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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 일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리고 10분 후에 회의가 있다고 모두에게 알려줘.”

라예는 차가운 목소리로 간단하게 분부했다. 민효는 라예의 곁을 따라다닌 지 이미 4년이 넘었는데, 그녀는 일할 때 줄곧 쓸데없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명령은 간단하게, 그리고 쓸데없는 일도 하지 않았다.

“네, 대표님.”

이 10분 동안, 라예는 몇 개의 서류를 확인하며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다.

회의실에서, 라예는 심플한 하얀 오피스룩에 슬림해 보이는 넓은 양복바지, 그리고 베이지색 하이힐을 신고 들어왔다. 그야말로 여왕의 기운을 뿜어냈다.

자리에 앉은 직원들은 저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라예의 수단에 대해,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한 이 젊은 대표님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녀는 줄곧 일을 무척 엄격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마케팅팀, 타임라인 시리즈의 향수 초기 테스트는 어떻게 됐지?”

라예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케팅팀 팀장을 쳐다보더니 차갑게 물었다. 호명이 된 마케팅팀 팀장은 즉시 정신을 집중했고, 라예에게 보고했다.

“대표님, 테스트는 이미 끝났고, 체험한 고객들의 반응 역시 아주 좋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한 답방 조사의 평가입니다.”

마케팅팀 팀장은 손에 든 자료를 건네주었고, 민효는 받아서 라예에게 건네주었다.

라예는 대충 훑어본 다음 말했다.

“음, 오늘 점심 12시에 제품을 발매해.”

사람들은 멈칫했다.

‘월말에 발매하기로 하지 않았어?’

어떤 사람이 의문을 제기했다.

“대표님, 타임 시리즈의 발표회는 월말로 정한 거 아닙니까?”

라예는 이 말을 듣고, 눈을 들더니 차갑고 엄숙한 눈빛으로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입가를 약간 구부렸다.

“맞아, 하지만 그것은 대외에 발표한 시간이잖아!”

어떤 사람은 어리둥절해졌지만, 어떤 사람은 바로 깨달았다.

‘지금 가짜 소식으로 라이벌을 속인 것이군.’

“그, 그런데 저희의 디자인과 포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잖아요.”

또 누군가 물었다.

이때, 디자인팀의 총 팀장이 그 사람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제품의 디자인과 포장은 이미 두 주일 전에 끝냈고, 대표님께서도 이미 통과하셨어요.”

민효는 누군가 계속 의심하는 것을 보고 또 한마디 덧붙였다.

“발표회에 관해서도 대표님께서는 이미 안배를 마치셨으니, 여러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후, 라예는 몇 가지 추가 지시를 내린 뒤 회의를 마무리했다.

B시에서 스타링 향수 브랜드와 GS그룹 산하의 라메즈 향수 브랜드는 치열한 경쟁 관계였다. 두 브랜드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GS그룹은 성예그룹 산하의 스타링을 꾸준히 압박해왔고, 그 결과 GS그룹은 인지도 면에서 성예그룹을 앞서고 있었다. 이는 전국조향대회에서 2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한 구슬미가 GS그룹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성예그룹이 GS그룹을 상대로 신제품을 먼저 출시한 것은 단순히 인기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라예가 오래전부터 세워둔 치밀한 계획이었다.

11시 30분, 성예그룹은 발표회를 열었고, 12시 정각에 타임라인 시리즈 향수를 공식 출시했다. 12시 30분, 제품의 인기는 급상승했고, 판매량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오후 1시, 판매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타임라인 향수의 주문량이 단 한 시간 만에 천만 건을 돌파한 것이다. 더구나 사전 홍보도 없이 발표회만으로 이룬 성과였다.

대표님 사무실에서는 민효가 태블릿을 들고 향수 주문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표님, 이번에 정말 대박이 났습니다. 광고비까지 절약했고요.”

