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의 선이 갑자기 끊어지자 옥아현의 표정이 쌀쌀해졌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야? 내가 수련하고 있을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세란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수장님, 서... 서강빈이 만나러 왔습니다.”“그 사람이라고?”4년 만에 다시 이 이름을 들으니 평온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옥아현의 마음속에서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예쁜 얼굴은 설렘을 숨기지 못했고 얼른 몸을 일으킨 그녀는 정자를 나서며 말했다.“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얼른 거기로 데려다줘...”옥아현은 빠르게 몇 걸음 걷더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 갑자기 멈추고 말했다.“그... 만화각으로 그 사람을 데리고 와.”이 말을 던지고 옥아현은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세란은 옥아현의 뒷모습을 보다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옥연서한테로 돌아가 귓속말을 했다. 옥연서의 표정이 여러 번 변하더니 결국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쌀쌀하게 말했다.“서강빈, 만화각으로 오라는 수장의 명령이다. 나를 따라와.”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옥아현은 서강빈을 죽도록 원망하면서 왜 또 그를 만나려 하는지, 서강빈 같은 쓰레기는 반드시...결국,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만화각으로 향했다. 염지아는 서강빈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흰옷을 입은 두 명의 여자가 막아섰다.“거기 서. 수장님은 당신을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어.”“주인님...”염지아는 침을 삼키며 겁먹은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거기서 기다려. 잠깐 다녀올게.”서강빈은 뒤돌아 당부하고 옥연서를 따라 만화각으로 갔다. 만화각 앞에는 수백 명의 젊은 여제자들이 양쪽에 줄을 서 있었고 모두 칼을 들고 있어 살기가 가득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옥아현이 싸늘한 얼굴로 대전의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두 눈동자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서강빈을 쳐다보고 있었다.“안으로 들어가.”옥연서는 문 앞에서 안내하는 손동작을 했지만, 말투는 아주
서강빈은 아무 말도 없이 앞으로 다가가 옥아현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예전에 만화문의 옛 수장은 두 사람의 혼사를 추진하려고 일부러 두 사람이 함께 3개월 동안 시간을 보내게 했다. 하지만 서강빈의 마음속에서 옥아현은 그저 여동생이었고 남녀 사이의 감정이 조금도 없었다. 서강빈은 옥아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런 말들은 마음속으로 삼켰고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강빈 오빠, 뒷산에 차가운 옥으로 만든 침대가 오빠 체내의 화독을 다스릴 수 있을지도 몰라. 얼른 나 따라와!”옥아현은 두 눈에 빛이 반짝이며 서강빈을 잡아 뒷산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아현아, 차가운 옥 침대는 내 체내에 있는 화독을 다스릴 수 없어. 걱정하지 마. 나한테는 방법이 있어.”서강빈은 잠깐 멈칫하더니 옥아현한테서 자신의 손을 빼냈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현아, 사실 오늘 여기로 온 것은 내 지인을 위해 칠색신꽃을 얻으러 온 거야. 그분은 지금 온몸의 경맥이 다 끊어져 있어서 3일 이내에 칠색신꽃을 얻지 못한다면 아마도...”“칠색신꽃?”옥아현은 시선을 내리깔고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칠색신꽃은 만화문의 제일가는 보물이었지만 지금 부탁하러 온 사람은 서강빈이었다. 서강빈이 그때 체내의 화독 때문에 그녀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파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마치도 형체 없는 큰 손이 그녀의 가슴을 쥐어뜯는 것처럼 괴로웠다. 더욱이 서강빈은 이 4년간 매일 화독 때문에 괴로움을 견뎌왔는데 자신은 마음속으로 서강빈을 원망하기나 하고 심지어 마주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렸었다. 그러니 자신은 어찌 서강빈의 깊은 마음에 다 보답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옥아현은 결심을 내린 듯 대전 밖을 향해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연서 선배, 보물각으로 가서 칠색신꽃을 가져와요.”칠색신꽃 하나는 물론이고 서강빈이 만화문 전체를 달라고 해도 지금의 옥아현은 망설임 없이 다 바칠 준비가 되었다. “수장, 저 쓰레기 같은 자식한테 속지 마
옥아현이 뚜껑을 열자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향기가 순식간에 대전을 채웠다. 무지개와 같은 빛이 꽃잎 위에 나타났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깔의 꽃잎이 꽃술을 둘러싸고 있었다. 진주 크기의 꽃술은 영롱하게 빛이 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칠색신꽃이 드러나는 순간,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놀라서 감탄했다.“아현아, 이 칠색신꽃은 내가 너한테 빌린 거로 하자. 이후에 똑같은 것으로 꼭 돌려줄게.”서강빈은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정중하게 말했다.“참나, 칠색신꽃은 100년 주기로 자라는 꽃이어서 지금부터 100년 후에야 꽃피울 텐데 어디 가서 똑같은 것을 찾는다는 말이야.”옥연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서강빈이 뭐라 얘기하기도 전에 옥아현이 손을 들어 옥연서의 뺨을 내리쳤다.“아현아... 나는...”옥아현의 예쁜 얼굴이 차가운 표정을 지었고 옥연서를 보면서 쌀쌀하게 말했다.“오늘부터 만화문의 전체 제자들은 강빈 오빠를 보면 나를 대하듯 합니다. 누가 감히 조금이라도 무례를 범한다면 죽일 겁니다. 당장 물러가세요!”옥연서는 몸이 굳었고 감히 불만을 더 말하지 못했다. 옥연서가 대전을 나서는 것을 보고 나서 옥아현은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강빈 오빠, 나는 오빠를 믿어. 이렇게 된 김에... 만화문에서 하루 묵고 갈래?”이 말을 하는 옥아현의 아름다운 얼굴이 쑥스러워 발그레해졌고 두근두근 가슴이 설렜다. 섬섬옥수는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수줍은 처녀의 모습을 하고 있어 지금 그녀에게는 수장의 위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아현아, 마음은 고마운데 나는 오늘 송주로 돌아가야 해. 다음에 네가 송주에 오면 내가 자리를 마련해서 우리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자.”서강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짜지? 