온 쓰레기는 분명 나상준이다.차우미가 난감한 듯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팠다."가현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이 미친! 너 설마 그 자식한테 마음 있어?"차우미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차우미는 그녀가 아무리 여가현에게 나상준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우미야, 너 그놈 얼굴에 속지 마!""그놈은 꽃 같은 얼굴로 뒤에서 무슨 짓 할 줄 모른다고!""선배처럼 얼굴 청초하고 맑은 사람이 훨씬 좋아! 나쁜 구석이 없어서 너한테 좋은 영향만 끼친다고!"점점 터무니없는 말을 해대는 여가현 때문에 차우미가 황급히 말을 끊었다. "알았어, 네 말이 맞아.""그러니까 빨리 가서 밥부터 먹어. 나 거의 도착해.""도착했어?""응,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래, 그래. 선배랑 얼른 결혼해서 건강한 애나 낳아! 내가 잘 키워줄게!""내 말 들어!""그래, 네 말 들을게."어쩔 수 없이 여가현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는 차우미다.곧 전화가 끊겼고 차우미는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여가현에게 나상준에 관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 차우미는 휴대폰을 넣고 점점 가까워지는 옛 성벽을 바라보았다.온이샘의 기럭지가 워낙 훤칠해서인지, 차우미의 눈이 좋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한눈에 온이샘을 알아봤다. 그는 밝은 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입구에 서 있었다. 우뚝하게 솟은 몸이 아우라가 남달랐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여가현이 한 말이 떠올랐다.그녀에게 좋은 영향만 주는 사람이다.운전기사는 백미러의 차우미를 힐끗 쳐다보았다. 차우미가 휴대폰을 꺼내 창밖을 내다보는 것을 보고 그제야 시선을 돌려 전방을 보았다.차우미가 운전기사에게 말했
온이샘은 차우미가 무엇을 타고 오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가는 차량을 주시했다.차우미가 온이샘에게 문자를 보냈다.온이샘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선배, 곧 도착해.][그래.]차우미가 휴대폰을 내리고 미소 짓는 온이샘을 바라보며 따라 웃었다.여가현이 한 말을 그녀도 이해되었다.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다.온이샘의 조건은 확실히 훌륭했다.그녀도 알고 있다.차가 온이샘의 앞에 멈춰 섰다.그는 차우미가 택시를 타고 올 줄 알았다.순간, 온이샘이 긴장했다.차우미가 가방을 챙겨 들고 말했다. "걱정 말고 가요."말을 마친 그녀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선배."차우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평소와 같았다.온이샘이 안심하며 물었다. "일 끝났어?""응.""그럼... 우리 들어갈까?"온이샘이 옛 성벽을 가리키며 물었다.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두 사람이 멀어지자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었다. 함께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운전기사가 하성우에게 연락했다.한편, 하성우는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하성우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는 직원에게 사람들을 부탁한 뒤 밖으로 나갔다.직원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모두가 들어가고 나서야 하성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도련님, 사모님께서 저더러 그만 돌아가라고 합니다."하성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다. "차 어디에 세웠어?""옛 성벽 입구에 세웠습니다. 사모님은 낮에 봤던 그분과 함께 들어가셨습니다."운전기사의 말에 하성우가 웃음을 터트렸다."됐어, 그만 따라가고 가서 볼일 봐.""네."전화가 끊기자 하성우는 양훈에게 다시 연락했다.양훈은 분명 온이샘에 관해 조사를 마쳤을 것이다.곧 전화가 연결되었다.하성우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그들은 명문가의 도련님이다. 평소 하는 일 없이 노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있어? 그걸 알고도 아무렇지 않다고?'"상준이가 뭐라고 했는데? 나한테 자세하게 설명해봐!"하성우는 반응이 빠른 사람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양훈의 말에 머리가 굳어 돌아가지 않았다.이런 상황은 아예 예상도 못 했다. 너무 충격적이다.양훈이 바둑판을 바라보더니 백돌을 놓았다."네가 물어봐."양훈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하성우처럼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아니다.특히 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하성우와 성격이 정확히 달랐다.하성우는 욕을 하고 싶었지만 양훈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자료나 보내.""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물어볼 거야. 넌 신경 안 쓰겠지만, 난 다르다고. 상준이가 자기 라이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꼭 확인할 거야..."순간 전화가 뚝하고 끊겨버렸다. 하성우의 말이 끊겨버렸다.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의 전화가 귀찮다는 듯 끊는 사람이 하나 둘 많아지는 것 같았다.하성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바로 그때 문자 한통이 왔다.온이샘에 관한 자료다.양훈이 곧이어 문자 하나를 보냈다.[괜찮은 사람이야.]