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재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한 모습으로 두 아이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다정은 준재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난 후, 2~3일 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게 되면서, 좋아하는 마음에 확신이 섰다. 동시에 다정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준재를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준재는 몰랐다. 두 아이들을 달래고 나니 그제서야 무거웠던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이제서야 다정은 준재의 초췌한 얼굴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 대표님은 아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달려 오셨을 거야.’그녀는 그가 제대로 푹 쉬지 못했을 까라는 생각에 준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여 대표님, 안색이 안 좋아요. 요 며칠 제대로 푹 쉬지 못했죠?”“괜찮습니다.”준재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다정도 그 일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했다.“이왕 오신 김에 제가 대표님을 치료해드리겠습니다.”이에 준재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몸과 정신이 모두 매우 지쳐있는 상태다.구남준은 옆에서 상황을 눈치챈 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조용히 빠져나왔다. 방 안에서 다정은 준재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준재는 다정의 침대에 누웠을 때, 다정의 향기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그는 긴장해서 몸이 굳은 상태였고, 마음속은 뭔가 모르게 싱숭생숭 했다. 준재는 자기도 모르게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다정은 혹시나 준재가 깨지 않을까, 잠자는 그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준재를 치료한 후, 그녀는 살금살금 방에서 나갔다. 강말숙은 그녀가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 대표는?”“잠들었어요.”다정은 대답했다. 강말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손녀가 행복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녀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자신도 집안의 약재 정리를 도왔다.시간이 지나자, 준재는 저녁 무렵에야 잠에
한편, 여준재가 현관문을 나서자 미소 가득한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차에 탄 후, 그는 구비서 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건지 알아 냈어?”“알아냈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이 일을 꾸며낸 것 같습니다. 저는 임씨 집안이 꾸며낸 일인 줄 알았습니다만, 누군가가 철두철미하게 일을 꾸며내는 거 같아 정확한 증거를 찾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구비서는 자신이 찾아낸 모든 사실을 말했다. 준재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어내지 못했는지, 얼굴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구비서는 정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분명히 임초연이 꾸며낸 일이 분명해.’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서 준재가 말했다.“내일 신문사에 직접 해명하라고 하고, 그 매체들은 모두 법률 부에 싹 다 처리하라고 해.”“네, 알겠습니다. 대표님.”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아침, YS그룹은 공식사이트에 해명 입장에 관한 게시물을 올라왔다. 대략적으로 내용은 두 가지다.[우선, 여씨 집안과 임씨 집안은 비즈니스 사이입니다. 사적으로 어떠한 감정도 없습니다. 결혼에 관한 기사는 모두 거짓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인터넷에 사실과 무관한 허위 기사를 퍼뜨리는 매체에 적극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이 게시물을 보자 네티즌들은 모두 떠들썩했다.[정말이야? 정말 그 기사가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난 진짜 두 사람이 결혼하는 줄 알았어. 결혼식장, 웨딩드레스, 초청장 모두 정해진 걸로 아는데 다 허위 사실인가 보네. 꽤나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겠어.][그래서 그 해명 글에서 말하는 것은 임씨 집안 아가씨가 다 꾸며낸 일이란 거야?]한동안 임초연의 행동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많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임초연을 비난했다. 사실 부자들을 증오하는 네티즌들은 꽤나 많았다. 임초연은 처음에 인터넷에 자신에 관한 어떠한 얘기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는지 몰랐다. 그녀는 어느때와 똑같이 회사에 출근했는데, 주위의 직
임초연은 곧바로 집에 가지 않았다.그녀는 화장실에 잠깐 들린 후, 바로 회사에서 나와 늘 가던 술집으로 달려가 취기를 끌어올릴 계획이었다.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그녀가 바에 앉아 독한 술 한 잔을 들이켜 마셨다.얼마 지나지 않아 임초연은 취기가 단번에 올랐으며, 얼굴이 새빨개졌으며, 두 눈은 이미 풀려있는 상태다.‘왜, 왜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 도대체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나는 당신을 오래 동안 좋아했는데, 왜 눈치 못 채는 거야?’‘고다정, 분명히 이미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았는데, 도대체 내가 걔보다 못한 게 뭐야, 나를 더 좋아해도 모자랄 판에, 여준재, 여준재…….’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술잔을 바라보며 준재 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바로 이때 그녀의 뒤에서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어머,우리 임씨 집안의 아가씨가 왜 혼자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요?”“혼자 술 마시는 이유는 단 하나죠. 실연.”“네? 지금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결혼 준비를 하고 있잖아요.”비아냥거리는 말에 임초연은 눈물을 닦은 후, 고개를 돌렸다.그녀에게서 세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명품 옷을 입은 여자 몇 명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들이다. 모두 이전에 그녀의 비위를 맞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임초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난 또 누구라고, 까마귀들이 여기서 울고 있을까? 최근에 새로운 주인님을 찾은 거 아니었나? 왜 옛 주인을 만났는데도 꼬리를 흔들며 반기지 않는 거야?”그녀는 마음에 있던 생각 그대로 말했다.그녀의 말 한마디는 그 어떤 험한 욕을 들었을 때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여자무리들은 임초연의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야 임초연, 넌 어쩜 아직까지 입이 구리니? 우리들이 다 너 같다고 생각 하지마. 넌 너 눈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괴롭게 만드는 데 선수 아니야?”“애초에 우리는 네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려 했어. 그땐 참 네가 이렇게 심보가 못난 사