거짓말하면 안 돼!”옥아현은 애교를 부리듯 가볍게 서강빈의 옷깃을 쥐고 흔들었다.“내가 언제 너 속인 적 있었어?”서강빈은 손을 뻗어 옥아현의 콧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젊은 남자 한 명이 위풍당당하게 문을 넘어서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수천 명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침착한 얼굴이었다. 송해인은 복잡한 마음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입을 삐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세영과 진기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았는데 그들이 보기에 서강빈은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앞서 박여름과 공동 1등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권씨 가문의 인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권효정도 알 텐데 서강빈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를 온 건지?이렇게 생각한 이세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지으며 일어나서 비아냥거렸다.“아이고, 진짜 올 줄 몰랐네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허 신의께서 자리하고 계시니 권효정 씨도 당신을 돕지 못할 것입니다.”관중석의 사람들이 서강빈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보고 권효정은 앞으로 나서서 이세영한테 차갑게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저번에 강빈 씨는 자신의 실력으로 1등을 한 거예요. 현장에 있던 멘토들이 증언할 수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이세영이 콧방귀를 뀌고는 대꾸하려 하자 송해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목소리로 꾸짖었다.“이 비서, 앉아! 지금 이게 어떤 자리인지 몰라? 회사 이미지가 너 때문에 다 망가지게 생겼어!”송해인한테 제지당한 이세영은 불만 가득해서 권효정을 째려보고는 씩씩거리며 의자에 앉아 무대 위로 올라간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송해인은 복잡한 마음으로 서강빈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서강빈이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것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비오 그룹이 서강빈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겨서 홍보할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됐다.“해인아,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허 신의가 직접 심사를 보기 때문에 권효정도 어쩌지 못할 거야. 박여름은 반드시 이번 경기에서의 주인공이 될 거야! 그리고 사람을 시켜 알아봤는데 오늘 대결하는 내용은 맥을 짚는 거래. 박여름이 잘하는 거잖아. 서강빈이
이윽고 박여름과 다른 두 명의 선수는 순서대로 무대로 올라가서 맥을 짚었다. 박여름은 중년 여자 맥박을 짚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듯하다가 종이에 뭔가를 적기도 했다. 십여 분 후에야 박여름은 진맥 결과를 공손하게 황건해에게 건넸다.답안지를 건네받은 황건해는 한 손으로 돋보기를 추켜세우면서 중년 여자의 진단서와 대조한 후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칭찬했다.“대단해요. 역시 송주의 천재 여의사입니다!”“이 씨, 자네들도 보게.”말하며 황건해는 답안지를 이청산 등 사람들에게 건네면서 점등 버튼을 눌렀다.“역시.”이청산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역시 청출어람입니다. 세부적인 문제까지 깔끔하게 서술하였네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침착하고 냉정한 여름 씨의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만점 드릴게요!”송문학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진맥은 한의학의 네 가지 기본적인 진단 방법에서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진맥을 이 정도로 숙련되고 훌륭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만점입니다!”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조문빈과 눈빛을 주고받았고 조문빈도 역시 만점을 주었다. 불빛 네 개가 다 점등되었고 박여름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였다.촬영 감독도 서둘러 박여름의 답안지를 줌인하였다. 중년 여성의 진단서와 완전히 부합되는 것을 보고 난 후, 현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권효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서강빈이 박여름과 똑같은 답안지를 제출했다고 해도 관객의 인정과 환호를 받기 어렵게 된다. 처음 업적을 이루어낸 사람은 환호를 받기 쉽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은 그렇지 못하게 된다.서강빈도 인정한다는 눈빛으로 휴게 구역에 있는 박여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의술은 의심할 것 없이 훌륭했다. 송해인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박여름은 그녀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그녀는 복잡한 눈길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내가 볼 때는 더 경기를 진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곁에 있던 진기준
황건해는 어두운 낯빛으로 서강빈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사맥은 손희순 선생님 이후로 단절된 지가 언젠데 지금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거야?”이청산도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사맥의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난이도로만 봤을 때 이는 의학 경험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미리 충고하는데,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치고 이청산은 더 일그러진 표정을 한 조문빈과 송문학을 보았다. 지난번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진작에 불을 껐을 것이다. 서강빈은 담담하게 무대 위의 멘토들을 보면서 말했다.“저는 그저 저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을 뿐입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는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게 아니라 전체 한의학 분야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참나! 