오늘 아침부터 라예의 파혼 소식과 은환의 불륜 의혹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끊임없는 관심을 끌었다. 특히 스타링 향수가 성예그룹 산하의 브랜드였기에, 라예와 관련된 화제는 자연스럽게 스타링의 신제품인 타임라인 시리즈 향수로 이어졌다. 덕분에 별다른 광고 없이도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스타링 브랜드의 향수는 3년 전부터 국내 시장에 진출해왔으며, 이미 향수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향기, 제품 이념,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까지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고, 출시되는 신제품마다 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라예는 컴퓨터에 나타난 데이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민효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송 비서, 제품 품질을 반드시 엄격히 점검하라고 분부해.”

“알겠습니다, 대표님.”

...

한편, JM그룹의 최고층은 다가가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강한 한기가 감돌았다. 아무도 육인우 대표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고, 회사 전체는 마치 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대표실에서, 인우는 회의를 마치자마자 육태산의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내가 오늘 저녁에 맞선을 하나 주선했으니 지각하지 말고 거절도 하지 마. 안 가면 더욱 안 되고!!]

육태산은 위엄있게 말했다.

인우는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잘생긴 얼굴은 어쩔 수 없단 감정으로 가득했다.

“할아버지, 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그만두시겠어요?”

인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결혼하기만 하면 나도 더 이상 너를 상관하지 않겠다.]

인우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인우야, 너 다른 생각하지 말고 꼭 그 아가씨를 만나러 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날 할아버지라고 부를 필요도 없어...]

육태산은 전화로 끊임없이 당부했다.

이때 인우가 한마디 입을 열었다.

“주소 알려주세요.”

육태산은 재빨리 말했고, 마치 그가 후회할까 두려운 것 같았다.

[주월당, 룸 번호는 888.]

...

다른 한편, 성예그룹에서, 라예 역시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저더러 맞선을 보라고요?”

라예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농담을 할 수 있겠어. 너 설마 진씨 가문의 그 자식을 잊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가기 싫은 거야?]

용수미는 전화로 말했다.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라예는 말문이 막혔다.

“할머니, 저...”

그러나 라예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용수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라예야, 할머니도 네가 구씨 가문에서 억울함을 많이 당하고 지냈다는 거 잘 알아. 내 유일한 소원이 바로 네가 행복해지는 거야. 전에 너에게 말했듯이, 진씨 가문의 그 녀석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이미 파혼한 이상, 돌아보지 말자.]

용수미는 요양원 정원 밖의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며 라예를 설득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녀석보다 몇 만 배나 더 좋은 남자를 소개해줄게. 진씨 가문이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집안이야.]

[진은환은 그저 그 병 때문에 앓고 있는 구슬미나 가져가라 그래. 라예 넌 절대로 마음을 다시 돌리지 말고.]

라예는 미간을 주무르려 용수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살짝 한숨을 쉬며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요.”

용수미는 라예가 동의한 것을 듣고 명랑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강아지네. 정말 똑똑해. 약속 시간 잊지 마. 그리고 앞으로 자주 날 보러 올 필요 없다. 여기에 돌봐줄 사람이 있으니까 넌 마음 놓고 연애나 잘 해.]

할머니가 행복하기만 하면 라예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다.

현재 라예에게 있어 유일한 가족은 오직 할머니 용수미 하나밖에 없었고, 용수미 또한 유일하게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었다.

...

오후 5시 30분, 라예는 용수미가 알려준 주소를 따라 검은 벤츠 지바겐을 몰고 회사 지하 주차장을 나와 주월당으로 향했다. 맞선이 처음인 그녀는 상대방이 맞선 장소로 이렇게 고급스러운 곳을 정할 줄은 몰랐다.

주월당은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최소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주월당은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장소로, 이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권력자나 재벌이었다. 또한, 명문가의 자제들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늘 맞선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임시로 정해진 것일 텐데, 이렇게 급하게 주월당을 예약할 수 있다니,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 같군.’

용수미는 상대방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아, 라예는 그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라예가 주월당에 들어가 룸 번호를 말하자, 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위층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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