하성우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양훈의 입에서 이런 칭찬이 나오는 건, 그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란 뜻이다.양훈은 눈이 높고 까다로워 웬만한 사람은 성에 차지 않아 했다. 나상준과 비슷했다.하성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온이샘에 관한 관심이 더욱 생겼다.차우미와 온이샘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온이샘이 먼저 입을 열었다. "택시 타고 올 줄 알았어."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그는 다른 뜻 없이 한 말이다."그 차 주최 측에서 보내준 거야. 일이랑 호텔, 평소에 먹는 거 전부 주최 측에서 제공해주거든.""택시 타고 오려 했는데, 택시 잡기가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담당 기사님한테 부탁해서 왔어."차우미는 온이샘에게 이번 주최 측에 나상준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업무상의 일이고
5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둡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회성이 시끌벅적하게 변했다.아이들이 하교하고 일꾼들이 퇴근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저녁밥을 먹자고 제안을 한 뒤에야 자기가 미처 레스토랑을 예약하지 못한 사실을 인지했다.점심때 두 사람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미처 저녁 식사 장소를 예약해야 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행사장에 돌아온 뒤에는 일에 집중을 한 탓에 더 생각지도 못했다.차우미는 죄책감이 약간 들었다.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까먹은 것이 미안했다.결국 온이샘이 먼저 장소를 찾은 것이다.차우미는 전에 그들이 회양 강변에서 식사하던 것이 생각났다. 당시 하성우는 그 한식집이 회양 강변에서 가장 좋은 곳이며, 회성에 놀러 오기만 하면 반드시 가는 맛집 중 하나라고 말했었다.요리도 잘하고 맛도 좋은 의미가 있는 한식집이다.결국 온이샘이 예약한 곳은 그녀가 갔던 그 식당이다.그래서 온이샘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집자.레스토랑의 이름이다. 하성우가 이야기해줬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의 이름을 딴 한식집.차우미는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아무것도 모를 땐 그냥 갔겠지만, 차우미는 그 한식집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온이샘이 왜 그곳에 가려고 하는지 차우미는 잘 알고 있다.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온이샘은 자기 앞에 멍하게 서 있는 차우미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온이샘도 알아차렸다.차우미는 더는 평온을 유지하지도 담담하지도 않았다.온이샘의 마음이 빠르게 뛰어댔다. 그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뜨거운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갈까?"낮은 그의 음성에 옅은 긴장감과 기대감, 갈망이 뒤섞여 있다.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살짝 열었다. "응."가야 했다.그곳에 가는 이유가 어떻든 그녀는 갈 것이다.식당은 좋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음식 맛도 훌륭했다.어쩌면 온이샘이 먼저 제안
"집자..."주혜민이 가방을 들고 내렸다. 그녀는 한식집의 화이트 골드 빛의 간판을 바라보았다.진현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 이름 잘 지은 것 같지 않아?"주혜민이 그를 쳐다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당신 생각은 어떤데?"그녀는 며칠 전 회성을 떠났다, 그러다 오늘 다시 돌아왔다.그녀가 어디를 가든, 진현이 함께 했다. 그녀는 진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현이 자기를 따라오든 말든 자기 할 일을 했다. 이곳은 진현이 오자고 제안했다.자기 마음을 꿰뚫어 본 주혜민을 바라보며 진현이 미소 지었다. "난 좋은 것 같은데.""하하."주혜민이 가볍게 웃더니 곧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진현도 그녀를 따라갔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다시 예의 바르게 물었다. "실례지만 두분 예약하셨습니까?"진현이 예약한 번호를 알려줬다."네, 위층으로 모시겠습니다."직원이 두 사람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주혜민은 간판의 새겨진 두 글자에 관심이 생겼다.특히 이 안의 인테리어를 보면 엔틱하고 고풍스러운 술집 느낌이 많이 났다. 음식 맛이 아주 풍부해 기분이 좋아졌다.진현은 그녀와 함께 나란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올라가면서 주혜민의 얼굴을 힐끗힐끗 살피기도 했다.주혜민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곧 두 사람은 3층으로 올라갔다.3층은 오픈된 형식은 1층과 같지만 1층은 중간에 아무런 가림막도 없었다. 하지만 3층은 디자인이 특이했다. 식탁마다 좌우로 반인분의 가림막을 만들어 옆 테이블 손님을 차단하였다. 마치 작은 분리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식탁이 가운데에 놓여 있고 손님들이 이 안에서 식사하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안에 앉아 식사하는 손님은 주위 사람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위 상황도 볼 수 있다. 우아한 분위기가 남달랐다.두 사람이 직원을 따라 3층에 올라오자, 식사하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그러나 주혜민의 시선은 룸에 앉아 있는 여자