고집이 대단하네!”“건방져!”“어리석은 놈!”“정말 안하무인이구나!”무대 위 네 명의 멘토는 동시에 발끈했다. 곁에 있던 장 감독은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눈빛으로 특별 멘토 초대석에 있는 허선봉을 보면서 물었다.“허 신의님, 사맥을 짚는 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아이고! 어려운 정도가 아닐세. 정말 하늘의 별 따기라네.”허선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진맥하는 것으로 환자의 병세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 자체가 이미 몹시 어려운데 거기다가 끈까지 연결하고 수십 미터 밖에서 환자의 맥박을 짚는 건 더 어려운 일이지. 아무리 나라도 그건 시도할 엄두를 못 내.”말을 마친 허선봉은 복잡한 표정으로 서강빈을 바라보았다. 만약 서강빈이 실패한다면 모두 그를 웃음거리로 삼을 것이고 서강빈은 전체 한의학 분야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만약 서강빈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이들이 몇십 년 동안 쌓아온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장이준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이 밝아졌다. 서강빈이 성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막론하고 사맥을 짚는다는 난이도만으로도 프로그램의 큰 이슈가 될수 있다.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급하게 설득했다.“여러분
“오늘 난 서강빈에게 솔직히 얘기할 생각이에요. 그와 이혼할 거라고 말이에요. 맞아요, 난 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요. 음, 저녁에 봐요.”비오 그룹 대표 사무실. 송해인은 의자에 앉아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검은색 정장 치마에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긴 머리카락은 펜을 이용해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그녀는 엄청난 미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우아하고 고상했다.“여보, 이건 내가 사랑을 담아 만든 도시락이야.”사무실 문이 열리며 서강빈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웃으며 물었다.“누구랑 통화하고 있었어?”“서강빈, 우리 이혼하자.”송해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도시락을 들고 있던 서강빈은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 듯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여보, 농담하지 마.”눈앞의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여자는 그와 결혼한 지 3년이 되는 그의 아내였다. 처음에 두 사람은 뜨겁게 불타올랐으나 최근 1년 사이에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송해인은 아주 바빴고 서강빈은 매일 그녀를 위해 정성을 담은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러나 매번 돌아온 거라고는 거기에 놔두면 잠시 뒤에 먹을 거라는 대답뿐, 그 외에 다른 교류는 없었다.“농담하는 거 아니야.”송해인은 서랍 안에서 이혼합의서를 꺼내며 냉담하게 말했다.“사인해.”서강빈은 미간을 좁힌 채로 이혼합의서를 바라봤다.그는 3년간의 결혼 생활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강빈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송해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약간의 노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그 사람 때문에 그래?”“누구?”송해인의 예쁜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녀는 서강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서강빈은 책상 위 휴대전화를 힐끗 보더니 자조하듯 웃었다.“저녁에 만나자던 그 사람... 그 사람 때문 아니야?”“나 통화하는 거 엿들었어?”송해인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서강빈 씨, 더 얘기해봤자 달라질 건 없어요. 얼른 사인해요.”여비서는 씩씩거리면서 다가와 그에게 합의서를 내밀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화를 냈다.“사인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표님이 서강빈 씨와 이혼하는 건 아주 쉬운 일에요. 대표님은 그저 옛정을 생각해서 서강빈 씨 체면을 봐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괜히 착각하지 말고 화를 자초하지도 말아요.”“화를 자초하지 말라고?”서강빈은 차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줄곧 말이 없는 송해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송해인, 지금 나한테 경고하는 거야?”송해인은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난 그냥 너랑 말로 잘 풀고 싶은 것뿐이야.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난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꼭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야겠어?”서강빈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송해인에게서 약간의 미련이라도 보이길 바랐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송해인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우리는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까 사인해. 당신 요구는 최대한 다 들어줄게. 사인 끝나면 계속 친구로 남을 수도 있어.”송해인은 잠깐 고민한 뒤 빨간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친구로 남을 수 있다고?’그 말에 서강빈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어쩌면 지난 3년간 서강빈 홀로 착각의 늪에 빠져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송해인은 그를 그저 디딤돌로 보았을 것이다.“사인할게. 집, 차, 돈. 그런 건 필요 없어. 난 날 충분히 책임질 수 있어.”서강빈은 잠깐 침묵하더니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사람 관상 봐주고 풍수 봐주고 부적 써주는 그 가게로?”송해인은 같잖다는 듯이 냉소를 흘렸다.1년 사이 서강빈은 몰락했다.그가 작은 가게를 열어 남의 관상을 봐주고, 풍수를 봐주고, 액을 막고 화를 막을 수 있다면서 사기를 쳐서 부적을 파는 걸 생각하면 황당했다.이것이 송해인이 그와 이혼하려는 이유였다.서강빈은 달라졌다. 그는 이상하게 변했고 더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무슨 문제 있어?”서강빈은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