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준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강빈 씨 정말 자신 있어요? 이 환자는 불치병 환자예요.”서강빈이 웃으며 말했다.“저 못 믿으세요, 교수님?”“그건...”김익준은 머뭇거리다가 씩 웃으며 답했다.“믿어요, 당연히 믿죠!”“시작할게요.”서강빈이 말했다.곧이어 오디션에 참가한 환자가 사람들에게 이끌려 홀에 들어와 의자에 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주위에 둘러싸여 쉴 새 없이 수군거렸다.휴대폰을 꺼내 라이브 방송을 하는 사람들도 적잖게 보였다.진기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실실 비꼬면서 말했다.“서강빈 씨, 너무 무리할 거 없어요. 그러다 진짜 망신당하면 창피해서 어떡해요?”서강빈은 담담하게 웃더니 환자에게 다가갔다.“서강빈 씨, 이 환자는 아주 이상해요. 배탈이 난 지 반년이나 지났어요. 먹으면 바로 싸서 백 킬로였던 체중이 이젠 오십 킬로밖에 안 돼요. 뼈 밖에 안 남았죠. 계속 이러다가 보름도 못 버틸 것 같아요.”김익준은 환자의 증상을 소개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대부분 의사들은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어요.”서강빈은 가까이 다가가 환자를 살펴보았는데 순금 액세서리를 가득 하고 있는 중년 남자였다. 사장님 포스가 물씬 풍겼지만 체형이 비쩍 말라 뼈밖에 안 남았고 낯빛이 누렇게 변해버렸다. 환자는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며 겨우 질문을 건넸다.“의사 선생님, 저 아직 치료 가능한가요?”이때 진기준이 펄쩍 뛰어나오며 실실 비꼬았다.“그럼요! 유능하신 서강빈 의사 선생님이 있으니 무조건 고칠 수 있어요! 걱정 붙들어 매세요, 황 사장님.”“정말요?”황규성의 눈가에 화색이 돌았다.그는 철퍼덕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애원했다.“서 신의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요. 저 돌팔이들은 나 보고 집에 돌아가 후사나 준비하라는데 난 아직 더 살고 싶다고요...”서강빈은 미간을 살짝 구기며 황규성을 일으켰다.이때 진기준이 음침한 미소를 날리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빈 씨, 미리 말씀드리는데 황 사
서 신의가 진짜 실패하면 다 늙은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를 꼭 지키리라 마음먹었다!몇 분 후, 서강빈은 황규성의 의심스러운 눈빛 하에 손을 번쩍 들어 처방을 쓰더니 황규성에게 건넸다.“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서 3일 드세요.”황규성은 흠칫 놀라더니 의심 가득한 눈길로 물었다.“이거면 된다고요?”주위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쉽다고?서강빈이 담담하게 말했다.“한번 서보시겠어요?”황규성은 인상을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배를 어루만지더니 갑자기 흥분하며 소리쳤다.“안 아파요! 배가 안 아파요!”허걱!“헐, 뭐야? 진짜 완치된 거야?”“설마... 배 좀 몇 번 만졌다고 완치가 돼? X발 이건 뭐 신의 손이야, 뭐야!”“대박! 황규성 어르신의 병을 고치면 저 자식은 앞으로 탄탄대로야!”뭇사람들의 의논 소리에 진기준의 낯빛이 한없이 어두워졌다.저분은 무려 규성 어르신인데 서강빈이 진짜 병을 고쳐준다면?!‘X발!’황규성도 철퍼덕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서 신의님, 고맙습니다. 저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서 신의님을 귀인으로 모시겠습니다!”서강빈은 얼른 그를 부축했다.“아닙니다, 별말씀을요. 당분간 술은 절대 드시지 마세요.”“네, 그럴게요.”황규성은 감격에 겨워 보물이라도 다루듯이 처방을 조심스레 손에 든 채 열댓 명의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그는 2억짜리 랜드로버에 올라타자마자 흥분 조로 말했다.“방금 그 신의의 집 주소 좀 알아봐. 나중에 선물을 두둑이 준비해서 내가 직접 찾아뵈어야겠어!”서강빈은 고개 돌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진기준을 쳐다보며 코웃음 쳤다.“진기준 심사위원님, 방금 내가 병을 고치면 무릎 꿇고 머릴 조아리며 날 아빠라고 부르겠다고 하셨죠?”이어서 뭇사람들은 흥미진진한 눈길로 진기준을 바라봤다.다들 깨고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기준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고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딱히 해명할 길이 없었다.“그게...”이때