주혜민이 온이샘을 말없이 훑어보았다."아는 사람이야?"진현이 주혜민의 눈빛에 의아한 듯 물었다.주혜민의 눈빛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주혜민의 입가에 웃음기가 진해졌다. "아는 사이는 아닌데... 그래도 재밌네."기분 좋은 듯 환하게 웃는 주혜민이다.진현은 더는 묻지 않았다.그는 주혜민의 얼굴만 살필 뿐이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직원이 두 사람을 데리고 룸으로 들어갔다."여깁니다."직원이 공포문 너머에 서서 손짓했고 주혜민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재밌어, 진짜 재밌어."진현은 주혜민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눈치챘다. 분명 그들과 잇닿은 온이샘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주혜민과 진현이 앞에, 온이샘과 차우미가 뒤에 앉았다.공교롭게도 네 명이 한 공간에 모였다.주혜민은 말을 하면서 진현을 힐끗 쳐다보더니 안으로 들어가 차우미와 등을 맞대고 앉았다.결국 진현은 맞은편에 앉았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서 서로 얼굴을 볼 수 없게 차단되었다.직원이 메뉴판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주문하시겠어요?"주혜민이 메뉴판을 받아 펼치더니 천천히 훑어보았다.진현이 먼저 말했다.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응."주혜민은 말없이 메뉴판을 훑으며 주문했다.하지만 진현의 시선은 메뉴판이 아닌 주혜민을 향해 있었다.한편, 차우미는 주혜민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음식에 집중했다. 온이샘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이곳 특색을 알리는 요리들로 주문했다.게다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적절한 소음 탓에 차우미는 주혜민의 말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그래서 주혜민이 그녀를 목격한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온이샘은 주혜민을 발견했다. 차우미가 주문하고 있을 무렵, 온이샘의 시선은 진현과 대화하는 주혜민에게 쏠려 있었다.온이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이곳에서 주혜민을 보게 될 줄 몰랐다.온이샘은 주혜민이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주혜민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차우미가 예전에 우연히 넘어진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
“예은이가 안평에 가본 적이 없어서 여름 방학이 되면 안평으로 놀러 갈 생각이야. 그런데 안평은 나도 잘 몰라.”나상준이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차우미는 나예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조금 전에 그녀는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나상준의 말에 차우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나상준은 안평 사람이 아닌 청주 사람이고 또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에 안평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는 청주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 오래 있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나예은과 같이 놀려면 어느 도시든 모두 가능한데 왜 하필 안평으로 가려고 하고 또 차우미까지 함께 하자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사실 차우미는 그들과 놀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다.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차우미는 워낙 회성에서 일을 끝내고 또 나예은과의 약속을 이행한 다음에는 나상준과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언제면 가능할지 막막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나상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지켜보다가 말했다.“지금부터 서두를 거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여유를 주자, 차우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우미를 보고 있던 시선도 거두고는 휴대폰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직 예은이의 여름 방학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고는 하지만 나 이번에 회성에서의 일이 금방 끝났고 또 휴가까지 썼기에 앞으로는 매우 바쁠 거여서 그때는 시간이 안 돼. 정말로 예은이와 같이 안평으로 가게 되면 내가 전문 투어 가이드를 소개해 줄 거니까 예은이와 같이 놀러 다녀.”비록 나상준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차우미는 아예 지금 미
차우미는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나상준이 통화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거두고 원래 앉았던 1인 소파에 앉았다.나상준은 시종일관 차분한 차우미의 표정을 보다가 별다른 생각없이 말했다.“그래, 큰아빠 시간이 될 때 전화할게.”“네, 알겠어요. 큰아빠 전화 기다릴게요.”나예은은 나상준과 차우미와 함께 놀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기에 나상준의 말을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지만 업무상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나예은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다가 나상준의 입에서 큰아빠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큰엄마도 같이 있는데 얘기할래?”