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송주에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게 뭐가 있는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해도 진웅 어르신은 감당할 수 있다.“웃긴 소리, 이 송주에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사람은 없어.”용표는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차민도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당장 네가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와. 누가 감히 용표 형님의 구역에서 난리를 피울지 궁금하네.”“정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줄게.”서강빈은 느긋하게 휴대폰을 꺼내 먼저 황규성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음 고정용에게 걸었다. 그러고 나서 세 번째로 흑호 도장의 관장인 염동건에게 걸었다. 마침 염동건은 요 며칠 송주에서 도장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서강빈의 전화를 받은 황규성, 고정용, 염동건까지 모두 어리둥절했다. 누가 감히 송주에서 서 선생과 시비가 붙는 것인가?“용표?”염동건은 전화를 끊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놈인듯했다.그러나 서강빈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의도를 염동건은 눈치챘다. 서강빈은 송주에서 위엄을 떨치려고 하는 것이다.아무 놈이나 서강빈과 시비를 붙게 놓아둘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두려움을 맛보게 해야 꼬리를 내린다. 이렇게 생각한 염동건은 벌떡 일어나서 곁에 있는 경호원 두 명에게 말했다.“여봐라, 흑호 도장 전체 무사들이 모두 출발한다는 지시를 내려. 목표는 드림 레스토랑이다.”고정용 측에서도 거의 모든 사람을 다 동원했다. 검은색 벤츠들이 줄을 지어 드림 레스토랑 방향으로 돌진했다. 이뿐만 아니라 고정용은 김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자신이 직접 구해낸 젊은이한테 일이 생겼다는 말에 김제혁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맺혔다.솔직히 이 젊은이의 배경에 대해서 그는 가늠이 가지 않았고 감히 함부로 예측할 수도 없었다. 작은 사건 하나에 송주와 성회에서 지위가 대단한 어르신들이 움직이고 심지어 천주 권씨 가문도 휘말린 것으로 보아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여봐라, 통지를
용표가 놀라운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를 더 무섭게 하는 그림자가 문을 열고 드림 레스토랑을 들어왔다.“정... 정용 어르신?”조금 전의 용표는 그저 단순히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라면 지금 그는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고정용, 두말할 것 없는 송주와 성회의 실세였다.지금 용표의 마음속에서는 차민이 죽도록 원망스러웠다. 차민이 아니었다면 오늘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의 심기를 건드릴 일이 있겠는가?아까 차민은 전화에서 상대가 보잘것없는 놈이라고 맹세했었다. 고정용은 용표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그를 넘어서 서강빈의 앞으로 다가가 주먹을 모으고 말했다.“서 거장, 죄송해요. 차가 막히는 바람에 늦어졌습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고정용은 상황파악을 하고 서강빈의 뒤에 섰다.차민은 창백한 얼굴로 고정용과 주변의 검은 옷을 입은 용맹한 경호원들을 보며 놀라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서강빈이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전화 한 통에 이렇게 대단한 어르신들을 불러올 수 있단 말인가? 서강빈은 도대체 무슨 사람인가? 지금에 와서야 그는 문득 깨달았다. 서강빈이 진기준의 결혼식을 공공연하게 말아먹었는데 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강빈을 응징하지 못했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설마 진기준 이놈은 서강빈의 내막을 알면서도 일부러 자신에게 함정을 판 것인가?차민이 마음속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 손에 도끼와 몽둥이를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살기가 넘치는 건장한 남자들이 눈 깜짝할 새에 거리를 에워쌌다. 이 사람들과 전에 왔던 고정용의 경호원들은 빠르게 대치하는 상황을 형성했다.제일 앞에 선 중년 남자의 두 눈은 반짝거렸고 얼굴에는 서늘한 웃음을 띠고 다가와서 드림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아이고, 정용 어르신, 규성 어르신, 만나서 반갑네요!”중년 남자의 시선은 고정용과 황규성 두 사람을 지나 마지막에는 중심에 서 있는 서강빈에게 머물렀다.“진웅?”황규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숙여 서강빈
황규성과 고정용이 그를 토막 내버릴지도 모른다. 진웅은 사악한 웃음을 짓다가 시선을 옮겨 고정용과 황규성을 쳐다보았다. 그에게는 이 두 사람이 오늘의 목표였고 그들이 왜 서강빈을 저렇게까지 모시고 있는 이유는 아직 가늠이 안 갔다. 하지만 서강빈이 나이가 어려 보이고 송주에서 별로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두 사람은 절대 서강빈의 졸개는 아닐 것이다.“정용 어르신, 규성 어르신, 이 젊은이가 충동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사실 진웅의 세력은 송주에만 있어 고정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이들의 말대로 용표를 다루게 된다면 앞으로 그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하여 그는 무리해서라도 용표를 보호해야 했다.“서 선생의 뜻이 바로 우리 뜻이야!”고정용과 황규성은 거의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진웅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보아하니 두 분은 내 체면을 봐줄 생각이 없군요. 그럼 저도 제 뜻을 분명히 얘기하겠습니다. 용표는 내 형제 같은 부하입니다. 감히 용표의 몸에 손을 대는 행위는 제 몸을 건드리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진웅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강빈은 찻잔을 들어 진웅의 얼굴에 던졌다. 진웅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네가 감히 우리 형님을 건드려?”진웅의 뒤에 있던 경호권들이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다가오려고 했다.“누가 감히!”고정용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이 일제히 앞으로 한발 나섰고 조규익도 빠르게 앞을 막아섰다. 저번에 서강빈을 건드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조규익은 서강빈에게 충성심을 표현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마침 이번에 진웅 어르신의 부하가 이런 일을 저질렀기에 조규익은 황규성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제일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건달을 때려눕혔다.진웅 어르신은 상처 난 이마를 움켜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말했다.“네 놈이 간이 부었구나! 지금까지 15년 동안 송주에서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는 사람
