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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예는 창문 앞에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는 훤칠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의 뒷모습은 강렬한 압박감 속에 묘한 외로움까지 느껴져, 라예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라예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하이힐 소리를 내며 또각또각 걸어 들어갔다. 직원은 상황을 눈치채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라예는 질질 끄는 것을 싫어했기에, 방에 들어선 지 2초 만에 그 압박감 가득한 뒷모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전 그쪽과 맞선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몸을 돌렸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잘생긴 얼굴에 라예는 그만 멍해졌다. 그리고 가까스로 말을 바꾸었다.

“당신이었어요?”

‘어제 호숫가에 나타난 우아하고 멋있는 남자라니.’

인우도 라예를 보았을 때 흠칫 놀랐다. 오늘의 그녀는 어제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제는 캐주얼하고 청순했지만, 오늘은 오피스룩으로 세련되고 성숙해 보였고, 또한 우아하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인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더니,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는 즉시 평소의 차가운 기운을 모두 거두었다.

“안녕하세요. 우리에게 이렇게 인연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요.”

인우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건 사실이지. 어제는 내가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것인 줄 알고 날 구했고, 오늘은 또 이렇게 맞선 자리에서 다시 만나다니.’

다만 인우에게서 카리스마가 내뿜어져 나왔고, 설령 수렴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기운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어디서 이런 사람을 찾으신 거지? 나 설마 룸에 잘못 들어온 건가?’

그런데 방금 라예는 분명히 룸 번호를 똑똑히 보았는데, 확실히 ‘888’이었다.

그녀가 멍하니 있는 동안, 인우는 이미 앞으로 다가갔고, 라예와 겨우 3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신이 정성껏 조각한 듯한 흠잡을 데 없는 이목구비는 또렷한 윤곽으로 완벽함 그 자체였다.

“지금 룸에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죠?”

라예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인우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녀는 눈을 살짝 들었는데, 고운 눈으로 눈웃음을 지었고,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신과 의사라도 되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 마음을 이렇게 잘 알 수 있는 거죠?”

인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냥 조금 배운 것뿐이죠.”

라예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자 인우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육인우.”

“네?”

라예는 약간 멍해졌고, 인우는 말을 덧붙였다.

“내 이름이에요.”

라예는 그제야 인우가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간단한 소개군. 이 점은 오히려 나와 많이 비슷한걸.’

“구라예.”

두 사람은 간단히 각자의 이름을 말했고, 다른 소개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신분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직원이 들어와서 요리를 올렸다.

인우와 라예는 또다시 약속이나 한 듯 상대방에게 물었다.

“먼저 식사한 다음 얘기할까요?”

식사하는 동안, 라예는 인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 남자, 잘생긴 건 그렇다 쳐도, 어쩜 밥을 먹는 것조차 이렇게 우아하고 고귀한 거지? 흠잡을 데가 없잖아. 마치 뼛속에 새겨진 것처럼 습관이 된 것 같아.’

이런 예절도 보통 명문가들이 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본 라예도 어쩔 수 없이 기본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었고,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속이 답답했다.

평소에 10분이면 밥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억지로 한 시간이나 먹었다.

‘꼭꼭 씹어 먹는 식사 방식은 정말 나와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러나 라예 맞은편에 앉은 인우는 즐기고 있는 듯 천천히 먹었기에, 자신의 이상형인 그 얼굴이라도 봐서 라예는 억지로 참았다.

인우도 그녀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육 대표님, 이번 맞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죠?”

라예는 인우가 다 먹고 또 우아하게 차 한 잔을 따르는 것을 보고, 얼른 입을 열어 물었다. 인우는 라예가 존칭을 쓰며 자신과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인우는 되물었다.

“구 대표님은 또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의 목소리에 라예는 약간 넋을 잃었다.

‘이 남자는 신의 얼굴을 가진 것도 그만이지, 목소리마저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니.’

라예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넋을 잃은 자신이 창피했다.

“평소에 실시간 검색어 같은 거 안 보세요?”

라예는 무심하게 물어보며, 방금 인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인우의 그윽한 눈동자는 라예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주시하면서 얇은 입술로 대답했다.

“봐요!”

그는 다시 물었다.