나예은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큰엄마와 같이 계세요?”사실 예전에 나예은은 나상준이 아닌 차우미에게만 계속 전화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같이 지낸 보람으로 처음 차우미가 아닌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다.때마침 나상준이 차우미와 함께 있다고 하니 나예은 순식간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옆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예상치 못한 일에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나상준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격동의 앳된 목소리를 듣고 차우미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말했다.“응, 같이 있어. 전화 바꿔줄게.”“네.”나상준이 휴대폰을 차우미에게 건넸는데, 그녀가 아직 놀라 있을 때 휴대폰이 눈앞에 왔다.차우미는 잠깐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휴대폰은 나상준의 체온이 담겨 있는 듯 따뜻했다.“예은아.”“큰엄마, 깜짝 놀랐죠. 예은이 이번에는 큰아빠에게 전화했어요. 하하하...”차우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예은은 어찌나 기뻤는지 호탕하게 웃었다.나예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예은도 같이 웃었다.“그래, 큰엄마도 깜짝 놀랐어.”나예은과의 약속한 일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차우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
차우미는 잠깐 멈칫하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했다.휴대폰 화면에 신규 메시지가 뜨자 차우미는 하선주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는 온이샘이었다.그녀는 메시지를 클릭했다.[우미야, 탑승하면 나에게 메시지 보내줄 수 있어?]차우미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알았어.]그러자 온이샘으로부터 또 잽싸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이 왔다.차우미는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대기실에서 온이샘이 휴대폰으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달력을 한참 동안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어떤 일은 애매모호하면 안 되고 정확해야 했기에 안평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시간을 내서 온이샘과 만나 확실하게 얘기할 생각이었다.라운지 휴식 구에서 나상준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줄곧 라운지 밖의 복도를 바라보며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했다.“아주버님, 지금 바빠요?”서혜지의 목소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조금은 긴장하고 조심스러웠다.나상준이 말했다.“무슨 일이에요?”그는 바쁜가 하는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부터 물었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서 다를 모양이다.그러자 서혜지가 서둘러 말했다.“다른 건 아니고요. 지금 예은이를 픽업했는데 예은이가 아주버님과 할 얘기가 있대요. 혹시 바쁘신데 폐를 끼치는 거 아닐까 해서 문의드리는 거예요.”나상준이 말했다.“안 바빠요.”서혜지는 예상했던 대답인 듯 즉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예은이 바꿀게요.”“그래요.”나예은은 아주 조용하게 베이비시트에 앉아 있었는데 커다란 두 눈을 굴리면서 서혜지를 바라보며 나상준과 통화시켜 주기를 기다렸다.나예은은 나상준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서혜지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서혜지가 자기를 바꿔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예은은 기쁜 나머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서혜지 쪽으로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받으려고 했다.서혜지는 조급해하는 나예은의 표정에 미소를 지
하선주는 이제 차우미 옆자리에는 온이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온이샘은 하선주에게 특히 좋은 인상을 남겨서 온이샘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좋아했다.차우미는 워낙 하선주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하선주가 눈치채자,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하려고 했다.그런데 하선주가 갑자기 온이샘을 얘기할 줄은 몰랐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배가 아니라 상준 씨랑 같이 가.”“나상준?”하선주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맑은 하늘에 먹장구름이 낀 것 같았다.“나상준은 왜 너와 같이 있어? 둘이 뭘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안평으로 오는 거야? 나씨 가문에 무슨 일 있어?”하선주의 불만이 섞인 말투와 함께 질문들이 쏟아졌다.나상준과 온이샘에 대한 하선주의 태도는 하늘과 땅이었다.이런 하선주의 반응을 차우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뵈러 오는 거야.”“...”