진웅은 송주에서 황규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라고 해도 그들은 건달에 불과하고 무도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하지만 염동건은 다르다. 그는 성회에서 제일 큰 도장의 관장일 뿐만 아니라 실력도 대단해서 절대 건달들이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고정용까지도 어떤 상황에서는 염동건의 체면을 지켜줘야 했다.큰 세력 차이에 진웅은 서강빈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문 앞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많은 경찰이 내려와서 문 앞에 있는 진웅의 부하들을 모두 잡아서 경찰차에 태웠다.깔끔한 구두 소리와 함께 김제혁이 성큼성큼 다가왔다.“권효정 씨, 서강빈 씨, 오랜만입니다! 오늘 큰 소란이 일었나 보네요.”서강빈과 권효정은 일어나서 다가가 김제혁과 악수를 했다.“김 서장님, 오늘의 일은 별것 아닌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저를 괴롭히려는 무리가 있었고 심지어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효정 씨를 난감하게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일이 이렇게 커졌습니다.”서강빈은 당당하게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용표는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 들어 까무러칠 뻔했다.김제혁이 서강빈과 권효정한테 예의를 차려서 얘기하는 태도로 보아 서강빈이 대단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곁에 있는 저 여인도 그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차민도 마찬가지였다. 김제혁이 들어오는 순간, 그는 너무 놀라서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송주의 권력을 가진 어르신들이 오늘 거의 다 모였다. 차민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오늘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막론하고 김제혁의 말 한마디면 그의 레스토랑은 어떤 이유로든지 모두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다.지금 진웅은 더 고개를 들고 서강빈을 볼 용기가 없었다. 솔직히 방금까지도 그는 서강빈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강빈과 염동건 등 사람들의 관계가 아직 불투명하므로 그는 서강빈이 무조건 거금을 들여서 이렇게
김제혁은 멈칫하여 놀란 표정으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홀 안의 분위기는 극도로 어색해졌다. 권효정은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가 서강빈의 옷깃을 살짝 잡아끌며 말했다.“강빈 씨, 여기서 끝내요. 아무래도 우리는 앞으로 김 서장님과 계속 친분을 유지해야 할 거잖아요.”서강빈은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권효정의 손을 톡톡 쳤다.“김 서장님, 지난번의 일은 아직 기억하고 계시죠?”서강빈이 갑자기 물었다.“네.”김제혁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강빈 씨, 지난번의 일은 정말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진기준은 절대 법망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서강빈은 코웃음을 치고는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의 종업원 앞으로 가서 한 손으로 종업원을 가리키며 말했다.“김 서장님, 제가 계속 참아주니까 저런 사람까지도 감히 효정 씨한테 시비를 걸잖습니까. 그리고 저 사람도요!”말하면서 서강빈은 손을 뻗어 뚱뚱한 매니저의 옷깃을 잡더니 아예 그를 들어 올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지금 그 매니저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혈색이 없는 얼굴로 빌고 있었다.서강빈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매니저를 깨진 유리 더미 앞에 집어 던졌다.“김 서장님, 지난번에 서장님을 봐서 제가 양보해드렸으니 오늘은 서장님이 뭔가를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서강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려 김제혁을 보았다.“그건...”김제혁은 살기가 넘실대는 고정용과 황규성을 훑었다.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들 자신의 반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강빈은 오늘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풀어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엔가 뚱뚱한 매니저 등 사람들의 사체가 강에 둥둥 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때가 되면 그는 더 난처해질 것이다. 심사숙고를 거친 후, 김제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강빈 씨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목숨에 지장이 없고 합리적인 범위만 지켜준다면 저는 없었던 일로 여길 것입니다.”“좋아요.”서강빈은 손으로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무성은 백도현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백도현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고민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서강빈 이놈은 보통이 아니에요.”말을 마친 백도현은 진기준이 보고 알려준 것들을 그대로 다 얘기해주었다.“역시 이 자식은 얕잡아보면 안 될 듯하네요. 둘째 도련님이 이 자식에게 그렇게 당한 이유가 있었네요.”무성은 서늘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에 진웅이 서강빈한테 굴욕을 당한 일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어두운 쪽의 세력에 대항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이 서로 물고 뜯게 하는 것이다. 