그 시각, 비오 그룹.이세영이 당황한 듯 대표이사 사무실로 뛰어오며 소리쳤다.“대표님, 영상 하나 보냈으니 얼른 보세요.”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왜 그래?”“서강빈 씨 영상이 쫙 깔렸어요!”이세영이 외쳤다.영상이 깔리다니?송해인은 미간을 구기며 영상을 클릭했는데 서강빈이 오디션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진기준이 내기에 져서 처벌받는 내용이었다.영상을 다 본 후 송해인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세영도 놀랍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대표님, 전에 서강빈 씨랑 함께 지낼 때도 의술이 이토록 훌륭한 걸 알고 계셨어요?”송해인은 머리를 내저었다.“아니, 전혀.”그녀도 막막할 따름이었다.서강빈이 의술에 능하다니...게다가 한의학 대회 오디션 현장에서 불치병 환자를 바로 치료해 준 건가?이세영은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아니나 다를까 나쁜 남자였네요! 대표님 몰래 한 수 숨겼다니! 어쩐지 그렇게 쉽게 이혼해 준다고 했어요. 제 살길을 챙기고 재기하기 위해서잖아요. 그게 아니면 한의학 대회에 왜 나가요? 게다가 일부러 현장에서 병을 치료해 장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잖아요. 이건 분명 작정하고 대표님 망신 주려는 거예요. 본인과 이혼한 게 얼마나 큰 착오인지 알려주기 위해서라고요. 정말 심보가 너무 나쁘네요! 잠깐, 그 인간 설마 대표님과 경쟁하려는 건 아니겠죠? 대표님, 애초에 서강빈 씨랑 상업 경쟁 계약을 체결했어요?”송해인은 눈썹을 찡그리며 머리를 내저었고 안색이 한없이 일그러졌다.이세영은 여세를 몰아 몇 개의 영상과 송주 현지 카페, 심지어 페이스북에 올라온 관련 인기 검색어까지 전부 송해인에게 전송했다.“신들린 의술! 송주에 당대 허준이 나타났어!”이러한 타이틀과 기사를 보면서 송해인은 마음이 심란하고 씁쓸하며 분노가 치솟았다.그녀는 재빨리 서강빈에게 전화해 왜 실력을 숨겼는지 캐묻고 싶었다.애초에 숨겼으면 쭉 숨길 것이지 왜 하필 이혼하고 나니 의술을 드러내는 거냐고?!밖에
오디션장 안의 회의실에서 김익준은 공손한 태도로 권효정에게 말했다.“효정 씨, 다 준비됐어요.”권효정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으로 서강빈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살펴보더니 존경하는 눈길로 변했다.“멋있어.”그녀는 서강빈에게 홀딱 반해서 미소 지었다.“네?”김익준이 당혹스러워하며 물었다.권효정은 휴대폰을 치우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무것도.”김익준은 다 알면서도 미소만 지을 뿐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효정 씨, 사실 서강빈 씨를 각별히 신경 쓰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강빈 씨 의학 실력으로 구 대회에 나가는 것도 재능을 꺾는 일이에요.”“정말요?”권효정이 두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역시 내가 찜한 남자는 범상치가 않아.’“교수님, 이번에 수시 모집 합격자 명액 3개 모두 정했나요?”권효정이 불쑥 물었다.김익준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지난 2, 3년과 똑같은 기준이에요. 용인 그룹에서 추천한 황시원, 효원 그룹에서 추천한 신주현, 그리고 비오 그룹에서 추천한 박여름 씨까지 세 명이에요.”박여름을 언급하자 김익준은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특히 비오 그룹에서 추천한 박여름 씨는 현재 한의학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라 의술이 뛰어나요. 전에 손인수 신의 아래에서 3년을 공부했어요. 예외가 없다면 이번 구 대회에서 박여름 씨가 1등을 차지할 겁니다.”“비오 그룹이요?”권효정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씩 웃었다.“서강빈 씨 한 명 더 추가해요.”김익준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치채고 웃으며 답했다.“알겠습니다, 효정 씨.”...오디션장 입구.서강빈은 전화를 끊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이때 권효정이 쪼르르 달려 나와 웃으며 말했다.“강빈 씨, 이젠 나랑 함께 청성 펜션으로 가볼 수 있죠?”서강빈이 머리를 내저었다.“볼일이 남아서 다음에요.”권효정은 재빨리 그를 잡아당겼다.“가게 때문에 그래요? 걱정 마요. 내가 사람 시켜서 청소랑 인테리어 도와주라고 했어요.”그녀는 서강빈을 차에 태우고