표정이 굳어진 하선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우미의 말 한 마디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분명 나씨 가문의 이혜정이 나상준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나씨 가문 이혜정의 일 처리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비교할 수도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선주는 마음이 불쾌했다.차우미는 하선주가 비록 말하지 않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이라도 상준 씨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오는 건 정상적인 일이야. 그러니 화내지 마.”“내가 왜 화를 내? 그리고 화를 낼 필요도 없어. 그냥 안 보면 되지.”하선주가 불쾌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걸 듣고 차우미는 웃었다.“엄마,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우리 이혼한 지도 벌써 몇 달 지났잖아. 상준 씨도 나도 이제 모두 각자의 삶이 있으니 두 가문은 예전대로 서로 왕래하면서 지내면 돼.”차우미의 아무렇지 않아하는 말을 듣고 있던 하선주는 순간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어렸을 때부터 말도 잘
“짐은 저 주세요.”나상준의 아무런 감정도, 온도도 없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렸는데 봄날 같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온이샘은 시선을 살짝 돌려 나상준을 보았는데 나상준도 아무런 흔들림 없는 깊은 눈동자 온이샘을 보고 있었다.나상준은 지금 아주 담담하게 온이샘이 반드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차우미의 캐리어는 이제 나상준에게 넘겨줘야 했기에 온이샘은 캐리어를 잡았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바로 풀고 나상준에게 넘겼다.차우미가 말했다.“내가 하면 돼.”그녀가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었다.차우미가 손을 뻗었을 때 골격이 분명한 손이 이미 캐리어를 잡고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나상준이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자.”차우미는 허공에 있는 손을 거두며 캐리어를 잡은 나상준의 손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온이샘을 향해 말했다.“선배, 우리 안평에서 봐.”온이샘도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그래, 안평에서 보자.”그리고 차우미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온이샘은 그 자리에 서서 가냘픈 몸매가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키 크고 분위기가 차가운 남자도 보이자,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차우미가 다른 남자와 함께 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다른 남자와 함께 그를 멀리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온이샘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억지로 이성을 회복했다.그는 온평에 가서 차우미를 만나면 마음속의 말을 모두 할 건데 그녀만 좋다면 온이샘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차우미와 나상준은 대기실을 떠나 VIP 라운지로 갔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서둘러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었다.때문에 두 사람은 라운지의 휴식 구에 가서 앉았다.그러자 직원이 차와 디저트를 가져왔고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나상준을 보며 말했다.“나가서 전화하고 올게.”나상준은 여전히 간단하게 알았다고 했다.차우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
하얀 셔츠, 연한 캐주얼 바지, 뼛속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좋은 가정 교양과 준수하고 우아한 얼굴은 대기실의 밝은 조명을 받아 더욱더 환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나상준은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더니 서두르지 않고 평온한 속도로 걸어갔다.“다 됐어?”모두가 한곳에 모여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온이샘이 먼저 말했다.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응. 선배 이제 캐리어는 나 줘.”온이샘이 뭔지 몰라 흠칫하더니 말했다.“괜찮아. 내가 들게.”“그게 아니라, 선배, 우리 탑승구가 달라.”온이샘 얼굴에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탑승구가 다르다고?’그는 머릿속으로 차우미가 나타나던 방향을 생각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깨달았다.사실 온이샘은 비행기 탈 때 보통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다.가끔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만 퍼스트 클래스를 선택할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코노미석이 익숙했기에 오늘도 습관적으로 티켓팅을 할 때 이코노미석을 예약한 것이다.하지만 나상준은 달랐다. 그는 지위와 신분 때문에 매번 퍼스트 클래스를 타야 했는데 따라서 차우미도 그와 함께 다닐 때마다 자연스럽게 퍼스트 클래스를 탔다.그런데 온이샘은 오늘 티켓을 예매할 때 이 부분을 놓친 것이다.온이샘은 잠깐 생각하더니 곧바로 말했다.“잠깐만, 나도 좌석 업그레이드하면 돼.”말을 마치고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이코노미석인 줄 알고 있었는데 만약 차우미가 퍼스트 클래스인 줄 알았다면 진작에 퍼스트 클래스를 샀을 것이다.조금 전에 차우미는 온이샘의 표정을 보고 있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이샘이 먼저 말을 하는 바람에 차우미는 하려던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 온이샘의 행동을 보며 차우미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온이샘의 선택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 옆
