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서강빈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외국 남자들도 당신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서강빈이 차갑게 말했고 한지혜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서강빈, 말 좀 작작 해. 네가 질투해서 그러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누가 너더러 그 사람들처럼 힘이 세고 기운이 넘치지 못하라고 했어? 다음 생에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기도하기나 해.”손서연과 이다은도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고 얕잡아보는 눈빛이었다.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화를 내려고 했지만, 주민정이 서강빈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쟤네들이랑 화내지 말아요.”서강빈은 긴 숨을 내쉬고 주민정을 봐서 꾹 참았다. 가만히 있는 서강빈의 모습을 보고 한지혜는 비웃음을 띤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멍청한 녀석, 정말 최악이야! 이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다니!”이때 손하린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그만해. 민정이 데리고 온 사람이니 우리 다 친구잖아. 시간을 보니까 태웅 오빠도 곧 도착할 때가 됐어.”이 말을 들은 한지혜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태웅 오빠? 그 오빠도 온대?이다은은 잘 모르는 눈치인 듯 물었다.“태웅 오빠가 누군데?”한지혜는 얼른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송주 서태웅! 거느리는 부하만 수백 명이 되는 대단한 오빠야! 이 거리의 술집들은 모두 오빠 구역이야!”“세상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진작에 우리한테 소개해줬어야지.”이다은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멀리서 체격이 크고 준수하게 생긴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7, 8명의 부하가 따랐고 거들먹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남들은 안중에도 없이 거만스럽게 보였다.“태웅 오빠!”“태웅 오빠!”손하린과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했다. 주민정마저도 어쩔수 없이 일어서서 오빠라고 한마디 불렀는데 오직 서강빈만이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손
“제가 있으니 두려워할 것 없어요. 저 사람이 누구든지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서강빈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다른 이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 서강빈의 말은 바로 서태웅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는 표정이 일그러졌다.“야 이 자식아, 너 정말 건방지구나! 내가 누군지 알아?”서태웅은 서강빈을 노려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뒤에 있던 부하들이 얼른 다가와서 서강빈을 막았다. 이를 본 손하린과 한지혜 일행은 관여하려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고 험한 표정으로 비웃고 있었다.“저 미친놈이 감히 태웅 오빠를 건드리고 있네. 아주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멍청이야!”한지혜는 가소롭다는 듯한 눈빛으로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서강빈이 무척 못마땅했기 때문에 서태웅이 지금 당장에라도 서강빈을 제대로 혼내주기를 바랬다. 서강빈 같은 남자는 정말 사람을 역겹게 만든다. 손서연도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저 자식을 상대해서 뭐해. 그저 민정의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는 거잖아. 어떻게 행실을 해야 하는지 태웅 오빠가 제대로 교육할 테니까 좀만 기다려.”“정말 역겨운 남자야. 민정이 왜 저런 사람이랑 친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이다은도 따라서 비아냥거렸다. 이때, 서강빈은 태연하게 눈을 치켜뜨고 서태웅을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알아. 저 여자들이 아까 말했어. 네 이름은 서태웅이고 이 거리의 대장이라고.”“그걸 알면서도 내 앞에서 이렇게 건방진 거야? 내 말 한마디면 너는 죽도록 맞고 나서 던져질 거야. 한번 해볼까?”위협적인 서태웅의 말에 초조해진 주민정이 일어서서 사과했다.“태웅 오빠, 죄송해요. 제 친구가 뭘 잘 몰라서 그래요. 오빠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고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그러면서 주민정은 테이블에 올려진 술잔을 들고 말을 이었다.“이렇게 합시다. 제가 친구를 대신해서 벌주를 세잔 마실게요.”말을 마친 주민정은 술잔을 들어서 연거푸 술을 석 잔 마셨다.“태웅 오빠, 다 마셨어요