고다정은 임초연 쪽의 일을 모른다.다음 날부터 다정은 매우 바빠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전부터 그녀는 신의병원에서 진찰을 해왔고, 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의 칭찬으로 그녀는 이미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지금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녀를 찾는다. 다정은 원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상황이 어색했다.자신이 느끼기에는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가 든 할머니들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모든 환자들을 진료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평하게 매일 10명의 환자들만 진료했다. 이날 저녁, 다정은 어느때와 같이 10명의 환자를 진료를 끝낸 뒤, 저녁 준비를 하러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기에 두 아이들에게 대신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준, 하윤 누가 왔는지 봐 줄래?”“네, 엄마.”두 어린이는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와, 한 남자를 발견했다. 하준은 사람들을 보자마자 어떤 사람들이 엄마에게 진찰을 받으러 왔다며 알려준 뒤, 그 사람들에게 이미 진료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었다.“할머니, 오늘 진료는 이미 끝났으니 내일 다시 오세요.”할머니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같이 온 남자는 언짢은 말투로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런 병원도 아닌 곳에서 쓸데없는 규칙이 많아.”“입 다물어!”할머니는 곧바로 남자에게 호통쳤다. 그 이후, 기침을 하기 시작했으며 점점 증상이 심각해졌다.강말숙은 거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불안함에 현관문 쪽으로 다가왔다.“하준아 하윤아 무슨 일이니?”“할머니, 이 분들은 엄마에게 진찰을 받으러 오셨어요. 증상이 심각해 보이는데 엄마를 불러올까요?”하준은 기침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할머니를 보며 고민했다. 강말숙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너희들이
이틀 동안 할머니는 고다정이 처방해준 약을 까먹지 않고 챙겨 먹으면서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여전히 낮에 폐품을 수거하러 나갔기 때문에 그녀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다정은 물론 이 사실을 모른다. 매일 다른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다정의 머릿속에서 할머니는 점차 사라져갔다. 여느 때와 같이, 그녀는 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낮이 익은 남자 한 명이 깡패 무리의 남자들을 데리고 자신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야,이 돌팔이 의사야 너 우리 엄마 죽이려고 작정했냐?”다정은 갑작스런 상황에 눈 앞이 캄캄해 지면서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곧장 정신을 차리고, 그녀는 먼저 두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하준과 하윤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준은 그나마 침착해 보였다. 다정 에게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알려주는 듯했다.“엄마, 저 남자는 저번에 할머니를 모시고 온 할머니의 손자 에요.”하준의 말을 듣고 다정도 기억이 난 듯,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우리 엄마가 네가 준 약을 먹은 날부터 상태가 좋아지기는 무슨 더 나빠졌다고! 바로 어젯밤 심근경색 때문에 입원했어. 깨어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했어. 야 이 돌팔이 의사야 너 때문에 내 엄마가 죽게 생겼어. 이제 나도 끝이고, 너도 끝이야.”그는 자신이 데려온 깡패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형님들, 이 집 다 부숴버립시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는 깡패무리들과 함께 달려들었다. 다정은 막을 힘도 없었고, 겁에 질려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두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꼭 끌어안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순간 집에 있는 강말숙이 생각나서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찰나, 강말숙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은 누구야! 뭐하는 거야 지금!”방 안에서 인기척을 듣고 나온 강말숙은 깡패들이 집안의 물건을 마구잡이로 부수고 있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그들을
고다정은 경찰을 따라 나섰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도 뉴스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 병원의 한 의사가 잘못된 약을 처방해 목숨을 잃었다.][불쌍한 할머니의 가족은 그 약 때문에 더 큰 치료비를 빚지게 되었고, 집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있어 한 가정이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네티즌들은 뉴스를 보고선 다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정말 세상이 넓으니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네요. 노인들까지 속여먹으려 하다니.][저런 사람은 반드시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해요.][어쩜 저런 짓을. 너무 괘씸하네요. 노인까지 속여가면서 돈을 벌고 싶을까요? 양심도 없나?]게다가 다정의 신상정보를 파헤치는 사람도 있었다. [어, 이 사람 고다빈의 언니 아닌가?][한때 고다빈의 언니였지. 하지만 이복 언니라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아][그녀가 고씨 집안에서 쫓겨났을 때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어. 그 뒤에는 가증스러운 모습이 숨겨져 있었을 줄은.]인터넷에 다정의 이야기들이 퍼지고 있을 때 고다빈도 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뉴스에서 다정이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한 마음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고다정, 너에게도 이런 날이 있다니, 역시 하늘은 내 편이구나. 내가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을 너도 똑같이 느끼길 바랄게.”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잘 아는 기자에게 연락해 이 일을 더 크게 만들 계획이었다. 구남준은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대표님 방으로 갔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고 선생님에게 일이 생겼어요!”“무슨 일이야?”여준재는 뛰쳐나갔다.남준은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어떤 환자가 고 선생님이 처방해준 약을 먹고 심근경색으로 지금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분의 아드님이 고 선생님의 집으로 찾아가서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지금 고 선생님께서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계십니다.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 같습니다.”남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준재의 표정은 굳어졌다.