이 질문에 서강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송해인에게 시선이 확 쏠렸다.송해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팔짱 낀 두 사람을 쳐다봤다.권효정이 대놓고 팔짱을 끼는 것은 그녀에게 소유권을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다!진기준이 재빨리 해명하려 했다.“아직 그것까진 아니고...”송해인은 아직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그런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팔이 확 조여왔다.송해인이 선뜻 그에게 팔짱을 꼈다!그녀도 똑같이 도발하듯 턱을 치키고 배시시 웃으며 권효정에게 말했다.“맞아요, 우리도 신혼집 보러 왔어요.”이건 마치 팔짱 끼는 게 뭐가 대수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만 같았다.진기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곧이어 그는 활짝 웃으며 가슴을 쭉 펴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거만하게 서강빈을 바라보았다.도발하는 듯한 그의 눈빛은 마치 승리를 거머쥔 자처럼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순간 네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두 여자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지만 눈빛은 원수 쳐다보듯 이글거렸다!두 여자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서강빈과 진기준도 어색한 기류를 눈치챘다.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이 두 여자가 언제부터 기 싸움 한 거지?’진기준은 잘 알고 있다. 송해인은 지금 일부러 눈앞의 두 사람을 약 올리기 위해 팔짱을 끼고 있지만 그래도 달갑게 이용당하고 싶었다.그녀가 처음 낀 팔짱이니까.몇 초간의 팽팽한 신경전 후에 두 여자가 동시에 시선을 거두고 딴 곳을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그야말로 막상막하의 기 싸움이 아닐 수 없다.넷은 낯선 이처럼 앞뒤로 나란히 주차장을 나서 부동산으로 갔는데 이런 게 바로 운명의 장난일까?별장 보러 온 사람들이 하도 많아 테이블이 딱 하나만 남았다.넷은 어쩔 수 없이 부동산 여직원의 안내로 함께 한 테이블에 앉았다.여직원은 네 사람에게 열정적으로 별장을 소개해 줬지만 서서히 넷 사이에 흐르는 강한 기운을 느꼈다.싸늘하고 숨 막혀서 저절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여직원은 결국 더는 소개를 이어가
송해인은 걸음을 멈추더니 아무 말 없이 코웃음 치며 서강빈을 스치고 부동산을 나섰다.진기준도 재빨리 쫓아가며 외쳤다.“송 대표, 기다려.”점점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보며 권효정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서강빈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귓가에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활짝 웃었다.“강빈 씨, 나 잘했죠? 강빈 씨도 속이 후련하죠?”그녀가 머리를 넘기는 제스처는 다른 남자들에게 아주 요염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서강빈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는 머리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할 필요 없어요. 나랑 해인이는 이젠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게다가 해인이는 쉽게 머리 숙이는 여자가 아니라서 효정 씨가 이럴수록 더 세게 나올 거예요.”권효정이 두 손을 들고 웃으며 답했다.“괜찮아요. 난 여태껏 단 한 번도 진 적 없거든요.”서강빈은 속절없이 웃으며 머리를 내저었다.권효정은 맑은 두 눈을 깜빡이며 사악하게 웃었다.“강빈 씨, 만약 오늘 송해인 씨랑 진기준 씨가 정말 신혼집 보러 온 거면 어쩔 생각이었어요?”서강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만약 진짜 그런 거라면 해인이를 축복했겠죠.”그의 대답에 권효정은 살짝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두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진짜요? 이젠 전 와이프한테 정말 아무런 미련도 없는 거예요?”서강빈은 대답하기도 귀찮아 앞으로 걸어갔다.권효정은 혀를 날름거리며 쪼르르 달려갔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서강빈을 뒤따라갔는데 얼핏 보면 청춘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자 그녀의 머릿결과 새하얀 원피스가 하늘거리며 청순가련한 매력을 한껏 뽐냈다.차에 타자마자 서강빈은 낯선 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전화기 너머로 깍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강빈 씨, 나 공명진일세.”서강빈이 담담하게 물었다.“네, 어르신, 무슨 일이세요?”공명진이 조급히 말했다.“다름이 아니라 서강빈 씨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전화했네. 어젯밤에 자네가 준 복숭아 가지를 집에 오자