현장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서태웅은 피가 멈추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주위에 있던 손하린 등 사람들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주민정도 깜짝 놀랐다. 서강빈이 이렇게까지 패기가 넘칠 줄 몰랐다.“미친놈! 감히 술병으로 내 머리를 깨? 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서태웅이 화를 냈다.“당장 저 자식을 죽여!”명령이 떨어지자 서태웅이 데리고 온 7, 8명의 부하는 씩씩거리면서 서강빈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서강빈도 그들을 봐주지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술병을 들고서 그들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한순간에 7, 8명의 부하가 모두 피범벅이 된 머리를 움켜잡고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냈다. 이 광경은 한지혜 일행을 깜짝 놀라게 했다.“세상에! 저 자식이 미친 거야? 태웅 오빠를 때리고 그 부하까지 때리다니?”“큰일 났어! 우리는 끝났어! 주민정의 친구라는 저놈은 미쳤어! 이건 죽으려고 덤비는 거잖아!”“참나! 자기 주제를 모르고 감히 태웅 오빠를 때리다니. 저 자식은 오늘 죽은 목숨이야!”여자들은 동시에 분노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주민정도 서강빈이 더 심하게 때릴까 봐 다급하게 서강빈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지금 서강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태웅을 보면서 쌀쌀하게 말했다.“서태웅, 술맛이 어때? 참기 힘들지?”“젠장!”서태웅은 피범벅이 된 머리를 움켜잡고 악에 받쳐 서강빈을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미친놈! 너 오늘 내 손에 죽었어! 네가 그렇게 두려운 게 없다면 여기서 나가지 마!”서강빈은 태연하게 앉아서 다리를 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안 갈 거야. 네가 사람들을 불러오기를 기다릴게.”“좋아! 네가 아주 건방지구나!”서태웅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소리쳤다.“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와! 무기를 갖고 와! 오늘 사람을 죽일 거야!”말을 마친 서태웅은 전화를 끊고 서늘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호통쳤다.“이 자식아, 앞으로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너는 죽게 될 거야. 30분 동안
서태웅은 죽일 듯이 서강빈을 노려보면서 적나라한 비웃음을 터뜨렸다.“이 자식이 사람들 부를 줄도 알아? 좋아, 오늘 어느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감히 여기로 와서 끼어드는지 한번 보자고!”서강빈은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무식한 놈!’하지만 이 모습을 본 손하린과 사람들은 무척 불쾌해했다.“이 자식이 죽을 때가 됐는데도 무게를 잡고 있네! 충고하는데 얼른 무릎을 꿇고 태웅 오빠한테 사과해. 아니면 너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를 새에 숨이 끊어져 있을 거야.”“맞아! 주민정, 얼른 멍청한 네 친구를 좀 말려봐. 태웅 오빠를 건드리는 건 염라대왕을 건드리는 짓이야!”“주민정, 너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함께 놀려고 너를 부른 거야. 근데 너는 저런 멍청한 놈을 데리고 왔다니. 내가 너였다면 지금 당장 저 자식이랑 선을 긋고 태웅 오빠한테 와서 사과할 거야.”몇몇 사람들의 말을 듣고 주민정은 생각에 잠기더니 진지하게 대답했다.“나는 내 친구를 버리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나는 친구랑 함께 책임질 거야!”이 말을 들은 손하린은 무척 실망하여 주민정에게 말했다.“민정아,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런데도 네가 말을 듣지 않으니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를 탓하지 마.”“알고 있어.”주민정이 대답했다.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술집의 문 앞으로 문신을 가득 한 남자들이 갑자기 달려 들어왔다. 모두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쇠몽둥이와 칼을 들고 있었다. 지금 술집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술집에 놀러 온 손님들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얼른 구석에 몸을 숨기고 덜덜 떨고 있었다. 뒤돌아 자신이 부른 사람들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서태웅은 서늘한 웃음을 지은 채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있는 서강빈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야 이 자식아, 내 사람들이 왔으니 네 죽을 날도 멀지 않을 거야!”서태웅의 말이 끝나고 앞장서서 들어오던 남자가 사람들을 데리고 다가와서는 서태웅을 향해 허리를 숙이