백도현의 눈도 순간 반짝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서강빈한테 감사해야겠네요. 힘도 안 들이고 저희 편을 하나 만들었네요. 하하하... 여봐라, 진웅 어르신한테 연락을 넣어서 당장 여기로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해.”“네!”경호원 한 명이 대답하고는 빠르게 방을 나섰다.“도련님, 서강빈을 난처하게 하고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할 수 있는 수가 하나 있습니다.”“그래요?”백도현은 흥미가 생겨 무성에게 가까이 가서 말했다.“무성 어르신, 할 얘기가 있으면 하세요. 저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무성은 백도현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하하!”백도현은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하면서 연신 칭찬했다.“무성 어르신, 역시 어르신께서 지혜롭고 좋은 수가 많으십니다. 서강빈은 이번에 벋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좋아요. 건배하시죠. 서강빈이 얼른 죽고 저희가 하루빨리 송주를 손에 넣게 될 것을 미리 축하합시다.”...드림 레스토랑에서는 서강빈이 떠난 후 고정용 등 사람들도 잇따라 자리를 떴다. 차민 일행은 바로 실려서 병원으로 갔고 주치의는 그들의 위 X레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위 속에는 유리 조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진웅과 그의 부하들은 마지막으로 드림 레스토랑을 떠났다. 진웅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곁에 있던 부하 한 명이 웃는 얼굴로 말
진웅은 맞은편의 소파에 앉아서 백도현을 훑어보며 말했다.“도현 도련님, 궁금하네요. 왜 저를 도우려고 하는 것입니까?”백도현은 숨기지 않고 백서준의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했다. 다만 백씨 가문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서강빈 그놈이 정말 겁이 없네요. 감히 천주에 가서 소란을 피우다니요.”진웅은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씨 가문의 세력으로 보아 어찌 서강빈을 쉽게 놓아줄 수 있겠는가?“그래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저희 백씨 가문에서 유리한 증거를 손에 넣지 못했어요. 그게 아니라면 서강빈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손을 잡을 건지에 관한 얘기에요.”백도현의 이 말은 진웅이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의혹이 다 사라지게 했다.“도현 도련님, 일부 사실에 대해서 아직 모르실까 봐 염려됩니다. 서강빈 그놈은 인맥이 아주 대단합니다. 성회에서 제일 유명한 도장조차도 그놈에게 충성하고 있어요. 도현 도련님께서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고맙지만...”진웅은 웃으며 말했다.“도현 도련님을 실망하게 할까 봐 걱정됩니다. 제 능력으로는 서강빈에게 시비를 건다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방금 목숨을 건지고 온 마당에 진웅이 아무리 서강빈을 증오한다고 해도 주제 파악은 잘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가 서강빈을 건드린 것뿐인데 자신은 이마가 찢어지고 상처가 났다. 거기다가 차민 일행이 당한 일도 똑바로 보았기에 충분한 승산이 없이 진웅은 절대 서강빈을 건드리지 못한다.백도현의 얼굴에 있던 웃음이 살짝 굳어졌다. 누가 수십 년 건달 생활을 한 고인물이 아니랄까 봐 잘 걸려들지 않았다.“진웅 어르신,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경호원을 보내서 어르신의 안전을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백도현이 부하들을 불렀다.“여봐라!”백도현의 말에 무술 복장을 하고 사나운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의 중년 남자
“송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송해인이 마침 연회에 참여할 자료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이세영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무슨 일이야?”송해인은 이세영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금오단... 금오단을 먹고 사람이 죽었습니다!”‘뭐라고?’턱 하는 소리와 함께 깜짝 놀란 송해인의 손에서 사인펜이 떨어졌다. 금오단을 먹고 어떻게 사람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더욱이 요즘 비오 그룹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도정윤이 업그레이드한 금오단이였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송해인은 벌떡 일어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비오 그룹은 의약 회사였고 금오단은 비오 그룹이 지난 몇 년간 온 힘을 다 쏟아서 만들어낸 제품이었다. 절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금오단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비오 그룹의 명예는 반드시 실추될 것이다. 거기다가 이틀 후면 연회가 개막하는 날인데 하필 이 시점에서 사고가 생기다니, 비오 그룹에게 이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이세영은 컵을 들고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나서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오후 R 대학병원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응급환자를 한 명 받았어요. 환자의 가족들이 말하길 저희가 생산한 금오단을 먹고 나서 갑자기 병이 발작했다고 합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각 장기가 이미 망가지기 시작했답니다. 지금 여러 신문사와 송주 방송국의 기자들이 거기로 가고 있어요. 이 일에 대해서 반드시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이 일이 보도되는 것을 막아야 해요. 아니면 우리 회사는 명예가 모두 실추될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송해인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뭔가 생각 난 듯 다급하게 일어서며 물었다.“방금 환자의 장기가 망가지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그 말은 환자가 아직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왜 죽었다고 말하는 거야?”이세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까 사람을 보내서 알아봤는데 병원에서는 이미 위독하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해요. 그리고 환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