“이게 이번 맞선과 무슨 관계가 있죠?”

라예는 한 쌍의 고운 눈동자가 맑고 밝았으며, 아무런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저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거든요.”

인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요? 난 직접 본 것만 믿는 사람이라서.”

라예는 멍해졌다. 인우의 검은 구슬 같은 두 눈동자는 열정이 가득했고, 시선이 마주친 순간, 라예는 즉시 눈을 뗐다.

“구 대표님, 우리 결혼하는 건 어때요?”

라예는 시선을 금방 옮기자마자 또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인우를 바라보았다.

인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면 되고, 또 운명처럼 다시 만났으니 그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요?”

라예가 말을 하지 않자, 인우는 계속했다.

“결혼 후,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해요. 나는 평소 회사 일로 바빠서 결혼 생각이 없었지만, 집안 어르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선 자리에 나온 거예요. 이번 기회로 구 대표님과 나, 둘 다 결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참고로 맞선은 엄청난 시간 낭비예요.”

마지막에 인우는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라예는 이 말을 듣고, 실눈을 뜨며 잘생겼지만 차가운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 사람 말이 맞아. 맞선은 확실히 시간 낭비지. 할머니께서 내가 파혼한 것을 아신 이상, 틀림없이 가만있으시려 하지 않을 거야.’

‘이 남자는 비록 좋은 사람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볼 만은 하지.’

인우는 라예가 줄곧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조급해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고, 중간에 매너 있게 그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

룸은 한참 동안 침묵에 잠기고 나서야 라예의 맑고 차가운 소리가 울렸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라예는 담담한 눈빛으로 인우와 눈을 마주쳤고, 맑은 두 눈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인우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요, 마음대로 말해 봐요.”

라예는 약간 의심이 들었다.

‘이 남자, 너무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거 아니야? 마음대로 조건을 말하라고? 날 그렇게 믿는 건가?’

인우는 다시 한번 라예의 마음을 훔쳐보았고, 태연하게 설명했다.

“그 사람이 구라예 씨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인우의 말이 떨어지자, 라예는 심장이 마구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에 따라 따뜻한 기운이 그녀의 차가운 마음속으로 밀려들었다.

겨우 두 번 만난 사람이 이런 따뜻한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다니. 라예는 갑자기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인우는 다시 한번 라예의 눈빛에 드러난 씁쓸함을 보았고, 그윽한 눈동자로 조용히 그녀를 주시했다.

9시 30분, 두 사람은 함께 주월당을 떠났다.

인우는 라예를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차를 몰고 왔다며 바로 거절했다.

남자는 자신의 호화로운 차에 앉아 눈앞의 검은색 지바겐이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깊고 차가운 검은 눈동자는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처럼, 아무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이때 인우의 머릿속에는 여자가 방금 말한 조건이 나타났다. 그는 라예가 비밀결혼을 하자고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은 인우의 예상을 조금 벗어났다.

‘내 힘으로 나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다니.’

호숫가에서 라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여자에 대해 감정이 없었던 인우는 저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왔다. 인우는 그때의 자신이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다.

오늘 라예를 다시 보자, 인우는 자신이 그녀에게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을 발견했다.

라예가 맞선을 보는 과정에서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자, 인우는 좀 불쾌해하며 자신도 예상치 못한 결혼 제안을 언급했다.

...

다른 한편.

라예는 톰웨스트의 오피스텔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누웠고 피로가 사라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머릿속에는 인우의 그 잘생긴 얼굴과 자신이 미쳐서 계약 결혼에 동의한 것을 떠올렸다.

‘이런 일이 어떻게 나에게 일어난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없자, 라예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

이틀 후, 월요일 오전.

9시가 되자, B시 구청에 키 차이까지 딱 맞는 두 사람이 특수 통로로 들어와 VIP 접대실을 찾았다.

10분 뒤, 라예는 혼인신고를 마친 후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였고, 옆에 있는 남자가 여우처럼 웃고 있는 것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두 분 축하드립니다. 백년해로하시고, 귀여운 아이도 많이 낳으시길 바랍니다.”

혼인신고를 담당한 직원은 이미 결혼한 여자였는데, 라예와 인우는 그녀가 본 신혼부부들 중 가장 예쁘고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축복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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