서태웅은 으리으리한 부하들을 데리고 술집의 문 쪽으로 갔다. 한지혜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흘겨보면서 비웃음을 터뜨렸다.“건방진 놈, 네가 언제까지 허세를 부리나 보겠어!”“민정아,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친구는 네가 감쌀 가치가 없어. 태웅 오빠한테 어떻게 사과할지나 빨리 생각해.”손하린은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앞에 가고 있는 서태웅을 따라갔다. 주민정도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서강빈은 덤덤하게 말했다.“가요. 우리 나갑시다.”“네? 하지만...”주민정이 살짝 걱정하는 표정을 짓자 서강빈이 웃어 보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겁니다.”“알겠어요.”주민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서서 서강빈을 따라 술집 밖으로 갔다. 서태웅은 백여 명이 되는 부하들을 데리고 거들먹거리면서 술집을 나섰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라서 얼이 빠졌다. 거리 전체에 검은 슈트를 입은 타자들이 쭉 깔려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족히 만 명이 넘었다.“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서태웅은 놀라서 몸을 퍼뜩 떨며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뒤에 따라오던 백여 명의 부하들도 표정이 확 변했다. 그들은 언제 이런 장면을 목격했겠는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검은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멋있었다. 손하린과 한지혜 등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손으로 새어나오는 비명을 막았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무서워... 모두 합하면 만 명이 넘지 않아?”“이게 다 서강빈 그 자식이 부른 사람들이야? 설마...”여자들은 모두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서태웅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가득 맺혔다. 이때서야 그는 그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인영을 보게 되었다.“규, 규성 어르신! 규성 어르신이셔!”서태웅은 아주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젠장, 역시 저 자식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부를 리가 없어. 규성 어르신이 온 거였어. 이 규모를 보니 큰 이벤트가 있나 보다.”서태웅은 긴장된 목소리
이 말을 들은 서태웅은 감격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감사합니다, 규성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반드시 규성 어르신과 그 대단하신 분이 만족하게끔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서태웅은 엄청 무게를 잡으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오늘 밤은 너희들이 활개를 펼칠 기회야! 기회를 잘 잡은 놈한테는 2천만 원의 상금을 주겠어!”서태웅이 거느리는 백여 명의 부하들은 한순간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건 규성 어르신 앞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좋은 기회다. 잘하기만 한다면 규성 어르신 밑으로 가서 일할 수도 있다. 그건 엄청나게 잘난 척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한순간에 거리의 건달에서 정규적인 조직의 인원으로 될 기회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모두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술집의 출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마침 서강빈이 주민정과 함께 나오면서 문을 막게 되었다. 황규성이 서둘러 다가가려고 했지만, 황규성보다 더 급하게 튀어나온 건 서태웅이었다. 앞장서서 다가온 서태웅은 서강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정신 나간 놈! 여기 서서 뭐해? 얼른 저리로 꺼져! 지금 너랑 실랑이를 벌일 시간 없어. 오늘 밤에 나는 규성 어르신을 도와 대단하신 분을 위해 나서 줘야 해!”서태웅은 사건의 무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서강빈과의 모순은 앞으로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규성 어르신을 도와 규성 어르신께서조차 공경하는 분을 위해 일을 처리해주는 것이야말로 다시 없을 기회였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하여 서강빈이 멍청하게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서태웅은 화가 치밀었다. 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서태웅을 보았다. 서강빈이 비켜줄 기미가 없자 서태웅은 더 화를 냈다.“보긴 뭘 봐, 사람 말 못 알아들어? 얼른 꺼져!”손하린, 한지혜, 손서연과 이다은 네 명도 따라서 화를 내면서 서강빈에게 손가락질하며 꾸짖기 시작했다.“젠장! 저 자식이 귀가 먹었어?”“시력도 안 좋은가 봐! 밖