경찰은 고다정의 조사를 마친 뒤, 이동철을 찾아갔다.이동철이 바로 그 할머니의 아들이다. 이동철은 분노하며 여준재 에게 향해 소리쳤다.“그 돌팔이 의사는 절대 풀려날 수 없어. 우리 엄마가 먹은 약이 바로 그 돌팔이가 처방해준 것이다. 자신이 처방한 약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 사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이야!”이동철의 말을 듣자, 준재는 몹시 언짢았다. 그는 갑자기 이동철이 자신을 쳐다보는 기분이 느껴졌다. “당신이 그 돌팔이 의사의 남편입니까? 깔끔한 정장 옷차림을 보아하니 좀 사는 집안 같은데, 만약 당신이 당신의 아내를 구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습니다.”이동철은 준재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당신이 나에게 1000만원을 배상한다면 더 이상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 가지도, 책임을 따지지 않겠습니다.”이동철은 준재를 설득해 돈을 받을 계획이었다. 준재는 그의 눈빛을 보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1000만원, 준재가 봤을 때 만약에 이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았더라면, 거뜬히 주었을 것이다.‘저 남자 분명 수상한 꿍꿍이가 있을 거야.’ 준재는 이동철의 제안이 수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쉽게 이동철 에게 돈을 줄 수 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이동철 에게 충고했다. “저는 그녀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쪽이 생각하는 어떤 꿍꿍이를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이동철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때 경찰 한 명이 다가왔다. “선배, 제가 고다정 씨의 집을 조사해봤는데, 처방전은 이미 파손되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에게서 받은 처방전과 비교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은 정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조사를 더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형사 말을 듣자, 준재의 표정이 굳어졌다.강말숙도 불안한 감정만 더 커져갔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사건 담당 형사를 붙잡고 계속해서 되물었다.“증거가 없으면 지금 내 외손녀가 나올 수 없는 건가요
여준재는 구남준에게 얼른 조사해보고 연락 달라는 부탁했다.여준재는 구비서가 멀어진 뒷모습을 확인한 후, 다시 병실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하윤과 하준은 언제부터인지 문 앞에 기대고 있었다.그는 아이들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문 앞에서 뭐해?”하윤과 하준은 문을 열고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아저씨가 갈까 봐 무서웠어요.”“걱정하지마, 아저씨 절대 안 가.”준재는 아이들을 달랜 뒤 아이들과 손잡고 병실로 돌아갔다.때마침 강말숙이 깨어났다.그녀는 낯선 환경을 보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 차린 뒤, 화들짝 놀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준재는 이를 보고 얼른 달려가 강말숙을 도와줬다.두 아이들도 강말숙의 곁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외증조할머니, 괜찮으세요?”“외증조할머니 정말 괜찮으세요? 저랑 오빠 모두 놀랐어요.”아이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끊임없이 질문했다. 강말숙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안심시켜주었다.“할머니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준재는 그녀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신신당부했다.“저는 할머님께서 마음속으로 고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 선생님 곁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고 선생님 일은 제가 반드시 해결할 것입니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강말숙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녀는 다정을 구해줄 사람은 여준재 말고는 그 누구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이동철이 아침 일찍 사람들을 모아 집에 찾아가서 집 안의 물건들을 부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그 집에서는 생활은 위험할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 건강 관리를 집중적으로 해야합니다. 이틀 동안만이라도 몸과 마음 모두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어요. 하윤과 하준은 제가 돌보겠습니다.”강말숙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정말 그래도 괜찮으신가요?”그녀는 이미 그가 다정의 일로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