여가현과 통화를 마친 온이샘의 눈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거기에는 굳은 의지도 담겨 있었다.여가현의 말을 듣고 그는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원래 차우미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는데 지금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나상준이 차우미 옆에 있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그 순간 가슴속으로부터 무한한 힘이 솟구쳤는데 온이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차우미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같은 시각, 공항 로비에서 나상준은 곧장 VIP 게이트로 향했는데 차우미는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가다가 가는 방향이 VIP 게이트인 것을 보고 무언가 떠올렸다.온이샘이 구매한 항공권은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석이어서 그녀에게 보낸 사진도 일반 대기실이지 VIP 라운지가 아니었다.차우미는 그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나상준을 불렀다.“상준 씨.”나상준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발 폭이 차우미보다 컸지만, 앞에서 걷지 않고 차우미의 속도를 맞춰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차우미가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그도 멈추고 대답했다.“응.”차우미가 말했다.“선배는 이코노미석이어서 일반 대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조금 전에 보내온 사진에서 봤는데 일반 탑승구였어. 상준 씨는 먼저 VIP 라운지에 가 있어. 나는 선배한테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갈게.”VIP 라운지와 일반 탑승구가 다르기에 나상준은 그녀와 같이 갈 필요가 없었다.“그럴 필요 없어.”“응?”“같이 가자.”말을 마치고 나상준은 먼저 출발했다.차우미는 깜짝 놀랐다가 서둘러 그를 쫓아가며 말했다.“같이 안 가도 돼. 먼저 라운지에 가서 휴식도 하고 일도 해. 나랑 다니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나상준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러자 차우미도 따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도 같이 가면 안 돼?”차우미는 당황하며 말했다.“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그냥...”“
온이샘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알았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흔이에게 전화해.”“그래.”그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여가현이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강서흔에게 건네자, 강서흔이 곧바로 물었다.“어때? 잘 된 거야?”여가현은 강서흔의 금방이라도 신랑이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표정을 보고 물 한 컵을 가져다 마시며 말했다.“뭐가 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강서흔의 흥분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왜 아직이야? 너무 느린 거 아니야? 나였다면 진작에...”말이 끝나기 전에 강서흔은 즉시 멈추고 조심스럽게 여가현을 바라보았다.여가현은 물컵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두 번 하고 물었다.“진작에 뭐?”여가현의 헛기침 소리에 강서흔은 순간 가슴이 섬뜩했는데 그녀의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은 너무 무서웠다.강서흔은 무의식적으로 장난이라는 듯 웃으며 주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여가현이 꼼짝하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에 즉시 생각을 접고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속삭였다.“나였다면 진작에 덮쳤을 거라고. 나는 네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무조건 너와 함께할 거야.”여가현은 웃었다.“우미가 나인 줄 알아? 미리 말하는데 우미는 절대 나처럼 양보하고 굽히지 않을 거야. 나상준 씨 어머니도 비록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우미를 괴롭히지는 못했어. 우미와 나상준의 이혼도 나상준 씨 어머니와는 아무 관련이 없이 오로지 우미의 뜻이었어. 우미가 한 번 결정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거야. 마찬가지로 우미는 한 번 이혼한 사람을 절대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거야. 때문에 절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선택할 거야.”강서흔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두 사람이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가현의 기분은 늘 변덕스러웠다.예를 들어 조금 전에 온이샘과 통화할 때는 태도가 좋더니 지금 강서흔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사실 여가현의 마음에 여전히 불만이 있었는데 수년간 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