서태웅은 퍼뜩 놀라 고개를 돌렸고 어두운 표정의 황규성을 보고 물었다.“규성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황규성은 서태웅의 얼굴을 소리 나게 내리쳤다. 서태웅의 입가에는 피가 흘렀고 황규성은 그를 향해 화를 냈다.“저분이 바로 그 대단하신 분이셔!”이 한마디 말에 겁을 먹은 서태웅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하린과 한지혜 등 사람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단하신 분이라고? 서강빈이 바로 규성 어르신조차도 공경하는 그 대단하신 분이라고?”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황규성은 빠르게 서강빈의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서 선생,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했습니다. 지시를 내리십시오.”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광경을 본 서태웅과 사람들은 모두 너무 놀라 넋이 나갔다.‘큰일 났다! 다 망했어! 저 자식이 바로 규성 어르신이 기다리고 있던 대단한 인물이었다고?’서태웅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앞서 규성 어르신이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자식이 대단하신 분을 건드려서 처리하러 왔다는 얘기가 퍼뜩 생각났다. 그렇다면 서강빈을 건드렸다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가?서태웅은 쿵 하고 무언가가 내려앉는 듯하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태웅, 이 사람들은 모두 내가 부른 사람들이야. 봐봐, 어때?”서강빈은 서태웅을 향해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겁을 먹은 서태웅은 당장에서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범벅이 되어 애원했다.“서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 몰랐습니다...”이 모습을 본 황규성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쌀쌀하게 말했다.“네가 바로 서 선생을 건드린 그놈이구나!”이 말을 들은 서태웅은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소리쳤다.“규성 어르신,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나한테 빌어서 뭐해? 서 선생한테 빌어!
이윽고 서강빈은 황규성에게 지시를 몇 마디 더 내린 다음 주민정을 데리고 돌아갔다. 아파트 문 앞에서 헤어질 때, 주민정은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차에 올라타 떠나는 서강빈을 보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사랑의 불씨는 이미 타오르고 있었지만, 서강빈은 전혀 알지 못했다.이튿날, 서강빈이 기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송해인이 다급하게 만물상점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서강빈을 끌면서 소리쳤다.“얼른 가자. 나랑 어디 좀 가.”“어딜?”서강빈은 어리둥절했다. 송해인이 무슨 일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몰랐다.“내 친척 한 분이 아프신데 그 원인을 계속 찾지 못해. 그래서 너한테 가서 봐달라고 데리러 왔어.”송해인은 다급하게 말하며 서강빈을 끌고 차에 올라탔다.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나한테 진료를 하라고? 송 대표, 예전에는 계속 내 의술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나?”송해인은 그를 흘겨보고 말했다.“그만해. 상황이 매우 급하단 말이야. 예전에는 다 내가 잘못했어. 됐지?”서강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송해인은 페달을 밟고 서강빈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바로 병실로 갔고 송해인이 설명해주었다.“내 숙모님께서 계속 가슴 쪽이 아프다고 하셔. 병원에 와서 검사해도 아무 문제가 없대.”“알겠어.”서강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해인은 걸음을 멈추고 서강빈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아, 숙모님은 너도 아는 분이야. 성함이 오수연이야.”“그분이라고?”서강빈은 이 이름을 듣자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오수연은 예전에 서강빈과 송해인을 이혼시켜야 한다고 난리를 피우던 인물 중 한 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적극적으로 이혼을 밀어붙이던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부터 서강빈을 얕보면서 서강빈은 보잘것없는 빈털터리라고 생각했다. 서강빈도 예전에 오수연에게 당한 게 많았는데 오늘 그 사람을 진료해야 할 줄 생각지 못했다. 서강빈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송해인도 눈치채고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