“그리고 마당에 심었던 만년청도 잎사귀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이젠 다 죽어가. 더 섬뜩한 건 집에서 예전에 섬기던 옥 불상이 있는데 그 불상도 좀 전에 깨진 거야... 이거 완전히 대흉의 징조잖아!”서강빈도 인상을 찌푸렸다.검은 고양이가 우물에 빠진 것은 확실히 대흉 징조이다!가족 중 두 명이 죽게 된다.그리고 만년청이 시들었다는 것은 공씨 일가의 기운이 다했다는 뜻이다.옥 불상이 깨진 것은 공씨 일가의 자손 후대에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한다!아마도 대를 잇지 못한다는 징조일 것이다!공씨 일가는 대체 무엇을 건드렸기에 자꾸 이런 화만 입는 걸까?“강빈 씨, 우리 집안 살릴 수 있어?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세상 이치를 해하는 짓은 하지 않았네. 자선사업도 줄곧 해왔고 말이야. 강빈 씨, 제발 우리 집안 좀 도와줘, 어서 구해줘...”공명진은 정말 겁이 나서 애원하듯이 말했다.서강빈은 한참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이렇게 하시죠. 제가 이따가 그리로 갈게요. 만약 한을 풀 수 있다면 제가 직접 풀어드리고 만약 못한다면 공씨 일가의 기운도 다한 겁니다.”“그럼 우리 집안은 어떻게 되는 거야?”공명진이 긴장해 하며 물었다.“가문이 무너지고 온 가족이 사망할 거예요.”“으악...”공명진은 놀라서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눈앞이 아찔하여 하마터면 무릎 꿇고 애원할 뻔했다.“강빈 씨, 우리 집안 좀 살려줘. 가족들만 무사하다면 재산은 다 날려도 괜찮아...”“최선을 다하겠습니다.”서강빈이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고 권효정에게 말했다.“공씨 일가로 가줘요.”“네.”권효정이 곧바로 대답했다....권효정과 서강빈이 공씨 일가로 향할 때 송해인은 진기준의 차에 올라탔다.“출발해!”그녀가 씩씩거리며 말했다.진기준은 시동을 걸고 일부러 관심하는 척 물었다.“해인아, 괜찮아?”“내가 뭔 일 있어야 해?”그녀가 싸늘하게 되물었다.진기준은 배시시 웃으며 함께 푸념했다.“서강빈 씨 옆에 있던 그 여자분 진짜 별로야. 너
서강빈과 권효정은 곧장 공씨 저택에 도착했다.이제 막 차에서 내렸는데 서강빈은 별장의 지세와 풍수에 충격을 받았다.그야말로 으리으리하고 지리적 위치와 풍수가 일품이었다!앞에는 명당이 있고 뒤에는 푸른 산이 있으니 전형적인 산과 강을 다 가진 환상의 지역이었다.이런 곳에 살면 수명을 연장하고 재부를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 구조를 보니 풍수지리 전문가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문 앞에 세워진 두 개의 사자 모형의 바위는 이곳의 풍수와 기운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다만 서강빈은 한눈에 문제점을 찾아냈다.바로 이곳의 풍수와 기운이 다하여 메말라가고 있다는 점이다.게다가 이곳의 풍수는 이미 대흉으로 뒤바뀌고 있었는데 인위적인 요소가 매우 컸다!누군가가 공씨 일가를 겨냥하는 걸까?서강빈은 미간을 구기고 권효정과 함께 정원으로 들어갔다.안에 들어서자마자 권효정은 찬바람이 옷깃을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는데 살을 엘 듯 시리고 음산했다.“강빈 씨, 여기 정원이 너무 이상해요. 밖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데 이 정원은 왜 한겨울 같죠?”권효정이 몸을 떨며 재채기까지 해댔다.서강빈도 미간을 구겼다.“추우면 그냥 밖에 있어요.”“그건 안되죠. 강빈 씨 따라다니면 오늘 분명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있을 거예요.”권효정이 웃으며 답했다.서강빈은 속절없이 고개를 내저을 뿐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정원의 구조를 훑어보았다.정원의 허공에 한줄기 검은 살기가 은은하게 떠다녔다.더 섬뜩한 것은 정원의 네 귀퉁이에 각각 바위가 하나씩 있었는데 네 개의 바위를 본 순간 서강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이때 마침 공명진이 가족들과 함께 이리로 달려오며 두 손 모아 인사했다.“자네 왔군. 미안하네, 먼 길 오게 해서... 얼른 안으로 드시게.”서강빈은 고개를 내저으며 네 귀퉁이의 바위를 가리켰다.“어르신, 이 바위들은 언제 놓으신 거예요?”공명진이 의아한 듯 대답했다.“한 달 전에 사업 파트너가 선물로 줬어.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